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현황
스페인은 2011년에 제정된 ‘폐기물 및 오염된 토지에 대한 법’을 통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스페인어: 생산자의 확장된 책임, Responsabilidad Ampliada del Productor)를 운영하고 있다. 스페인의 EPR은 “오염을 유발한 주체가 지불한다”는 원칙 하에, 제품의 생산자가 제품의 디자인, 생산 단계에서부터 이로 인해 발생한 폐기물에 대한 처리까지 책임을 지는 것에 있다. 여기에서 생산자의 정의는 “사용에 따라 폐기물로 변하게 되는 제품을 생산, 가공, 처리, 판매, 수입하는 자”로, 완성된 제품을 처음 시장에 내놓는 주체가 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동 제도에 영향을 받는 제품은 포장용품, 배터리, 폐타이어, 산업용 폐유, 전기전자기기 등으로 다양하며, 제품에 따라 별도의 규정이 시행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페인의 EPR은 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고 있다. 제조기업들은 EPR의 원칙에 따라 1) 환경오염이 덜하고, 2) 오래 사용할 수 있으며, 3) 재활용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환불을 수락해야 하고, 4) 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5) 제품 제조 시 폐기물 재활용을 적극 활용해야 하고, 6) 자신들이 유발한 폐기물 및 폐기물 관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 밖에, 스페인 EPR의 또다른 특징은, 생산자가 자신들이 생산한 폐기물을 유발하는 제품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관리통합시스템(SIG, Sistema Integrado de Gestión)에 가입해야 한다. SIG는 스페인 정부에서 공인한 비영리 단체로 생산자가 개별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폐기물 처리 관련 업무를 대행해 주는 곳이다. 즉, 생산자는 가입되어 있는 SIG에게 매년 자신들이 만들어 낸 폐기물 총량을 신고하고 이에 상응하는 처리 비용을 납부하면, SIG가 대신 폐기물 수거 및 처리 기관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SIG은 최근 SCRAP(Sistema Colectivo de Responsabilidad Ampliada del Productor)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2023년부터 포장재에 대한 EPR 규제 변화
스페인 정부는 왕령 Real Decreto 1055/2022를 통해 2023년 1월부터 포장재 폐기물 관리와 관련된 규정을 개정했다. 우선 규제 대상인 포장재에 대한 정의를 “원자재부터 완성품까지 모든 생산, 유통, 소비를 아우르는 밸류체인에서 제품을 보관, 보호, 취급, 유통, 운송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즉, 기존 규제 대상은 가정용 포장재에만 국한되었으나, 2023년부터 이를 상업용 및 산업용 포장재까지 확대했다.
또한, 스페인 정부는 생산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위해 ‘제품 생산자 등록 시스템(Registro de Productores de Productos)’을 신규 도입했다. 이에 따라, 생산자들은 해당 등록 시스템에 의무적으로 가입해 일련번호(ENV/연도 REGISTRO/9자리 숫자)를 받아야 하며, 매년 1~3월 중 전년도에 사용한 포장재 총량을 기입해야 한다. 사용한 포장재 총량에 대한 정보를 입력 시, 해당 포장재가 1) 가정/상업/산업용인지, 2) 일회용/재활용이 가능한지, 3) 어느 SCRAP에 가입되어 있는지 등도 함께 기입해야 한다. 동 시스템은 금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해 2023년 1월부터 가입이 가능하다. 가입 후, 2023년 5월 1일부터 7월 31일 중에는 2021년에 사용한 포장재 총량을 신고하며, 8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2022년 중 사용한 포장재 총량을 신고하도록 시스템을 오픈할 예정이다.
또다른 변화 중 한국기업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생산자에 대한 범위를 국내 포장업체(Packager, 사실상 제조업체)와 수입업체는 물론 스페인 역외 포장업체까지 확대했다는 점이다. 즉, 스페인에 포장된 제품을 수출하는 외국기업도 스페인 현지에서 제품 생산자 등록 시스템에 가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외국기업들은 해당 시스템에 직접 가입이 불가능하며 스페인 내 대리인(Representante Autorizado)을 별도로 지정해야 한다.
따라서 스페인으로 수출하는 우리기업은 앞으로 다음과 같은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 1) 주한 스페인 대사관을 통해 비거주인용 사업자등록번호(NIF)를 발급 받는다. 2) 해당 NIF로 디지털인증서를 발급 받으며 대리인을 지정해야 한다. 3) 거래하는 스페인 바이어가 한 개일 경우에는 해당 바이어를 대리인으로 지정하는 것이 업무 효율 면에서 좋을 것으로 보인다. 4) 거래하는 스페인 바이어가 다수일 경우, 스페인 내 회계법인이나 물류운송기업 등 제3자를 대리인으로 지정해, 포장재 폐기물 신고 업무를 맡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법령이 아직 시행 단계 초기로 어떠한 주체가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지 모호함으로, 이는 현지 거래선과의 개별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와는 별개로 SCRAP 공인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제품 생산자 등록 시스템’은 사용한 포장재 총량을 신고하는 용도라면, SCRAP 단체 가입은 사용한 포장재 관리 및 처리를 위한 비용을 납부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생산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포장재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SCRAP에 가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제품 생산자 등록 시스템에 등록된 일련번호로 가입해야 하므로, 외국 생산자의 직접 가입은 불가능하다. 가정용 포장재 관련 SCRAP은 Ecoembes(www.ecoembes.com)가 있으며, 상업용 또는 산업용 포장재 관련 SCRAP으로는 Envalora(https://envalora.es)나 Implica(https://somosimplica.com)와 같은 단체가 구성을 준비 중에 있다. 스페인 정부는 가정용 포장재와 같이 이미 EPR 규제 대상이던 제품의 SCRAP 단체는 2024년 6월까지, 그 밖에 산업용이나 산업용 포장재와 같이 신규 규제 대상이 된 제품의 SCRAP 단체 구성은 2024년 12월까지 완료할 것으로 정했다.
전망 및 시사점
이번 EPR 규정 변화는 대스페인 수출 활동에 있어 한국기업은 물론 수많은 외국기업에게 시간 및 금전적 비용이 야기될 것으로 우려된다. 동 제도는 스페인 자국기업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나, 외국기업의 경우 동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비거주자용 NIF(사업자등록번호)를 신청해야 하며 대리인도 지정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품 생산자 등록 시스템 가입이 지연될 시 스페인 바이어와의 거래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당 제도를 타 EU국가의 제도와 혼동할 수 있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독일 등 일부 EU에서도 유사한 EPR 시스템을 운영 중에 있으나, 각자 자국 내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데에만 국한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독일 내 기업을 거쳐 스페인에 최종 판매될 시, 해당 독일기업이 스페인 내 대리인을 지정해 제품 생산자 등록 시스템에 사용한 포장재에 대한 정보를 신고해야 한다.
그 밖에, 산업용 포장재 관련 SCRAP 기관 설립을 준비 중인 A사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해당 규정 도입이 아직 스페인 국내 기업에게도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지 않거나, 동 규정을 최근 신규 도입된 플라스틱세와 혼동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 스페인에 수출 중인 우리 기업은 이와 관련해 스페인 친환경전환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바이어 측에 공유해 해결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링크: https://www.miteco.gob.es/es/calidad-y-evaluacion-ambiental/temas/prevencion-y-gestion-residuos/flujos/envases/Registro-productores-producto-seccion-envases.aspx).
자료원: 스페인 친환경전환부, 현지 언론 종합, SCRAP 단체 A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