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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빛과 곡선으로 기억되는 세 장의 풍경 - 히든코리아

서울, 빛과 곡선으로 기억되는 세 장의 풍경

히든코리아, 박희면, 2026.

 

한국의 조형미를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흐름 하나는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곧게 치솟는 직선보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곡선을 좋아했고, 꽉 채운 화면보다 여백을 남겨 둔 공간에 더 큰 의미를 담아 왔다. 자연의 산과 물, 바람과 구름이 만든 선과 면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사람과 공간이 조용히 공존하는 방식을 배워 온 셈이다.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는 한 번 감추었다가 천천히 드러내는 맛, 중심을 정확히 맞추기보다 약간 비켜서서 균형을 찾는 감각, 조용한 가운데 생동하는 기운을 읽어내는 눈. 이런 것들이 한국적인 미학의 바탕이 되어 왔다. 그래서 한국의 공간과 건축, 도시 풍경은 자연과 인공이 서로를 지우지 않은 채, 한 화면 안에서 묵묵히 공존하려 한다. 산 위에 올라선 탑도, 강가에 자리 잡은 경기장도, 빛으로 가득한 전광판도 결국은 “사람이 머무는 자리를 어떻게 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세 장소, 남산타워와 코엑스 K-POP 스퀘어, 잠실종합운동장을 한국의 조형미라는 렌즈로 다시 바라보면, 비슷한 콘크리트와 유리, 철과 LED 속에서도 한국만의 감성과 질감이 묻어 나온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장면은, 오래전부터 서울의 등불처럼 도시를 지켜보고 있던 남산타워이다.

 

남산타워, 기억을 비추는 서울의 등대

 

서울에서 올려다보는 남산타워와, 남산타워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풍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아래에서 볼 때 남산타워는 도시 한가운데를 찌르듯 솟아 있는 뾰족한 안테나 같지만, 남산 자락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하늘로 떠오르면 그 인상은 서서히 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그 뾰족한 기둥은 도시와 하늘을 연결하는 기다란 숨줄처럼 보이고, 서울 전체가 그 줄을 통해 조용히 호흡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 나라든 대표적인 풍경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로마의 스쿠터와 스페인 계단, 파리의 에펠탑과 몽마르트르 언덕,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야경처럼, 우리에게는 남산과 남산타워가 있다. 외국인에게는 “서울에 가면 꼭 한 번 올라가 봐야 하는 곳”이고, 한국 사람에게는 “언젠가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 올라가 본 곳”으로 남아 있는, 묘한 감성이 깃든 장소다.

남산타워의 미학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다. 탑의 실루엣만 놓고 보면 세계 어느 도시의 통신탑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탑이 ‘도심 속 산’인 남산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바꾼다. 회색 빌딩 숲 사이에 우뚝 솟은 푸른 산 하나,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흰 기둥과 둥근 타워. 자연의 곡선과 인공 구조물의 직선, 흙과 철, 녹음과 콘크리트가 한 화면 안에서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이 장면은 한국적인 미의 압축판처럼 느껴진다.

오래전 케이블카 외장 색과 패턴 디자인을 의뢰받고 남산을 여러 번 오르내리며 상징과 의미를 찾으려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 작업은 단지 “무엇을 예쁘게 칠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그것은 “서울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이 도시를 어떤 표정으로 보여 줄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케이블카는 산을 오르내리는 교통수단이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과 처음 만나는 움직이는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이 너무 요란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아무 개성이 없어도 안 된다. 남산의 초록, 석양이 물드는 주황빛, 밤하늘의 깊은 남색이 과장되지 않게 스며드는 정도, 서울이라는 도시 특유의 절제된 화려함이 살짝 베어나오는 정도가 어울린다.

타워 전망대에 서면 서울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멀리 한강이 비단처럼 휘어지고, 빽빽이 서 있는 아파트와 빌딩의 네모난 얼굴들이 작은 패턴처럼 이어진다. 그렇게 촘촘한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답답하기보다는 한 장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정리된 느낌이 든다. 

도시의 복잡함이 적당한 높이 위로 올라가 한 번에 정리되는 것처럼, 마음속의 복잡함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옛 선비들이 높은 누각에 올라 강과 산을 내려다보며 세상을 다시 읽어냈던 것처럼, 우리는 남산타워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서울을 새삼스럽게 다시 바라보게 된다. 미학적으로 보자면, N서울타워는 서울의 중심에 우뚝 서서 도시 전체를 조망하게 하는 현대적 랜드마크이자,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 미학의 상징이다.

