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의 밤이 위험한 이유는 디자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서비스디자이너, 유해영 서원대학교 교수 인터뷰
낮의 산업단지는 생산과 노동의 공간으로 이해하기 쉽다. 공장이 움직이고, 물류 차량이 오가고, 근로자들이 출근해 일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밤의 산업단지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늦은 시간에 퇴근하고, 누군가는 교대근무를 마치고, 누군가는 어두운 보행로를 지나 정류장으로 향한다.
유해영 서비스디자이너가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한 ‘시브릿지(C-bridge)’ 팀은 바로 그 시간에 주목했다. 팀은 어두운 보행로, 늦은 밤 정류장, 부족한 교통 정보, 심야 이동의 불안을 하나의 야간 이동 경험으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은하수로드’와 ‘안심정류장’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유해영 서비스디자이너와 산업단지의 밤을 사람의 경험으로 다시 읽어냈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 유해영이 말하는 “산업단지의 밤과 퇴근길 경험”
유해영
서원대학교 교수, 서비스디자이너
2017~2024 국민정책디자인단 국방부, 특허청, 관세청, 음성소방서, 금천구 등 (행정안전부 장관상)
2020 국민정책디자인단 국방부 (국무총리상, 행정안전부 유공표창)
2019 ~ 2026 남양주시, 청주시, 군포시, 태안군등 지자체 옥외광고 사업 추진 디자인 컨설팅 및 서비스디자이너
기대감보다 부담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처음 이 해커톤에 참여한다고 들으셨을 때, 솔직히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기대감보다 부담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실제 산업단지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정책이나 서비스 아이디어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현장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해커톤이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1박 2일이라는 시간 동안 산업단지 근로자들과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서비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단순한 발표 준비가 아니라 하나의 집중적인 서비스디자인을 위한 여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산업단지는 국가 경제와 지역 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해커톤을 통해 ‘산업단지를 더 좋은 일터이자 생활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주제가 단순한 문제 해결을 통한 개선이 아니라 사람의 안전, 이동, 건강, 정주 여건과 연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산업단지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행사 전에는 산업단지를 어떤 곳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행사 전에는 산업단지를 주로 생산과 노동의 공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공장이 모여 있고, 근로자들이 출근해서 제품을 만들고, 물류 차량이 오가며, 기계와 설비가 끊임없이 작동하는 기능적인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산업단지는 일을 하는 곳이지, 누군가의 삶과 감정이 머무는 공간이라고까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해커톤을 준비하고 현장의 문제를 살펴보면서 산업단지는 단순한 생산시설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업단지는 365일, 24시간 가동되는 곳이고, 그 안에는 주간 근무자뿐만 아니라 야간근무자, 교대근무자, 청년 근로자, 여성 근로자, 기술직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단순히 공장에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밤길을 걷고,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며, 때로는 불안과 피로를 느끼기도 합니다.
특히 이전에는 산업단지의 ‘밤’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낮의 산업단지는 생산과 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비교적 이해하기 쉽지만, 밤의 산업단지는 전혀 다른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보행로가 어둡고, 주변이 한산하며, 근로자들이 혼자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는 점은 산업단지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게 했습니다. 산업단지는 단지 경제활동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머물 수 있어야 하는 생활 기반 공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 퇴근길은 단순한 이동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건 진짜 산업단지 현장의 문제다’라고 느끼신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교대근무자와 야간근무자의 이동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했을 때였습니다. 산업단지는 24시간 가동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에 비해 근로자를 지원하는 이동 체계나 안전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심야 시간대에는 대중교통이 줄어들고, 정류장 환경도 열악해지며, 보행로의 조도나 안전성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실제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 심리적 안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늦은 밤 퇴근하는 20대 여성 근로자가 어두운 길을 혼자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문제는 매우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주변 환경이 어둡고, 보행로가 안전하게 정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근로자는 매일 퇴근길에서 불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대근무를 하는 30대 남성 근로자가 건강관리를 위해 퇴근 후 러닝을 하고 싶어도, 주변 보행로가 어둡고 위험하다면 건강을 위한 활동조차 쉽게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산업단지의 야간 환경 문제는 이동, 안전, 건강, 생활 만족도와 모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해결책으로 너무 빨리 넘어가지 않도록 돕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처음 팀을 만나셨을 때 가장 어려워 보였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참여자들이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바라보더라도 문제의 깊이와 우선순위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의 생각이 흩어져 있었고, 그것을 하나의 공통된 문제의식으로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퍼실리테이터로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참여자들이 너무 빨리 해결책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해커톤에서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아이디어를 내고 싶어 하지만, 서비스디자인에서는 먼저 현장의 맥락과 사람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팀원들이 산업단지 근로자의 하루, 특히 야간 퇴근길과 이동 경험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문제를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으로 바꾸어 바라보게 한 질문
“어떤 질문이나 활동이 참여자들의 생각을 가장 크게 움직였다고 보십니까?”
