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책상 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8년 동안 전국 42개 기관의 현장을 누빈 서비스디자이너 이종휘 크레타입 대표는 오늘도 ‘현장’을 이야기한다. 그는 보고서보다 사람의 얼굴을 먼저 기억하는 디자이너다. 국민디자인단이 처음 도입된 2014년 이후, 그는 가장 오랜 시간 공공서비스디자인의 최전선을 지켜온 실무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노트에는 현장에서 들은 국민과 공무원의 짧은 대화가 빼곡히 적혀 있다. “왜 저한테 이런 걸 물어보시죠?”로 시작해 “드디어 우리를 알아주네요”로 끝나는, 정책 신뢰 회복의 과정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종휘 대표는 서비스디자인을 통해 ‘정책의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왔다. 치매 어르신의 신발에 붙은 ‘안심 스티커’부터,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한 ‘심리방역폰’, 부모의 두려움을 덜어준 ‘놀이발자국’까지—그의 디자인은 늘 현장의 문제에서 출발해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번 인터뷰는 그가 지난 8년간 공공서비스디자인 현장에서 얻은 통찰과 시행착오, 그리고 ‘좋은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실전 노하우를 담고 있다. 그의 말처럼, 공공서비스디자인은 “책상 위에서 그리는 청사진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신뢰로 완성되는 행정”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종휘
디자인 전문회사 크레타입 운영(대표)
지난 8년간 42개 공공서비스디자인 과제 진행(18회 우수과제 선정: 대통령상 1회, 국무총리상 2회, 장관상 15회)
* 이종휘 서비스디자이너가 참여했던 공공서비스디자인(국민디자인단) 우수과제 모음...
한국디자인진흥원 공공서비스디자인 등록 기업
前 서울디자인재단/ 인천테크노파크 서비스디자인 컨설턴트
前 고영테크놀러지, 인프라웨어 UX/UI 디자이너
국민대학교 인터랙션 디자인 석사, 연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학사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책상 위의 서류가 아닌,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질문하고 실행하는 서비스디자이너 이종휘입니다. 저는 ‘공공(公共)’이라는 단어가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것’이 되려면, 반드시 현장의 목소리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기관의 문을 두드리며, 때로는 직접 전화를 걸고, 민원인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국민과 공무원을 한자리에 모아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파고듭니다.
이런 방식으로 42개 기관과 함께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서로 다른 입장이 한 방향으로 모여가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은 다수의 성공사례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큰 성과는 수상 실적 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멀어졌던 국민과 공무원이 한 팀이 되어가는 모습을 직접 지켜본 경험 그 자체입니다.
저는 디자인이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흩어진 개인의 아이디어를 모아 공동체의 해법으로 만들고, 막막했던 정책에 구체적인 실행력을 더하는 일. 그것이 제가 가장 잘하고, 또 가장 사랑하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에서 출발해, 가장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합니다.
Q: 서비스디자인을 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A: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LG전자 HCI/GR 부서에서 GUI 디자이너로 인턴십을 하며 처음으로 ‘진짜 사용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디자인이 단순히 예쁘게 보이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시각적 소통(Visual Communication)’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제 첫 번째 전환점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너무 흥미로워 선배들의 권유로 UX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사용자가 하나의 제품이나 앱을 사용하는 과정, 즉 디지털 접점(Touchpoint)에서의 경험을 설계하는 UX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직관적이고 편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거듭할수록 마음속에 하나의 의문이 커졌습니다. “앱의 UX가 완벽하더라도, 그 앱을 지원하는 직원의 응대가 엉망이거나 시스템 자체가 비효율적이라면, 과연 사용자는 만족할 수 있을까?” 그때 저는 사용자의 경험이 단 하나의 화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서비스디자인’을 만났습니다.
