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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 툴루즈 로트렉 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으로도 불렸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의 앵콜 전시가 2020년 6월 6일부터 9월 13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현재, 8월 21-31일 까지 코로나로 인해 잠정 중단 상태) 이번 전시는 2020년 1월 14일부터 5월 16일까지 공개한 툴루즈 로트렉 단독전의 앵콜 전시이다. 코로나로 인해, 다음 순회 전시 예정이었던 미국 플로리다 전시가 취소되고, 원작을 소장하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의 헤라클레이돈 미술관(Herakleidon Museum)으로 반출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국의 재개관 제안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 미국, 이탈리아 등지를 거쳐 순회 전시 중이며,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 드로잉, 판화, 스케치 등 150여점의 진품 작품, 디지털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8점의 작품들, 사진, 책, 잡지, 음반 표지 등의 아카이브와 작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여주는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예술의 전당


툴루즈 로트렉(1864.11.24 - 1901.09.09)은 1864년 남프랑스의 알비(Albi)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앙리 마리 레이몽 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 이며, 그의 이름이 긴 이유는 로트렉 가문이 12세기부터 이어진 귀족 가문이기 때문이다. 로트렉은 가문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이어온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고 성장이 느렸다고 한다. 또한 청소년기에 두 차례의 다리 골절 사고로 다리의 성장이 멈추면서 성인이 되어서도 키가 150cm를 넘지 않았고, 평생 지팡이에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귀족의 전형적인 취미 활동이었던 승마, 사냥을 즐길 수 없었던 대신, 타고난 예술적 재능으로 그림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인물 표현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9살 때부터 가족, 하인, 사냥 장면 등 주변 인물을 관찰하고 연필, 초크, 물감, 잉크 등 다양한 재료로 데생을 그렸다.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1871년,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가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를 맞이했고, 파리에서는 산업과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다. 다양한 서양 미술 사조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탄생하여 꽃을 피웠고,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반 고흐, 폴 고갱, 오귀스트 로댕 등 인상주의 화가를 중심으로 모던 아트의 대가들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작가들의 예술 표현이 자유로워졌고, 석판화나 사진 등 대량생산의 예술품 제작 방식이 개발되었으며, 대중이 예술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또한 거리에 포스터 부착 제한 법률이 완화되면서 광고 포스터가 파리 시내에 넘쳐났다. 

로트렉은 1882년, 18세가 되던 해에 귀족 가문을 떠나서 몽마르트에 정착했다. 1889년, 오픈한 카바레 물랭 루즈(Moulin Rouge)는 그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물랭 루즈는 프랑스어로 “붉은 풍차”를 의미하는데, 파리의 몽마르트 지역은 원래 밭과 풍차가 많은 파리 외곽의 시골 마을이었다고 한다. 이 곳에는 빈민층,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는데, 후에 이 지역이 유흥가로 변하면서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물랭 루즈는 오픈하자마자 파리의 명소가 되었고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최고의 사교장이 되었다. 전시의 시작은 이렇게 화려했던 19세기 말 파리 몽마르트 거리와 물랭 루즈를 재현한 공간으로 시작된다. 당시 분위기를 전하는 영상과 파리 전경을 표현한 조형물로 마치 19세기의 파리로 여행한 느낌이 든다. 


* 이미지 출처 : 서민정


* 이미지 출처 : 서민정


* 이미지 출처 : 서민정


포스터와 뮤즈들
로트렉은 물랭 루즈에 지정석을 두고 매일 밤 드나들면서,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과장이나 미화 없이 그려냈다. 댄서, 희극배우, 서커스 광대, 매춘부 등 비주류 인물들을 모델로 하여,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사람 자체를 그리는 것에 주력했다. 그들의 모습에 연민을 느꼈으며, 술집 손님들의 허식과 무지를 풍자하기도 했다. 이러한 화풍은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1891년, 로트렉의 첫 포스터 작품 “물랭루즈, 라 굴뤼 (Moulin Rouge, La Goulue)”는 그를 파리의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물랭 루즈의 가을 시즌 오픈을 위해 제작한 이 포스터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이슈가 되었다. 사람 키 만한 사이즈, 간결한 디자인, 대담한 색채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포스터였으며, 파리 곳곳에 붙은 포스터를 시민들이 떼어가기 위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로트렉은 포스터의 인물을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으로 그림 상단에 큰 글씨로 인물의 이름을 적었다. 이 포스터를 시작으로 석판화 기법을 이용한 포스터와 판화들이 탄생했고, 포스터의 주인공이었던 라 굴뤼도 최고의 댄서로 인기를 얻게 된다. 이 포스터를 계기로 그는 상업적인 광고 포스터를 예술작품으로 끌어 올리며, 상업 미술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는 현대 광고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Moulin Rouge, La Goulue (물랭루즈, 라 굴뤼, 1891)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그가 그려낸 포스터들은 모델로 등장한 제인 아브릴, 이베트 길베르, 아리스티드 브뤼앙까지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로트렉의 영원한 뮤즈이자 친구인 제인 아브릴(1868-1943). 그녀는 물랭 루즈의 스타로 여러 작품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제인은 보통 댄서들과 다르게 미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은 지적인 여자였고, 로트렉은 이런 점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라 굴뤼가 일탈과 생동감의 상징이라면, 제인 아브릴은 귀부인 같은 품위를 추구했다.  