“가장 효과적이었던 활동은 사용자 여정지도와 페르소나 설정이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여성 근로자, 교대근무 후 운동을 하고 싶은 근로자, 대중교통이 부족한 시간대에 이동해야 하는 청년 근로자 등 구체적인 인물을 설정하자 참여자들의 생각이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팀원들은 서비스디자인이 사람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팀원들의 생각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은 특정한 발상법이라기보다, 문제를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으로 바꾸어 바라보게 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설치할 것인가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로 바뀌었습니다
“해커톤 하면서 처음에 들었던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활동 중에 바뀐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고 왜 바뀌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산업단지의 야간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명을 더 설치하거나 버스 운행을 늘리는 방식이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개선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근로자가 경험하는 문제는 하나의 시설 부족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연결되지 않을 때 더 크게 느껴진다는 점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도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어둡거나, 정류장이 안전하지 않거나, 버스 도착 정보를 알 수 없다면 근로자의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반대로 보행로가 안전하게 조성되어 있고, 정류장이 밝고 쾌적하며, 실시간 교통 정보가 제공되고, 위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스마트 폴이 함께 있다면 이동 경험 전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이 개별 시설의 추가가 아니라 근로자의 전체 경험을 연결하는 서비스 구조에 있다는 것에 의견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수렴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설치할 것인가’에서 ‘근로자가 어떤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로 바뀌었습니다. 핵심 아이디어인 ‘은하수로드’는 단순한 보행로가 아니라 어두운 길을 안전하고 감성적인 이동 경험으로 바꾸는 장치이고, 안심정류장은 단순한 버스 대기 공간이 아니라 늦은 밤 근로자가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을 주는 공간입니다. 스마트 폴 역시 단순한 가로등이 아니라 조명, CCTV, 비상벨, 센서, 안내 기능이 결합된 안전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각각의 아이디어가 하나의 서비스 흐름으로 연결될 때 산업단지의 밤은 단순히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인간적인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하수로드는 단순한 보행환경 개선이 아닙니다
“가장 공감하신 아이디어는 무엇이었고, 왜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가장 공감되었던 아이디어는 ‘은하수 로드’였습니다. 은하수 로드는 어두운 산업단지의 보행로를 빛이 흐르는 안전한 길로 바꾸는 아이디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조명을 설치하는 수준을 넘어서, 산업단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산업단지의 밤은 흔히 어둡고, 차갑고, 위험하고, 사람이 머물기 어려운 공간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은하수로드는 그런 공간을 ‘걷고 싶은 길’, ‘안심할 수 있는 길’, ‘기억에 남는 길’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은하수’라는 표현이 주는 상징성이 저는 좋았습니다. 산업단지의 밤은 빛이 부족해서 불안한 공간이 될 수 있지만, 그 빛을 단순한 조도 개선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과 경험으로 만들면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근로자가 퇴근길에 빛나는 보행로를 따라 걷고, 발걸음에 반응하는 조명이나 주변 환경의 변화를 경험한다면, 그 길은 더 이상 위험을 참고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배려하는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안전이라는 기능적 가치와 아름다움이라는 감성적 가치가 함께 담길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또한 은하수 로드는 산업단지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산업단지는 청년들에게 다소 낡고 멀고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야간 보행로가 아름답고 안전하게 조성되고, 러닝 코스나 산책로처럼 활용될 수 있다면 산업단지는 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년 근로자들이 산업단지에서 일하면서도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산업단지의 매력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하수로드는 단순한 보행환경 개선이 아니라 산업단지의 미래 이미지를 바꾸는 상징적인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견이 정책 제안으로 바뀐 순간
“팀의 아이디어가 ‘의견’에서 ‘정책 제안’으로 바뀐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팀의 아이디어가 단순한 의견에서 정책 제안으로 전환된 순간은 아이디어가 누구를 위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효과를 목표로 실행될 수 있는지 구체화되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밤길을 밝게 하자’, ‘정류장을 안전하게 만들자’, ‘스마트한 시설을 설치하자’와 같은 의견 수준의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면서 이 아이디어들이 산업단지 근로자의 야간 이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합 서비스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책 제안이 되기 위해서는 공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이디어를 구조화하고, 근로자 안전, 이동 편의, 산업단지 이미지 개선, 지역 활력이라는 정책적 효과까지 연결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설득력 있는 정책 제안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서비스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감정과 경험을 정책적으로 다루게 했습니다
“서비스디자인 방식이 일반 회의나 일반적인 워크숍과 다르게 느껴진 지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산단 근로자의 경험과 마음에서 시작하고, 창의적으로 풀어가는 서비스디자인 방식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서비스디자인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감정과 경험을 포착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서비스 아이디어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방법론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또한 여러 아이디어를 개별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용자 여정으로 연결하게 해주었습니다. 근로자가 공장에서 나와 보행로를 걷고,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고, 안전 정보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도움을 요청하며, 퇴근 후 건강관리까지 이어지는 전체 흐름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특히 산업단지 근로자의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실제 사람들은 공간을 감정으로 경험합니다. 어떤 길은 안전하게 느껴지고, 어떤 정류장은 불안하게 느껴지고, 어떤 조명은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을 줄 수 있습니다. 서비스디자인은 이러한 감정의 차이를 정책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주었고 그래서 이번 해커톤을 통해 좋은 정책은 단순히 효율적인 정책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질을 바꾸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실행하기 어렵다고 보기보다 실험해볼 가능성으로 보았습니다
