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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와 디자인


(독일에 갓 왔을때, 호두까기를 이용해 호두를 까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우리집만 문명화? 하지 못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보름때마다 신문지를 깔고 망치로 두드려가며 호두를 깨서 깨진 껍질과 호두속알을 골라내어야 했었다. 이렇게 호두를 까는 방법을 당연하게 여겼던 나에게 이처럼 별의 별 것에 알맞는 도구가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었다. 도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인간의 신체적인 힘으로 할수 없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내는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사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 훈련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여러종류의 호두까기들을 한 번 모아보았다.)


* 대량으로 호두까기를 까는 기계. 그래픽 디자인 전문인 판타지 팩토리(Fantage Factory)에서 만든 3차입체 그래픽.



호두는 오래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중요한 겨울식량이었다. 겨울나기에 충분한 지방분과 미네랄을 제공하는 호두뿐만 아니라 헤이즐넛이나 파라넛등 껍질이있는 알맹이들은 다른 동물보다 힘이 약하거나 뾰족하지 않은 치아구조를 가진 사람들에겐 도구를 사용해야하는 자연의 도전이었다.

별 특별한 도구라고까지 할 것 없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돌같은 딱딱한 바닥에 호두알을 놓고 돌로 두드려깨는 것인데, 힘을 잘못주면 정작 먹어야할 호두속알까지 다 뭉그려지게 된다. 손아귀힘이 센 사람들은 껍질이 좀 얇은 호두 두알을 손에 쥐고 으스러지게 눌러 호두껍질끼리 부딪혀 깨지도록하여 속알을 얻는 경우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기본적인 호두까기는 점점 세련되고 다듬어진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도구들은 점점 기능보다 그 형태만들기에 재미를 더해가는 제품들이 나오면서 그 종류가 많아졌다. 호두까기만을 전문으로 수집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독일에는 이런 전세계 500년간 호두까기 역사를 두루보여주는 전세계 460여개의 호두까기 수집품을 바탕으로 전시회(크리스마스 박물관)도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수많은 형태를 지닌 호두까기들이지만 기본적 원리에 따르면 크게 3-4가지 범주로 모아볼수 있다. 돌을 두드려깨는 방법같은 두드려깨기법과 손안에 호두를 쥐고 누르는 것 같이 서서히 압력을 주어 깨는 호두압박법(펜치형태와 나사형, 비틀기법 세가지) 그리고 최근에 나온 호두반쪽으로 나누기법(호두열기법)이다.

*두드려깨기 법
우선 두드려깨기법은 돌대신 망치를 사용한다는 점 외에는 별로 그 형태적인 발달이 없이 현재까지도 가장 간단한 호두까기 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방법의 단점은 호두속알이 호두묵이 될수 있다는 것 말고도 호두껍질이 여기저기로 튀어나간다는 점이다.


* 스위스 시각장애인 협회의 장 갈렌(St.Gallen)의 아틀리에 제작품. 전형적인 방식의 망치로 두드려깨는 호두까기 방법을 깔끔한 형태로 다듬었다.


오래동안 새로운 형태발견이 어렵다고 여겨지던 이 방법도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보면 새로운 형태를 지닌 물건으로 만들어 낼수 있는데, 몇년전 테이크 투(Take2) 디자인에서 만든 호두까기가 바로 그러하다. 나무받침위에 U자모양의 굵은 스텐레스 스틸대로 프레임을 만들고 동그란 공으로 다듬은 돌을 떨어뜨려 밑의 나무받침에 놓인 호두를 깨는 방식이다.


* 디자인 : Adi Bacher / Take2 사진: ArsHabitandi



*펜치형 호두까기

호두압력을 가해 껍질을 깨는 방법은 가장 많이 이용되는 호두까기 방법으로 펜치처럼 호두알 양쪽면에 같은 힘을 주어 껍집을 깨는 것과 나사를 이용해 호두껍질에 힘을 주는 방법 그리고 최근제품 디자이너들이 발견한 비틀기법으로 크게 구분할수 있다.


* 오래된 나사형 금속(동) 호두까기. 호두를 담는 통부분에는 섬세한 투각장식이 되어 있다. 사진은 크리스마스 박물관 사이트에서 빌려온 것으로 연대, 출처명시가 되어 있지 않음.



*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놋쇠로 된 펜치형 호두까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호두까기(Tarent 고고학박물관 소장, 기원전 4세기)도 사람손모양으로 된 도구 안에 호두를 넣고 눌러 껍질을 까는 것이라 한다. 보통은 서서히 압력을 가해 호두껍질을 깨는 도구들에는 펜치모양으로 된 제품들이 많은데 유명한 에르쯔 산악지방의 호두까기 인형도 이 펜치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 알루미늄 소재의 펜치형 호두까기. 펜치형 호두까기 형태를 날렵한 선으로 다듬은 제품으로 요즘 흔히 볼수 있는 호두까기 형태이다.


* 역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주철로 만든 펜치형 호두까기. 말이나 용을 탄 사람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서구사회에서 호두까기는 오래전부터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어 왔는데, 따라서 단순한 도구라는 기능에서 벗어나 이에 걸맞는 장식이나 형태들이 만들어져 애용되었다. 무늬를 덧붙인 것부터 도깨비같은 사람얼굴이나 다람쥐같은 동물 모습으로 된 호두까기들이 등장해 장식품으로 쓰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현재 호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에르쯔 지역의 호두까기도 이런 호두까기 도구의 형상화 전통속에서 나온 것이다.


