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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지 않아도, 몰라도 할 수 있게 -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총괄 기획자, 김경진 엑스플로어 대표

배우지 않아도, 몰라도 할 수 있게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총괄 기획자, 김경진 엑스플로어 대표 인터뷰

 

산업단지정책해커톤에 참여했던 한 청년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 마음에 가장 큰 불을 지폈던 건, 다름 아닌 서비스디자인 방식의 워크숍이었습니다.”
그는 해커톤이 끝난 직후 망설임 없이 서비스디자인 학점은행제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생각을 검열하지 않고, 노동자의 경험과 마음에서 출발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확장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해커톤의 총괄 기획자 김경진 엑스플로어 대표는 산업단지정책해커톤을 일반적인 아이디어 대회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산업단지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직접 느끼고, 그 경험으로부터 문제를 다시 정의하게 만들고자 했다.

2026년 4월 17일부터 18일까지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은 일반적인 아이디어 대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산업단지 근로자, 시민, 공무원, 서비스디자이너, 비주얼라이터가 한 팀이 되어 산업단지의 문제를 수요자의 경험에서 다시 바라보는 자리였다. 이번 해커톤은 산업단지에서 실제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함께 공감하고, 그 경험 속에서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었다. 교통 단절, 야간 안전, 문화적 고립, 생활 인프라 부족 같은 산업단지의 문제는 시설 자체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번 행사는 산업단지 정책 수요자와 정책 담당자가 같은 팀 안에서 함께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만드는 구조로 운영되었다. 각 팀에는 서비스디자이너인 퍼실리테이터와 비주얼라이터가 배치되었고, 참가자들은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활용해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기존 정책 개발 방식이 전문가 중심의 기획이라면 이번 해커톤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향을 함께 만드는 실험에 가까웠다.

이번에 전체 프로그램 총괄 진행을 맡았던 김경진 엑스플로어 대표는 해커톤을 “아이디어를 많이 만드는 행사”보다 “참가자들이 진짜 문제를 느끼고, 그 경험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만들게 하는 과정”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는 김경진 대표가 해커톤을 어떻게 서비스디자인 과정으로 번역했는지를 설명한 기록이다.

김경진 대표 프로필 사진

김경진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 총괄 진행자
엑스플로어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흔한 해커톤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Q.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을 기획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A. 이 해커톤의 총괄진행을 맡고 해커톤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부분은 ‘이 해커톤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커톤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팀을 이루어 제한된 시간, 예를 들어 무박 2일, 무박 3일이라고 할 정도로 압축적이고도 짧은 기간 동안 주제에 맞는 서비스나 아이디어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협업 프로젝트 형식의 행사입니다. 보통의 해커톤은 워낙 촉박한 시간에 아이디어를 내기 때문에 솔루션, 즉 결과물이 중심이 됩니다.
하지만, 산업단지 정책을 만드는 이번 해커톤은 그렇게 접근하면 안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산업단지는 성장해 온 시간만큼 노후화되었고, 지금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교통 단절, 낙후된 시설, 정서적 고립 같은 문제들은 단순히 시설을 보수하거나 확장하는 방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이 시설 자체가 아니라 그 산업단지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단지는 대개 도시 외곽에 조성되어 있고, 문화적으로도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페, 병원, 운동시설 같은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도 부족한 경우가 많고, 해가 지면 거대한 유령 도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해커톤은 단순히 아이디어를 많이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산업단지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마음 속에 깊게 베어 있는 말하지 못한 결핍과 욕구는 무엇인지 등 그들의 경험에서 시작하고 그것을 함께 느끼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사람의 경험에서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Q. 그것이 해커톤이 서비스디자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이유였을까요?

A. 서비스디자인 방식을 적용한 해커톤이라는 것이 원래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번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의 컨셉을 ‘서비스디자인방법론 적극 활용’으로 잡고 새롭게 시도해본 것입니다. 일반적인 해커톤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집중합니다. 바로 아이디어를 내죠. 그런데 이번 해커톤은 “산업단지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업단지 문제 중에는 숫자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야간 퇴근길의 불안감, 휴식 공간 부족으로 인한 피로감, 적치물과 오래된 공장 외벽 등의 환경에서 자신들의 미래도 낙후되었다고 느끼는 우울감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실제로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보입니다. 서비스디자인은 사람의 경험을 중심으로 문제를 다시 바라보는 접근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왜 불편한가, 그 불편함 속에 어떤 진짜 문제가 가려져 있는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번 해커톤에서는 문제를 겪는 사람과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구조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해커톤은, 일반적인 해커톤과 달리, ‘무엇을 만들까’가 아니라 ‘그들은 어떤 것이 불편하고 힘들까’에서 시작하고 그들의 경험에 집중하기 위해 서비스 디자인 방법을 적용하는 특별한 해커톤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증상에는 진통제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증상에는 본질적인 치료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일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삶을 바꾸는 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해커톤의 모든 프로그램을 심혈을 기울여 기획했습니다.

