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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의 새 거점, ‘순환기지’라는 이름의 미래형 리테일


@MUJI

2025년 3월, 일본 가시하라(橿原)에 세계 최대 무인양품 매장이 문을 열었다. 3,000평 규모의 이 공간은 ‘순환기지(循環基地,Circulatory Base)'라는 이름 아래 무인양품의 새로운 브랜드 철학을 선보인다. 단순한 리테일 스토어가 아니라, 자원순환과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로의 전환을 실험하는 거점이다.

이 공간은 물건을 ‘팔기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물건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오래된 가구를 수리해 되살리는 리페어 워크숍, 수거된 의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리사이클 존, 지역 농산물과 공예품을 다루는 커뮤니티 마켓 등이 함께 구성되어 있다. 방문객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체험하고, 바꿔볼 수 있는 계기를 이 공간 안에서 만나게 된다.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본질로 돌아가려는 무인양품의 미니멀리즘의 정신은 이제 ‘사용 이후’까지 책임지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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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하며 발견하는 디자인

순환추진부의 하루나 아츠시는 흥미로운 발견을 공유한다. "수리 과정에서 처음부터 부품 교체가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할 부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구를 분해하고 고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히 제품의 한계가 아니라, 미래 디자인을 위한 구체적인 힌트들이다. 제품의 생애 끝자락에서 얻은 지식이 새로운 창조의 출발점이 된다고.

이는 디자인 프로세스의 변화를 시사한다. 기존에는 제품이 완성되면 디자이너의 역할도 끝났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제품이 다시 돌아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10년 전 책상의 흔들림이 오늘날 더 견고한 조립 방식을 가르쳐주고, 낡은 의자의 패브릭 손상이 다음 세대 소재 선택에 영향을 미치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미학

리페어 워크숍에서는 '너무 깨끗하게 하지 않기'라는 원칙이 있다. 초등학교에서 사용되던 책상과 의자를 수리할 때, 아이들이 붙인 스티커들을 그대로 두어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이 이를 뒷받침한다. 완벽한 복원보다는 시간의 흔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현대 디자인이 추구해온 '완벽함'에 대한 조용한 반박이기도 하다. 흠집과 얼룩, 사용감은 오히려 그 물건만의 고유한 서사가 된다. 대량생산이 지워버린 개별성과 시간성을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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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전문점이 만드는 생태계

매장은 '자연·순환·문화'를 테마로 9개의 전문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ReMUJI, 본과 카페, 집(Community), 의(Clothes), 건(Care), 생(Daily Goods), 주(Furniture&fabric), 수(Storage), 식(Foods) - 각각이 독립적인 공간이면서도 서로 연결되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특히 ReMUJI는 '빠짐없이, 부족함 없이(あますことなく欠けることなく)’라는 철학 아래 5가지 순환 활동을 펼친다. 사용 후 제품 회수, 재사용 가능한 상품 판매, 흠집 있는 제품의 할인 판매, 고가구 수리 판매, 헌책 연결. 이들 활동은 물건의 생명을 단순히 연장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와 물건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천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 아래 놓인 Open MUJI는 요시노 삼나무(지역내 생산)로 만들어진 따뜻한 공간이다. 1만 권의 그림책과 아동서가 자유롭게 비치되어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동시에 어른들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상업 공간 안에 만들어진 이곳은 소비를 전제로 하지 않아도 머무를 수 있는, ‘머물 권리’가 보장된 드문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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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으로 학습하는 지속가능성

매장 입구의 피로티 공간에서는 정기적으로 지역 벼룩시장과 마르셰가 열린다. '츠나가루 이치(つながる市, 연결되는 시장)'라는 이름의 이 행사에서는 지역 생산자들이 직접 출점해 그 땅에서 나는 음식과 만든 물건들을 판매한다. 유통 단계를 생략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장이다.

가구 유지및 보수 워크숍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망가진 의자를 고치고 테이블을 다시 칠하는 법을 배운다. 만드는 기술이 아닌 고치는 기술을 전수하는 형태의 디자인 교육이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물건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물질과의 새로운 관계를 체험하게 된다.

MUJI SUPPORT는 '생활 상담 뭐든지'라는 슬로건으로 인테리어 코디네이션부터 수납 정리, 부품 교체까지 전문 어드바이저가 고객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간다. 건강진단 코너에서는 체성분, 혈압, 스트레스, 야채 섭취량 등을 간편하게 측정할 수 있어 지역 주민들의 건강한 생활을 지원한다.

 

 

 

지역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가시하라’라는 도시의 선택에도 의미가 있다. 일본 건국의 터전으로 여겨지는 이곳에서 새로운 소비 문화를 시작하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점장 시모다 유는 "지역의 주민들이 응원하는 매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2022년부터 1년 반 동안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를 이어온 결과, 오프닝 세레모니에는 300명이 넘는 지역 주민들이 참여했다.

순환추진부 과장 다이츠네 히사노리는 더 큰 그림을 그린다. "각 지역에서 물건을 순환시켜 환경 부하를 줄이고, 자원 순환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3,000평 규모를 모든 지역에 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이곳에서 실험하고 있는 시스템과 철학이 다른 지역에서도 각각의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MUJI _ 키시하라 점의 처마에서 지역 이벤트


소비의 문법 바꾸기

순환경제로의 전환은 단지 소비자의 의식 변화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매장에 진열된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소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인양품 가시하라점의 실험은 이 구조적 한계에 맞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 판매 방식과 점포 내 문화를 재구성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 매장은 이미 전국 무인양품 매장 중 중고 가구(古家具) 매출의 약 90%를 차지하며 경제적 성과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의 지표는 숫자가 아닐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리고 새로 사기’에서 ‘고쳐서 오래 쓰기’로 행동을 바꾸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지역이 유사한 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측정 기준이 될 것이다.

 

무인양품 가시하라점에서 시작된 이 시도는 디자인의 역할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한다. 물건의 형태를 창조하는 데서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소유를 전제로 한 소비에서 공유와 재사용을 상상하는 소비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미학에서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실천으로. 이곳에서 디자인은 ‘만드는 행위’를 넘어 ‘되살리고 순환시키는 행위’로 확장되며,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무인양품은 오래전부터 소비의 본질에 대해 묻는 브랜드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これでいい)’는 철학 아래,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본질에 다가서려는 태도는 지금 이 순환기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디자인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의 창조’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존중하고 되살리는’ 방법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가시하라의 실험은 무인양품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질문—“과연 우리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자, 소비의 문법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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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uji.com/ko/flagship/aeonmall-kashihara/

박혜연(일본(고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제품디자인 석사 졸업
-생테티엔(프랑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스왈로브스키 본사(오스트리아)협업작가
-런던디자인뮤지엄레시던시 작가
(현) 프리랜서 디자이너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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