*호두까기 인형

* 에르쯔 특산품인 호두까기 인형들의 그래픽. 왼쪽부터 왕, 경기병, 왕실사냥꾼, 광부 모습.


옛 동서독 국경이 있던 작센과 튀링엔 지방은 나무가 풍부해 옛부터 손으로 만든 목공예제품이 유명한데, 이중 튀링엔 지방의 나무인형과 호두까기를 합친 호두까기인형은 18세기초 E.T.A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과 쥐의 왕(Nussknacker und Mausekoenig, 1816년)’라는 이야기와 하인리히 호프만의 그림책 ‘호두까기 인형왕과 가난한 라인홀트(Koenig Nussknacker und der arme Reinhold, 1851년)’에 주인공으로 등장해 널리 알려지게된다.(하인리히 호프만의 이야기는 후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이바노프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20년후 작센의 에르쯔 산악 지방의 한 목수인 퓌히트너(Fuechtner)는 하인리히 호프만의 그림책에 나오는 호두까기 왕 모습대로 호두까기 인형을 만들어 시장에 팔았는데 이 왕 모습의 호두까기 인형은 호프만의 그림책의 인기에 편승해 널리 알려져 ‘호두까기 인형의 정형’을 만들어내었다.

* 에르쯔 지방의 다른 호두까기 인형들. 룩스스 벨트(Luxus Welt) 제품. 전통속에서도 조금씩 새로운 형태를 찾아가는 에르쯔 지방의 호두까기 인형모습



*나사구조

호두껍질에 서서히 압력을 가하는 두 번째 방법으로는 나사구조를 이용하는 것이 있다. 최근 디자인 되는 호두까기는 이 방법을 이용한 것이 많은데, 전통적인 형태는 위(앞)에서 소개한 투각세공된 청동제품 같은 형태인데 통과 나사손잡이 부분의 형태를 조금씩 달리해주면 다양한 형태의 호두까기를 만들수가 있다.

* 나사를 돌리는 손잡이가 개의 얼굴 모양으로 된 놋쇠 호두까기. 사진: 크리스마스 박물관.


*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나무로 된 나사형 호두까기.


* 어린이 용으로 만들어진 집모양의 호두까기. 하바(Haba) 제품



*새로운 호두까는 방법

최근 몇몇 제품디자이너들은 호두껍질에 서서히 힘을 가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기존의 호두까기 도구들과는 다른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나무접시에 담긴 호두알 눌러 껍질을 깨는 도구가 있는가 하면 고무풍선의 원리를 이용해 호두껍질에 압력을 가하는 것도 있다.


* 호두까기그릇 / 디자인 : Annegret Ewert-Wurster / 제작: design im dorf / 판매 및 사진출처 : Ars Habitandi



* 제1회 트로이카(Troika) 디자인 공모전에서 3등을 차지한 호두까기 디자인 안레이(Ray) / 디자인 : Ralf Webermann



새로 응용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호두껍질을 비틀어 눌러 깨는 방법으로 호두알을 스텐레스 대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나무틀 안에 넣고 비틀어 힘을 주는 방식이 있다.


* 트위스터(Twister) / 디자인: Maria Felshat / ODIN / 제작: ODIN
판매 및 사진출처: Ars Habitandi


* 호두까기 / 디자인 : Christian Marx



*호두열기

최근 등장한 새로운 방법 중 눈에 띄는 것은 호두의 원래 틈새에 단단하고 뾰족한 것을 집어넣어 비틀어줌으로써 호두알자체가 가지는 원래 틈이 벌어지도록 하는 방법으로 호두까기보다는 호두열기(nut opener)에 가까운 방법이다. 간단하면서도 호두알을 다치지 않고 꺼내먹을수 있다는 장점외에도 호두까기라는 도구를 만드는데 재료가 가장 적게 들어간다는 환경과 자원문제도 고려해 주고 있다.

* 깅코(Ginko) / 디자인: Lemongras / 사진제공; 레몬그라스. 레몬그라스의 깅코는 은행잎에서 그 형태를 따와 ‘깅코’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레몬그라스 디자인(lemongras design)와 모노(mono)사의 제품이 이 방법의 대표적 제품인데 두제품 모두 호두알을 벌린후에도 여전히 껍질안에 있는 호두속알은 뾰족한 부분으로 파낸다. 단점은 가끔 뾰족한 끝부분을 제대로 안넣고 힘을 비뚤게 주게되면 호두알 끝부분만 벌려져 나머지는 다시 펜치형으로 깨야할때도 있다는 점이다.


* 피코(Pico) / 디자인: Ralph Kramer / 제작: mono



가죽끈이 달려있는 모노사의 제품은 그 형태가 좀 커서 서양사람들 손놀림에는 더 적당하고 고급스러워 보이고 케이스 포장이 잘되어 있어 선물용으로 적당한 반면, 레몬그라스 디자인 ‘깅코’는 우리들 손에 잘 잡히고 가격이 저렴하고 끝이 좀 더 뾰족해서 호두알 깊숙히 들어가기 때문에 윗부분만 깨지는 경우가 좀 적다.

이처럼 최근 몇몇 디자이너들에 의해 재미난 형태와 새로운 원리를 이용한 호두까기 제품들을 보면서, 고리타분하고 너무나도 일상적이어서 디자인 대상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호두까기도 디자인적 사고를 거치면 충분히 새로운 형태와 재미를 주는 제품으로 만들어질수 있다는 점과, 최소한의 재료사용과 간단한 형태로 제대로 기능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일상제품과 디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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