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마르지엘라, 구단 하우스에서 일본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을 열다
패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의 이름은 언제나 부재와 익명성,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언어로 회자돼 왔다. 런웨이 위에선 얼굴을 감춘 디자이너였고, 옷이라는 가장 신체적인 매체를 통해 정체성의 경계를 흔들어온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옷을 벗어나, 다시 한 번 ‘집’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일본에 돌아온다. 마틴 마르지엘라의 일본 최초 대규모 개인전 <MARTIN MARGIELA AT KUDAN HOUSE>가 도쿄 구단 하우스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패션계를 떠나 아티스트로 활동해온 마르지엘라의 작업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자리이자,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사유의 궤적을 공간 전체로 펼쳐 보이는 시도이다.

SELECTED WORKS © MARTIN MARGIELA
마르지엘라의 창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명하다. 재사용, 분해, 변용. 그리고 그 모든 행위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인간의 몸이 있었다. 옷을 입는 신체, 흔적을 남기는 신체, 부재로서의 신체. 그가 패션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몸과 시간, 흔적과 결핍은 그에겐 중요한 주제였다. 다만 지금의 마르지엘라에게 인간의 몸은 더 이상 유일한 표현 매체는 아니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쳐온 사물과 상황, 사용의 흔적이 남은 물건들, 불완전한 표면과 마모된 질감이 그의 시선을 끌었고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 미묘한 틈을 포착하는 작업 방식을 추구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콜라주, 회화, 드로잉, 조각, 아상블라주,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한 탐구가 펼쳐진다. 특정한 주제나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관람객 각자의 해석과 감각을 호출한다. 마르지엘라는 말한다. “나는 답을 보여주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구단 하우스 (九段ハウス) © MARTIN MARGIELA
전시장이 아닌, 하나의 집
<MARTIN MARGIELA AT KUDAN HOUSE> 가 특별한 이유는 작품만이 아니다. 전시가 열리는 공간, '구단 하우스' 자체가 전시의 중요한 일부로 작동한다. 구단 하우스는 1927년에 지어진 스페인 양식의 서양식 저택으로, 과거에는 야마구치 만키치의 개인 주택이었다. 현재는 등록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리노베이션을 거쳐 회원제 비즈니스·이노베이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르지엘라는 이 오래된 저택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역사적 건축이라는 틀 안에서 현대미술 작품이 놓이는 대비, 그리고 한때 ‘가족의 집’이었던 공간이 지닌 사적인 공기가 그의 작업 세계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화이트 큐브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 전체를 무대로 삼았다.
전시는 각 방을 따라 이동하며 경험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거실, 복도, 작은 방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작품은 전시물이라기보다 그 자리에 원래부터 있었던 사물처럼 느껴진다. 관람객은 멀리서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며 각자의 기억과 감각을 겹쳐 보게 된다. 이 친밀한 거리감은 마르지엘라가 중요하게 여겨온 ‘사적인 공기감’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도쿄라는 시간의 회귀
마르지엘라에게 도쿄는 낯선 도시가 아니다. 2000년, 그는 도쿄 에비스에 위치한 역사적인 저택에 세계 최초의 ‘Maison Martin Margiela’ 매장을 열었다. 욕실과 주방을 포함한 집 전체에 컬렉션을 전시하는 파격적인 방식은, 당시 패션과 리테일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그로부터 약 25년이 흐른 지금, 그는 다시 도쿄의 오래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선택한 것은 ‘전시장’이 아닌 ‘집’이다. 마르지엘라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시 도쿄로 돌아와, 1927년에 지어진 이 집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 2000년과 마찬가지로, 방문객들이 각 방의 친밀한 공간 속에서 작품과 마주하며 놀라움을 느끼길 바란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가 공간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집이라는 가장 개인적인 장소를 통해, 그는 여전히 익명성과 사유의 자유를 지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완결된 서사라기보다는 열린 구조에 가깝다. 작품들은 영구적인 형태로 자리 잡기보다는 이 공간에 잠시 머무는 설치로 존재하며, 집과 작품, 시간과 관람객의 관계는 그 안에서 계속해서 변주된다. 고정되지 않는 이 흐름 속에서 전시는 단정한 선언 대신 낮은 목소리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도 지나쳐왔는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워왔는가, 그리고 예술은 그 사이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가.

<MARTIN MARGIELA AT KUDAN HOUSE> 는 작가의 과거를 정리하는 회고전도, 새로운 방향을 선언하는 전시도 아니다. 한 채의 집이라는 밀도 높은 공간 안에서, 그의 사유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관람객은 이 집을 거닐며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어느새 질문 속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이 명확한 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마르지엘라가 이 전시를 통해 남기고자 한 가장 중요한 흔적일 것이다.
Martin Margiela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1957년 벨기에 루뱅에서 태어났다. 1980년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아틀리에에서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1988년에는 제니 메이렌스(Jenny Meirens)와 함께 파리에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를 설립하고 첫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후 패션계에 강렬한 흔적을 남기며,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에르메스(HERMÈS)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2008년, 브랜드 설립 20주년 쇼를 끝으로 패션계를 떠난 그는 이후 비주얼 아트에 전념해왔다. 인간의 신체, 흔적, 시간, 부재를 주요 주제로 삼은 그의 작업은 점차 패션의 언어를 넘어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2019년 독일 빌레펠트 미술관에서 첫 그룹전에 참여했고, 2021년 파리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후 해당 전시는 베이징 M WOODS(2022), 서울 롯데미술관(2023)으로 순회했다. 같은 해 암스테르담의 Eenwerk Gallery, 2024년에는 브뤼셀과 아테네의 Bernier / Eliades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열며 작가로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 간: 2026년 4월 11일–29일
・시 간: 10:00–19:00 (최종 입장 18:00)
・장 소: 구단 하우스 주소: 도쿄도 지요다구 구단키타 1-15-9
・관람료: 일반 2,500엔
・주 최: 하라다 다카히토 (rin art association)
・공동 주최: kudan house
・협 력: Bernier / Eliades Gallery, Taka Ishii Gallery, Gallery NAO MASAKI
・협 찬: JINS Holdings
・제 작: 구로타키 키요시, Kornieieva Varvara, 구로타키 야스시
・웹사이트: martinmargielaatkudanhouse.jp
-Tama Art University 정보디자인학과 미디어 예술 학사 졸업
-GARDE Co.,Ltd.(ASIA PACIFIC 사업부 기획개발 본부 플래너)
(현) Apollo&Char Company inc. 크리에이티브 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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