서비스디자인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일과 같았습니다. 특정 배우의 연기(UX)뿐 아니라 무대 뒤 스태프들의 움직임(Backstage), 조명과 음향(물리적 환경), 그리고 전체 시나리오(시스템)까지 총괄하며 고객의 전체 여정(Journey)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디지털과 현실을 넘나드는 모든 접점을 아우르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시스템을 개선하는 서비스디자인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그 순간, 저의 관심은 ‘화면’에서 ‘시스템’으로, ‘사용자 한 사람’에서 ‘이해관계자 모두’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서비스디자인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Q: 국민디자인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서비스디자인의 총체적인 관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장 복잡하고 거대한 시스템인 ‘공공 영역’으로 향했습니다. 디지털과 현실, 정책과 현장, 국민과 공무원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공공서비스는 서비스디자인의 가치가 가장 깊이 실현될 수 있는 무대라고 느꼈습니다.
이론 속 배움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질 무렵,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부여군으로부터 노인 교통안전을 주제로 한 국민디자인단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부여라는 지역이 낯설었지만, ‘현장에서 문제를 직접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편도 다섯 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 담당 공무원을 만났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단순한 교통문제를 넘어, 어르신들의 안전한 일상을 지키려는 담당 공무원의 진심과 고민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바로 이 현장에서 내가 풀어야 할 진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만남은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국민디자인단은 정책의 수요자인 국민과 공급자인 공무원, 그리고 저 같은 서비스디자이너가 한 팀이 되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였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이 한자리에 모여 공감하고 협력하는 이 과정은, 제가 그동안 상상해온 서비스디자인의 이상적인 모습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정책의 변화가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지금까지도 저를 국민디자인단의 현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Q. 그동안 참여했던 공공서비스디자인 과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저는 2017년 부여군 과제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8년간 40여 개가 넘는 기관과 함께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모든 과제가 소중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최근 대표 과제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표 과제 : “모은 건 평생, 잃는 건 한순간” 보이스피싱 심리방역 프로젝트 (2025, 광주경찰청, 국무총리상)
가장 최근에 가장 깊이 몰입했던 프로젝트는 2025년 광주경찰청과 함께 진행한 ‘보이스피싱 심리방역 프로젝트’입니다. 이 과제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했으나, 그보다 더 값진 이유는 경찰과 지역사회가 함께 ‘심리적 면역력’이라는 새로운 예방 패러다임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문제의 발견: 기술이 아닌 ‘마음’을 노리는 범죄
현장에서 마주한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단순하고 어설픈 사기가 아니었습니다. 범죄자들은 최신 기술뿐 아니라, 60대 이상 어르신들의 외로움·불안감·권위에 대한 순응심 등 심리적 취약성을 정교하게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예방 앱이나 제도를 만들어도, 정작 어르신들은 ‘몰라서, 혹은 사용하지 못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습니다. 피해액을 되찾을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운 현실에서, ‘예방’만이 유일한 해법이었습니다.
2. 접근의 전환: ‘개인 책임’에서 ‘환경 개입’으로
국민디자인단(피해 경험자, 경찰, 금융기관 직원, 디자이너)은 “왜 알면서도 속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논의 끝에, ‘개인이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기존의 접근으로는 심리적으로 조종당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개인의 의심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변 환경이 자동으로 개입하여 의심을 유도하고 심리적 방어선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과제 목표를 전환했습니다.
3. 해결책: 일상 속에 스며드는 ‘심리 백신’
이를 위해 저희는 어르신들의 일상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심리 안전망으로 설계했습니다.
(심리방역 휴대폰) 통신사(LGU+)와 협업해, 전화를 받는 순간 의심스러운 단어가 감지되면 경고 문구나 음성이 자동으로 출력되는 기능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악성 앱 설치를 유도하는 피싱범의 핵심 시나리오를 조기에 무력화하는 장치입니다.