“반대로 ‘아이디어는 좋지만 실행은 어렵겠다’고 느끼신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이번 해커톤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좋지만 실행하기 어렵겠다’고 느꼈던 아이디어가 없았습니다. 물론 실제 정책이나 서비스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예산, 기술, 행정 절차, 유지관리, 관계기관 협의 등 여러 현실적인 조건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실행하기 어렵다거나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이번 해커톤을 통해 산업단지의 문제는 긍정적인 관점과 현장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하면 충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실제로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시간에 이동하며, 어디에서 불안을 느끼고, 어떤 환경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지를 함께 듣고 나누다 보면, 해결책은 점점 구체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의 난이도를 먼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현실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한다면 충분히 정책과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해커톤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보기보다, 앞으로 더 구체화하고 실험해볼 가치가 있는 가능성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산업단지는 청년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이 해커톤 이후 산업단지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먼저 산업단지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산업단지 정책은 ‘기업이 잘 운영되는 공간’을 넘어 ‘근로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또한, 정책은 시설 공급 중심에서 사용자 경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고 산업단지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 인터뷰, 현장 관찰, 야간 동선 분석, 서비스 시나리오 디자인, 시범 운영 후 피드백 반영 같은 과정이 반드시 정책 안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업단지는 청년이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청년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근로자들이 산업단지를 선택하고 지속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임금이나 일자리뿐만 아니라 안전한 이동, 쾌적한 환경, 건강한 생활, 지역과 연결되는 문화적 매력도 필요합니다. 산업단지의 이미지를 바꾸고, 근로자의 삶을 존중하는 정책적 전환을 통해 좋은 산업단지는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그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성장하게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벽까지 모두가 같은 문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1박 2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 팀원들을 만났던 순간과 마지막에 서로 헤어지던 순간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짧은 시간 안에 산업단지의 문제를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만들고, 발표까지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어색함과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각자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처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나누어야 할지 조심스러운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문제를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공감대를 갖게 되었고, 점점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발표자료를 준비하던 새벽의 장면입니다. 모두 피곤한 상태였지만 누구 하나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산업단지의 어두운 밤길, 늦은 퇴근길의 불안함, 대중교통 부족,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를 어떻게 하면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누구는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누구는 발표자료의 문장을 다듬고, 또 다른 팀원은 시각자료와 흐름을 점검했습니다. 각자의 역할은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습니다. ‘우리 아이디어가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담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끝까지 집중했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묘한 뿌듯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서로에게 수고했다며 아쉽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다면 현장 관찰, 당사자 참여, 후속 실험이 필요합니다
“현장 기반 정책 해커톤을 다시 진행한다면 꼭 보완했으면 하는 점들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현장 기반 정책 해커톤이 다시 열린다면, 가장 먼저 현장 관찰과 인터뷰 시간이 확보되면 좋겠습니다. 1박 2일이라는 시간은 집중도 있게 아이디어를 만들기에는 좋지만, 산업단지는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고, 근무 시간대에 따라 근로자의 경험도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시간대의 현장 관찰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문제를 훨씬 입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실제 산업단지 근로자와 관계자들의 참여가 더 확대되면 좋겠습니다. 서비스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목소리입니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질문하고 확인할 수 있다면 훨씬 더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해커톤 이후의 후속 과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발표로 끝나지 않고, 시범사업이나 프로토타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아이디어를 실제 산업단지의 특정 구간에 작게 적용해보고, 근로자들의 반응을 조사하고, 운영상의 문제를 개선하는 단계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해커톤이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정책 실험의 출발점이 된다면 현장 기반 정책 혁신의 효과가 훨씬 커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커톤이 지나치게 경쟁적인 분위기로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한된 시간 안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몰입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경쟁이 강조되면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기보다 결과물의 완성도나 순위에만 집중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함께 성과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 산단의 밤을 보면, 정책의 질문이 달라진다
유해영 서비스디자이너는 산업단지의 밤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낮의 산업단지는 생산과 노동의 공간으로 설명되기 쉽지만, 밤의 산업단지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누가 이 길을 걷는가. 누가 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가. 누가 혼자 퇴근하고, 누가 불안을 느끼며, 누가 건강을 위한 활동조차 포기하는가. 그녀와의 대화는 산단의 밤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정책의 이면에도 아직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 있음을 일깨운다. 그 시간을 보기 시작하면 정책은 조도를 높이는 일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까지 다루게 된다.
결국 이 인터뷰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정책의 이면을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낮의 산단, 가동 중인 공장, 입지와 생산성 같은 익숙한 지표 뒤에는 밤길을 걷는 사람,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 건강을 포기하는 사람의 시간이 있다. 서비스디자인은 그 보이지 않던 이면을 정책의 질문으로 끌어내는 방식이다. 그 질문을 품을 때, 산업단지는 일하는 공간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정리: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디자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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