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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 뮤지엄'이라는 말은
얼마나 진지한가 II

 


@MON

MoN은 일본어로 '문(門)'과 '물음(問)'을 동시에 가리킨다. 두 글자의 발음이 같고, 뮤지엄이 들어선 다카나와 게이트웨이라는 역명과 정확히 공명한다. 의도된 설계다. 이름을 만든 것은 영국 디자인 스튜디오 펜타그램(Pentagram)으로, 브랜드 전략·네이밍·언어 정체성·시각 시스템 전체를 담당했다.

펜타그램이 MoN에서 풀어야 했던 핵심 과제는 범위의 문제였다. 가부키, 라쿠고, 만화, 전자음악, 다도, 음식문화까지 포함하는 기관을 특정 장르의 이미지로 환원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 단일 정체성이 강한 미술관과는 다른 종류의 과제였다.

"과제는 광범위한 문화적 범위를 담되, 특정 '예술 목적지'로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 Pentagram, MoN 타카나와 아이덴티티 설계 노트 (2026)

“An enormous cultural range — from Tezuka’s Phoenix to rakugo, from ballet to electronica — without flattening it into a generic ‘arts destination’.”

— Pentagram

 

결과물은 세 층위로 구성된다. 첫째, 나선 형태 안에 M·O·N 세 글자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로고. 나선은 건물 외관 형태와도 호응하며, 펜타그램의 설명에 따르면 "시간은 선형이 아니라 나선처럼 순환한다"는 이 기관의 큐레이션 철학을 시각화한 것이다. 둘째, 태양(빨강)·대지(초록)·바다(파랑)라는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 팔레트는 타카나와의 지역 맥락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특정 문화 코드에 고정되지 않도록 설계됐다. 셋째, 일본어와 영어를 번역 관계가 아닌 병치 관계로 다루는 타이포그래피 시스템. 모든 스케일에서 두 언어가 동등한 비중으로 배치된다.

세 요소가 하나의 전략적 아이디어 — 펜타그램이 '차원적 시간(dimensional time)'이라 부른 개념 — 에서 파생된다는 점에서 이 아이덴티티 시스템은 내적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아이덴티티의 정교함이 프로그램의 정교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 콘텐츠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 격차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역설도 있다.



@MON

 

구마 겐고(隈研吾)와 어소시에이츠, 가지마 건설이 시공한 MoN은 다카나와 게이트웨이 시티 안에서 유일한 저층 건물이다. 지상 6층·지하 3층, 높이 약 45미터. 주변을 채운 고층 오피스 타워들과 대비되는 나선형 목구조 실루엣은 의도된 이질감이다. 문화 기관이 상업 건물과 같은 시각 언어를 쓸 이유가 없다는 건축적 선언으로 읽힌다.

나선은 조형이 아니라 동선 논리다. 각 층은 완만한 경사로로 연결되어 지하에서 옥상 정원까지 걷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과정에서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옥상에는 족욕 테라스,달 감상 공간,계절 경관을 위한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 전시 관람 여부와 무관하게 건물에 머물 수 있는 구조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시설 추가가 아니라 방문의 목적을 더 넓게 열어주고 있다. ‘뮤지엄 방문’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공간 안에 배치된 물건들도 같은 논리를 따른다. JR 동일본 철도 숲에서 가져온 목재로 만든 벤치에는 원래 사용됐던 역명이 적혀 있다. 엑스포 2025 오사카에서 사용된 가구도 이 공간에 다시 배치됐다. 개관 전시 'Hirake Mon(開けMoN)'은 "에도 시대에 바다였던 타카나와"로부터 시작해 이 땅의 기억을 추적한다. 물건과 공간이 각각의 이력을 유지한 채 배치된다는 점에서, 건축과 전시는 하나의 논리로 연결된다.

 

 

컬렉션 없는 뮤지엄 — 무엇이 기관의 자산인가

MoN은 물리적 소장품을 갖지 않는다. 전통적인 뮤지엄 모델과의 가장 큰 구조적 차이다. 대신 반년마다 갱신되는 시즌 테마 아래 이루어지는 공연·전시·워크숍의 디지털 아카이브로 쌓아간다. 관람객의 반응과 경험도 기록 대상에 포함된다. 이 경우 자산은 오브젝트가 아니라 이벤트와 그에 수반되는 기억이 된다.