남산이라는 자연 지형 위에 세워진 이 구조물은 강하게 치솟은 수직선으로 하늘을 향해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산의 완만한 능선과 어울려 한국 전통건축에서 말하는 ‘천지인(天地人)’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의 인간을 연결하는 세 축이 이곳에서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다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자연이 만든 곡선과 사람이 만든 직선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장면, 그 미묘한 균형감이 남산타워의 가장 한국적인 얼굴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도시 위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남산타워는 또 다른 얼굴을 꺼낸다. LED 조명을 두른 타워의 몸체는 계절과 기념일, 환경 캠페인과 도시의 메시지에 따라 색을 바꾼다. 어느 날은 깊은 초록빛으로, 어느 날은 푸른색과 보라색이 섞인 그라데이션으로, 또 어느 날은 눈처럼 환한 백색으로 도시의 밤공기를 물들인다. 

이 변화무쌍한 빛의 움직임은 한국 미학에서 중요하게 여겨 온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떠올리게 한다. 빛이 단순한 장식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호흡하듯 살아 움직이며 도시와 소통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타워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파노라마는 전통 산수화의 고개를 숙여 내려다 보는 부감법을 떠올리게 한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시선, 산과 물, 마을과 길이 한 화면 안에 겹겹이 펼쳐지는 구성이 그대로 겹쳐진다. 단지 붓과 먹 대신 유리창과 야경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다. 

관람자는 잠시 일상의 시간에서 물러나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며, 이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삶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일종의 ‘현대식 와유(臥遊: 몸은 한 곳에있지만 마음으로 자연과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남산타워 아래에서 그 빛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 연인들은 사랑의 자물쇠 앞에서 조금 과장된 약속을 남기고, 여행객은 핸드폰 카메라로 이 도시와의 짧은 인연을 꼭 붙잡아 두려 한다. 가족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저기서 보면 서울이 다 보인다”고 이야기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첫 서울 여행의 시작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 확인하러 오는 장소다. 이렇듯 남산타워는 서울을 비추는 등대이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비추는 작은 조명 역할도 함께 한다. 외국인의 눈에는 남산타워가 어쩌면 ‘서울의 에펠탑’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한국적인 여백의 미와 절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이 조용히 스며 있다. 

도심 한가운데 놓인 산, 산 위에 서 있는 탑, 탑에서 내려다보는 빛의 바다. 이 세 층위가 겹쳐질 때, 남산타워는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 K-POP 애니메이션 속 장면에서 남산타워가 배경으로 등장하면, 세계의 관객들은 그 위에 서 있는 캐릭터를 따라 서울의 야경을 함께 바라보며, 이 도시의 숨결과 한국적인 미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남산타워 전경(2026)

 남산타워 앞 하트 형태의 조형물(2026)

 COUPLE LOCK의 열쇠 전문점 벽 낙서(2026)

 

 

 

 

 남산타워의 야경

 저녁 노을 배경 남산타워(2020)

 신형 커플룩 자물쇠들이 채워져 있는 모습(2026)

 

 

코엑스 K-POP 스퀘어, 빛으로 짓는 무대

 

강남 한복판, 유리와 철, 빛과 소리로 가득 찬 교차로 한가운데에 코엑스 K-POP 스퀘어가 있다. 낮에 보면 거대한 건물과 자동차, 사람들로 넘쳐나는 바쁜 비즈니스 현장 같은데, 해가 기울고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 이곳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운 대형 3D 전광판이 눈을 뜨는 순간, 강남의 밤공기는 거대한 무대의 조명이 켜질 때처럼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유명한 3D 파도 영상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일부러 찾아와 하늘에서 떨어질 듯,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출렁이는 파도를 올려다보았다. 실재하지 않는 바다, 그러나 눈앞에서는 분명히 ‘존재하는 듯한’ 환상. 이 묘한 경험은 사실 한국적인 미학의 현대적 변주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병풍이나 그림 속 산수를 바라보며 상상으로 그 안을 거닐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화면 속 가상의 바다를 바라보며 도시 한복판에서 잠시 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코엑스 K-POP 스퀘어의 아름다움은 ‘첨단’이라는 말 하나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이곳에 서 있으면 빛과 소리가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며 새로운 공간감을 만든다.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뮤직비디오와 광고 영상, K-POP 아티스트의 얼굴, 드라마의 한 장면, 게임 속 캐릭터가 교차하고, 그 아래에는 실제로 그 문화를 소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걷고 있다. 현실과 영상, 관람자와 대상이 분명히 구분되면서도 묘하게 섞이는 이 풍경은 현대 서울이 가진 독특한 ‘경계의 미학’을 보여준다.

