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디자인단 우수과제에 참여했던 다섯 명의 공직자를 인터뷰한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었다. 서로 다른 지역과 기관, 서로 다른 정책 분야에서 일했지만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당초 문제 정의가 잘못되어 있었다.” 예외는 없었다. 그들이 처음 책상에서 보았던 문제는 늘 비슷했다. ‘교육이 부족하다’, ‘정보가 부족하다’, ‘서비스가 부족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수요자를 만나 깊이 듣기 시작하면 다른 세계가 나타났다. 부모는 발달장애라는 낙인을 두려워했고, 어르신은 공동체 안에서 사라지는 느낌을 호소했으며,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너무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안과 절박함 때문에 속았다. 문제는 관계 단절과 정서적 고립, 낙인에 대한 공포, 심리적 취약성으로 재정의되었다. 한 명의 수요자 경험, 인터뷰의 한 문장, 주저하다가 터져 나온 눈물이 정책의 방향을 바꿨다. 이 변화는 한국 행정이 가진,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한계점을 드러낸다.
1. 한국 행정은 왜 문제를 다시 묻지 못하는가
한국의 정책 과정은 오랫동안 ‘합리적 기획 모형’을 표준으로 삼아왔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대안을 비교하고,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집행하는 방식이다. 문제를 먼저 정하고, 그 문제에 예산을 배정하며, 정해진 사업계획대로 집행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문제를 바꿀 여지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예산은 기획 단계에서 설정된 문제를 전제로 편성된다. 문제를 뒤늦게 바꾸는 순간 모든 절차가 무너진다. 그래서 문제를 다시 묻는 일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현대 행정이 다루는 실제 문제들은 복잡한 문제, 즉 Wicked Problems이다. 복잡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다.
문제의 경계와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이해관계자마다 문제를 다르게 정의한다.
문제의 정의와 해결이 동시에 진행되며, 해결 과정에서 문제의 성격이 변한다.
기존의 경험이나 통계만으로 충분히 예측할 수 없다.
단선적 해결책이 맞지 않으며,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이런 문제에 합리적 기획 모형을 적용하는 것은, 안개 속 산을 직선 자로 재려는 것과 같다. 정책서는 명료하지만 현실은 복잡하고 흐릿하다. 그 괴리가 결국 정책 실패로 이어진다. 문제를 잘못 정의한 상태에서 효율성을 높이면, 실패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만드는 결과가 나오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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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 기존: 합리적 기획 모형 (관리 중심) | 제안: 공공서비스디자인 (발견 중심) |
| 핵심 철학 | 선(先)결정 후(後)집행 | 선(先)관찰 후(後)실험 |
| (답을 정해 놓고 실행) | (문제를 다시 묻고 검증) |
| 문제 정의 | 공급자 관점 (표면적 결핍) | 수요자 관점 (심층적 욕구) |
| 예: 교육 부족, 시설 부족, 정보 부족 | 예: 관계 단절, 낙인 공포, 심리적 불안 |
| 수요자 인식 | 수동적 대상 (민원인, 수혜자) | 공동 생산자 (문제 해결의 파트너) |
| 성공 기준 | 계획대로 예산을 집행했는가? (효율성) | 실제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효과성) |
| 실패 관리 | 실패는 허용되지 않음 (사후 감사) | 실패 권장. 프로토타입으로 조기 발견 (위험 관리 수단) |
| 필수 조건 | 정확한 통계, 완벽한 계획서 | 심리적 안전감, 전문 디자이너(조정자) |
2. 인터뷰가 드러낸 문제 재정의의 현실적 의미
우리가 접했던 인터뷰 사례들은 문제의 재정의가 왜 중요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광주 동구는 발달장애 조기 개입을 위한 지원 체계 구축이 가장 합리적인 해법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부모들을 깊이 만날수록 진짜 문제는 낙인 공포였다. 부모는 진단보다 시선이 두려웠고, 진단 절차를 미루는 이유는 행정이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정서적 요인이었다. 보이스피싱 예방 과제도 처음에는 정보 부족을 문제로 봤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고위험군은 정보를 잘 알고도 속았다.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심리였다. 질문이 어떻게 알릴까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만들까로 바뀌었다. 아동 교육격차 문제는 교육 프로그램 제공으로 해결될 것처럼 보였지만, 인터뷰에서 드러난 진짜 문제는 공간 부족, 또래 관계의 단절, 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었다. 정책 방향은 교육에서 관계 형성으로 전환되었다.
영암군의 통합돌봄 프로젝트도 초기에는 신체적 돌봄 중심이었지만,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의 외로움과 공동체 상실이 더 큰 문제였다. 돌봄은 서비스가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모든 사례에서 공통의 패턴이 있었다. 표면적·공급자 중심 문제는 현장에서 정서·관계 기반의 진짜 문제로 이동했다. 전환점은 항상 수요자의 개인적 경험, 한 문장의 고백에서 나왔다. 통계가 아니라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문제를 다시 묻게 만들었다.
3. 심리적 안전감과 디자이너의 역할
이러한 성찰은 담당 공직자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수요자는 공직자를 권력자로 인식한다. 민원을 제기하는 자리로 오해하거나, 행정이 원하는 답을 하려고 하거나, 심리적 부담을 느껴 말하지 않거나 한다. 진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문제 재정의의 출발점은 심리적 안전감이다. 공직자가 직접 생생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권력관계 때문이다. 여기서 서비스디자이너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 디자이너는 공급자도 수요자도 아닌 중립적 위치에서 대화를 열고, 조율하고, 갈등을 다루고, 다양한 감정이 안전하게 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 결과 국민디자인단 활동에 참여하는 수요자들은 숨겨왔던 경험을 드러낼 수 있고, 그 경험이 문제를 다시 묻는 기폭제가 된다.
