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국인 디자이너 

필자는 마이크로 소프트 심천 지사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근무 중인 정상현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내의 한국 디자이너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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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터) 안녕하세요. 정상현 디자이너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상현) 네 반갑습니다. 

리포터) 어떻게 제품 디자이너가 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금은 중국에서 일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상현)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아이리버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요. 운 좋게도 그때 당시 공채로 단 한 명 채용하던 디자인 팀에 들어가서 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지금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MP3 플레이어나 전자사전 등 다양한 제품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었고 이때 다져놓은 아이리버 특유의 간단 명료한 디자인 언어는 이후 제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요.

정상현 디자이너 作  Copyright ⓒ iriver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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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터) 눈에 익은 제품들도 많이 있네요. 홍콩에서도 근무하신걸로 알고 있는데 홍콩은 어떤계기로 가게 되셨나요?

정상현) 그러다가 몇 년 뒤, 홍콩에 있는 필립스에서 채용 오퍼가 들어와서 장고 끝에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외국 생활을 해 보겠나 하는 마음에 홍콩으로 훌쩍 넘어가서 일을 하게 됐어요. 홍콩에서는 스마트폰 등 휴대폰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됐었지요. 입사 전만 해도 필립스에서 휴대폰을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제가 그 팀에 배정받으니 기분이 묘했어요. 어쨌든 재미있게 일했지만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홍콩은 전 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조화를 이루며 사는 곳이라 국제적인 감각을 익히기 아주 좋은 곳이에요. 홍콩에서 일하며 가장 좋았던 점이 바로 이것이기도 했구요.

정상현 디자이너 作  Copyright ⓒ philips All Rights Reserved

정상현 디자이너 作  Copyright ⓒ philips All Rights Reserved

리포터) 그렇군요. 심천 마이크로 소프트 오피스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어요? 

정상현) 회사 내규 때문에 자세한 말씀은 드릴 수 없지만 주로 컴퓨터와 함께 쓰이는 키보드 마우스 등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디자인 팀이 있습니다.

리포터) 흔히 마이크로 소프트 하면 소프트 웨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심천은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오피스이군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알 수 있을까요?

정상현) 이건 회사 일이라 여기에서 말씀드리기 조금 힘든 내용입니다. Engadget 같은 웹사이트에 뜨는 내용을 참고해 주세요. 하하.

리포터) 네 알겠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어떤 업무를 하시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정상현) 제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얘기해보도록 하죠. 다른 양산 제품도 많지만 제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지금까지 마침 딱 2 제품입니다. Universal Mobile Keyboard 와 Universal Foldable Keyboard죠. 어쩌다보니 다종 OS를 지원하는 접히는 키보드만 2개 디자인하게 됐네요.

정상현 디자이너 作 Universal Mobile keyboard, Copyright ⓒ Microsoft All Rights Reserved

 
정상현) Universal Mobile Keyboard 는 제 마이크로소프트 첫 디자인 작품이에요.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올랐다고 봐야겠습니다. 초창기에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이런저런 컨셉 제품 디자인을 만들어서 팀원들에게 보여주던 시절이었지요. 시중에 있는 휴대용 컴퓨팅 기기용 키보드가 가지고 다니거나 보관하기도 불편하고 제품을 거치하는 방법도 그다지 세련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가지고 다닐 때는 제품 케이스 자체로 내부 자판이 보호되는데다 그 상태로 열면 바로 키보드가 나오고 거치대도 나오게 만들면 어떨까. 폴더를 열어 사용할 때가 되면 바로 전원이 들어오게 하고 닫으면 전원이 꺼지니 전원 버튼도 따로 필요 없겠지. 간단명료한 스타일링으로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만들자.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은 회사도 아닌 집에서 퇴근 후 디자인을 만들어 바로 팀원들에게 이메일로 전송했지요. 결과적으로 출시 후 The Verge라는 유명 매체로부터 ‘마이크로소프트, 그래 바로 그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이패드2를 위한 최고의 블루투스 키보드를 만들었다’ ("Microsoft, yes Microsoft, makes the best Bluetooth keyboard for the iPad Air 2.") 라는 호평을 들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제품은 중국 선전 마이크로소프트 디자인 팀에 첫 디자인 어워드(레드닷)를 안겨 준 제품이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정상현 디자이너 作 Universal Foldable Keyboard, Copyright ⓒ Microsoft All Rights Reserved

정상현) Universal Foldable Keyboard 도 비슷한 계기에서 출시되었어요. 시중에 있는 접이식 키보드들은 플라스틱 몸체를 사용하고 기계식으로 접히는 구조를 가진 탓에 대부분 두껍고 둔탁해 보였어요. 그런데 마침 시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 Surface 용 착탈식 키보드에서 섬유 소재를 이용해 무엇인가 접히는 부분을 복잡한 구조 없이 아주 얇고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어내던 때라 이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아, 이런 식으로 만들면 되겠다 싶어서 섬유로 둘러싸고 가운데를 그대로 접히게 만든 초박형 키보드 시안을 만들어 가져갔더니 반응이 아주 좋더군요. 지금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휴대용 키보드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제품 정도로 자리 매김했습니다.

