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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마술사 샤갈 전 그리고 디스플레이

지난 10월 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관람했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10월 15일까지 전시할 계획이었지만,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아서인지 22일까지 연장 전시를 한다고 하네요. 국내 단일작가 전시로는 최대규모의 회고전이라는 말 그대로 시립미술관 2.3층 전시관을 전부 그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마 절반은 삽화들이었던 것 같네요.) 전시된 작품 중에 샤갈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은 몇 개 없던데... 그나마 도시위에서는 9월 23일 까지만 전시가 되었었습니다. 결국 10월에 관람한 저로서는 프린트된 작품을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진품을 못 본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정말 실감했습니다. 20세기의 로멘티스트가 그린 작품들을 도판이 아닌 실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거의 끝나갈 때쯤에서이긴 해도 전시회에 들러본 것인데...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었지만,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샤갈의 몽환적인 세계가 펼쳐지면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 황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2,3층 전시관을 4시간 동안 두 번이나 둘러보게 되었죠.(오후에 약속만 없었더라도 하루 종일 관람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아쉽더군요.) 음란하지만, 사랑스러운 그리고 순수한 그의 그림들을 보다 보니 허리가 부러지는 것 같은 아픔도 눈물 찔끔거리며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람 중 작품들에 푹 빠져 사랑스런 색채들 속을 해매다가도 퍼뜩퍼뜩 현실로 강제송환되어야 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바글거리는 어린 학생들... 다행히 유치원생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차피 학생은 학생이더군요.

“웅성웅성웅성...”
인솔자인듯 한 사람이 나서서 아주 큰 소리로 작품을 설명하고...
“자, 이 그림은 샤갈이...”
“웅성웅성”
“이 작품은... 된 것입니다.”
“짝짝짝짝...”
와글와글거리며 흩어지는 학생들...

미술관에서, 그것도 전시 중에 관람객은 웅성거리고, 인솔자는 작품을 큰소리로 설명하는가 하면, 학생들은 잘했다고 박수까지 치는 것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관람문화인 것인지... 너무 어이가 없어지더군요. 7월 중순부터 시작되어 대략 30만이라는 인파가 관람을 했다던데... 어쩌면 그 많은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학생들이었겠죠. 그 학생들을 인솔할 선생님들에게 기본적인 관람예절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안내문 정도는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전담자를 두어서 다른 관람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도할 수 는 없었을까요? 그것도 안 되면 안내문이라도 입구에 설치할 수 는 없었나요? 단순히 샤갈이 언제 태어났는지, 뭘 그렸는지를 숫자로 표기하는 것 말고요. 어림잡아 하루에 3000명 정도가 관람을 했었을 텐데... 그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관람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할 수 는 없었을까요? 아니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디스플레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닐텐데요. 보여지는 대상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계획되어져야 할 부분들이 있지 않나요?

.

작품명은 잊어버렸습니다만(7000원짜리 도록조차 안 샀으니...) 하늘과 땅이 뒤바꾼 초원에서 토끼?(아님 염소?)가 여인을 태운 그림이 있었죠. 뒤바뀐 하늘과 땅...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구도이지만... 시점을 바꿔 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게 됩니다. 평범하게 위에 하늘, 아래에 땅이라면 사람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입니다. 전시장에서 회화를 관람하는 사람의 시점이죠. 하지만 거꾸로 된 하늘과 땅은 우리의 시점을 들판에 누어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바꾸어 버리죠. 편안하게 초원에 누워 가만히 저 먼 우주까지 닿아있는 구름의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가벼운 산들바람도 연상되죠. 그러면 샤갈의 토끼(귀가 상당히 크긴 하지만, 어쩌면 그리스 신화의 바람둥이 제우스가 자신의 여인을 태워 어딘가로 가기 위해 변신한 암소일지도 모르구요.)가 말을 겁니다. ‘나의 은하로 따라와봐.’ 어느덧 샤갈의 행복한 손짓에 미소 짓게 됩니다.
하지만, 옆에서 안내원과 관람객이 두런거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이구요. 역사적으로... 중요... 아마 한 105억 쯤 한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이봐요, 샤갈이 지금 당신을 자신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잖아. 이게 105억 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반짝이는 색들이, 흐르는 빛들이 안보여요? 야릇한 눈짓을 보내는 염소는 어쩌고? 연극무대 같은 샤갈의 마을들은 방문도 안 해 볼 겁니까?’
어쩌면 한 작품에 100억이 넘어가는 작품들을 겨우 1만원 한 장으로 구경하는 처지에 뭘 그리 따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관도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손익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관람객이 기념사진 한 방 찍을 수 없는 박물관에 1만원씩이나 주고 들어가서 난장판 같은 전시실 휙 둘러보고는 단지 ‘나 샤갈 전 봤다.’라는 식의 감상만 남기기 위해 관람하는 건 아니잖아요? 겨우 A4용지 한 장에 샤갈에 대한, 작품에 대한 안내가 다 들어갑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이, 스스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훈련조차 안 된 사람들에게 그저 역사 한 토막 읊고 작품가격이나 얘기해준다고 샤갈을 이해하게 될까요? 무엇 때문에 전시회를 기획한 건가요?

그리고... 문득문득 끊기는 발걸음...

서울시립미술관 사이트에 소개된 전시실 평면도인데요. 1관의 경우 가운데 부분에 새롭게 벽을 설치하고 작품들을 걸었더군요. (이것은 다른 전시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관람을 위한 동선은 두개로 나뉘어져 버렸습니다. 2관으로 넘어가는 통로가 되는 가운데 부분에서는 지그재그로 이동할 수 있다고 쳐도 각 관마다 한 쪽 벽면을 관람하고 나면 또다른 벽면을 관람하려고 하면 발길이 얽혀버리게 되더군요. 출발했던 자리(입구)에 다시 가서 다른 방향으로 다시 관람해야 했죠. 덕분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들에게 막히기도 하고... 게다가 유리가 없는 액자속의 작품들은 특히 안전을 위해 작품과 관객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설치한 것이라고는 겨우 밑에 나무상자와 바닥에 태이프로 두른 검은 선 뿐이더군요. 관람내내 소란스러운 소리에다가 안내원들의 선 밟지 말라는 기계적인 말을 추가로 들어야 하는 건 그런데로 참을 수 있었습니다만, 그러다 아이들이 작품을 만지는 등의 돌발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는지 정말 걱정되더군요. 작품 앞에 가드 정도는 해두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발 밑의 검은 선을 신경쓰는 것 보다는 허리에서 걸리는 가드가 작품과 관객의 거리를 만들기에는 더 효율적이었을 텐데요.
3층에 전시된 그리스 신화에 대한 삽화들은 중간 중간이 빠진 건지 아무렇게나 전시된 것인지 신화의 이야기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고...
국내 최초 공개되는 역사적인 작품들도 전시가 되었다지만,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상태에서 그 작품의 가치가 빛날 수 가 있을까요? 미술관은 사회의 문화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다른 문화를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의 문화를 드러내기도 하죠. 왠지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샤갈의 작품들이 처량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 노는 아이들... 작품들에게 미안해지더군요. 정말이지 샤갈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봐 주는 이 없이 말이죠.

묻고 싶습니다.
샤갈의 삶이, 그 흔적들이 사랑스럽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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