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디자인인사이트
인스타 아이콘 인쇄 아이콘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안전, 디자인이 만든다 - 강윤주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이 말하는 산업안전 컬러유니버설디자인(CUD). 월간안전보건 2026년 8월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안전, 디자인이 만든다

강윤주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이 말하는 산업안전 컬러유니버설디자인(CUD)

 

월간안전보건 2026년 8월호
글. 김정덕

사진. Noon Studio
 

 

위험을 알리는 빨간색 표지가 어떤 노동자에게는 배경과 구분되지 않는 색으로 보인다. 같은 색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컬러유니버설디자인(CUD)은 고령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오늘의 일터에서 재해 예방의 새로운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월 취임 이후 디자인이 전문가의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에서 체감되는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해 온 강윤주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은 그 변화가 가장 절실한 곳으로 산업현장을 꼽는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색과 시각정보를 다뤄 온 그에게 안전을 지키는 디자인의 힘을 물었다.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산업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작동하는 생명 신호다.

 

위험을 한눈에 알아차리게 하는 안전디자인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연간 38조 원에 달한다. 강윤주 원장은 이 손실의 상당 부분이 설비나 기계의 결함이 아니라, 노동자가 위험을 제때 알아차리고 피할 수 있느냐는 아주 기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안전디자인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복잡한 매뉴얼을 읽지 않아도 보자마자 위험을 알아차리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안전디자인이 맡는 역할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사람의 실수를 막는다. 둘째, 현장의 조건에 맞게 설계한다. 시각 신호가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진동이나 경고음처럼 촉각과 청각을 함께 쓴다. 셋째, 처벌과 규제로 강제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안전한 행동을 선택하도록 이끈다(넛지 디자인). 결국 안전디자인은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시각 언어이자 행동을 바꾸는 설계다. 작업자가 매일 잡는 손잡이의 각도, 매일 걷는 통로의 색상 같은 작은 변화가 모두의 안전을 지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디자이너의 눈으로 볼 때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산업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작동하는 생명 신호다. 문자는 읽고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잘 설계된 색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곧바로 행동을 이끈다. 다만 색 하나만으로 안전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선과 위치, 동선, 표지, 형태와 함께 설계해야 누구나 같은 의미로 이해하며 안전 행동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색각이상 노동자까지 배려하는 산업안전 CUD

 

색이라는 신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보일 때 그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일터에는 색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의 약 5%가 색약이나 색맹 같은 색각이상자이다. 적록색각 이상자에게는 기계의 정지를 알리는 빨간 표시등과 운전을 알리는 녹색 표시등이 모두 비슷한 황갈색으로 보일 수 있다. 멈춘 줄 알고 손을 넣었다가 끼임 사고를 당할 수 있고, 색으로만 구분된 화학물질 배관을 잘못 조작하면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CUD는 이 문제를 푸는 열쇠다. 기존의 안전표지가 법적 기준에 따라 위험을 표시하는 데 그쳤다면, CUD는 색에 문자와 기호, 형태, 위치를 함께 쓴다. 빨간 표시등에는 ‘정지’ 문자와 X 기호를, 녹색 표시등에는 ‘운전’ 문자와 ○ 기호를 나란히 붙이는 식이다. 여러 단서를 함께 주면 색각이상 노동자의 인식 오류는 물론 어둡거나 분진이 많은 곳에서의 사고 위험도 줄어든다.

2024년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는 ‘보이는 안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고령화되고 외국인 노동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산업현장에서는 안전수칙 등 안전 정보를 글보다는 색과 그림으로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강 원장이 안전디자인의 의미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안전’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일본은 NPO 컬러유니버설디자인기구(CUDO)를 중심으로 CUD 인증제를 사회적 기준으로 정착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초기 확산 단계이다. 그는 일본 제도를 따라 하기보다 우리 현장에 맞는 한국형 산업안전 CUD 체계를 만드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안전디자인을 ‘현장을 예쁘게 꾸미는 일’로 오해하는 시선도 여전하다. 강 원장은 경영자를 만나면 감성적인 말 대신 비용과 효율, 리스크 관리라는 그들의 언어로 설득한다.

