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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줄 서야 입장 가능,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

전자책과 구독 문화가 생기면서, 전 세계 출판 지형이 바뀌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킬 것 같던 서점들이 폐업을 하고, 가끔 마주치는 두꺼운 책 봉투 안에는 주로 수험서가 들어있기 마련이지만, 이번 해 싱가포르의 아트북 페어#SGABF2022는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야만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성황리에 치러졌다.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의 풍경 /@Designforwhat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SGABF: The Singapore Art Book Fair)는 아시아의 시각디자이너, 아티스트, 소규모 출판사, 갤러리, 잡지사, 인쇄소가 모여, 동시대 아트북과 잡지를 모아 소개하는 축제의 장으로 2013년부터 매해 개최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아트북을 알리기 위해 주최측은 무료입장을 고수하고, 방문객은 한 주말에만 7천 여 명이 다녀가며 호응한다.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의 독특한 운영 방식에는 ‘전시 주체 포용 Adopt-an-Exhibitor’을 들 수 있다. 싱가포르의 로컬 전시자가 해외의 전시자를 섭외하여, 전시 부스를 공유하는 방식인데, 전시 참가자들은 부스 대여비 부담이 줄고, 전시 주최 측은 매년 콘텐츠를 더욱 다양화하고 고급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싱가포르의 로컬 전시자들은 자신들과 상생할 수 있는 해외 전시자를 고심해서 섭외하고, 그럴 대상이 없더라도 부스를 공유하고 싶다면, 주최측에서 매칭을 주선하기도 한다. 이번 해에는 호주, 브라질, 중국, 에스토니아, 독일, 홍콩,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포르투갈, 태국, 미국, 한국을 포함한 35개국에서 70여 단체와 디자이너가 이 제도를 활용하여 페어에 동참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더북소사이어티예술밥콜렉티브가 참여했다.

 

 

 

태국의 디자이너 Wuthipol Uj의 방콕 거리 사진집 /@Designforwhat

 

 

 

 

‘정돈된 풍경Organised Scenery’은 작가가 여행한 곳의 푸른 자연을 시폰 천에 인쇄하고 한 페이지씩 직접 봉제한 책이다. /@Xiang Yun Loh, Plant Press

 

 

 

‘아틀리에 호코Atelier HOKO’의 싱가포르 거리의 공공 휴지통에 대한 단상, ‘Street Report1: Public Bins’ /@Atelier HOKO, Temporary Press

 

 

 


싱가포르의 숲, 나무, 멸종 위기의 동물들에 대한 기록 결과를 지속적으로 전시와 출판으로 대중에 소개하는 ‘크리티컬쥴로지스트Critical Zoologists
’/@Designforwhat

 

 

 

 

예전 싱가포르의 거리 벽보, 성냥갑 판촉물, 광고 문구에 사용된 서체 등을 수집한 기록물, ‘Striking! Advertising Matches in Singapore’ /@Yeo Hong Eng, Justin Zhuang, gideon-jamie(Temporary Press)

 

 

 

 

독일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Buckczik을 포함한 다양한 일러스트 스타일을 가진 유럽과 남미 출신 작가들의 인쇄물이 활발하게 판매됐다. /@Designforwhat

 

 

 

템포러리 프레스Temporary Press는 작가정신을 가지고, 디자인 리서치와 도서 디자인을 하는 스튜디오인데, 이들이 예비 클라이언트들을 위해 웹사이트에 올라놓은 광고문은 사실 그간의 출판 외주 작업을 하면서 고심했던 부분을 거침없이 적어낸 선언문(*번역문 하단 참조)에 가깝다.

  

템포러리프레스의 광고 (*번역문 하단 참조) /@Temporary Press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말하는 소위 ‘프로페셔널’한 작업 방식, 또는 관행이라고 여겨지는 두세 개의 디자인 시안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팔리는’ 결과물을 작업하는 것에 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모에 참여하는 편이 아니고, 프로젝트 발표를 하지 않고, 모호한 작업 요청에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디자인뿐만 아니라 인쇄 감리까지 맡을 경우, 평소 협력사를 통해 작업을 진행하는 편입니다.

단가 비교를 위해 여러 업체에서 견적서 받는 것을 싫어하고, 피합니다.

효율성이 좀 떨어질지라도, 고지식하게 본래 기획을 따릅니다.

저희가 했던 작업들에 우호적이지 않거나, 열려있지 않은 분들과는 작업을 피합니다.

디자인을 커뮤니케이션이나 콘텐츠 작업이 아닌 ‘포장’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 그 차이를 모르는 분과는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디자인을 위한 콘텐츠를 80-90%만 제공하고, 막판에 콘텐츠 결정을 하는 파트너와 일하는 것이 불편합니다.

어떤 특정 스타일이나 디자인 개요라고 주어지는 시각적 무드 보드에 따라 디자인하지 않습니다.

