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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이 작업실이 된다고? 일본 목욕문화의 유쾌한 반란


@ kenya abe

 

fabric bath - 건축가 하마다 아키노리와 아티스트 카즈키가 꿈꾸는 '욕실 자유선언'


"목욕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그대로 스케치하면 어떨까요?" 

"그건 완전히 프라이빗한 작업실이네요! 좀 민망한 모습이지만... 좋은데요. 계속 들어가 있을 것 같아요(웃음)."

건축가 하마다 아키노리와 아티스트 카즈키의 대화는 처음부터 유쾌하다. 두 사람을 마주 앉힌 화제의 주인공은 일본의 대표 주거설비 브랜드 LIXIL이 새롭게 선보인 패브릭 욕조 ‘bathtope(바스토프)’다. 기존의 단단한 욕조 대신, 직물로 만든 탈착형 욕조를 제안한 이 프로젝트는 “욕실은 더 자유로워도 된다”는 발칙한 선언을 담고 있다. LIXIL은 ‘bathtope’를 통해 기존 욕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들며, 심플함과 감각적 해방을 결합한 새로운 욕실 공간을 선보였다.

1984년생 하마다 아키노리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을 무기로 건축과 디지털 아트를 넘나드는 설계자이자 teamLab Architects의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도쿄 태생의 KAZUKI는 독특한 색채 감각으로 음악·패션·공간을 아우르며, 2024년 뉴욕, 2025년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며 국제 무대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목욕 러버’라는 것이다.

 


@ LIXIL


@ LIXIL

 

해먹처럼 폭신한 욕조에서 찾은 새로운 고급스러움


KAZUKI가 탈착 가능한 패브릭 욕조 ‘bathtope’에 처음 들어갔을 때, 예상치 못한 감각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 집에 있던 해먹이 생각났어요. 해먹에 감싸이는 안정감과 물에 잠기는 기분 좋음이 동시에 느껴져서 정말 편안했죠." 하마다 아키노리 역시 독특한 감촉에 매료됐다. "물을 채우기 전에는 더 푹신할 거라 생각했는데, 물을 채우면서 생기는 묵직한 안정감이 좋더군요. 목에 닿는 부분도 부드러워서 ‘bathtope’만의 매력이에요."

특히 두 사람은 '고급스러움'의 개념이 전환되는 지점에 주목했다. 하마다 아키노리는 "예전부터 고급스러움은 돌이나 금 같은 '무거운 것'과 동일시되어 왔죠. 하지만 ‘bathtope’의 값싸 보이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느낌이 현대적 고급스러움을 표현하는 것 같아 신선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LIXIL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시도한 것은 단순히 소재의 변화가 아니라, 욕실에 대한 가치관 자체를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클라우드 화이트, 아쿠아 블루, 브릭 레드, 포레스트 블랙 등 5가지 색상 중에서 하마다 아키노리는 "보통 고정된 욕조라면 선택하지 않을 색이지만, ‘bathtope’처럼 갈아 끼울 수 있다면 이런 화사한 색도 한번 골라보고 싶네요"라며 브릭 레드를 선택했다. KAZUKI는 실제로 들어본 욕조의 무게에 놀라며 "두툼하고 튼튼한데 정말 가벼워서 깜짝 놀랐어요. 설치도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기분에 따라 욕조 색깔을 바꿀 수 있다니, 목욕이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있을까? (일본에는 매일 저녁 '오후로(お風呂)'에 들어가는 반신욕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단순히 몸을 씻는 것을 넘어, 하루의 피로를 풀고 긴장을 해소하는 일상의 의식과도 같다. 많은 일본인들이 매일 욕조에 몸을 담그며, 반신욕을 통해 심신의 균형을 되찾는다. )




@ LIXIL

 

뇌가 '버그'를 일으키는 순간, 영감이 찾아온다

두 사람은 단순히 ‘bathtope’을 체험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 목욕문화의 본질적 가치를 재발견했다. 매일 욕조에 몸을 담그고 휴일에는 아침저녁 두 번 입욕하는 KAZUKI, 일본 각지의 비경 온천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즐겨보며 외진 온천과 오래된 센토(공중목욕탕)를 찾아다니는 하마다 아키노리. 두 사람의 목욕 사랑은 남다르다. 하마다 아키노리는 사우나 설계를 계기로 입욕의 의미를 재발견했다. "사우나나 목욕처럼 나체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지고 느끼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요. 열기로 교감신경이 작동하고, 외기욕으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면 몸은 이완되는데 머리는 또렷해지죠. 뇌가 '버그'를 일으키는 순간, 뭔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KAZUKI도 동의한다. "저도요! 목욕이나 사우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아요." 두 사람 모두 목욕할 때는 절대 스마트폰을 들고 가지 않는다. 이 '오프라인 시간'이 창의성의 비밀이라고.

