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사용자의 실패를 줄이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글의 제목을 ‘참을 수 없는 UX의 저렴함’이라고 붙인 이유가 있다. 저렴한 UX는 단지 싸게 만든 UX가 아니다. 사용자의 시간, 직원의 노동, 고객센터의 부담, 조직의 재개발 비용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빌려온 이 제목은, UX가 가볍게 취급될수록 그 무게가 사용자와 직원에게 옮겨간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1편에선 저렴한 UX로 고통받는 고객과 직원을 이야기했다. 공공, 금융, 교육, 의료, 업무 시스템처럼 어쩔 수 없이 계속 사용해야 하는 서비스에서 시스템의 복잡성을 대신 떠안는 고객과 직원의 상황을 디지털 갑질로 설명했다.
2편에선 그 비용이 어디로 돌아오는지 이야기했다. 저렴한 UX의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객센터 문의, 민원, 유튜브 사용법 콘텐츠, 현장 직원의 반복 업무, 재개발 예산, AX 실패와 Workslop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다면 저렴한 UX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가. 나는 그 답이 사용자 경험 전문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용자 경험 전문성은 화면을 예쁘게 만드는 기술이나 요구사항을 화면으로 옮기는 능력이 아니다. 사용자가 어디에서 실패하는지 발견하고, 그 실패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해석하며, 조직이 해결해야 할 복잡성을 다시 설계해 더 많은 고객과 직원이 문제없이 목적을 달성하게 만드는 역량이다.
저렴한 UX는 화면을 더 많이 그린다고 끝나지 않는다. 더 세련된 UI를 만든다고 끝나지도 않는다. 저렴한 UX를 끝내려면 ‘사용자의 실패를 줄이는 사용자 경험 전문성’이 필요하다.
UX 디자이너는 원래 디지털 갑질을 막아야 하는 사람이다

(자료=클립아트코리아)
UX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회사 안에서 고객을 대변하고, 회의실에 없는 사용자를 대신해 질문하는 것이다. 이 절차를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가? 이 용어를 고객이 알아들을 수 있는가? 오류가 났을 때 사용자가 회복할 수 있는가? 고객센터에 전화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직원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일할 수 있는가? 그리고 AI가 제안한 결과를 사용자가 신뢰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 까지 말이다.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서비스는 너무 쉽게 조직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부서 구조가 메뉴 구조가 되고, 데이터베이스 구조가 화면 구조가 되어버린다. 나아가 보안 절차가 사용자 여정이 되고, 내부 용어를 고객이 학습해야 한다. 결국 조직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용자의 경험은 복잡해진다.
UX 디자이너는 이 흐름을 막아야 한다. 조직이 사용자에게 떠넘기려는 복잡성을 다시 조직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사용자가 실패할 지점을 먼저 발견하고, 그 실패를 줄이기 위해 기획자, 개발자, 정책 담당자, 현업 담당자와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프로젝트에서 UX 디자이너는 이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미 정해진 요구사항을 화면으로 옮긴다. 개발이 어렵다고 하면 물러난다. 정책이 그렇다고 하면 받아들인다. 일정이 부족하다고 하면 다음 고도화로 미룬다. 사용자가 실패할 가능성을 발견해도 “이번 범위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 UX는 가벼워지고, 저렴해진다. 화면은 중요하다. 사용자는 결국 화면을 통해 서비스를 만난다. 버튼, 메뉴, 입력창, 안내 문구, 오류 메시지, 진행 단계, 확인 화면은 모두 사용자 경험을 만든다. 그러나 화면이 UX의 전부는 아니다. 화면은 경험 설계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사용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들어오는지, 어디에서 헷갈리는지, 어떤 정보가 없으면 멈추는지, 실패했을 때 어떻게 다시 시도해야 하는지를 이해한 뒤에 화면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많은 프로젝트에서는 순서가 거꾸로 간다. 기능 목록이 먼저 있고, 그 기능을 몇 개의 화면으로 나눌지 결정한다. 요구사항 문서를 보고 메뉴를 만들고, 입력 항목을 배치하고, 버튼을 붙인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UX라고 부른다. 그러나 기능을 화면으로 옮겼다고 UX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는 기능을 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는 일을 끝내러 온다. 민원을 신청하고, 대출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하고, 병원을 예약하고, 강의 신청을 하고, 비용을 정산하고, 고객 문의에 답하려고 온다. 화면은 그 일을 끝내기 위한 수단이다.