(심리백신 접종소) 통신사 대리점, 은행, 복지관 등 어르신들이 자주 찾는 생활 거점을 ‘백신 접종소’로 지정했습니다. 이곳에서 심리방역 기능을 설정해드리고, 실제 범죄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체험형 예방 교육을 제공해 인지적 면역력을 높였습니다.
(은행 문자신고 시스템) 은행 창구는 피해를 막을 마지막 보루입니다. 광주은행과 협력해, 창구 직원이 고액 인출 등 의심 정황을 발견할 경우 큰 소리로 제지하지 않고 경찰에 문자로 즉시 신고할 수 있는 조용하고 신속한 개입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지역사회 심리 울타리) 카카오모빌리티와 요양보호사 네트워크를 연계해, 택시 기사와 돌봄 인력이 어르신들의 예방 파트너로 참여하는 다층적 사회 안전망을 구축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보이스피싱 예방과 관련하여 기술·제도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심리적 면역력 강화’라는 새로운 사회적 접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기타 주요 과제들
이 외에도 저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삶을 바꾸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왔습니다. 몇 가지를 더 소개해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낙인(Stigma)에 가려진 문제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어 보람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바로 광주광역시 동구와 함께한 “놀이기반 영유아 발달장애 조기개입 놀이발자국, 골든타임을 지켜줘!” (2024, 대통령상)라는 프로젝트입니다. 현장에서 보니, 많은 부모님들이 ‘발달장애’라는 진단이 두려워 치료의 최적 시기인 5년 이상을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단’이 아닌 ‘놀이’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부모가 부담 없이 아이와 함께 ‘놀이발자국’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그 과정에서 축적된 발달 데이터가 AI 기술로 분석되어 조기 개입과 정확한 진단을 돕는, ‘선(先)개입, 후(後)진단’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냈습니다.
하남시 원도심에서 진행한 “치매환자 가족지킴이 손잡고 동네방네” (2024, 장관상)라는 과제도 기억에 남습니다. 돌봄에 지쳐 사회적으로 고립된 치매 환자 ‘가족’들의 고통에 집중한 프로젝트입니다. 저희는 지역 상점을 ‘기억친구 가게’로 지정하여 환자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고, 이웃들이 잠시나마 돌봄의 짐을 덜어주는 ‘마음이음 동행단’을 운영하는 등,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지 네트워크가 되어주는 따뜻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이 밖에도 지역사회가 스스로 안전망이 되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동구의 “치매환자 실종 제로 프로젝트 「치매안심 울타리」” (2022, 국무총리상)는 배회감지기 같은 기술에만 의존하는 대신, 어르신들의 신발에 붙이는 ‘안심 스티커’나 가족용 ‘실종대응카드’처럼 작지만 효과적인 도구들을 주민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마을 전체가 실종 예방을 위한 촘촘한 사회적 울타리가 되어주는 모델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제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문제가 있는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시작하고,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과 함께 현실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원칙을 지키며 국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Q: 공공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한 후 정책 방향이 어떻게 개선되었나요?
A: 제가 처음 마주했던 정책들은 대부분 ‘기관’의 언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서 수립된 계획은 효율과 실적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우리 기관이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예산 안에서 몇 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가?”가 주요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접근은 점점 국민의 실제 삶과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선한 의도로 만든 정책이 현장에서는 복잡한 서류로 변하고, 국민을 돕기 위한 서비스가 오히려 그들을 지치게 만드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성공의 기준 또한 ‘리플릿 몇 부를 배포했는가’ 같은 숫자로 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공서비스디자인은 이 모든 것을 뒤집습니다. 국민디자인단 활동의 시작은 언제나 현장입니다. “이 정책이 필요한 ‘그 사람’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주민센터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르신의 표정, 아이의 발달이 늦을까 밤새 인터넷을 검색하는 부모의 불안한 마음을 먼저 들여다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공무원이 한자리에 모여 현장을 세심히 살피고 스스로 정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멍석을 까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치매안심 울타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우리는 초기 치매 환자분들이 예전 집으로 돌아가려는 ‘귀소 본능’ 때문에 반복적으로 실종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가족과 경찰, 이장님, 가게 사장님 등 수많은 사람들이 매번 수색에 나서야 하는 현실을 보며,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의 크기를 실감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실종을 막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곧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실종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대신 발견 시간을 줄일 수는 없을까?’