대화는 점점 자유로워진다. KAZUKI가 최근 들은 '목욕하면서 치킨 먹기' 이야기를 꺼내자, 하마다 아키노리는 역사를 들먹인다. "옛날에 온천에 쟁반을 띄워놓고 거기 일본 술을 올려두고 마시면서 몸 담그는 풍경이 자주 있었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엄청 호화로운 거죠. 어쩌면 치킨도 그 연장선상일지도?" 그는 이어서 프랑스 귀족들의 이야기도 꺼낸다. "프랑스 귀족들이 다같이 목욕하면서 자고 밥 먹는 모습이 그림이나 문헌에 남아있어요. 완전히 파티였죠. 그건 쾌락의 추구였고, 목욕은 그만큼 자유로워도 된다고 생각해요." 현대 일본에서 목욕은 단순한 위생을 넘어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자신과 마주하는 성찰의 시간, 창의성을 자극하는 영감의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목욕은 고독을 달래고 스트레스를 풀며 스스로를 돌보는 웰빙 실천의 장으로 진화 중이다. LIXIL의 ‘bathtope’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욕실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 LIXIL

 

아틀리에가 욕실이 되고, 욕실이 작업실이 되는 미래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bathtope’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할지 상상할 때였다. KAZUKI의 아이디어는 파격적이다. "아틀리에 자체를 욕실로 만들고 싶어요. 목욕 시간 외에는 패브릭 욕조를 떼어내고 그 공간에서 작업하는 거죠. 샤워가 있으니 물감도 바로 씻을 수 있고, 욕실 건조기로 그림도 빨리 마를 것 같아요. 좋은 점만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하마다 아키노리는 무릎을 치며 "그거 꼭 한번 해보세요. 저도 역시 스케치하거나 작업 공간의 연장선으로 쓰고 싶네요"라고 화답했다.

KAZUKI는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어른의 아이 방'처럼 그림 그리고, 기타 치고, 영화 보는 장소로도 쓰고 싶어요. 낮이나 휴일에는 취미를 즐기고, 밤에는 욕실이 되는 식으로요." 하마다 아키노리의 상상력도 폭주한다. "그렇다면 음향 설비나 조명도 욕실에 들여놓고 싶어지는데요(웃음)."

이런 자유로운 발상이 가능한 건 일본의 독특한 목욕문화 덕분이다. 일본에서 욕실은 단순히 씻는 공간이 아니라 하루의 피로를 풀고 마음을 정돈하는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서양의 샤워 중심 문화와 달리, 일본인들은 욕조에 몸을 담그는 행위를 통해 심신의 균형을 찾는다. 센토나 온천 같은 공동 목욕 문화는 지역 공동체의 사교 공간으로 기능하며, 가정의 욕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명상과 회복의 장소로 여겨진다. KAZUKI는 해외 여행 중 이러한 문화 차이를 실감했다. "코펜하겐과 파리에서 방은 넓은데 욕실은 전화박스만 하고 샤워만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욕실에 넓은 공간을 바라는 감각은 정말 일본적인 것 같아요."

두 크리에이터의 대화가 보여주는 건 명확하다. 욕실은 고정된 기능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LIXIL이 bathtope를 통해 던지는 "목욕은 더 자유로워도 된다"는 메시지는 단순히 제품 혁신을 넘어, 일상 속 작은 해방구를 만들자는 초대장이다. 유니트 바스라는 기존 욕실 공간의 틀 안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LIXIL의 제안은, 주거 공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하마다 아키노리의 말처럼 "교육받아온 예의범절과 상식에서 잠깐 벗어나면, 감각이 더 깨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제안은 욕실을 넘어 우리 삶 전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욕조 색깔을 기분대로 바꾸고, 목욕하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 자리에서 스케치하고, 낮에는 아틀리에, 밤에는 욕실로 변신하는 공간. 일본의 목욕문화가 던지는 유쾌한 제안에 귀 기울여 본다.

 


@ LIXIL

 

참고사이트

https://www.lixil.co.jp/lineup/bathroom/s/bathtope/

https://mag.tecture.jp/product/20250929-136629/

박혜연(일본(고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제품디자인 석사 졸업
-생테티엔(프랑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스왈로브스키 본사(오스트리아)협업작가
-런던디자인뮤지엄레시던시 작가
(현) 프리랜서 디자이너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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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XIL#오후로#목욕#일본#bathtope#fabricbath#일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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