“서비스디자인 방식의 해커톤이라는 것이 원래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Q. 그렇다면, 서비스디자인 방식을 적용한 해커톤은 어떤 것인가요?

A. 서비스디자인 방식을 적용한 해커톤이라는 것이 원래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번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의 컨셉을 ‘서비스디자인방법론 적극 활용’으로 잡고 새롭게 시도해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해커톤은 그 서비스를 이용할 사용자 또는 수요자를 팀원으로 초대하지는 않습니다. 공급자끼리 아이디어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번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에서는 산업단지 근로자, 지역 주민, 지자체 공무원, 산업단지공단 및 산업통상부 담당자 등 이해관계자가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한 팀으로 구성했습니다. 이해관계자가 모여 산업단지 근로자의 일상과 경험을 나누고 그 속에서 함께 진짜 문제를 정의하고 공유하고 다 같이 아이디어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또한, 일반적인 해커톤에서는 사용자가 느끼는 불편함이나 잠재 되어있는 욕구를 탐색하는 시간을 갖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커톤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 이면에 숨어있는 ‘말하지 못한’ 결핍과 욕구를 수면 위로 떠올릴 수 있도록 이를 위해 낯선 팀원들끼리 자연스럽게 ‘우리는 한 팀’이라는 의식을 만들고, 라포를 형성하고, 나아가 ‘토론을 가장한 심층인터뷰’가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은 발산과 수렴을 반복하는 것이 특징인데, 아이디어를 도출해서 최종 컨셉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산한 후에 수렴을 통해 최종 컨셉을 만듭니다. 이러한 방법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적용해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아이디어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디어가 단편적인 문제 해결에서 그치지 않고 산업단지 근로자들의 일상에서 경험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디벨롭되도록 ‘아이디어 살 붙이기’, ‘아이디어 근육 키우기’ 등의 활동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게, 몰라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Q. 서비스디자인 방법이라는 개념이나 용어가 참석자들에게 낯설고 생소할 것 같은데,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획하실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쓰셨나요?

A. ‘서비스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주는 생소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비스’도 아는 낱말이고 ‘디자인’도 아는 낱말인데, 이 두 낱말이 결합되면서 전문 용어가 된 데서 오는 거리감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참석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평상시 참여할 기회가 별로 없는 ‘해커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게다가 낯선 분야를 새롭게 배우면서까지 참여해야 한다면 전혀 즐겁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이 두가지를 염두에 두고 세부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참석자들이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배우지 않아도 따라 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참석자들이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몰라도 즐길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먼저,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의 언어로 치환했습니다. 아이디어 클러스터링(Idea clustering)은 ‘아이디어 근육 키우기’로, 아이디어 빌드업은 ‘좋아, 거기에 (이것도 해보자!)’로 바꾸었습니다.
두번째는, 사람들의 점진적 몰입을 설계했습니다. 첫날의 ‘서비스디자인 및 해커톤 이해하기’ 강의에서는, 강의로 느껴지지 않고 공감가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처럼 느껴지도록 ‘TED’, ‘세바시’ 같은 형식을 빌어 ‘맞아!’를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후 세션별 활동에서는 ‘행동 이끌어내기(해보고 싶어! 나도 해봐야겠다!), 마음 이끌어내기(쉬는 시간인데 같이 있고 싶어!), 열정 이끌어내기(더 고민하면, 같이 더 얘기해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 같아!) 등 참석자가 스스로 행동과 마음이 몰입으로 이어지도록 활동을 기획했습니다. 이 몰입의 정점은 스스로 리더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퍼실리테이터가 일일이 가이드를 주지 않아도 미리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것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정도로 적극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실제로 참석자들이 이렇게 바뀌셨습니다)
세번째는, 서비스디자인 방법들을 활용함에 있어서, 그 활동들이 ‘의미 있어 보이고 따라 해보고 싶게’ 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면, 창의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고 하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왜 좋은가(특히 수요자 입장에서)에 대하여 언급이 없다면 그 활동은 해야 하는 ‘일’이 되기 쉬운데, 다양한 창의적이라고 공감될 만한 사례를 보여주고 그러한 사례를 보다 보니 창의적인 것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 이제는 창의적인 접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참석자들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품 증정입니다. 이번 해커톤에서 최종발표의 시상을 제외하고도 이틀 동안 진행된 대부분의 활동에서 크고 작은 많은 선물을 제공했는데, 그 모든 선물 제공은 취지가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참석자들이 ‘내가 답해도 되나?’하는 주저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답변 자체가 참여’라는 취지로 선물을 제공하거나, 팀 협업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팀끼리 경쟁을 붙여 우승팀에 선물을 제공하거나, 아이디어 발표 시 아이디어 자체만 발표하면 평가자를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가 수요자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삶을 변화시켜주는지를 잘 설득한 팀에게 ‘잘 설득 상’을 제공하거나 하여,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배우지 않아도 ‘아, 저렇게 하는 게 중요한 거구나!’하고 알아지도록 경품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강의 자체가 리서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Q. 각 세션에서 보면, 해커톤 초반 강의를 상당히 중요하게 배치하셨습니다.