그 답은 현장의 한 경찰관의 한마디에서 나왔습니다. “신발 색이라도 다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요.”
그 단순한 말이 실마리가 되어, 복잡한 기술이 아닌 눈에 띄는 표식체계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어르신 신발에 붙이는 ‘안심 스티커’가 탄생했습니다.
이 사례는 ‘수요자 중심’, ‘공동 설계’라는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해결 방법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성공의 기준도 ‘리플릿 배포 실적’이 아닌 ‘어르신을 찾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마나 단축되었는가’로 바뀌었습니다. 문제 해결 방식은 ‘기관의 하향식 결정’에서 ‘모두의 상향식 협업’으로, 결과물은 ‘획일적인 정책’에서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로 변화했습니다.
저는 서비스디자이너의 역할이, 차가운 행정 용어들을 국민의 삶에 온기를 더하는 이야기로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류 속에서 잠자고 있던 정책을 깨워, 실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살아있는 서비스로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현장에서 경험한 공공서비스디자인의 진정한 변화입니다.
Q: 개선된 정책 방향에 대한 정책수요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정책수요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회의감과 불신'에서 시작해 '주인의식과 깊은 신뢰'로 끝나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초기 반응: “왜 저한테 이런 걸 물어보시죠?”
제가 현장에서 국민들을 처음 만날 때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것은 놀라움과 약간의 불신이 섞인 표정입니다. 늘 정해진 서류를 통해 일방적으로 소통하던 기관이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니, "이게 정말 정책에 반영이 되나요?",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요?"라며 의심부터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그동안 정책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경험이 만든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정 속의 변화: “제 이야기가 해결책이 되네요”
하지만 이분들이 공무원과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불편함과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하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뀝니다. 특히 자신들이 겪었던 사소한 어려움이나 무심코 던진 아이디어가 정책의 핵심 해결책으로 채택되는 것을 목격할 때,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치매안심 울타리' 프로젝트에서 한 경찰관이 말한 '어르신 신발 색이라도 다르면 좋겠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안심 스티커'로 구현되는 것을 보며, 참여자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민원인이 아닌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됩니다. 이때부터 정책은 '그들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되고, 깊은 주인의식이 생겨납니다.
최종 반응: “드디어 우리를 알아주네요”
그렇게 함께 만든 서비스가 실제 현장에 적용되었을 때, 이분들의 반응은 단순히 '편리해졌다'는 평가를 넘어섭니다. 제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드디어 우리 사정을 알아주네요"라는 감사의 인사입니다. 자신의 삶을 짓누르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만족감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가 존중받고 정책에 반영되었다는 효능감을 느끼시는 겁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만족도 향상을 넘어, 행정 기관에 대한 깊은 신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결국 이분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신뢰가, 또 다른 정책 개선의 원동력이 되어 선순환을 만들어 냅니다. 😊
Q: 과제가 시행된 후 가장 많이 개선된 점은 무엇인가요?