“산재 사고의 80% 이상은 하드웨어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작업자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 같은 휴먼 에러로 발생합니다. 산업안전 CUD는 현장을 예쁘게 만드는 미화가 아니라 작업자의 착오율을 제로에 가깝게 만드는 인지적 안전장치입니다.”

다만 안전디자인이 CUD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안전디자인은 위험 저감, 위험 인지, 행동 유도, 신체 보호, 비상대응과 회복의 다섯 영역을 포괄하고 색채 외에도 소재, 형태, 구조, 공간, 정보, 소리 등 다양한 요소로 구현되는 만큼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장의 위험을 디자인으로 바꾸는 안전서비스디자인 사업

 

강 원장의 설득을 뒷받침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실적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2021년부터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함께 산업단지 안전서비스디자인 사업을 하고 있다. 노동자가 무엇을 위험으로 인지하지 못하는지, 어떤 동선과 행동이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지 찾아내 디자인으로 안전하게 바꾸는 사업이다. 지원 기업에서는 중대재해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예쁘게 꾸며서가 아니라 위험을 인지하는 속도를 높이도록 설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중소기업의 투자 부담을 완화해 참여 문턱을 낮췄다.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현장일수록 사고 위험은 크고 작은 변화의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강 원장은 달라진 현장의 사례도 들려줬다. 2025년 이 사업에 참여한 동양메탈공업은 지게차와 보행자 동선이 뒤섞여 충돌 위험이 컸는데, 고대비 색상의 안전표지와 구획선, 횡단보도로 동선을 분리해 통행 환경이 한결 안전해졌다. 같은 해 참여한 대건테크는 한 공간에서 여러 공정이 동시에 돌아가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에 진흥원은 인공지능(AI) 시뮬레이션으로 안전한 동선을 찾아 작업 배치를 다시 짜고 숫자(Number)·색상(Color)·선(Line)으로 구분하는 NCL 시스템으로 시각화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됐다.

 

표준화와 전문인력 양성으로 안전디자인 확산

 

강 원장은 개별 기업 지원만으로는 전국 산업현장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본다. 진흥원은 안전디자인 사인 시스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어느 현장에서나 쓸 수 있는 표준모델을 고도화해 인증과 교육, 컨설팅으로 연계할 계획이다. 안전보건공단과의 협력에도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공단의 위험성평가 체계와 진흥원의 안전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연계하면 위험 요인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위험을 현장에서 어떻게 보이게 하고 어떻게 피하게 할지까지 설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안전디자인이 현장에 뿌리내리려면 결국 이를 수행할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 강 원장은 진흥원이 운영하는 국가자격인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 이는 사용자의 불편과 문제를 분석해 서비스와 환경을 개선하는 능력을 검증하는 자격이다. 안전디자인에서는 노동자가 곧 사용자다. 노동자가 현장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서 위험을 놓치는지 읽어내는 일이기에, 이 역량이 현장에서 그대로 쓰인다는 것이다.

기술이 열어 줄 가능성도 언급했다. AI로 재해 사례와 동선 데이터를 분석하면 사고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미리 찾아낼 수 있다. 또한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노동자가 위험 상황을 가상으로 경험하는 체감형 교육도 가능해진다. 다만 산업안전을 포함해 안전디자인이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려면 개별 사업을 넘어 이를 총괄하는 디자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디자인진흥원이 지난 5년간 안전디자인을 지원한 기업은 36곳이다. 안전디자인 도입 후, 참여 기업들에 중대재해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기업들의 만족도 역시 높았다. 현재 안전디자인이 필요한 기업은 6만 6,000곳이 넘는다. 지금의 속도와 예산으로는 모든 현장에 닿기 어렵기에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정부의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그는 호소했다.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날마다 산업현장의 안전을 강조하고 계신 만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합니다.”

작업장 안의 색과 표지, 동선, 보호구 위치 하나하나가 노동자의 판단과 행동을 좌우한다. 위험을 더 잘 보이게 하고 안전한 행동을 더 쉽게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강 원장이 강조하는 사람 중심의 안전이며, 안전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출처 : 월간안전보건(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