Jane Avril (제인 아브릴,1893)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마드모아젤 에글랑틴 무용단 포스터에서는 맨 뒤에 있지만 움직임이 가장 역동적인 여성이 제인 아브릴이다. 


마드모아젤 에글랑틴 무용단, 1896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아리스티드 브뤼앙(1851-1925). 툴루즈 로트렉의 열렬한 팬이자 친구인 샹송가수. 가수이자 작곡가인 그는 자신을 홍보하는데 로트렉의 포스터만 사용했다고 한다. 브뤼앙이 카바레 주인에게 공연 포스터를 로트렉에게 맡기자고 제안하여 그리게 된 작품이다. 브뤼앙이 즐겨 입는 검정색 모자와 망토, 붉은색의 스카프를 묘사했다. 또한, ELDORADO / AMBASSADEURS 글자의 일부가 이미지 뒤로 숨겨져 표현한 것도 로트렉이 처음 시도한 기법이며 이는 현재까지도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엠베서더 카바레의 아리스티드 브뤼앙, 1892)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로트렉의 또다른 뮤즈였던 아일랜드 출신 가수 메이 벨포트(May Belfort)와 영국 출신 댄서 메이 밀튼(May Milton). 이들은 동성연인 관계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동성애가 범죄였지만, 로트렉은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메이 벨포트는 보닛 모자와 리본 장식의 드레스를 입고, 항상 검은 고양이를 안고 공연을 해서 이를 묘사했으며, 메이 밀튼의 포스터는 이와 상반되는 블루 배경에 그녀 넣었다. 


May Belfort (메이 벨포트, 1895), May Milton (메이 밀튼, 1895)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대중적인 카바레 쇼부터 클래식한 공연까지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장면을 그려냈으며, 카페나 극장의 장면들을 석판화로 코믹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Le Café Concert (카페 콩세르, 1893)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매거진을 위한 일러스트, 삽화
19세기 말에는 다양한 잡지들이 첫 선을 보인 매거진 저널리즘의 황금기였다. 로트렉은 여러 잡지사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았고, 스타들의 밤 문화를 비롯해서 유명인사들의 가십거리, 정치적인 풍자 등을 다루는 매거진 “Le Rire(르 리르, 비웃음)” 와 “L’Escarmouche(레스카르무슈)”, “La Revue Blanche(라 레뷰 블랑쉬)”에 단골로 그림을 기고하기도 했다.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말에 대한 열정
다양한 포스터와 매거진 삽화뿐만 아니라, 로트렉은 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 알퐁스 백작은 숙련된 기수였으며, 야외 활동을 좋아해서 말을 타고 오랜 시간 사냥을 다니곤 했다. 그는 말을 타는 아버지를 동경했으며, 청소년기부터 즐겨 그렸다고 한다. 


The Jockey (경마, 1899)
* 이미지 출처 : 메이드인뷰 


대중적인 인기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와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았던 그는 한편으로 불규칙한 생활, 과음, 직업 여성들과의 무분별한 교제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었고, 1899년에는 알코올 중독과 정신착란 증상이 심해져서 몇 달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퇴원 후 작품활동으로 지속하기는 했으나 정신력과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1901년, 36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유화, 수채화, 판화와 포스터, 드로잉 등 5,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참고자료 : 
예술의 전당 : http://www.sac.or.kr/
메이드인뷰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madeinview/
메이드인뷰 : http://www.madeinview.com/




리포터_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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