UX 디자이너는 왜 화면 생산자로 전락했는가?

(자료=클립아트코리아)
UX 디자이너가 화면 생산자로 전락한 이유를 개인의 태도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개인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구조다. 아직도 많은 발주자와 조직은 UX를 화면 설계로만 요구한다. 과업 범위에는 화면 중심의 산출물이 명시된다. 사용자 조사, 핵심 과업 정의, 실패 지점 분석, 고객센터 데이터 분석, 현업 업무 분석은 없다. 그러면 UX 디자이너는 사용자 경험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납품할 화면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
개발 중심 프로젝트 구조도 UX를 약하게 만든다. 프로젝트의 핵심 일정은 개발 일정이고, 핵심 리스크는 개발 리스크로 관리된다. 결국 사용자가 실패할 위험보다 개발이 늦어질 위험이 더 크게 다뤄지고, 이 구조에선 UX가 개발 편의성에 자주 밀린다.
UX 디자이너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부족한 것도 중요한 문제다. 사용자의 실패 가능성을 발견해도 “정책이 그렇다” “보안이 그렇다” “개발이 어렵다” “일정이 부족하다” 이런 말 앞에서 물러난다. 문제를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UX는 점점 화면 정리 업무로 축소된다.
그러다 보니 UX 디자이너 스스로도 역할을 좁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꽤나 있다. 비즈니스, 정책, 데이터, 개발 구조, 현업 업무, 고객센터 운영을 어렵다고 피한다. “그건 기획자가 하는 일입니다” “그건 개발에서 결정할 일입니다” “그건 정책 문제입니다”라고 물러난다. 교육 과정에서도 문제 정의보다 결과 화면을 강조한다. UX 디자이너가 그 영역을 외면하면 결국 화면만 남는다.

(자료=클립아트코리아)
마지막으로 UX 리더십의 문제가 있다. UX 조직이 있어도 리더가 조직의 역할을 화면 생산에 묶어두면 UX는 성장하지 못한다. 사용자 경험을 사업 성과와 연결하지 못하고, 사용자 성공률을 관리하지 못하고, 개발과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들어가지 못하면 UX 조직은 “화면 공장”이 된다. 요구사항을 잘게 나누고, 화면을 만들고, 흐름을 정리하고, 산출물을 맞춘다. 프로젝트 일정 안에서는 유용해 보인다. 개발자에게 필요한 화면이 나오고, 발주자에게 보여줄 문서가 생기고, 보고할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화면 생산형 UX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사용자가 왜 실패하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어떤 정보가 없어서 포기하는지, 왜 고객센터에 전화하는지, 왜 직원이 엑셀로 우회하는지, 왜 AI 챗봇을 쓰다가 상담사에게 다시 설명하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공공 서비스에서 신청 화면을 만든다고 해보자. 화면 생산형 UX는 신청자 정보, 제출 서류, 신청 사유, 확인 버튼, 완료 화면을 배치한다. 그러나 사용자 경험 전문가는 다르게 묻는다. 사용자가 이 신청 대상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필요한 서류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가. 제출 실패 시 사용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령자나 외국인도 이해할 수 있는가.
금융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화면 생산형 UX는 상품 가입 절차를 화면으로 나눈다. 사용자 경험 전문가는 고객이 이 상품의 위험을 이해했는지, 중도 해지 조건을 알 수 있는지, 인증과 동의 절차가 왜 필요한지, 실패했을 때 다시 어디서 시작하는지, 고객센터 문의 없이 끝낼 수 있는지 묻는다.
업무 시스템과 AX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화면 공장은 입력 화면과 AI 답변 영역을 만든다. 사용자 경험 전문가는 직원이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어떤 오류를 사전에 막아야 하는지, AI가 어떤 과업을 도와야 하는지, AI 결과물이 실제 업무를 진전시키는지 아니면 Workslop이 되는지 묻는다.