낮의 코엑스는 회의, 전시, 쇼핑, 비즈니스가 뒤섞인 거대한 복합공간이지만, 밤이 되면 이 광장은 하나의 야외 극장이 된다. 의자를 줄지어 놓지 않아도, 사람들은 저마다 편한 장소를 찾아 서서, 걸으며, 혹은 잠시 멈춰 서서 영상과 음악을 감상한다. 전통적인 미술관이나 공연장처럼 ‘입장권을 끊고 관람하는 예술’이 아니라,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열린 예술’이다. 

이처럼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스쳐 지나가며 감상할 수 있는 공공성은 한국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미학의 한 형태다. K-POP 데몬 헌터스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영상 속에서 이 공간은 때로는 전투의 무대가 되고, 때로는 공연의 장이 되며, 때로는 인물들의 운명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배경이 된다. 빛과 음향이 만들어내는 이 초현실적인 광장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문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스크린에 가득 차오르는 아이돌의 춤과 음악은 단순한 상업 영상이 아니라, 이 도시를 움직이는 리듬 그 자체다. K-POP 스퀘어를 찾는 외국인들은 종종 스마트폰을 꺼내 이 풍경을 촬영하고, 실시간으로 세계에 공유한다. 영상 속 서울은 더 이상 먼 나라의 도시가 아니다. 실시간으로 반짝이는 빛과 음악,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이곳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도시”로 인식된다. 

이것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 서울의 정체성이 ‘디지털 경험’을 통해 번역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강남의 빌딩 숲 사이로 흘러가는 빛의 강, 그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영상의 섬들, 그리고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행렬.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한 편의 움직이는 도시 풍경화를 완성한다. 한국 전통 미학에는 ‘와유(臥遊)’라는 개념이 있다. 누워서 산수화를 보며 마음으로 산천을 유람하는 것. 코엑스의 3D 전광판과 K-POP 스퀘어는 이 전통적 개념을 디지털 기술로 다시 살려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영상과 사운드만으로 다른 공간과 시간으로 이동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산수화가 지금은 파도와 도심, 가수의 무대, 캐릭터의 세계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화면의 기술력 때문이 아니다. 이 광장을 채우는 빛과 그림, 음악과 사람들의 반응이 모두 함께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곡의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순간 환호성을 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냥 발걸음을 멈춘 채 묵묵히 화면 속 장면을 바라본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화려한 광고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의 한 장면이 되기도 한다. 그 층위의 차이가 바로 이 장소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코엑스 K-POP 스퀘어는 ‘한국의 미’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빛과 소리, 움직임과 속도, 군중과 영상이 엮어내는 역동성 속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준다. 

빠르게 변하면서도 어느 순간 깊이 몰입하게 만들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 따뜻한 감성과 서사를 품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이 광장이 들려주는, 지금 시대의 서울 미학이다.

 

 

 

 코엑스 K-POP 광장 입체광고물(Ai 디자인)

 코엑스 지하 통로 전시 홍보물(2022)

 

 

잠실종합운동장, 함성이 그리는 원형의 시간

 

잠실종합운동장은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그릇 하나가 한강변에 내려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둥근 곡선을 따라 둘러 선 기둥들, 안쪽을 휘감는 좌석의 물결, 그 중심에 놓인 푸른 잔디. 낮에는 비교적 조용한 이 공간이지만, 밤이 되고 공연이나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심장처럼 뛰기 시작한다. 

오래전 1988년 올림픽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고, 그 이후로 수많은 경기와 콘서트가 이어져 온 시간의 그릇이다. 잠실종합운동장의 미학은 ‘집단의 에너지’에서 출발한다. 남산타워가 도시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숨을 고르는 장소라면, 이곳은 수만 명의 숨이 한 번에 들이켜지고 내쉬어지는 거대한 폐와도 같다. 경기나 K-POP 공연이 있는 날, 관중석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의 파도치는 함성이 몸을 통과해 지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작지만, 그 수많은 목소리가 한 방향으로 몰릴 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소리의 벽이 된다. 