위의 사항에 포함되는 경우, 프로젝트를 친절하게 고사하지만, 반려 사유를 항상 설명해드리지는 않습니다.”



 

 

아날로그 정취가 느껴지는 필름통에 담긴 사진집 /@Hopycrap

 

 

 

 

 

홍콩의 패션, 아트 매거진 ‘옙 옙Yep Yep’ / @Yep Yep

 

 

 

 

싱가포르의 에피그램북스Epigram Books의 부스에서는 싱가포르의 다양한 민족, 문화적 유산을 소개하는 아동 서적과 사진집을 판매했다. /@Designforwhat

 

 

 

 

싱가포르의 종이회사 RJ Paper에서 판매한 탁상 달력 /@Designforwhat

 

 

 

 

 

아트북 외에도 제본 뒤 버려지는 자투리 종이를 활용한 각종 문구, 리소그래피 방식으로 제작한 한정판 프린트, 영세한 출판사를 돕기 위한 캠페인용 굿즈 등이 활발하게 판매됐다. /@Designforwhat

 

 

디자인은 타인을 위해, 예술은 예술가 본인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혹자들은 말하지만, ‘아트북’은 그 둘의 모호한 경계에서 작업자의 성향에 맞게 존재한다. 이번 페어에서는 젠더와 환경과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한 사진집, 광고기획사를 하는 한 가장이 자녀들과 십 년간 출판한 매거진, 디자이너가 여행하며 본 전 세계의 녹색 식물을 구하기 어려운 시폰 천에 인쇄하고 한 장씩 재봉한 작품 등, 작업자가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농축한 다양한 주제들이 다양한 매체로 가감 없이 소개됐다. 페어에 소개된 다양한 아트북만큼 돋보였던 것은 인클루시브한 페어 관람 문화와 현장에서 느낄 수 있던 페어 참가자와 주최자의 아트북에 대한 철학과 자세였다. 폐막 메시지도 울림이 있다.

 

 


폐막 메시지 (*번역문 하단 참조) /@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 대표 Renée Ting, #SGABF2022

 

“... 먼 곳에서 페어에 참여하신 모든 분, 초인적인 페어 팀원들과 자원봉사자분들, 음향담당자분과 경비원, 청소부, 협력사와 후원사, 워크샵 담당학교, 불만 없이 한 시간을 줄 서서 기다려주신 방문객 여러분께 그 일을 해주신 것이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번 해 페어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방역 규제가 풀리면서야, 익숙했던 예전의 삶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듯했습니다. 방문객이 길게 줄짓는 현장을 보며 누군가는 “이건 포스트 코로나 현상일 뿐이야, 사람들이 그저 이벤트에 굶주렸던 거야,”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지난 10년간 8번의 페어를 개최하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를 가진 아트북과 아트북 제작자들과의 대화에서 가치를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눈여겨보고, 귀 기울이고,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페어를 찾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작년 싱가포르에는 온-오프라인 아트북 서점이 세 곳 이상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처한 아트북 출판계의 현실을 알기에 거대한 시작을 하지는 않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발생한 이래, 사람들이 서점에 들러 책을 읽고 기꺼이 사던 예전의 아트북 생태계로 돌아가는 것은 아마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시작이에요. 페어 마지막 날, 싱가포르아트뮤지엄에서 근무하시는 경비원 한 분이 제 옆에 서서 방문객 줄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어보셨어요. “아니, 책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네, 저도 믿을 수가 없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내년에 만나요.(하략) 

2022년 5월 7일, 싱가포르 아트북페어 디렉터, 르네 팅”

 

 



페어 행사장 안내 입간판(위 @
Renée Ting)과 만남의 장소(아래 @Designforwhat)

 

 


페어 현장 /@Designforwhat

 

 




페어가 열린 장소는 콘테이너가 즐비하고(첫 번째 사진) 곳곳에 난간이 있어(두 번째) '인클루시브'하지 않았지만, 페어 분위기만큼은 포용적이었다. /@Designforwhat

 

 

페어가 열린 건물 사이를 한 바퀴 돌고도 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장애인과 어린이를 동반한 방문객은 장소에 도착하는 즉시, 맨 앞 줄로 안내되어 제일 먼저 입장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해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예술을 디자인으로 엮이고, 디자인이 예술로 존중받으려면, 이해하고 기다리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소신껏 작업하겠다는 아트북 창작자와 창작자를 비롯한 모든 관계자의 소신과 성실에 감사함을 표하는 페어 디렉터까지, 철학이 돋보이는 자리였다.

 

 

 

 

차민정(싱가포르)
Konstfack, Experience Design Interdisciplinary Studies 석사 졸업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졸업
(현)PLUS Collabora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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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아트북페어 #싱가포르디자인 #인클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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