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률교육의 다음 단계가 절실
2020년 전후부터 일본 기업들은 전 직원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목표로, 직무·직종과 연차를 불문하고 IT 기초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일률교육’을 도입해 왔다. 동영상 콘텐츠나 e러닝을 활용한 교육 방식, 국가 공인 IT 자격증인 ‘IT 패스포트’ 취득 장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DX 인재화를 위한 초기 단계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방식만으로는 직원들이 IT를 실제 업무에 활용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데까지 도달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IT 전문조사기관 ITR이 2024년 10월에 실시한 ‘DX 인재 육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60%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DX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고 답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같은 해 10월 가트너 재팬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년 이상 전사 차원의 디지털 인재 육성에 주력한 기업 중 “실적 향상 및 사업 전략 추진에 기여하고 있다”, “실제 업무에서 DX 스킬을 발휘하고 있다”라고 응답한 기업 비율은 24%에 그쳤다. 또한 해당 조사에 따르면, DX 교육을 시행했음에도 구체적 성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나, 직원들이 디지털 관련 지식을 갖추고 있지만 업무 성과에 직결되진 않는 경우가 과반수였다.
<디지털 인재 육성 추진기간 3년 이상 기업의 성과 실현도>
(단위: %)

* 주: n=254
[자료: 가트너 재팬 자료를 토대로 KOTRA 도쿄무역관 작성]
실무형 교육에 초점
업무 효율화와 사업 혁신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면서, 단순한 학습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인재를 실질적인 DX 인재로 끌어올리려는 기업들의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습형 교육이나, 교육 수료자를 DX 관련 프로젝트에 직접 투입하는 방식이 그 예다. 자동차, 화학, 소비재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종합상사 소지츠(Sojitz)는 DX 인재를 △입문 △기초 △응용기초 △전문가 △TL(Thought Leader) 등 5단계로 세분화해 정의하고, 단계별로 요구되는 역량을 명확히 설정했다. 이 가운데 입문 단계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기초 단계는 전 종합직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수료율은 100%에 육박하는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약 60명이던 전문가 레벨 인재를, 2027년까지 전체 직원의 10% 수준인 약 200명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이와 함께, 2023년부터는 전문가 코스의 하나로 ‘비즈니스 디자인 과정’을 신설해 부·과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고도화된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 과정은 6개월간 총 150~200시간에 달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수강자는 경영 전략, 비즈니스 모델, AI, 블록체인 등의 주제를 다룬 도서를 주 1권씩 읽고, 이를 자사 사업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 내용을 보고서로 정리해 제출한다. 수강생은 매 기수 약 15명 내외의 소수정예로 선발되며, 매일 최소 1시간의 학습 시간이 요구되는 고강도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중도 포기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2024년부터는 한 단계 아래인 응용기초 레벨 교육과정도 개편돼, 일부 내용을 ‘비즈니스 아키텍처 과정’으로 독립 운영하고 있다. 해당 과정은 4일간 집중적으로 진행되며, 전문가 레벨 인증자에게는 기념 목걸이가 수여되고 공식 수여식도 개최된다. 또한, 교육 수료자 명단은 매월 사장 주재의 DX 추진위원회에서 공유되며, 사내 전반의 동기 부여와 DX 문화 확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소지츠의 DX 인재육성 커리큘럼>

[자료: 소지츠 자료를 토대로 KOTRA 도쿄무역관 작성]
기린홀딩스(HD)는 2021년 7월부터 디지털 리터러시 및 IT 실무 역량 향상 프로그램인 ‘기린 DX 도장(道場)’을 운영해 왔다. 해당 프로그램은 소수정예로 실제 업무 과제를 바탕으로 한 실습형 교육을 지향하며, 2025년도부터는 실제 DX 프로젝트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개편할 방침이다.
기린 DX 도장은 △흰 띠(초급) △검은 띠(중급) △사범(상급)의 3단계 교육 체계로 구성돼 있으며, 2024년 말 기준 흰 띠 과정을 수강한 직원은 총 3885명에 달할 정도로 확산 중이다. 현재 강화가 검토 중인 교육 내용은 △사내 규칙에 따른 IT 툴 선정 및 조달 교육, △리더십 마인드 및 지원 스킬 함양 교육 등이다.