A: 제가 8년 동안 42개 기관과 함께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과제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광주경찰청의 보이스피싱 심리방역 프로젝트는 '피해 발생률' 감소와 '사후 처리 비용' 절감에 가장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전에는 이미 발생한 피해를 수습하는 데 막대한 경찰력과 행정 비용이 소모되었고, 피해자는 돈을 잃고 경찰은 범인을 쫓느라 사회적 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구조였습니다. 프로젝트 시행 후에는 통화 단계부터 의심을 유도하는 심리방역 휴대폰, 은행 창구의 문자 신고 등 범죄가 성공하기 어려운 환경을 설계하여 보이스피싱 범죄의 성공률 자체를 낮추고, 피해 발생 후 막대하게 소요되는 수사 인력과 사회적 비용을 원천적으로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경기 하남시의 단단한 하나의 하남! 정서연대프로젝트는 돌봄 가족의 심리적·사회적 비용을 줄인 점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이전에는 장애인 돌봄 과정에서 아버지와 형제자매가 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사회적 고립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프로젝트 이후에는 ‘토토즐 프로그램’과 ‘길잡이 부모’ 등 가족 구성원별 맞춤형 정서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자조 모임을 구축했습니다. 이를 통해 가족 전체의 심리적 부담을 완화하고, 돌봄 가족이 사회와 단절되지 않도록 지원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사회문제를 예방했습니다.
광주광역시 동구의 놀이발자국 프로젝트는 '진단 및 치료까지의 시간' 단축과 미래의 '사회적 비용' 감소에 가장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전에는 부모가 아이의 발달장애를 의심하고도 사회적 낙인과 정보 부족으로 평균 5년에서 9년 이상을 지체하며 치료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프로젝트 이후에는 ‘놀이’라는 부담 없는 방식을 통해 조기 개입이 가능해졌고,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을 지원함으로써 치료의 골든타임을 확보했습니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장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Q: 공공서비스디자인이 기존 정책 수립 방법 대비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요?
A: 공공서비스디자인의 장점은 크게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높은 정책 효과성
기존 방식이 통계나 문헌에 의존해 문제를 ‘예상’한다면, 공공서비스디자인은 현장으로 들어가 국민의 실제 삶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진짜 문제를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치매 어르신 실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배회감지기를 보급하는 대신, 현장 경찰관의 “신발 색이라도 튀면 좋겠다”는 한마디에서 ‘안심 스티커’라는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근본 원인에 접근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정책이 실제로 사용되고 효과를 발휘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2.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인한 정책 수용성 및 신뢰도 향상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정책은 종종 저항에 부딪히지만, 국민디자인단처럼 국민이 직접 정책 설계 과정에 참여하면 결과물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깁니다.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정책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게 됩니다. 이 과정 자체가 기관과 국민 사이에 막혀 있던 벽을 허물고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3. ‘작은 실패’를 통한 ‘큰 성공’ – 위험 및 예산 낭비 감소
기존 정책은 많은 예산을 투입해 대규모로 시행했다가 실패하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공서비스디자인은 아이디어를 곧바로 실행하기 전에, 저비용으로 시제품(Prototype)을 만들어 소수의 사용자와 함께 미리 테스트합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점을 빨리 발견하고 개선하며(‘빠르고 값싼 실패’), 최종적으로 성공 확률이 높은 정책을 내놓을 수 있어 결과적으로 막대한 예산 낭비를 막아줍니다.
Q: 반대로 공공서비스디자인의 단점 및 현실적인 한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단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초기 단계의 시간과 비용 소요
현장 조사, 심층 인터뷰, 수차례의 워크숍 등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과정은 책상에서 보고서를 쓰는 것보다 초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기 실적에 익숙한 조직에서는 이 과정을 비효율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발생할 더 큰 실패 비용을 막는 필수적인 ‘투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2.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 조율의 어려움
국민, 공무원, 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면 각자의 입장과 요구가 충돌하기도 합니다. 모든 의견을 다 수용할 수는 없기에, 이견을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고도의 촉진(Facilitation) 역량을 필요로 합니다. 이 과정이 미숙하면,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3. 결과의 불확실성과 측정의 어려움
디자인 과정은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답을 ‘만들어가는’ 여정입니다. 따라서 프로젝트 시작 단계에서 명확한 결과물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또한, ‘신뢰도 향상’, ‘심리적 만족감’과 같은 중요한 성과는 단기적인 숫자로 계량화하기 어려워, 가시적인 실적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공공서비스디자인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쉽지 않은 길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정책이 아닌, 국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살아있는 서비스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방법보다 강력하고 가치 있는 접근법이라고 확신합니다.