A. 원래 서비스디자인은 현장 관찰과 인터뷰 같은 수요자 리서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해커톤은 1박 2일 안에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직접 산업단지를 충분히 탐색하기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서비스디자인 및 해커톤 이해하기’ 강의 안에서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 중 ‘공감하기 단계’의 역할을 일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업단지의 공간과 분위기, 청년 근로자들이 실제로 겪는 감정과 생활 환경을 참가자들이 어느 정도 공감한 상태에서 팀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서비스디자인도 정의를 설명하기보다 감각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3D 횡단보도 사례나 서울아산병원 수술 전 대기실 사례를 소개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바꾸는 경험 자체가 서비스디자인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지역 산단 개선에 머물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Q. 팀빌딩 과정에서 ‘통합 산단 이름 짓기’를 넣으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 처음에는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자기가 온 지역 이야기부터 하게 됩니다. 구미 참가자는 구미 이야기, 창원 참가자는 창원 이야기, 완주에서 온 참가자는 완주를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논의가 지역 산단을 개선하는 것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해커톤에서는 특정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 산업단지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를 발견하는 것, 나아가 전국의 산단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전국 산업단지를 하나로 합친 가상의 ‘통합 산단’을 상상하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는 활동을 함으로써 ‘내가 만든 산단을 위한 아이디어 도출’에 집중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팀 이름을 정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가 어떤 산업단지를 만들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쉬운 것을 함께 해봐야 어려운 것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을 함께 해봐야 진지한 것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팀 빌딩 과정에서의 활동은 앞으로의 활동의 준비운동과 같았습니다.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관점을 이동시키는 과정입니다.”

Q. 과정 전반에 창의적 사고를 특히 강조하셨습니다.

A. 참가자 대부분은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부담은 오히려 사람들을 위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창의성을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문제를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거나, 익숙한 문제를 다른 요소와 연결해보는 경험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SCAMPER나 랜덤 단어연결 같은 기법을 넣은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특히 랜덤 단어연결은 산업단지 문제를 기존의 익숙한 방식으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사고 흐름을 흔들어보는 장치였습니다.

“프로토타이핑 사고를 몸으로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Q. 마시멜로 챌린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체 프로그램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장치였나요?

A. 마시멜로 챌린지는 참석자들이 높은 몰입감으로 정말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마시멜로챌린지는 레크리에이션이 아니었습니다. ‘게임을 가장한 학습’의 시간이었습니다. 첫날 저녁 식사 후에 진행한 마시멜로 챌린지는, 오후 내내 진행되었던 아이디어 도출과 확산 활동에서 아마도 서로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지 않거나 설득하지 못하는 경험도 있었을 것이고(그랬다면 다시 팀빌딩이 필요한 상황), 많은 창의적 활동으로 지친 뇌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취지로 이 시간을 택해 진행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피터 스킬먼이 고안한 이 실험은 전 세계 CEO들과 디자인 전문가들이 '팀워크와 혁신의 원리'를 배우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과정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답을 찾으려고 하면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빠르게 만들어보고, 실패하고, 다시 수정하는 팀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업단지 문제처럼 복잡한 문제는 처음부터 완성된 답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게 시도하고, 반응을 보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서비스디자인에서는 이런 접근을 프로토타이핑 사고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참가자들이 그 태도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경험해보기를 바랐습니다.

