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 슈테판 소스(Stefan Sous) / 택시(Taxi) / 2001년.
자동차 몸체와 프레임들을 따로 떼어내어 천정에 줄을 매달아 놓은 소스의 작업 ‘택시’는 문학에서 구조주의자들이 단어하나하나 떼어내어 문장 구조를 분석하듯이, 자동차의 형태와 구조를 자신의 미적기준에 따라 분해한뒤 시각적으로 다시 차형태로 인식되도록 조합, 배치하였다.
자동차가 20세기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물이고,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예술가들의 몫이라면 자동차가 현대 예술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실제로 100년이 넘어가는 자동차 역사속에서 자동차가 예술작품으로 다루어져 온 사례는 상당히 많지만 자동차가 독자적(autonom)인 예술작품의 대상, 즉, 이동과 운송수단이라는 기능과 관련없이 독립된 오브제라는 개념은 아직도 많이 낯설기만 하다.
이런 낯설은 개념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특이한 전시회 하나가 뒤셀도르프에서 열리고 있다. 5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 보여지는 자동차들의 모습을 모아놓은 전시회 <AUTO-NOM>에는 움직임, 사고, 정체 등 자동차의 기능적 특성과 영향에 포커스를 맞춘 컨셉트 아트, 비디오 아트, 설치미술 등의 작업들과 자동차의 구조적이고 형태적인 특징을 재결합하거나 배치한 작업들과 자동차 자체를 캔버스 대신 사용하는 방식 이렇게 크게 3가지로 분류가 된다.
* 사진설명 : Rita McBride / Toyota / 1990년 / 샌디에고 현대미술관.
리타 맥브라이드가 말레이지아의 등나무 수작업인들에게 등나무로 자동차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여 생겨난 작품. 현재 자동차 업계가 아시아 각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부품이 세계각지로 수출되어 자동차가 만들어지는데, 이런 부품대신 차체 모양을 동남아 특산물인 등나무로 본떠 자동차의 외부볼륨을 가진 자동차가 아닌 다른 자동차 구조물을 만들었다.
* 사진설명 : Christiane Moebius / Fredericus Rex / 1994-1997년.
빨강, 노랑, 파랑, 검정색의 철판으로 된 납작한 원통들에 사물감지센서와 동력과 바퀴를 달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물감지센서 덕분에 주변의 사물들과 부딪히지 않고 천천히, 스스로 움직이는 이 자.동.차들은 기능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를 2개씩 달고 있다. 우리가 아는 자동차의 형태와는 다르지만 자동차의 실질적인 기본 특성을 담고있는 이 움직이는 조각품들은, 사물감지능력이나 이에 상응하는 자동브레이크는 없고 단지 보다 빠른 속도를 내기위해 발전하는 자동차의 기능과 형태가 실제 도로사정과 맞지 않는 모순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 사진설명 : Erwin Wurm / Fat Car (조각) / 2001년.
마치 자동차가 살이 두룩두룩 찐 것 같은 모습으로 만든 자동차. 사치스런 사람이나 물건을 ‘기름지고 느끼한(fat)’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너무나 살이쪄 움직일수 없는 자동차 모습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는 에르빈 부름은 이 차를 모델로 최근 말하는 차를 보여주는 비디오 작업 ‘I love my time - I don't love my time’을 했다. 뒤셀도르프 전시에는 비디오 작업이 전시되었다.
* 사진설명 : Ruben Ortiz Torres / Alien Toy (UCO: unidentified cruising object) 비디오 작업 / 1997년.
멕시코 출신 예술가인 토레스는 미국 국경 경찰 차량 마크가 들어간 픽업에 특수 하이드로릭장치를 해 픽업차체의 각 부분들의 따로 떨어져 나가거나 문들이 빙글빙글 회전을 하거나 들썩들썩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토레스는 마치 자동차가 스스로 분해되고 살아서 움직이고 혼자 춤추는 것 같은 이 동작들을 비디오에 담에 화면 중간중간의 색 배치를 조절하여 마치 화려한 색채의 뮤직비디오 느낌과 사실화면을 섞어 놓았다. 이 낯선 외계장난감(앨리언 토이) 같은 이 차량에 붙은 ‘비확인 주행 물체’라는 부제목에서 국경을 몰래 넘어오는 사람들과 이를 통제하는 미국 경찰과의 관계가 암시된다.
* 사진설명 : Bertrand Lavier / Giulietta / 1993년.
사고차량을 네가티브 레디 메이드로 이용하여 전시함으로써 자동차가 지닌 상처받기 쉬운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 사진설명 : Tamara Grcic / 자동차 부분과 담요 (사진: 카셀 프리데리찌아눔 설치작업 광경)/ 2000년.