가장 상위인 사범 레벨에서는 매 기수 15~20명의 수강생이 데이터 시각화, 업무 자동화 등 구체적인 IT 툴을 배우고, 실무 적용 가능성을 토론한 후 직접 툴을 개발해 본다. 교육은 외부 강사의 1:1 컨설팅과 함께 진행되며, 최종 결과물은 상사 앞에서 발표하게 된다. 실제로 이 과정을 통해 자회사와의 조달 업무 효율화에 성공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교육받은 DX 인재를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
SOMPO홀딩스는 디지털 기술을 습득한 非IT 인재를 DX 프로젝트의 책임자(PO, Product Owner)로 배치하고 있다. 6만 명에 달하는 그룹 전 직원을 대상으로 DX 교육을 해 온 이 회사는 2024년도부터는 교육 수강 인원 집계를 중단하고, DX 프로젝트의 기획·추진·성과 중심으로 인재 육성 체계를 전환했다. SOMPO는 DX 인재를 △고도 기술을 보유한 ‘전문 인재’(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엔지니어, UI/UX 디자이너 등), △디지털 전략을 기획하는 ‘기획 인재’, △업무에 디지털을 적용하는 ‘활용 인재’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교육을 마친 인재를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방식이 이 회사가 현재 주력하고 있다. 대표 사례는 그룹 계열사인 손해보험재팬(손보재팬)에서 2024년 시작된 보험금 지급 프로세스 재설계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애자일 방식으로 진행되며, 손보재팬 사업부와 SOMPO홀딩스의 DX 전문 인력이 협업하는 혼합 팀으로 구성됐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보험금 지급을 담당하는 사업부에서 과장급 직원 4명을 ‘프로덕트 오너(PO)’로 선발했다. 이들은 시스템 개발 경험은 없지만 풍부한 현업 지식을 바탕으로, 실무 경험이 있는 DX 인력(개발 인력)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육을 넘어 실전 경험을 통해 DX 인재로 전환하는 현장 기반 인재 육성의 대표적인 모델로 평가된다.
<SOMPO홀딩스의 DX인재육성 시스템>
DX 전문 인재 | 고도의 전문기술을 보유해, 기획을 ‘구체화’하는 인재 - 데이터사이언티스트, 엔지니어, UI/UX디자이너 등 |
DX 기획 인재 | 디지털 시책을 ‘기획’하는 인재 |
DX 활용 인재 | 업무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인재 |
[자료: SOMPO홀딩스 자료를 토대로 KOTRA 도쿄무역관 작성]
후지필름홀딩스 역시 다양한 부문에서 DX 인재를 적극 등용하고 있다. 특히 소재 개발과 IT 기술을 접목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부서 간 융합 협업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반도체 소재 개발을 위한 MI(Materials Informatics)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AI 기반 시스템을 활용해 수천 개의 화합물을 가상으로 생성하고, 여기에 소재 개발 전문가들의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를 반영함으로써 정확도가 높은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기존 대비 3배의 열물성치를 가진 신규 반도체 소재 후보를 발굴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후지필름은 DX 프로젝트의 기반이 되는 디지털 플랫폼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제작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 공통 플랫폼은 여러 사업 영역에서 범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프로젝트의 속도와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자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므로 신입사원도 DX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 있으며, 스킬 수준에 맞는 과제를 부여하고 선배의 지원을 통해 성장을 유도하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IT 기업은 기업의 IT 내재화에 대응한 인재 양성에 주력
사용자 기업들이 DX 인재 육성을 통해 IT 내재화를 서두를수록 IT 기업들은 압도적인 기술 지식이나 참신한 컨설팅 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 IT기업의 대응 사례>
육성 기술 | 기업 | 구체적 대응 사례 |
압도적인 기술지식 | 노무라종합연구소 | - 20개 전문분야를 설정해 직원들 스스로 커리어를 선택할 수 있는 체계 정비 - 전문성 높은 인재를 사내에서 인증해 롤모델로 인정 |
히타치제작소 | - 사내 전문가로부터 요구되는 기술지식의 변화를 청취해 분기별 교육 프로그램 업데이트 |
참신한 컨설팅 능력 | 액센츄어 | - 글로벌 사내 공모제도를 정비해 해외 직책 도전을 지원 - 상사 승인 없이 다른 부서에 지원할 수 있는 제도 도입 |
일본오라클 | - 우수한 젊은 직원을 인도에 단기간 파견해 현지 실무 지식 습득 - 전근 전에 일정기간 희망부서 직무 체험 기회 제공 |
후지쯔 | - 지식, 경험을 보유한 시스템엔지니어 등을 대상으로 연수와 OJT를 결합한 리스킬링 프로그램 제공 |
[자료: 닛케이XTech 자료를 토대로 KOTRA 도쿄무역관 작성]
IT 업계 동향에 정통한 T 사 U 부장은 KOTRA 도쿄무역관 IT 지원 센터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많은 IT 기업이 당면한 프로젝트 대응에 몰두하느라 자사 DX에는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오래된 시스템 이행 수요 덕분에 현재는 호황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특수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에 조속한 체제 정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사용기업 측의 IT 내재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기존에 솔루션을 공급하던 TI(Technology Integrator) 기업은 더 이상 단순 시스템 개발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AI, 정보보안,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력이 없다면,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존에는 외부에 맡겼던 문제 해결을 사용기업이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서, IT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가치는 점점 더 축소되고 있다. 이제는 사용자가 아직 인식하지 못한 문제를 선제적으로 발견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 육성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산업 이해외 고객 니즈를 기반으로 정확한 솔루션을 설계할 수 있는 컨설팅 역량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IT 기업 또한 DX 인재를 내부에서 육성하고, 외부로는 깊이 있는 디지털 파트너십을 제안할 수 있는 질적 전환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자료: SOMPO홀딩스, 소지츠 등 각 사 홈페이지, 닛케이컴퓨터, 닛케이XTech, KOTRA 도쿄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