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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는 것들의 쓸모

 


@萬田康文

 

 

도구는 사용할수록 그것을 쥔 손의 윤곽을 닮아간다. 오랫동안 쓴 칼자루에는 손금의 흔적이 새겨지고, 익숙한 연필은 쥐는 각도에 따라 닳아간다. 도구와 사람 사이에는 서로를 조금씩 바꾸는 시간이 있다. 

 

오늘날의 기술적 객체들—스마트폰, 알고리즘 서비스, 자동화 시스템—은 그 관계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이 질문이 단순히 기술 윤리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의 문제로 이어지는 까닭은, 관계의 형태를 실제로 결정짓는 것이 결국 물리적 형태와 인터랙션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완결된 시스템의 역설


현재 서비스 로봇의 주된 설계 방향은 자기완결성이다. 스스로 경로를 파악하고, 장애물을 피하며, 할당된 작업을 인간의 개입 없이 처리한다. 이는 효율성의 관점에서 논리적인 귀결이지만, 도요하시 기술과학대학의 오카다 미치오 교수는 이 방향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로봇이 더 많은 것을 스스로 해결할수록, 주변 사람들이 개입할 여지는 줄어든다. 로봇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기회, 그 과정에서 얻는 작은 주체성의 감각 또한 사라진다.

 

 

자동운전 시스템이 고도화될수록 탑승자는 화물에 가까워진다는 비유는 과장이 아니다. 차 안에 앉아 있지만 이동에 관여하지 않는, 혹은 그 과정에 관여할 수 없는 그 상태는,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기술이 인간을 위해 작동한다고 하지만, 그 작동이 완벽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수동적인 위치로 밀려난다. 이것이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말한 '두 번째 분수령'의 현상이다. 기술의 발전이 어느 수준까지는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그 선을 넘으면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본 총무성이 2024년 정보통신백서에서 이 개념을 AI와 로봇의 설계 문제로 직접 참조한 것은 흥미롭다. 정책 문서가 철학적 개념에 기대야 할 만큼, 이 문제가 기술적 최적화의 층위를 벗어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약함이 만드는 공간


오카다 교수가 연구해온 '약한 로봇'은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대표적인 사례인 쓰레기통 로봇은 스스로 쓰레기를 집을 수 없다.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주변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집어 로봇의 몸통에 넣어준다.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드러내는 것이 아이들을 능동적으로 만든다.

 

 

여기서 설계의 핵심은 '불완전함의 노출 방식'이다. 로봇이 자신의 한계를 너무 명시적으로 드러내면 인위적인 장치처럼 보여 참여가 사라진다. 반대로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으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오카다 교수가 '중동태'라는 언어학 개념을 빌려 표현한 것처럼, 능동도 수동도 아닌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 여백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갖는다.

 

이것을 설계의 언어로 옮긴다면 기능을 얼마나 숨길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모든 가능성을 최전면에 노출하는 설계와, 여백을 남겨두는 설계는 사용자와 맺는 관계의 구조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자는 시스템과 인간 사이에 명확한 위계를 만들고, 후자는 그 위계속에서 인간은 참여자가 될 여지가 생긴다. 

 

 

 

코-비비얼리티, 혹은 함께 살아있음


오카다 교수가 최근 주목하는 개념은 '코-비비얼리티(Convivial Robotics)'다. 일리치의 '자립 공생(Conviviality)' 개념을 로봇 설계에 적용한 것으로, 서로의 주체성과 창조성을 빼앗지 않는 수준에서 느슨하게 의존하는 관계를 추구한다.

 

고양이 얼굴을 한 배식 로봇의 사례가 구체적이다. 음식을 운반하는 것은 로봇이 하지만, 테이블에 정확하게 내려놓는 것은 손님이 돕는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 도움을 건넨 손님도 딱히 수고로웠다는 느낌은 없다. 오카다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주고받는 관계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 설계 접근이 흥미로운 것은 서비스 품질의 완전한 최적화를 의도적으로 낮춘다는 점이다. 로봇이 끝까지 혼자 처리할 수 있다면 손님이 끼어들 틈은 없다. 약간의 불완전함을 남겨두는 것이 그 틈을 만들고, 기계와 인간이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눈다. 

 

 

 

 

개체 능력주의의 그늘

 

이 논의는 결국 우리가 '좋은 기술'을 어떻게 정의해왔는가의 문제로 돌아온다. 오카다 교수는 현대의 제품 설계가 교육의 평가 체계와 같은 논리 위에 서 있다고 지적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능력을 이상으로 삼는 시각—그가 '개체 능력주의'라 부르는 것—이 기술 개발의 방향성을 규정해왔다는 것이다.

 

자기완결형 시스템을 우수하다고 보는 기준은 그 시스템이 사용자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묻지 않는다. 기능은 더 많고, 더 적은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러나 이 기준에서 빠져 있는 것은 사용자가 그 기술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주체성의 감각, 기여의 경험, 그리고 관계 그 자체다.

 

현재의 기술 개발 평가 체계는 산출물(output)에만 익숙하고 ‘관계(relation)’는 잘 보지 못한다. 쓰레기통 로봇의 쓰레기 수거 효율은 자기완결형 로봇보다 낮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몸을 움직이고, 기여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은 어떤 수치로도 담기지 않는다. 

 

 

 

 

여백을 설계한다는 것

 

결국 이것은 여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로 모인다.

 

여백은 미완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관계가 생겨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가 개입할 자리를 남겨두는 것, 시스템이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것은 기능 설계의 근간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사용'이라는 단방향 모델에서 벗어나 '공동 행위자'의 관계로 다시 설정한다. 사람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사람이 함께 어떤 상황과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기술은 배경으로 완전히 사라지지도, 그렇다고 전면을 점유하지도 않는다. 일정한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사람 곁에 머물수 있다.

 

오카다 교수가 지적하듯, 이러한 방식이 모든 기술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도와 정확성, 신뢰성이 우선되어야 하는 영역에서 불완전함의 노출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일상 가까이에 오래 머무는 기술—가정용 기기, 교육 도구, 공공 서비스 인터페이스 같은 영역—에서는 이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

 

기술이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이제는 그 ‘풍요’가 무엇인지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단순히 편의성과 효율의 총량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기술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 살아 있음을 감각하게 만드는 경험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해서다. 이 둘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한 로봇이 던지는 질문은 단지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큰 차원의 설계에 관한 질문이다. 무엇을 완성하고, 무엇을 일부러 남겨둘 것인가.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인간 사이에 남겨둘 것인가. 결국 그 판단이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결정한다.

 

 

 


@萬田康文

iBones _ 로봇의 아래에 손바닥을 내밀면 알코올 소독을 해준다. 끝나면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난다. 손을 내미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실패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Sociable trash box 

"모코"라고 중얼거리며 비틀비틀 사람에게 다가와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인다. 불완전한 말과 움직임이 사람의 자유로운 해석을 이끌어내고,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완성시켜버린다. 안에 쓰레기를 넣어주면 "못코몬"이라고 답해준다.

 

 

 

 

 

 

https://www.soumu.go.jp/johotsusintokei/whitepaper/ja/r06/html/nd161c00.html

 

https://www.soumu.go.jp/johotsusintokei/whitepaper/ja/r06/pdf/n161000c.pdf

 

https://www.diversity-in-the-arts.jp/stories/38392

 

 

박혜연(일본(고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제품디자인 석사 졸업
-생테티엔(프랑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스왈로브스키 본사(오스트리아)협업작가
-런던디자인뮤지엄레시던시 작가
(현) 프리랜서 디자이너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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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비얼리티#약한로봇#로봇#이반일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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