역시 찌그러진 자동차의 부분들을 담요위에 얹어 여기저기 흩어놓음으로써 부서지고 깨지기 쉬운 자동차의 단점을 보여주고 있다.
* 사진설명 : Sylvie Fleury / Crash Test 2-07 / 2001년.
제네바 출신의 스위스 예술가인 실비 플로리는 사고가 나 찌그러진 자동차 차체철판을 같은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잘라내어 캔버스처럼 만든후 (차체 기스를 땜질 할 때 흔히 그러듯이) 매니큐어를 덧칠해 ‘크래쉬 테스트’란 제목의 시리즈 작업을 했다. 이처럼 예술가의 손에 의해 원래의 상황에서 분리되어 일정 규격으로 다듬어지고, 색배합을 맞추어 전시장 벽에 하나 하나 걸린 이 작품들에서는 사고난 차의 느낌과 시각적인 미적 가치가 서로 교모하게 엇갈린다.
특히 이번 전시의 미적, 사회학적, 철학적인 바탕은 구조주의 언어학자 롤랑 바르뜨가 1963년에 쓴 글 <자동차의 신화(Mythologie de l"automobile)>가 되고 있다. 여기서 바르뜨는 당시 일상생활에서 자동차의 의미와 가치에 이야기한다. 바르트는 이미 1952년부터 일상의 신화에 대한 에세이를 써왔는데 ‘자동차의 신화’는 이 일상의 신화 중 자동차에 관한 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1953년 출시된 시트로엥 DS에 관한 에세이(La nouvelle Citroen)에서 바르뜨는 당시 새로나온 시트로엥 DS의 가치는 기능적인 면보다는 바로 그 이름에서 찾는데, DS를 불어로 읽으면 여신이라는 뜻의 데스(deesse)와 발음이 같아 시트로엥 DS는 그냥 ‘라 데-스(La DS)’ 즉, ‘자동차 여신’이라는 의미를 지닌 신화적이고 절대-오브제(objet superlatif)라 지적하고 있다. 바르뜨는 오브제란 것은 삶의 마테리에(물질)로 전환시킨 결정체라 보고, 시트로엥 DS를 통해 자동차가 더 이상 기계들의 집합체나 A에서 B로 가기 위한 운송수단이나 부와 신분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라 일정 형태와 마테리에를 지닌 하나의 사물자체, 오브제로 인식되어 간다고 본다.
* 사진설명 : Gabirel Orozco / La DS / 1993년 / M.A.C. de Marseille .
롤랑 바르뜨의 테제인 일상제품의 신화화와 자동차의 오브제화를 보여주는 작업으로 오로쯔코는 원 시트로엥 DS를 길이로 3등분 한 다음 중간부분을 없애고 양 옆을 붙여 낯설으면서도 익숙한 사물을 만들었다. 구조주의자들 작업방식으로 ‘자동차 여신’을 다시 만들어냄으로써, 자동차(기능)로 쓸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동차(형태)인 오브제성을 부각시켰다.
자동차와 예술의 관계를 집어보는 전시회에 대한 아이디어는 1970년대부터 유명 예술가들에게 차들을 화폭대신 제공해 새옷을 입힌 베엠베 아트 카 컬렉션(Art Car Collection)에서 출발하였다.
베엠베 아트 카 컬렉션은 1975년 프랑스 경매인이자 카-레이서인 에르베 풀랭(Herve Poulain)이 친구인 알렉산더 칼더가 단장한 베엠베 3.0 CSL를 몰고 르망 24시간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
* 사진설명 : 알렉산더 칼더 / BMW 3.0 CSL / 1975년 / BMW Art Car Collection.
이번 뒤셀도르프 전시에서는 현재 15점에 이르는 베엠베 아트 카 컬렉션들이 처음으로 모두 전시가 되었다. 베엠베 아트 카 컬렉션에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쉔버그, 프랭크 스텔라, 세자르, 펜크, 산드로 치아, 데이빗 호크니, 제니 홀저가 참가해 팝아트, 미니멀리즘, 표현주의, 컨셉트아트 등 현대미술의 커다란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작가들의 작업들이 포함되어 있어 자동차를 통한 현대미술의 흐름의 한면을 보여주고 있다.
* 사진설명 : Roy Lichtenstein / BMW 320 / 1977년.
* 사진설명 : Frank Stella / BMW 30CSL / 1976년.