사용자 경험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자료=클립아트코리아)
사용자 경험 전문성은 결국 사용자 성공률을 높이는 역량이다. 여기서 사용자 성공률이란 100명 중 몇 명이 어려움 없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를 뜻한다. 잘된 UX의 기준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더 많은 사용자가 문제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다.
아무 개발자가 만들어도 100명 중 50명은 쓸 수 있다. 기능이 있고, 버튼이 있고, 저장과 조회가 되면 절반 정도의 사용자는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한다. 일반적인 기획자가 만들면 70명은 쓸 수 있다. 절차가 정리되고, 기본적인 안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 금융, 교육, 의료, 업무 시스템, AX 서비스처럼 실패 비용이 큰 서비스라면 70명으로는 부족하다. 90명, 95명, 가능하면 99명이 문제없이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실패한 30%, 10%, 5% 고객의 경험이 고객센터 문의가 되고, 민원이 되고, 업무 지연이 되고, 현장 직원의 반복 설명이 되고, 때로는 금전적 피해와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용자 성공률을 높이는 핵심은 ‘심플함(Simplicity)’이다. 여기서 심플함은 단순히 기능을 줄이거나 화면을 비워내는 일이 아니다. 사용자가 이해해야 할 복잡성을 줄이고,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순간에 제공하며, 기술적 조직적 복잡성을 사용자에게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일이다. 심플한 경험은 사용자가 덜 배우고, 덜 헤매고, 덜 실패하게 만든다.

그림. 사용자 경험이 심플할수록 점점 더 많은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자료=작가)
사용자 경험이 심플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 고령층, 정보 접근성이 낮은 사용자, 바쁜 업무 환경에서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직원에게 심플함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서비스 이용 가능성을 결정하는 조건이다. 사용자 경험 전문가는 해당 서비스에 요구되는 심플함의 수준을 기준으로 삼는다.
심플한 경험은 서비스 제공자에게도 이익이다. 복잡한 시스템은 고객센터 문의, 오류, 운영 비용, 유지 보수 비용을 늘린다. 반대로 심플한 시스템은 사용자의 실패를 줄이고, 직원의 반복 설명을 줄이며, 운영과 개선을 쉽게 만든다. 심플함은 보기 좋은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사용자와 조직 모두에게 비용을 줄여주는 설계 원칙이다.
문제는 심플함을 구현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많은 디지털 서비스는 이미 복잡한 백엔드 시스템, 업무 프로세스, 규정, 보안 절차, 부서별 요구사항과 연결돼 있다. 조직 안의 여러 이해관계자는 각자의 요구를 화면에 반영하려고 한다. 그 결과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복잡해진다. 사용자에 필요 없는 내부 기준과 절차가 그대로 노출된다.
사용자 경험 전문성은 바로 이 복잡함 속에서 진짜 필요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어떤 기능을 보여주고 어떤 기능을 숨길 것인지, 어떤 절차를 사용자에게 요구하고 어떤 절차를 시스템이 처리할 것인지, 어떤 용어를 바꾸고 어떤 정보를 먼저 제공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심플함은 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복잡함을 사용자 대신 조직이 감당하도록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사용자 경험 전문가는 바로 이 차이를 만든다. 50명이 쓸 수 있는 경험과 99명이 쓸 수 있는 경험 사이에는 전문가의 무게가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화면을 만드는 것과, 실제로 대부분의 사용자가 문제없이 목적을 달성하게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타겟 고객의 50% 사용자가 30% 사용자가 서비스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서비스는 개발 비용, 운영 비용이 낭비되는 수준이다.
* 이와 같은 사용자 경험 전문가가 왜 중요한 과제일수록 필요한지 다음 편에서 이어서 살펴봅니다.
출처 :
( https://ditoday.com/news/ )
원문기사링크 : https://ditoday.com/%ec%b0%b8%ec%9d%84-%ec%88%98-%ec%97%86%eb%8a%94-ux%ec%9d%98-%ec%a0%80%eb%a0%b4%ed%95%a8-%e2%91%a2-1-%ec%a0%80%eb%a0%b4%ed%95%9c-ux%eb%a5%bc-%eb%81%9d%eb%82%b4%eb%8a%94-%ec%82%ac%ec%9a%a9%ec%9e%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