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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운동장에서 자라나는 페어플레이 정신 - 윤대영

올해 초 넷플릭스에서 상영된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의 심리를 다룬 문제작이었다. 언론에 학교폭력이 밝혀지면 인기 연예인들도 무대와 스크린에서 하차하거나 영구 은퇴할 정도로 그 파괴력이 크다. 

학교폭력이 나오는 이전 작품으로 ‘두사부일체’, ‘말죽거리 잔혹사’, ‘친구’ 같은 영화가 있지만 단지 무대만 학교지 사실상 장르는 활극이다. 패싸움을 벌여도 학교와 교사는 여전히 우정과 사랑의 원천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글로리’는 다르다. 부모들이 더 앞장서서 자식의 부당한 폭력을 합리화하고 덮으려는 모습은 2018년 화제작 ‘스카이캐슬’에서 성적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모습과 유사하다.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영웅들이다. 

중고 시절은 몇 학년 몇 반 몇 번이라는 숫자가 소속과 정체를 결정하는 규율과 통제의 시기였다. 특히 고교생 때는 대입 준비로 3년을 심리적 압박감과 싸워야 했다. 

그렇다고 늘 타율에 통제당했던 것만은 아니다. 매년 열린 전교 체육대회는 신명나는 해방구였다. 전교생 10개 반 1800여 명이 운동장에 모여 반 대항 축구, 배구, 핸드볼, 농구를 겨뤘다. 여러 경기를 한꺼번에 해도 될 만큼 운동장은 충분하게 넓었다. 축제 피날레는 기마전, 줄다리기, 400미터 릴레이였다. 토너먼트 예선전부터 서너 달 온 학교가 들썩였다. 3학년생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운동이 입시보다 더 공정한 경쟁이기 때문이다. 
 

5~6개 경기 동시 개최가능한 서울 K고교 운동장 대각선 거리는 160m(파란색).아파트로 둘러싸인 성남 B초중고교의 운동장 대각선거리는 모두 73m(빨간색).
5개학교 체육대회가 열리는 서울 J고교 운동장 대각선 거리는 125m(노란색). 사진=카카오맵

 
서울 종로구 계동에는 역사가 백 년이 넘은 고등학교가 하나 있다. 여느 대학 캠퍼스보다 훨씬 좋은 국제규격 인조 잔디 축구장과 체육관에 서울지역 5개 학교가 모여 정기 친선체육대회를 연다고 한다. 이 학교 졸업생들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수십 년 동안 수도권 중심 경제개발 결과 늘어난 것은 아파트 건물이요, 줄어든 것은 안타깝게도 학교 운동장이다. 신도시에 세워진 학교들은 정식 규격 축구장과 응원스탠드가 없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 설립 운영 규정> 제5조 3항에는, 부지가 좁아 운동장이 기준 면적에 미달해도 인근 시설을 공동 사용할 수 있다면 학교 설립이 가능하게 돼 있다.

심지어 운동장이 없어도 되고 체력검사 달리기는 과거의 절반 50미터로 줄었다. 영국 명문고 이튼스쿨은 매일 점심시간 이후 2시간 동안 운동이 필수이고, 휴일에는 하루 두 번 축구를 한다는데, 우리나라 중고교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계란 일련번호중 끝번호 4는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케이지에서 나온 알이다. 사진 왼편 옅은 색 계란에는 부스럼마저 생겨서 먹기 꺼려진다. 사진=윤대영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나서 외형 중심의 국내총생산(GDP) 산출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관리 부실과 범죄로 인한 사회적 재난 처리비용은 GDP에 포함하지 말자는 것이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사회문제 해결목적 예산만 늘어난다.

요즘 아무 학교나 홈페이지를 열면 학폭 경고가 제일 먼저 팝업으로 뜬다. 학폭 갈등에 무기력하고 상심한 교사들은 차츰 학교를 떠나고 있다. 
지금의 학교폭력은 학생들끼리의 우발적 다툼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의 반영이다. 어른들에게서 오만과 편견, 증오와 차별을 배운 아이들이 학교에서 치르는 대리전이다. 그동안 화려한 도시, 풍요의 경제를 만드는데 열중해온 어른들은 쪼그라든 운동장 한편에서 자라는 학생들을 외면해왔다. 그 학생들이 수십 년 뒤 새로운 학부모가 돼 자녀의 학폭위원회에 참석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제주에서 작은 농장을 가꾸는 친구가 몇 년 전 폐닭 십여 마리를 입양했다. A4용지보다 약간 큰 케이지 속에 종일 갇혀 알을 낳느라 지쳐 털마저 모두 숭숭 빠지고 비실대던 닭들이었다. 농장 여유 공간에 풀어놔 키웠더니 불과 석달 만에 훨훨 날아다니더란다. 장소만 바꿨을 뿐인데 폐기 직전 닭이 씽씽한 토종닭같이 변신했다. 넓은 곳에서 뛰노는 닭들은 활기차고, 알을 낳아도 껍질이 매끈하고 단단하다. 

자연에는 일확천금 한탕 성공이 없다. 심은 만큼 거두고, 공들인 만큼 보답한다.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넓은 운동장에서 맘껏 뛰놀 수 있다면 학폭은 사라지고 학교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페어플레이 정신은 운동장에서 자라난다.

 

 

Tag #윤대영 #지구 #기후 #환경 #지속가능

 

글 : 윤대영 서울디자인재단 수석전문위원

중국디자인정책 박사. 한국디자인진흥원 국제협력업무, 서울디자인재단 시민서비스디자인 개발 등 공공디자인프로젝트 수행,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본부장, 서울새활용플라자 센터장, 독일 iF선정 심사위원 역임. '쓰레기는 없다'(2021. 지식과감성)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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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섬유신문(k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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