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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많은 건축물 Les Halles du Boulingrin 다시 살리기

 

 -La Renaissance, 다시 태어난 Boulingrin 홀-



 

 2012년 9월, 굴곡 많은 20세기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채 부스러지고 방치되던, 벽두께 7cm의 얇은 콘크리트 건축물 Boulingrin홀이 다시 태어났다. 지어질 당시 그대로 모습을 최대한으로 복원시키고 그 옛날의 번영과 북적거리는 발걸음을 기다린다.


 

-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시장 광장


 1920년 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지고 초토화된, 폭약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도시를 전면 재건축하기위해 뉴욕출신 건축가 Georges B. Ford에게 특명이 내려졌다. 바로 랭스 시민들의 경제적 산업적 터전이 되어줄 중심 시장을 재설계하는 것이였다. 1922년에 랭스시는 그에관한 건축설계 콩쿨을 내걸었고 이듬해 건축가 Emile Maigrot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재건축공사 수주를 따낸 기업의 엔지니어 Eugene Freyssinet이 현장의 책임자로 들어왔다. Eugene은 그 당시 철근 콘크리트를 가지고 얇은 외막을 만드는 것에 관한 특허를 가진 유능한 인재였다.


-건축가 Emile Maigrot의 건물 외관 크로키.


 

 -건축가 Emile Maigrot의 중앙 홀 단면 그림.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1927년 2월에 시작해 2년 반만에 완공된 Boulingrin홀은 주변의 경제적, 사회적 중심지로 자리잡아갔고 정기적으로 시장이 들어섰다. 완성된 건축물은 그때 당시 가히  획기적이었다. 전체가 철근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내부공간은 길이 109m에 넓이 50m, 높이가 19m였다. 치밀하게 계산된 각도는 아치형 천장과 벽들의 콘크리트 두께가 고작 7cm에 불과함에도 건재할 수 있게만들었다. 또한 건물 지하에  심어진 274개의 콘크리트기둥들이 그 무게를 받치고 있기에 가능한 설계이다.


 

 -1927년 9월 Boulingrin 홀의 철골 구조물 공사현장 사진.

 

 건물의 기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으로 건물의 미를 완성하기위해 흔한 조형적 치장도 배제되었으며 오직 유리창으로 생기는 빛에 의한 선과 건물 자체의 볼륨감만을 강조하였다. 곱게 갈린 시멘트를 이용한 4개의 커다란 출입구에서 외관모습역시 검소함과 간결함을 추구했음이 보여진다.

 

- 1930년, Boullingrin 홀 안에 들어선 시장과 북적이는 사람들의 모습.

 

-1928년 열린 우수상표 엑스포 당시.

 

 

-1930년, Temple거리에서 바라다본 건물.

 

- 버터와 달걀, 치즈 상인 Suzanne과 Serge부부, 퇴직 할때까지 Boulingrin 홀과 함께했음.

 

-1950년대 Boulingrin의 상인들.


 하지만 건물의 결함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고 1930년대 말 전기 및 바닥 보완 공사를 거쳤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직접적인 폭탄 투하만은 피하여 건물 구조물은 그대로 남았지만 철근이 심어진 본래의 유리들은 모두 부숴져버렸다.

 수난은 계속되었고 1957년 급기야 아치지붕의 콘크리트가 유실되기 시작했다. 원인은 건물내면 통풍작용의 부실함으로 콘크리트의 응축에 문제가 쌓이게 되고 그 결과 콘크리트 자체가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부식된 것이다. 1960년 급한 대응책으로 지붕밑에 그물까지 치게된다.

만족할 만한 강한 내구성을 갖춘 구조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콘크리트의 유실은 지속되었고 이 건물에 대한 존폐의 논의가 시작되었다.

 

 

 -2009년 복원공사가 들어가기 직전의 건물 내부 모습. 거의 20년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었다.

 

 쓸쓸하다 못해 폐허의 기운마저 감도는 Boulingrin 홀에 대한 지지부지한 논의는 1987년에야 완전부수는 쪽으로 의견이 모여졌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던 무너져내리던 그 건물을 사랑하던, 그 안에서 삶을 만들어나가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Boulingrin홀은 1988년 부분적으로나마 보호를 받기 시작해서 1990년 역사적 유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로부터 10여년 동안에도 Boulingrin홀은 우두커니 바람만 맞고 있었다. 2006년에 비로소 논쟁에 논쟁을 거쳐 Boulingrin홀 다시 살리기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2010년에 와서야 프랑스정부와 랭스시의 지원을 힘입어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약 3억 2천만 유로가 투자되었고 900 미터 제곱의 철근이 들어간 유리와 2150여의 유리벽돌이 사용되었다. 원래의 철근구조를 그대로 사용하며 유실된 콘크리트를 보완했으며 표면에 회색모래를 뿌려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무광 시멘트색을 재현했다.


-2011년 8월 복원공사가 한참 진행되는 과정.



-복원공사 총 책임자 Francois Chatillon의 건물 수채화.


 2012년 9월, 온갖 풍파를 다 이기고 시민들 앞에 다시 돌아온 Boulingrin홀, 매주 수,금,토 새벽 5시부터 부지런한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홀을 가득 매울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 스포츠 관련 행사등도 줄기차게 열릴 것이고 2층에는 예술, 디자인, 건축 등의 다양한 전시를 갖을 것이다. 20세기 근대 건축물의 산 증인이자 초창기 콘크리트 건물의 선두였던 Boulingrin홀이 부숴지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아 더욱 다양한 삶과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 안에서 나눠지기를 기대한다.

 

 

-복원이 완성된 건물 옆모습.


-처음 건물이 설계되고 완공된 당시를 그대로 재현해낸 Boulingrin 홀 내부.


-내부 전경, 시계탑과 그 밖의 시설도, 연초록 색깔도 옛날 그 모습대로 다시 제작되었다.



-홀의 중간층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며 그 첫 전시가 Boulingrin 홀의 시작부터 현재가 전시중.

 


Tag
#건축 #복원 #Reims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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