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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디자인_ 생활한복과 코크플레이 사이트

전통한복을 현대생활에 맞추어 디자인한 생활한복과 미국의 문화를 그대로 퍼 담아 놓은 듯한 인터넷 사이트는 현재 한국에서 공존하고 있는 두 개의 문화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생활한복은 한국의 문화로 코크플레이 사이트는 미국의 문화로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문화 중 우리에게 더 가까이 와 닿는 것은 코크플레이 사이트이고, 여기에 담겨진 문화를 이해하며 즐기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욱 쉽게 느껴집니다. 그럼 난 미국 것을 좋아하는 사대주의자에 우리의 것을 소홀히 하는 정신나간 놈이 되는 걸까?

우리의 것을 즐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이전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생활 속에서 돌아보면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던가? 그럼 미국의 문화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는 뭐지? 여기서 우리는 약간의 혼란을 가지게 되는 지도 모릅니다. 한국적인 것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 속에는 현재의 한국이 아닌 옛 것의 이미지(고려청자나 석굴암의 본존불, 경복궁 등 한국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옛 유물) 몇 개만이 자리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우리를 규정하려는 시도가 한국적인 것을 찾는 여정의 전부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국의 유물과 이미지가 데이터 베이스화 되어가고 있고, 한국적인 것을 규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현재의 우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조차 헷갈리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부정하고 과거의 모습만을 한국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빛나는 조상의 얼과 업적들, 그 유물과 미적 아름다움의 우수성... 그 속에서 우리는 현재의 한국의 상황, 실질적 식민지의 모습들(한국의 재벌들은 지분으로 보면 외국계 기업이고, 외교부는 자국의 업무를 포기하고 외국의 대사관을 자처하며, 국군의 전시작전권은 미군에게 있죠. 정부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원하니까 침략전쟁에 파병할 수밖에 없다고 공공연히 호소하고, 역사마저 강탈당해도 그저 쉬쉬하는 모습이 주권국의 모습이던가? 그런 거창한 것들을 떠나서,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주변의 현재 미국식 문화는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들일까?)을 지워버리려고 무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아예 그런 것에 관심이 없던가... 한국이란 그저 내가 여기 있으면 그게 한국인 것일까? 아님 예전에 존재했던 지금은 없는 그 어떤 것일까?

문화란 현재 그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속성이 표출된 형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문화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행동, 혹은 남과 구별되는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디자인은 그 속에서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타 문화와 구별을 하려는 성향은 지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서양, 혹은 세계로 포장된 미국의 문화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굳이 탁석산씨의 식민지우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곳곳에서 미국의 문화와 상품에 파묻혀 살아갑니다. 나이키신발을 신고 반미시위를 하는 모순된 현실... 모든 의미가 뒤죽박죽이 된채, 복재된 형상의 재복재를 통해 그 의미들은 사라지고 오직 의미를 부여하는 주관만이 힘의 논리 하에서 승리하는 정글같은 상황들... 그리고 이러한 문화속에서 우리 스스로 현재 우리의 현실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자면 멋지기는 합니다만 이게 과연 나의 모습을 담은 디자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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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현상을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면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요? 단지 디자인의 모습을 조금 예스럽게 바꾼다고 해서 해결 될 수 있을까? 그 이전에 문화라는 것이 극복의 대상인 것일까?
위의 사진 왼쪽은 생활한복, 오른쪽은 코크플레이라는 인터넷 싸이트입니다. 한쪽은 한국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복식디자인입니다. 한복을 현대에 맞게 바꾸었죠. 그리고 한쪽은 미국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코카콜라의 한 인터넷 사이트 입니다. 서로 전혀 다른 모습의 이질적인 이 두 개의 이미지는 현재 한국에서 실재하는 디자인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이 둘은 모두 한국적인 것들 이지만, 겉으로만 보면 이 둘의 이미지는 전혀 다릅니다.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각각 손색이 없는 것들이며 그만큼 서로의 이미지는 상반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두 개의 이미지는 ‘현재’ 한국에서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며,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한국적인 이미지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한국적이라는 상징물과 한국의 이미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적이라는 명제 하에서 코크의 사이트는 왠지 거부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적이라는 것은 오직 조선, 멀어도 삼국시대의 이미지 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적이라는 명제를 벗어버리면 우리는 코크의 사이트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오리엔탈리즘을 생성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마치 현재를 잃어버린 것처럼 되었습니다. 한국적이라는 이미지에 숨어서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부정합니다. 코크 사이트와 같은 문화를 즐길 때 우리는 이것을 한국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왠지 고리타분한 조선시대의 이미지들이 한국적이라고 생각되죠. 한국적이라는 것이 ‘현재성’을 상실했다는 뜻일 겁니다. 오직 ‘예전의 것’이라는 의미가 되었죠. 그런데 우리는 한국인으로 현재에 살아갑니다. 그럼 생활한복을 입고 코크사이트를 둘러보는 우리는 무엇일까? 우린 한국적이 아닌 한국인인 걸까? 뿌리없이 부유하는 유령과 같은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까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는 김치찌개에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버거킹이나 파파이스에서 친구들과 콜라라도 마시면서 떠듭니다. 미국식 교육과정 속에서 전래민요 몇 번 부르고는 학교가 끝나면 세븐의 노래를 들으며 학원으로 가서 아그립바나 배껴그리다가 겨우겨우 어디어디 대학에 들어갑니다. 책 몇 권 뒤적이고, 모니터 앞에서 밤새기와 소주, 맥주, 양주, 그리고 노래방과 나이트로 대학생활을 끝내면, 토익 몇 점과 자신의 학교간판만으로 이곳저곳으로 헤매다가 겨우 취직하고 십년도 되기 전에 자기 회사를 차려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밥 먹을 때 찾는 한식과 명절 때 입는 한복을 빼면 별로 한국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저 뒤죽박죽 미국과 일본 한국의 문화가 잡탕이 된 체 오직 먹고 살기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상당히 골치 아픈 곳에 조그맣게 옹기종기 모여서, 세계와 본격적인 무역을 한지 30년이 조금 넘어가는 국가에서, 세계가 곧 미국인 국가에서 이 모습이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모습일까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요? 과거와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리되고 잡탕문화가 되었을 지라도, 그 잡탕의 문화 또한 하나의 문화입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고 설명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납득할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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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지 ‘현재’ 한국에서 ‘대중성’을 획득했다는 것이 우리의 현재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만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있다거나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도착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코크 사이트를 내 삶의 일부로 보고 즐기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한국적인 이미지를 나타낸다고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코크 사이트를 방문한다는 행위자체는 내 삶의 일부분으로 느끼지만, 그렇다고 코크사이트가 한국적 컨텐츠를 지니고 있는 것이며, 그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이 한국적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지금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요? 현재의 이 문화가 왜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은 해도 한국적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을까요? 단지 우리만의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만한 과거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빗대어 보자면 지금의 문화를 인정하기가 힘들어서? 어차피 지금의 현실이 바로 한국의 상황이고 한국적인 문화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것을 우리의 문화라고는 생각해도 한국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까?

