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보다 조금 큰 나라, 싱가포르 전역에는 2000여 개의 ‘코피티암Kopitiam’이 퍼져있다. 기름에 볶은 원두를 사용하여, 기다란 철제 주전자 안에서 풍미 있는 커피를 우려내고, 헝겊 거름망으로 여과시킨 뒤, 진득한 증발 우유나 설탕을 첨가해서 먹는 현지식 커피를 ‘코피Kopi’라고 부르고, 이에 곁들여먹는 코코넛 잼과 버터가 발라진 카야 토스트까지 함께 판매하는 카페는 코피티암이라 한다.
싱가포르의 전형적인 코피티암은 공통적으로, 유럽의 카페처럼 아기자기하지도, 미국 프랜차이즈 카페들처럼 세련되지도 않다. 오히려 한국에서 교체 운동이 불었던 알록달록한 거리 간판과 정리되지 않은 가판대를 닮았다. 오래 앉으면 엉덩이가 배기는 빨갛거나 하얀 플라스틱 사출 의자, 투박하게 토스트가 담긴 멜라민 접시, 무심하게 출렁이는 코피가 담긴 이 나간 컵까지, 코피티암 특유의 분위기에 방점을 찍는 디자인 요소이다.
싱가포르 어느 곳일지라도, 코피티암에 가면 빈 테이블 위에 여행용 티슈, 열쇠나 우산 같은 소지품이 올려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촙Chope’이라고 부르는 관습으로, 식사를 위한 자리를 맡는 행위이다. ‘촙’된 자리는 그 누구도 넘보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코피티암의 법칙이다. 코피티암은 싱가포르 사람들이 가장 쉽게 모이는 친교 장소이면서도, 사적인 구역으로 여겨 허락 없이는 침범하지 않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공간인 셈이다.
지난 글, ‘새로운 낙관적 작업들 New Optimistic Works’에서는 싱가포르의 디자인 기고가 ‘저스틴 좡Justine Zhuang’의 싱가포르 디자인 변천사의 요약본을 담았다. (관련 글 읽기) ‘2010년에 들어서며 시작되었던 싱가포르의 문화 정체성을 재해석한 디자인 상품들이 싱가포르 디자이너들의 노력으로 잇따라 출시되고, 이를 판매하는 편집샵들이 활성화되었지만 한 곳 빼고는 모두 폐업하였다.’는 서글픈 내용이었지만, 이때 창작된 코피티암 관련 디자인은 몇 년이 지나 봐도 신선하기에 이번 글에서는 해당 디자인 사례들을 모아 소개한다.
코피티암 오브젝트의 스케일을 달리 한 디자인의 예 1

코피티암 의자KOPITIAM CHAIR 미니어처 / 3개 한 세트, 개별 높이 11CM, 포개 놓은 높이 14CM / ©RED REPUBLIC, EDWIN LOW, LIONEL LUM & DONN KOH OF STUCK
코피티암 오브젝트의 스케일을 달리 한 디자인의 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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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LEGO가 싱가포르 한정으로 선보인 '음식 문화 미니 빌드 세트' 중, 카야 토스트KAYA TOAST / ©THE NEW PAPER, THE LEGO GROUP
코피티암 오브젝트의 소재를 바꾼 디자인의 예 1

코피티암 차 세트KOPITIAM TEA SET / ©SUPERMAMA
코피티암에서 사용하는 스틸 주전자와 유리컵을 도자기 소재로 바꿔, 가정용으로 디자인한 사례
코피티암 오브젝트의 소재를 바꾼 디자인의 예 2

싱가포르 융 필터 커피 메이커SINGAPORE SOCK COFFEE MAKER / ©YONG JIEYU
코피티암에서 사용하는 스틸 주전자를 유리 소재로 바꾸고, 크기를 축소시켜, 2-3인 용으로 디자인한 사례
코피티암 오브젝트의 이용방법을 변형한 디자인의 예 1