이것이 한국의 ‘신명’이 현대적으로 살아 있는 장면이다. 경기장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힘이 있다.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 구조는 관중석 어느 자리에서도 중심을 바라보게 만든다. 하늘은 열려 있고, 빛은 위에서 내려오며, 관객의 시선은 모두 가운데를 향해 집중된다. 전통 마당놀이에서 사람들이 둘러앉아 한가운데의 광대를 바라보던 장면, 마을 잔치에서 사람들이 원형으로 모여 춤과 노래를 함께 즐기던 기억이 이 현대식 경기장 안에서도 살아 있는 느낌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몸과 시선이 모이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K-POP 콘서트가 열리는 날의 잠실운동장은 또 다른 우주가 된다. 스타디움 주변을 빙 둘러 선 굿즈 부스와 푸드트럭, 팬클럽의 응원봉과 슬로건이 색과 빛의 층을 만든다. 공연이 시작되고 조명이 꺼지는 순간, 객석에서 일제히 켜지는 수만 개의 응원봉은 마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처럼 경기장을 감싼다. 

이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이다. 무대 위의 가수와 아래의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집단의 패턴, 색과 리듬의 배열, 움직임의 문양이 경기장 전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작품으로 바꾸어 놓는다. 잠실종합운동장의 곡선형 구조는 한강과 도시, 그리고 하늘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낮에는 잔디의 녹색과 좌석의 회색, 콘크리트의 단단한 질감이 한강의 물빛과 어울리고, 주변을 둘러싼 숲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배경이 된다. 밤에는 경기장 외벽을 감싸는 조명과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한강 수면에 비쳐 또 하나의 반대칭 풍경을 만든다. 사람들의 함성은 보이지 않지만, 그 울림은 한강을 건너 도시 곳곳으로 번져나가는 듯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잠실종합운동장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첫 콘서트를 보던 날의 설렘이 깃든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올림픽과 월드컵, 각종 결승전을 함께 응원했던 추억의 무대다. 어떤 이들에게는 가족과 손을 잡고 처음 야구장을 찾았던 날의 냄새와 소리가 남아 있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청춘의 밤을 통째로 불태웠던 록 페스티벌의 기억이 박혀 있다. 

이처럼 수없이 많은 개인의 서사가 이 원형의 그릇 안에 차곡차곡 쌓여 왔다. K-POP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 속에서 잠실종합운동장은 종종 전투와 공연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등장한다. 수만 명의 에너지가 한 번에 폭발하는 이 장면은, 한국 사회가 가진 집단적 열정과 응집력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빛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파동을 만들어내는 장면. 이것이 바로 잠실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독특한 미학이다. 한편, 잠실종합운동장은 앞으로도 계속 변신하고 있다. 리모델링과 재개발, 주변 공간과의 연결을 통해 더 다양한 문화·스포츠 복합공간으로 거듭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형태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 하나 있다면, 아마도 “사람들이 모여 함께 환호하는 장소”라는 근본적인 역할일 것이다. 

시대에 따라 응원하는 대상이 스포츠에서 음악으로, 또 다른 무엇으로 바뀔 수는 있지만, 함께 모여 한 방향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경험은 여전히 이 공간의 중심에 남을 것이다. 잠실종합운동장은 한국의 미를 전통적인 장식이나 문양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원형의 구조, 사람들의 움직임, 함성의 리듬, 빛과 색의 변화 속에서 ‘우리’라는 감각을 체험하게 한다. 혼자일 때는 느낄 수 없는 마음의 떨림, 집단 속에서 비로소 깨어나는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 했다는 묘한 연대감. 이것이야말로 한국적인 미학의 또 다른 얼굴이며, 잠실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가장 강렬한 체험이다.
 

 

 

 

 잠실운동장 야간경기 모습(Ai 디자인)

 잠실운동장 내부공연 모습(Ai 디자인)

 

 

 

박희면

디자이너·작가.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27년간 국가 디자인 진흥과 굿디자인(GD) 제도 정착에 기여했으며, 2008년 산업포장을 수훈했다. 한국공학대학교와 홍익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 후학을 양성해왔으며, 현재 한국정리문화체험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이 수록된 책

『히든코리아: 한국의 문화와 공간, 사소한 기적들』​은 디자이너 박희면이 한국의 도시와 골목, 건축과 생활도구, 자연과 산업 속에 숨어 있는 문화와 디자인의 의미를 기록한 인문·문화 에세이다. 공중전화기, 항구, 성곽, 정거장, 굿디자인 제도,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풍경과 사물을 통해 한국인의 생활방식과 조형의식, 그리고 디자인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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