코크 사이트에서 보이는 것은 미국의 이미지, 그 중에서 힙합, 흑인, 뒷골목 등을 떠올리는 마이너리티의 저항에 관한 이미지입니다. 물론 한국으로 건너온 후로 이 이미지들은 미국의 이미지, 자유, 진보, 고급스러운 등의 일반적 이미지로 변화됩니다만, 어쨌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 실재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둑어둑한 뒷골목 공터와 거기 그려진 그라피티, 미제고물자동차는 당연히 우리 주변에 없습니다. 힙합스타일의 옷을 입고 농구하는 학생들은 있어도 그들이 마약을 사고팔거나 그러한 현실속에서 자멸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들이 너무도 친숙합니다. 미국의 영화를 통해 생성된 이미지는 잡지 신문보도를 통해 가십화 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복제하고 증식시키기 시작하죠.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로 고정되면서 기표의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의 손으로 한국의 소비를 위해 그 복제의 이미지들을 재생산해 냅니다. 미국의 문화가 모티브가 되었을지라도 수많은 복재의 반복 속에서 그 최초의 의미들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국적불명의 미국 문화에 대한 경외만이 남아버리죠.

이러한 현실의 모습을 부정하고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한국적인 한국인의 현재 상황이고 이것이 현재의 한국적 문화이니까요. 그렇다고, 현실적인 나의 모습을 한국적인 나의 모습과 분리시키고, 분리된 한국적이라는 이미지를 쓰레기통 삼아 그 속에 모든 문제들을 집어넣고 봉인해 버린다면 단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의지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습일지라도 내 삶의 진정한 일부로서 받아들일수 있는가 이며 우리가 이것을 진정한 내 삶의 일부로 발전시키는가의 문제일 것입니다.

현재의 한국...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디자인 작업을 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마 생활한복이 한국적디자인의 한 예가 되겠지만, 생활한복의 경우 아직도 한국적이라는 상징에 붙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의 복식에 얽매여 그 보존의 여부, 개량의 수위에 그 논의가 맞추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형태와 색의 변형이나, 단추의 사용 등 단순히 겉모습의 보존만이 논의가 될 뿐 생활속에서 어떤 형식으로 혹은 방법을 가지고 적응해 나갈 것인가는 순전히 제작자의 몫으로 남겨지고 단지 이러한 모습을 과거의 모습을 얼마나 지켜냈느냐의 문제에서 품평회를 여는 듯한 모습은 조금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나마도 1996년 이후에야 공식적인 지원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이후의 IMF로 생활한복은 시장형성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쳐야 했죠.) 그 역사나 역량은 한국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 문화의 한 축으로서 기능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한국적이라는 것의 현주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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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생활한복이나 코크플레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한국적이냐 미국적이냐가 아닐 것입니다.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한국의 미약한 문화나 미국의 가상현실 같은 문화가 한국적인 이미지라는 어떤 상징적 개념에 의해 얽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은 현실을 반영하고 표현합니다.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상징을 이용한 디자인은 그저 지금껏 있어왔던 것을 베끼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생활한복의 경우도 그렇지만, 코크플레이의 사이트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그 모습들을 단순히 복제한다 한 들 그것은 우리의 디자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더 아름다운 형상으로 디자인한다고 한들, 우리의 삶에서 그 실제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규정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 저의를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나는 이렇게 존재할 것이다.”라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없다면, “이런 것이 있었으니 이렇게 해야 되려나?”의 막연한 추측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IMF 이전, 거품경제의 알 수 없는 낙관론 속에서 찾아나선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많은 주장들이 그렇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러한 막연한 소망의 근거마저도 경제에 기초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경제에 기초한 문화는 없습니다. 경제에 따라 그 규모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문화의 기초는 그 문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땅에서 현재 디자인이란 것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문화적으로 단절된 한국의 현실에서 단순히 과거의 형상과 이미지를 연구하는 것으로 우리만의 디자인 정체성이라는 것을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은 몽상이겠죠.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나만의 시각은 지금 현재도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500여 년 전 세종이 한글은 만든 것은 단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에게 맞는 우리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함이었습니다.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훈민정음은 한글 디자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사회가 하나의 독립된 사회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스스로 정의하고 실천하는 것은 남과 다른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간단한 물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그것은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마 이러한 정신이 우리의 디자인, 우리의 문화가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우리를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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