리포터) 간결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정상현 디자이너의 디자인 성향을 잘 보여주는 디자인 인 것같습니다. 중국에서의 생활도 궁금한데요, 물론 저도 중국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지만, 정상현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중국에서의 한국 디자이너들에 대한 인식이나 위치가 궁금합니다.

정상현) 세계의 공장이라 할 만큼 제조 산업에 있어서는 경험이 많고 기반산업이 잘 되어 있지만 드론하면 떠오르는DJI(중국명 따장) 등 몇몇 회사를 제외하고는 브랜드를 내건 회사들은 대부분 후발주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미 성공한 경험이 있는 해외의 유명 대기업들을 벤치마킹도 많이 하는데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삼성이나 엘지 등 대기업들 덕에 한국 디자이너에 대한 선망이 약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중국 내 기업에서 채용되어 일하는 한국인 디자이너에게는 무엇인가 보여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구요. 여기에 맞춰 대우도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것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중국 내에서 브랜드 및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제고되며 중국 디자이너들도 이미 대부분 높은 수준에 올라섰어요.

리포터) 저도 개인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한국디자이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자체에서도 충분히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디자이너들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상현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중국에서의 디자이너로서의 장점과 단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상현)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경험을 많이 하게 되실거에요. 크기가 작지도 않은 목업(Mock-up sample : 제품 양산 전 형상과 컬러, 마감등을 체크하기 위한 sample model) 이 일주일 안으로 나오질 않나, 퀄리티가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데 제작 가격은 또 엄청나게 싸고. 여기에 제조 현장을 손쉽게 바로 옆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은 제품 디자이너에게 큰 축복이에요. 요즘은 물건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거나 심하면 아예 그쪽에 관심없는 예비 디자이너들도 많아요.
 

단점이라면, 중국어를 못한다면 생활하는데 언어 장벽이 꽤나 있을 것이라는 점이겠네요. 홍콩에서 살 때는 영어만으로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중국 본토는 그렇지 않거든요. 아, 디자이너로서의 단점이요? 글쎄요,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만족하면서 잘 살고 있거든요. 하하.

리포터) 네 저도 홍콩에서 근무하다가 중국으로 오면서 언어적인 문제를 많이 겪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어 없이는 살아가기가 힘들더군요. 그렇다면 정상현 디자이너의 목표와 비전이 궁금합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지요?

정상현) 당장은 힘들고 먼 훗날이 되겠지만, 가구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유행에 덜 민감한 디자인 소재로 임스 부부나 아르네 야콥슨 같이 50년이 넘어도 여전히 생산되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제 작은 바람 중 하나에요.

리포터)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정상현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제품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디자인 철학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정상현) 철학이라고까지 말씀하시면 너무 거창하고, 그저 매일매일 눈 앞에 있는 작업물을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만들 수 있을지를 주로 고민하는 쪽이랄까요. 디자이너라는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믿기 힘드실 분들이 많겠지만 사실 유행이나 아직 검증되지 않은 첨단 기술 쪽에는 큰 관심이 있지도 않아요. 유행이 번질 때 반짝하다가 식으면 버려지는 그런 디자인을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요. 특히나 제 디자인 작업 대부분이 전자제품 쪽이고 유행에 민감한 제품들이다보니 출시해서 팔리고 얼마 뒤에 잊혀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구요. 그래서 유행, 즉 트렌드를 따라 이루어지는 디자인 발상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두고두고 회자되는, 또 이걸 넘어서 계속 실제로 삶에서 쓰이는 디자인을 지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제 나름 철학이라면 철학입니다. 사실 이것이 제 고용주나 클라이언트에게 오래도록 팔릴 디자인으로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구요.

리포터) 마지막으로 선배디자이너로서, 중국에 근무중인 현직 디자이너로서 후배 디자이너들과 중국에 지원하고 싶어하는 예비 디자이너 분들께 조언이 될 수 있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상현) 중국은 아주 역동적인 곳이에요. 유행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디자이너에게 바라는 것은 중국 밖에서 잘 나가는 해외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트렌디한 것들이지만 거기만 따라가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기 힘들거에요.

리포터) 네 오늘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앞으로도 멋진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본 인터뷰는 2015년 11월 19일 중국에서 진행 되었습니다. 

리포터_황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