스탠드-업 그릇STAND-UP CROCKERY / ©YONG JIEYU
저렴하고 관리가 쉬워 1970년대부터 코피티암에서 널리 사용된 멜라민 그릇. 입맛이 서구화된 요즘 시대에는 멜라민 접시와 볼을 쌓아 올려, 케이크 받침이나 쿠키 트레이 등으로 쓰임새를 다양화할 수 있다.
코피티암 오브젝트의 이용방법을 변형한 디자인의 예 2

굿 모닝 머그 GOOD MORNING MUG / ©RED REPUBLIC, NG XIN NIE AND DONN KOH OF STUCK
굿 모닝 로고가 그려진 행주는 싱가포르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노동의 상징이다. 그 로고를 아침 커피 머그잔에 새겨 넣었다.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cZIvmWCk5ws
코피티암 오브젝트의 이용방법을 변형한 디자인의 예 3

싱가포르 코피티암 주머니SINGAPORE KOPITIAM SACHETS / ©WINSTON CHAI & YONG JIEYU
싱가포르의 커피 메뉴는 각기 다른 ‘싱글리시Singlish' 이름이 있다. 맛도 색도 다른 커피를 통해, 여러 인종과 민족으로 세워진 싱가포르를 떠올릴 수 있도록, 로컬 커피와 차를 색상 톤에 맞춰 기념품으로 만들었다.
코피티암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보완하는 디자인의 예 1

커피봉지 머그KOPI BAG MUG / ©RED REPUBLIC, KWEK WEN SHU, DONN KOH, LEE TZE MING, YONG JIEYU OF STUCK
코피티암에서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플라스틱 끈이 달린 직사각형의 얇은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쓰레기의 부피가 적은 이점이 있지만, 가장 흔한 형태인 원형 컵에 넣기 어렵고, 봉지의 구조가 잡혀있지 않아, 끈을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런 비닐봉지의 구조에 맞춰 제작한 세라믹 홀더이다.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sZN-nfdHrEA
코피티암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보완하는 디자인의 예 2

코피티암 머그 KOPITIAM MUGS / ©HANS TAN
여러 코피티암이 모여있는 호커센터에서는 각 가게의 그릇과 컵이 섞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게마다 컵의 손잡이에 원색의 테이프를 붙여서 관리하는데, 그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나온 디자인이다.
머그잔 손잡이와 바닥에 색상이 있는 유리를 열처리를 해서 덧입혔다.
싱가포르 사람들의 자리 맡는 버릇, '촙 Chope'을 다룬 디자인의 예 1

예약석: 퍼블릭 (티)이슈RESERVED: A PUBLIC (T)ISSUE / ©LARRY PEH
싱가포르 사람들이 코피티암에서 자리 맡는 버릇을 다룬 디자인 중, 가장 오래된(2004년작) 고전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의 자리 맡는 버릇, '촙 Chope'을 다룬 디자인의 예 2

촙 우산CHOPE UMBRELLA / ©DONN KOH
싱가포르 사람들이 코피티암에서 자리를 맡기 위해, 빈자리에 우산을 올려놓는 행위를 본 딴 디자인
싱가포르 사람들의 자리 맡는 버릇, '촙 Chope'을 다룬 디자인의 예 3

촙 자석 열쇠걸이CHOPE MAGNETIC KEYCHAIN / 길이: 9.5CM/ ©RED REPUBLIC, LIONEL LUM, SHAWN NG AND DONN KOH OF STUCK
열쇠에서 쉽게 분리할 수 있는 열쇠걸이. 열쇠를 잊어버릴 걱정도 덜 수 있어, 자리 맡을 때, 유용하다.

전형적인 싱가포르의 코피티암 전경 / @designforwhat

싱가포르의 리테일 전문 디자인회사 SPARK가 코피티암 체인 ‘킬리니Killiney’의 미얀마점을 위해 카페&비스트로 스타일로 재해석한 코피티암 / @sparkcreative.com.sg
동남아의 ‘버내큘러 디자인 (Vernacular Design)’을 볼 수 있는 코피티암은 유대감과 단결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모티브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디자인 재해석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차민정(싱가포르)
designforwhat@gmail.com
Konstfack, Experience Design Interdisciplinary Studies 석사 졸업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졸업
(현)PLUS Collabora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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