Q: 공공서비스디자인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A: 물론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가장 큰 필요성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던 정책을 실제 국민의 삶에 작동하는 서비스로 만들어, 국민의 불편함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장에서 그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필요성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과 ‘조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제가 목격한 가장 큰 변화는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가장 큰 힘은 공무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마음, 즉 ‘자기효능감’을 심어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무력감 대신,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것이죠. 광주경찰청의 보이스피싱 예방 프로젝트가 좋은 예입니다. 홍보와 강력계라는 전혀 다른 두 부서의 담당자들이 국민디자인단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봤지만, 함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놀라운 시너지가 발생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두 부서 담당자들 모두 “서로의 전문성이 합쳐져 혼자서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을 해결책을 찾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부서 간의 벽을 허물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공무원들은 더 큰 성취감과 효능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공공서비스디자인은 '저비용 고효율'의 참신한 해결책을 찾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저는 항상 ‘큰돈’이 아닌 ‘작은 아이디어’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공무원들에게 ‘심리적 안심’을 줍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 대신, “적은 비용으로 여러 번 시도해봐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죠. 이러한 심리적 안전지대 속에서 공무원들은 더 과감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작은 실패를 통해 배우며 결국 성공적인 정책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공공서비스디자인은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이 먼저 자신감과 효능감을 가질 때, 비로소 국민의 삶을 바꾸는 살아있는 정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Q: 공공서비스디자인이 공공분야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A: 공공서비스디자인이 공공 분야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성공사례의 증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그 효과를 납득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용하고 싶게 만들, 명확하고 신뢰도 높은 선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국민디자인단 과제들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기획’ 단계에서 멈추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획안이 실제 정책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끝까지 추적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부족합니다.
작년에 대통령상을 수상했던 ‘놀이발자국’ 프로젝트를 통해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과제 추진 이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업이 고도화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서비스디자이너로서 과제에 대한 애정이 커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렇게 훌륭한 결과를 내고도 그 성과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은 공공서비스디자인이 넘어야 할 가장 큰 한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과의 증명’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대통령상이나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우수과제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예산 트랙을 마련하여, 아이디어가 단순 기획에 머무르지 않고 집행-운영-성과 측정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렇게 축적된 성공사례들이 점차 늘어나면, 다른 공무원들도 자연스럽게 그 효과를 신뢰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용하려는 동기부여를 얻게 될 것입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우리의 노력이 데이터와 노하우로 쌓여갈 때, 대한민국 공공서비스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Q: 공공서비스디자인 우수과제를 많이 배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A: 제가 생각하는 좋은 결과물의 핵심 비결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풀 가치가 있는 진짜 문제’를 알아보는 것이고, 둘째는 담당 조직의 ‘내적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제의 ‘적합성’입니다. 공공서비스디자인은 모든 문제에 적용되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저는 과제를 선정하거나 자문할 때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과연 여러 부서가 얽힌 ‘고질적인 난제(Wicked Problem)’인가? 해결했을 때 많은 국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가?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지 못했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문제인가? 이렇게 ‘풀 가치가 있는 진짜 문제’를 찾는 것이 성공의 절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문제를 찾았다면, 그 다음은 담당자와 조직의 ‘적극적인 자세’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특히 자율 과제의 경우, 담당자들이 공공서비스디자인을 낯설어하며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담당자분들에게 다양한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관련 교육을 진행하며 공공서비스디자인이 얼마나 강력한 도구인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해도가 높아지면, 담당자는 더 이상 과제를 억지로 끌려가는 수동적인 참여자가 아니라, 해결 과정을 주도하는 적극적인 파트너로 변합니다. 