* 사진설명 : Robert Rauschenberg / BMW 635 csi 바퀴부분 디테일 / 1986년
* 사진설명 : Jenny Holzer / BMW12 LMR 르망 로드스터 / 1999년
글자들이 지나가는 LCD 판 작업으로 유명한 제니 홀저는 다른 LCD 작업에서 자주 볼수 있는 소비만능사회를 경고하는 그녀의 문장 ‘PROTECT ME WAHT I WANT’를 르망의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는 베엠베 12 르망 로드스터에 푸른색의 큰 글씨로 써(붙여) 넣었다. 이 문장은 자동차 뒤쪽에 ‘protect me’가 들어가고 앞쪽에 나머지 글자들인 ‘what I want’가 들어가 자동차가 달리는 동안 사람들은 뒷부분 경고문장은 보지 못하고 앞부분인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슬로건만 보게된다. 때문에 최고속력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자동차경기에 대한 욕망과 이를 응원하며 대리만족하는 팬들의 욕망이 부추겨지는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가면 뒷부분의 단어들과 스포일러와 차체옆에 붙은 ‘LACK OF CHARISMA CAN BE FATAL’ 이라는 문장과 ‘YOU ARE SO COMPLEX YOU DON'T RESPOND TO DANGER’ 라는 문장을 같이 읽게 되어 처음 본 ‘내가 원하는 것’이 (이중적인 의미에서)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베엠베 자동차들이 화폭 대신 사용되었다면 벤츠 자동차들은 팝아트의 대표자인 앤디 워홀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 사진설명 : 앤디 워홀 / 카(Cars) / 1986년 / 1954년산 메르체데스 벤츠 300 SL
/ 다이믈러 크라이슬러 컬렉션, 슈투트가르트.
* 사진설명 : 워홀 작품이 전시된 다이믈러 크라이슬러 컬렉션 전시관.
앤디 워홀은 어떤 화랑으로부터 벤츠 100주년(1986년)을 기념하여 벤츠 자동차 그림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50년대 나온 벤츠 300 SL을 워홀 특유의 8개의 서로 다른 바탕색으로 처리한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했다. 이 작품을 보고 감탄한 벤츠사는 워홀에게 벤츠 역사를 두루 거쳐가는 80점의 방대한 ‘카 시리즈’ 작업을 의뢰하는데, 워홀이 1987년에 사망하는 바람에 35개에 그치고 말았다.
자동차와 예술과 산업의 관계는 베엠베 아트 카 컬렉션이나 워홀의 벤츠 시리즈 뿐만 아니라 영화나 광고에서 응용되고 다시 광고가 예술 소재로 사용되는 상호관계를 유지해 가고 있다. 이런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는 혼다의 광고 ‘톱니바퀴’이다. 이 혼다 광고는 이번 전시작품은 아니지만 톱니바퀴 하나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교모하게 맞추어 놓은 자동차 부품들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마지막에 혼다의 새 모델 어코드(Accod)를 출발시키는 내용으로 올해 4월 첫 선을 보였을 때 많은 광고인들과 네티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혼다 어코드 광고 '톱니바퀴(Cog)'Wieden & Kennedy / 2003년(작품을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광고를 만든 위덴과 케네디 광고사(Wieden & Kennedy)는 이 광고가 아이들 놀이인 쥐덫 연쇄작용과 60년대 유명한 자동차 영화인 ‘치티치티 빵빵(Chitty Chitth Bang Bang)’에 나오는 아침식사준비-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지만, 현대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혼다 광고가 1987년 스위스의 설치 미술 작가들인 페터 피슐리(Peter Fischli)와 다비드 바이스(David Weiss)에 의해 제작된 30분짜리 연쇄작용을 이용한 작업 ‘사물의 길(The Way of Things/Im Laufe der Dinge)’을 본뜬 것임을 안다.
비록 혼다 광고가 피슐리와 바이스의 작업 컨셉과 내용을 많이 패러디 한 것이긴 하지만, 컴퓨터 트릭을 사용하지 않고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인 이 2분짜리 광고를 찍는데 한달간의 스크립트 작업에, 두달에 걸친 컨셉 드로잉, 4달에 걸친 개발과 테스트 과정 그리고 실제 촬영에서도 606번의 시도를 거쳐서야 성공한 사실만을 보더라도 상품 광고가 단순한 광고를 넘어서 예술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짐작할수 있다.
1886년 칼 벤츠나 헨리 포드가 처음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차량을 개발하였을때만해도 자동차는 미래세계를 열어가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이제 100년이 성큼 넘어가는 역사를 가진 자동차는 더 이상 신비스런 존재도 아니고, 한집에 2-3대의 자동차를 가진 서구사회에서는 더 이상 자동차의 소유여부 자체가 신분을 나타내는 이정표가 되지도 않는다. 이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20세기가 만들어낸 ‘레이디 메이드 오브제’이며, 바르뜨가 60년대에 예견한 것처럼 자동차 자체가 아니라 ‘운전’과 ‘모빌리티’ 문제가 새로운 신화로 떠오르고 있다.
전시제목: AUTO-NOM
장소: NRW Forum / Duesseldorf
기간: 2004년 1월 4일까지
전시도록: 하티예칸쯔 출판사(144쪽, 17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