서비스디자이너가 개입된, 국민디자인단으로 이루어야 할 역할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문제 정의.
둘째, 합의 촉진.
셋째, 실험 설계.
국민디자인단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활동이라기보다, 문제를 정확히 보게 만드는 활동이다. 이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어느 사례들도 방향을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4. 프로토타입 단계가 정책의 위험을 낮춘다
문제를 재정의 한 뒤에는 반드시 실험이 필요하다. 인터뷰 사례 모두에서 프로토타입은 정책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였다.
예를 들어 서로 돌봄 프로그램은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이상적인 대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프로토타입 과정에서 어르신들은 전화를 걸지 못하거나, 관계 갈등 때문에 오히려 정서적 부담을 느끼는 문제가 드러났다. 이후 행정은 개인 맞춤형 접근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학생과 주민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에서도 실험을 통해 지역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사업의 전체 방향이 바뀌었다.
프로토타입은 정책 실패를 조기에 발견하는 위험관리 장치다. 실패를 초기에 확인하면 비용은 작고 조정은 쉽다. 하지만 한국 행정은 기획·예산·집행으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라 실험의 자리가 없다. 그래서 실패가 뒤늦게, 그것도 시민을 만난 이후에야 드러난다. 프로토타입은 정책 실패를 줄이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다.
5. 국민디자인단은 정책 실험 플랫폼이다
국민디자인단은 단순한 행정 혁신 프로그램이 아니다. 문제 재정의, 현장 참여, 프로토타입 실험을 묶어 정책문제를 재구성하는 장치다. 한국 행정에서 보기 드문 정책 실험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이 작동하려면 문제를 다시 묻는 절차가 행정의 한복판에 위치해야 한다. 문제 재정의와 실험이 공식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예산·시간·인력·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6. 정책 과정의 재설계 제안
새로운 정책 과정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1. 문제 재정의 단계(공공서비스디자인 적용, 수요자 조사 의무화)
2. 예산 배정
3. 프로토타입 단계(정책 실험)
4. 본 집행
5. 평가
이 구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예산 편성 과정에 문제 재정의 절차를 삽입한다. 문제 재정의 보고서를 예산제출 필수 서류로 만들고, 이를 충실히 수행한 과제에 가점을 부여한다. 여기에 충분한 자원(시간, 인력,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둘째, 프로토타입 예산을 별도로 확보한다. 프로토타입은 실패와 조정이 반복되는 실험이므로 목적 변경과 용도 조정이 가능한 유연한 예산이어야 한다.
셋째, 서비스디자이너, 정책 수요자 참여를 의무화한다. 디자이너와 수요자가 없는 문제 재정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자체 단위에는 광역단위 디자이너 풀을 구성하고, 기관 소속 디자이너를 안정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넷째, 사업부서 주도 체계로 전환한다. 공공서비스디자인 과제를 수행한 사업부서에 인사 가점을 부여하고, 업무 경감 제도를 마련해 참여 부담을 줄인다.
다섯째, 조직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 문제를 재정의하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즉각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이 과정이 없으면 정책은 잘못된 시작점에서 출발하게 된다. 결정권자가 이를 이해하고 지지해야 한다.
7. 행정의 미래는 문제를 다시 묻는 데 있다
행정의 본질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잘못 정의하면 해결책이 아무리 정교해도 소용이 없다. 정책은 처음 설정한 문제를 바꾸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만든 결과물이다. 그러니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실패는 반복될 수 있다. 국민디자인단 인터뷰는 행정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정책은 데이터와 절차가 아니라 사람의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문제를 정확히 보는 일이야말로 행정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혁신이다. 문제를 다시 묻는 행정. 이것이 수요자 중심의 행정을 가능하게 하고, 정책 실패의 위험을 낮추며, 복잡한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국가 운영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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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5.9.24.~11.27. 공공서비스디자인 인터뷰 중 공직자(공무원 등 기관 과제 담당자)들의 인터뷰를 AI(챗GPT)가 분석한 글의 수정본입니다.
[공공서비스디자인 11인11답]
공직자와 서비스디자이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정책이 바뀌는 순간’이 숨어 있습니다.
거절당한 경험이 문제였다는 통찰, 단절된 지역과 아이들을 다시 잇는 디자인, 보이스피싱조차 ‘심리’로 막아내는 공공서비스…
11개의 인터뷰는 수요자와 마주하는 자리에 문제 정의가 뒤집히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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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생이 된 공무원 - 정회명 광주 동구 주무관
2. 디자인으로 행정을 바꾸다 - 김동호·최소윤서비스디자이너
3. 정책은 현장에서 완성된다 - 이종휘 서비스디자이너
4. 보이스피싱을 이기는 방법을 디자인하겠습니다 - 박도연 광주경찰청 경감
5. 모두에게 힘이 되는 따뜻한 돌봄 - 진한겸 영암군 팀장
6. 단절된 지역과 아이들을 잇다 - 박현재 울산항만공사
7. 정성으로 만드는 정책, 사람 중심 행정의 길 - 김세은 서비스디자이너
8. 문제를 다시 묻는 디자이너 - 김민수 서비스디자이너
9. 정책과 사람을 잇는 일 - 강동선 서비스디자이너
10. 문제는 시설이 아니라 ‘거절당한 경험’이었다 - 김윤아 강남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
11. 민원인에서 파트너로 - 박상길 서비스디자이너
공공서비스디자인 인터뷰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