“발표는 설득이고, 설득의 핵심은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리고 최종 발표 세션을 앞두고 특히 ‘공감’을 강조하셨죠?

A. 좋은 정책 아이디어는 정보가 많다고 설득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대기업에서 20년남짓 일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발표는 평가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는 대체로,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에 있습니다. 그것을 상대방이 함께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발표도 보고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업통상부 장관님을 비롯하여 여러 유수의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오셔서 아이디어를 들을 때 산업단지 근로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 팀이 왜 이런 해결 방향을 고민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 다음에야 해결 방향이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해서 최종 발표 세션을 앞두고 먼저 산단 근로자의 삶과 고민을 들려준 후 창의적인 해법을 보여주도록 강조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 현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에 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 해커톤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이번 해커톤은 문제를 겪는 사람과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경험을 공유해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단지 정책 아이디어가 산단 근로자의 경험과 마음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서비스 디자인의 접근은 눈에 보이는 ‘문제 현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 즉 진짜 문제 찾아 경험을 설계’하는 방법입니다. 이 부분을 참석자들이 다같이 공감하고 끝까지 염두 하도록 해커톤 프로그램 내내 강의나 팀 활동 뿐 아니라 활동 시 작성하는 양식 또는 다양한 경품 증정 사유 등 속에 담아 내면서 참석자들이 수시로 공감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이 해커톤에 함께 했던 모두가 공통의 언어처럼 생각의 기준점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왜 불편한지, 그 안에 담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에서 출발해서 산업단지 근로자의 삶을 바꿀 아이디어가 나온 과정을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그런 점에서 이번 해커톤은 서비스디자인을 공공정책 현장에 적용해본 하나의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퍼실리테이터가 이끌고, 비주얼라이터가 보여주고, 수요자가 함께 한 이번 해커톤은 그 자체로 공공서비스디자인이었습니다”

Q. 이번 해커톤을 총괄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A. 생각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었고, 기대 이상의 장면도 있었습니다. 먼저, 생각하지 못한 순간은, 참석자들이 무대 쪽으로 찾아오거나 행사장에서 마주치면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씀하시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마음 속 목표에 답을 듣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즐겁게 참여하시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정책에 참여할 준비가 이미 충분히 되어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기대 이상의 장면의 주인공은 퍼실리테이터와 비주얼라이터였습니다. 보통 서비스디자인방법을 활용하는 아이디어 워크샵이나 소비자 참여 워크샵에서 퍼실리테이터와 비주얼라이터를 모시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해커톤에서는 흔치 않습니다. 이번 해커톤에서는 ‘게임의 탈을 쓴 서비스디자인방법들’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각 팀을 리딩을 해줄 서비스디자인 전문가들을 퍼실리테이터로 모시고, 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시각화하고, 팀원들이 작성하고 토론한 활동의 결과물을 폼보드에 붙이며 퍼실리테이터를 도와 팀원들에게 활동을 자극하고 이해를 촉진해준 비주얼라이터를 모셨는데, 1박 2일이라는 촉박한 시간 동안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팀원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마치 수개월 동안의 공공 프로젝트를 하는 듯이 밀도 높은 팀워크를 이루고 어디로든 튀는 의견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무엇보다 최고의 결과물을 팀원들이 함께 만들어내도록 이끌어간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눈부시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장면은 보통의 해커톤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들입니다.

마치며 — 해커톤을 서비스디자인으로 번역하다

해커톤 이후 참가자가 서비스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변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김경진 대표의 말처럼 이번 해커톤은 다른 지역, 다른 입장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꺼내고, 서로의 문제를 듣고, 그것을 정책의 언어로 바꿔보는 과정으로 디자인되었다. 강의는 리서치 역할을 했고, 게임은 팀 빌딩과 프로토타이핑 사고의 가치를 경험하게 했다. 통합 산단 이름 짓기는 지역 민원을 구조적 문제로 전환하는 장치였고, 발표는 공감의 과정으로 디자인되었다. 김 대표가 했던 일은 해커톤을 서비스디자인의 과정으로 정밀하게 재구성한 것이었다. 참가자들이 서비스디자인을 ‘배우기’보다, 서비스디자인의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말하고 만들어보도록’ 한 것이다. 이번 산업단지정책해커톤이 기존의 아이디어 대회와 다를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리 :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디자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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