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필로그) 우리는 왜 서로를 직접 만나야 하는가 - 산업단지정책해커톤이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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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서로를 직접 만나야 하는가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이 남긴 질문
최근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논란*은 홍보 문구 실수로만 보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기억해야 할 역사적 비극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각 없이 소비되는 마케팅 재료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서로의 다른 경험과 기억을 얼마나 만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 2026년 5월,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표현을 사용한 마케팅으로 사회적 논란이 발생한 사건. 스타벅스코리아는 해당 행사를 중단하고 사과했으며, 이후 수사와 책임 문제로 논란이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안에서만 살아간다. 비슷한 지역, 비슷한 직업, 비슷한 알고리즘 안에서 관계를 맺는다. 만나지 않으면 차이를 이해할 수 없고,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를 단순화하거나 경멸하게 된다. 일상의 고립은 결국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평소라면 만날 일 없는 다른 지역, 다른 역할,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의 경험을 직접 마주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산업단지정책해커톤은 그런 점에서 의도된 실험이었다. 구미·완주·창원의 참가자들이 한 팀 안에 섞이도록 구성했고, 노동자·주민·공무원·서비스디자이너·비주얼라이터도 역할별로 함께 배치했다. 이들은 사용하는 언어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랐다. 그러다 보니 처음 팀이 구성되었을 때 분위기가 어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에서 "아, 저 사람은 저런 상황에 있었구나"로 바뀌게 되었다.
이번 해커톤에서 의미 있던 순간은 아이디어가 나온 순간만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버스 대기 시간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다리는 시간이 무력감으로 누적되는 경험이었다. 노후 환경이 "이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무너뜨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산업단지의 고립감이 청년 정주 문제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도 있었다. 공무원은 산업단지의 야간 불안을 처음 들었고, 근로자는 정책 담당자가 같은 팀 안에서 메모하는 장면을 처음 보았다. 각자의 산단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한 곳에서는 당연한 것이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른 현실일 수 있었다. 누군가의 경험을 직접 듣게 된 순간,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는다고만 여겼던 것들이 왜 작동되지 않았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점차 많은 참가자들이 비슷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안 되었던 거구나."
그 변화 속에서 평소 산업단지 정책에서 다뤄지지 않던 아이디어들도 자연스럽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공장을 비워 안전을 확보하는 서비스,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서비스, 어두운 산단 길을 밝혀 주민과 근로자를 연결하는 서비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문화와 휴식의 경험으로 바꾸는 서비스, 업무시간 중 처리하기 힘든 생활 업무를 대신 지원하는 서비스 등이 나왔다. 산업단지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아이디어라기보다, 산업단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경험을 바꾸려는 아이디어들이었다.
해커톤이 끝난 뒤, 우리는 이 경험이 행사장 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참가자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했다. 해커톤에서 생긴 문제의식이 아직 식지 않았기 때문인지, 많은 참가자들이 기꺼이 응답해 주었다. 프로그램 총괄기획자, 서비스디자이너, 청년 노동자, 공무원, 지역 주민, 산업단지 이해관계자, 비주얼라이터 등 서로 다른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같은 해커톤을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말했다.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참여자 인터뷰 모음'은 그 만남이 참가자들에게 남긴 흔적의 기록이다.
누군가는 해커톤 이후 서비스디자인 공부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오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산단을 다시 보게 되었다. 혼자 품고 있던 문제가 “투정이 아니라 정책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느낀 참가자도 있었다. 표현은 달랐지만, 인터뷰들에서 가장 자주 되풀이된 경험은 같았다. 처음에 가져온 생각이 현장에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경험을 꺼냈을 때 시작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해커톤이 끝난 이후의 방향이다. 이번 해커톤은 2014년 공공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기치로 시작된 ‘국민디자인단’의 흐름을 이어받아 추진 중인 ‘청년디자인리빙랩’ 3개 산단—구미, 완주, 창원—이 함께 모여, 각 지역에서 논의하던 문제와 아이디어를 서로 섞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산업단지는 오랫동안 생산과 효율의 언어로 설명되어 왔다. 제조, 물류, 입지, 고용 같은 단어들이 그 공간을 대표했다. 정책도 그 언어에 맞게 설계되었다. 무엇을 짓고, 얼마를 투입하고, 어떤 기업을 유치할 것인가. 공급자의 논리였다. 그러나 이번 해커톤과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기다림, 연결, 외로움, 자부심, 회복, 관계, 정주 같은 단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언어들은 시설이 부족해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만남이 없어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산업단지의 미래는 무엇을 더 짓고 채우는가의 문제이기 이전에, 누가 누구와 같은 자리에 앉는가의 문제다. 청년디자인리빙랩과 산업단지정책해커톤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현장의 사람들이 직접 문제를 발견하고,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 공급자의 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정책의 방식이다. 이번 해커톤은 그 방식이 세 지역을 넘어 서로 섞일 때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줬다.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왜 서로를 직접 만나야 하는가. 만나야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정책의 언어가 될 때, 산업단지는 비로소 사람이 머무는 곳이 될 수 있다. 이 실험이 더 많은 자리에서 반복되기를 바란다.
*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참여자 인터뷰 목록
감사의 말
낯선 이들과 마주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던 참가자들께 감사드린다.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도 끝까지 합의를 이끌어 본질적 문제에 마주할 수 있게 이끈 총괄 기획자 김경진 대표, 서비스디자이너, 비주얼라이터들께도 감사드린다. 이번 해커톤이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낼 수 있도록 함께해 준 산업통상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 관계자, 운영을 맡은 MYSC,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디자인실 동료들에게 감사드린다. 우리의 짧았던 이틀간의 기억을 기록하기 위한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정리: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디자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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