이 선택에는 구조적 논리가 있다. 소장품의 구입·보존·보험·보안에 드는 비용을 프로그램과 경험에 집중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체성의 이동이다.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생산하는가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택이 내포하는 불안정성도 있다. 컬렉션이 있는 기관은 그것이 정체성의 닻이 된다. 루브르는 루브르의 소장품이고, 테이트 모던은 그 컬렉션과 함께 성장했다. MoN에는 그 닻이 없다. 시즌 테마가 바뀔 때마다 기관의 표정이 달라진다. 이는 상황에 따라 유연성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정체성의 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컬렉션 없는 뮤지엄이 장기적으로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선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것 자체가 실험이다.


포용 — 구조로서의 포용과 선언으로서의 포용

MoN '포용' 다루는 방식은 접근성 프로그램을 별도로 추가하는 형태가 아니다. 많은 기관이 포용을 실현하는 방식은 기본 구조 위에 무언가를 얹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 위에 얹힌 것은 구조가 아니다. 예산이 줄면 가장 먼저 잘려 나가고, 기획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머문다.

큐레이션 이론에서 장르 위계의 해체는 오래전부터 포용의 실천으로 논의되어 왔다. 무엇을 중심에 놓고 무엇을 주변에 배치하는가의 문제는 단순 편집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문화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MoN 논의를 실제 프로그램 구성에 적용하려 한다. 오페라와 만화, 다도와 전자음악 사이에 서열을 두는 순간, 서열 아래에 놓인 장르의 관람객은 이미 주변화된다. MoN 위계 자체를 해체하는 것을 포용의 수단으로 삼는다. 가부키·라쿠고·만화·전자음악·다도·음식문화가 같은 시즌 테마 아래 동등하게 배치됨으로써, 어떤 장르에 익숙한 관람객이든 자신이 아는 것에서 시작해 낯선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포용이 별도의 항목으로 추가되는 아니라,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기획 단계의 판단 안에 이미 내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개관 프로그램 라인업을 보면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불새』를 소재로 한 몰입형 전시, 가부키, 라쿠고 — 이것들은 이미 광범위하게 검증된 일본 문화 콘텐츠다. 대중적이고 친숙하다. 진정한 실험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 실패 가능성을 내포한 것을 무대에 올리는 일이다. 개관 시즌에 그런 모험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단순한 비판으로 읽기는 어렵다. 새로운 기관이 첫 시즌에 안정적인 라인업으로 관객 기반을 확보하는 것은 합리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실험적 뮤지엄'이라는 자기 규정이 선언에 머물 것인지, 실제 프로그램 선택에서 구현될 것인지는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에서 판가름 난다. 개관 시즌의 라인업은 그 판단을 유보하게 만드는 수준이다. 나쁘지 않지만, 실험적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른것 같다.


 

 

 

지금 단정할 수 없는 것들

MoN 타카나와는 여러 지점에서 기존 뮤지엄과 다른 선택을 했다. 독립 재단 거버넌스 구조, 저층 목구조의 건축 언어, 이름과 장소와 아이덴티티의 개념적 통합, 컬렉션 없는 운영 방식, 장르 위계를 두지 않는 큐레이션 구조. 나열하고 보면 이것들은 단순한 차별화 전략이 아니다. 기존 뮤지엄이 오랫동안 답하지 못한 질문들 — 누구를 위한 기관인가,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실험할 것인가, 도시 개발과 문화 기관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 에 대해 말이 아니라 설계로 응답한 것이다. 그 응답들이 개별적으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방향 아래 통합되어 있다는 점은, 이 기관이 단기적 인상보다 장기적 입장을 먼저 구축하려 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두 가지 질문은 아직 열려 있다. 첫째, 부동산 개발 논리와의 긴장이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재단 구조가 그 긴장을 실질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지 않는 조율이 일어나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둘째, '실험'이 개관 선언으로 머물 것인지 실제 선택으로 이어질 것인지. 바비칸과 테이트 모던도 개관 당시 실험적 기관을 자처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두 기관 모두 제도화의 무게를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MoN이 그 궤적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을 반복하지 않는 시점이 와야 한다.

2026년 3월 28일, MoN은 문을 열었다. 설계의 완성도와 출발의 방향은 나쁘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보이는 것은 좋은 출발선이다. 이 기관이 스스로 붙인 이름 — 문(門)이자 물음(問) — 에 걸맞은 선택을 실제로 해 나아가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가 될 것이다. 

https://montakanawa.jp/

https://www.pentagram.com/work/mon-takanawa-the-museum-of-narratives

박혜연(일본(고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제품디자인 석사 졸업
-생테티엔(프랑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스왈로브스키 본사(오스트리아)협업작가
-런던디자인뮤지엄레시던시 작가
(현) 프리랜서 디자이너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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