워크숍의 질이 달라지고,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솟아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적합한 과제’와 ‘적극적인 담당자’라는 두 축이 제대로 맞물릴 때, 좋은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런 프로젝트는 나중에 성과 보고서를 쓸 때에도 막힘없이 술술 풀리고, 최종 성과공유대회에서도 담당자 스스로가 확신을 가지고 발표하기 때문에 좋은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Q: 그간 공공서비스디자인 분야에 종사하시면서 겪은 위기가 있다면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A: 제가 8년간 이 분야에 종사하며 겪는 가장 큰 위기는 매년 반복되는 ‘지속가능성의 위기’입니다. 훌륭한 성과를 내더라도 다음 해의 안정을 보장받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성공적인 과제를 수행해도 그 평판이 다음 사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매년 원점에서 다시 치열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희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이너 풀에 등록된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평가받고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특히 담당 공무원의 ‘순환보직’은 가장 뼈아픈 지점입니다. 몇 년간 특정 기관과 깊은 신뢰를 쌓고 성공적인 유산을 만들어도, 담당자 한 분의 이동으로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곤 합니다. 이는 이 분야가 성장하지 못하고 매년 ‘제로섬 게임’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또한, 과제당 책정된 비용이 낮아 여러 개를 동시에 수행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이는 서비스디자이너가 하나의 과제에 깊이 몰입하기보다, 여러 과제를 따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소모적인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는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대신 먼저 움직이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매년 초, 이전에 함께했던 기관들에 먼저 연락을 드려 지난 과제의 성과를 공유하고 새로운 과제를 제안하는 적극적인 ‘기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일감을 따내기 위함이 아니라,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가치를 꾸준히 상기시키고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만들어가려는 저만의 생존 방식이자 노력입니다. 결국 이 분야가 건전한 ‘사업’으로 성장하여 더 많은 전문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제가 겪는 위기와 공공서비스디자인 분야 전체의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서비스디자이너로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지난 8년간 공공서비스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며, 저는 정책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저의 쓰임이 공공 영역에서 활용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형태의 공공 문제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바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오프라인 창업’ 생태계입니다.
현재 오프라인 창업은 거액의 자본을 투입하는 프랜차이즈나, 모든 위험을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독립 창업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두 방식 모두 ‘한 번 실패하면 끝’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매년 수만 개의 가게가 생기고 사라지는 안타까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서비스디자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창업 초기에 큰 돈을 들이는 대신, 서비스디자인의 프로토타이핑(시범 운영) 방식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사업 모델을 검증하고 실패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철저한 고객 경험(CX) 설계를 통해, 단순히 물건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고객에게 독특한 가치를 제공하는 차별화된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생존력의 핵심입니다.
저는 앞으로 10년간, 서비스디자인을 통해 소상공인들의 창업 생존율을 높이는 것을 저의 새로운 과제로 삼고자 합니다. 공공의 시선으로 자영업자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의 도전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나아갈 다음 방향입니다.
Q: 수상하신 소감과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귀하고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및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상은 결코 한 사람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닙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익숙한 관행 대신,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함께해주신 담당 공무원분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그리고 자신의 가장 아픈 이야기를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꺼이 나눠주신 국민 참여자분들의 진심이 없었다면, ‘놀이발자국’이라는 작은 씨앗은 결코 싹을 틔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땀 흘려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수상은, ‘발달장애’라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잠 못 이루던 부모님들의 마음을, 그리고 아이들의 소중한 ‘골든타임’을 지켜주고 싶었던 우리 모두의 간절함을 알아주신 것이라 생각하여 더욱 뜻깊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수상이 하나의 성과를 넘어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가능성을 함께 인정받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듣고, 흩어진 생각과 경험을 연결하며, 결국에는 행정과 국민 사이에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세금이 ‘리플릿 몇 부’라는 행정 실적이 아닌 ‘한 아이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쓰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에서 출발하여, 가장 따뜻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디자이너로 살아가겠습니다. 이 영광을 함께 한 모든 분들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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