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는 2024년 하반기 현대미술 기획전으로 북유럽 출신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전시 ‘Spaces’를 2024년 9월 3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진행한다. 1995년부터 한 팀으로 활동해온 덴마크 출신의 마이크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1961~)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 드라그셋(Inga Dragset, 1969~)은 협업 30주년을 기념하여 공간 설치 작업을 포함한 작품 5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미술관이라는 전시 공간 안에 실제 크기의 집, 수영장, 레스토랑, 주방, 작가 아틀리에 등 총 5가지 공간을 구성하여, 관람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 공간을 탐색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작품 속에 들어가 작가가 곳곳에 남겨놓은 단서들을 찾고 조합해 보면서 각자의 경험에 기반한 서로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불특정 다수의 이미지를 스크롤 하듯이 불연속으로 펼쳐지는 공간 구성을 통해 물리적인 공간과 디지털 세상을 오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시인이었던 마이클 엘름그린과 연극을 했던 잉가 드라그셋은 덴마크의 한 클럽에서 만나 연인으로 시작해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으며, 10년간의 교제 끝에 두 사람을 헤어졌지만, 이들의 예술적 협업은 이어지고 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미술관의 경직된 전시 개념을 깬 퍼포먼스와 조각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건축이나 공간의 정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젠더와 남성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도 맞섰다. 이후 이들은 전시 공간을 새로운 환경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기존 공간의 기능과 의미를 전복시키는 시도를 지속해 왔으며 이를 통해서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왔다. 특히, 2005년 미국 텍사스 사막 지역 마파에 세운 영구 설치 작업 ‘프라다 마파(Prada Marfa, 2005)’는 대 특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지하 1층의 본 전시장을 들어서기 전, 티켓 부스와 아트샵이 있는 1층부터 벌써 전시가 시작된다. 놀이터에서 볼 법한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 기구를 타고 있는 강아지가 있다. 작품 ‘Social media(terrier) (소셜 미디어(테리어), 2022’)다. “우울하고 외로워서 SNS를 켰다가 강아지가 빙빙 도는 모습을 보다가 더 우울해지는 소셜 미디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강아지 이미지에 매혹된 사용자들이 유사한 미디어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형태를 표현하면서, SNS 알고리즘의 순환, 반복적 특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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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 외줄타기 선수의 위태로운 순간을 담은 작품이 있다. 작품 ‘What’s left? (무엇이 남았는가?, 2021)’이다. 선수가 입은 옷에 ‘What’s left?’라고 적혀 있다. 한 손으로 줄을 잡고 매달린 남성이 다시 줄 위로 올라갈지, 떨어질지 상상하게 한다. 이는 시련을 겪고 이를 극복해 가는 인간의 반복되는 투쟁, 불안이나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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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시작된다. 전시장 내부로 들어서면 고급스러운 단독 주택이 전시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작품 ‘Shadow House(그림자 집, 2024)’이다.
관람객들은 모델하우스처럼 멋지게 꾸며진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가상의 거주자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으며, 누가 사는 집인지, 주인은 어떤 일을 하는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하게 된다. 거실, 주방, 침실, 서재, 화장실까지 갖춘 완벽한 한 채의 집을 구현했으며, 140제곱미터(42평) 정도 되는 크기의 집 안에는 조명, 러그, 소품 하나까지 모두 작가들의 의도를 담고 있다. 주택의 외부에는 앙상한 나무 위에 앉아서 그림자 집을 응시하고 있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볼 수 있다. 작품 ‘Tree of life (생명의 나무, 2024)’이다. 독수리는 2012년부터 작가들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이며, 자아비판의 상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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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유리창을 통해서 집안을 볼 수 있는데, 유리창 앞에는 한 소년이 창문 유리에 ‘I (나)’ 라고 적고 있다. 실제 사람과 매우 유사하게 만든 작품 ‘I(나, 2023)’이다. 집 안에 들어서면 현관 벽면 거울에 한글로 ‘다시는 보지 말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에서 진행하는 전시라는 점을 반영하여 작품 곳곳에 한글과 한국어 방송을 활용한 점이 흥미롭다. 거울 옆으로 구멍이 뚫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화, 헬멧, 시든 꽃 등이 놓여있다. 거실 바닥에도 불규칙한 구멍이 뚫린 러그가 깔려 있는데 작품 ‘Lost Memories (잃어버린 기억들, 20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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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작업실 같은 방에는 그림자 집의 모형, 그리고 The Cloud 레스토랑의 도면이 놓여 있어, 방 주인의 직업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방에 놓인 라디오에서는 한국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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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방으로 보이는 공간에는 2층 침대의 매트리스가 서로 마주 보는 방향으로 되어 있는 뒤집어진 침대가 있다. 작품 ‘Boy Scout (보이스카우트, 2024)’이다.책상과 서랍장에는 작가들의 이전 작품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모형들은 사람들이 전생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세우고 우상화하는 현실을 비판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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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는 구불구불한 배수관으로 연결된 두 개의 세면대를 볼 수 있다. ‘Separated (헤어지다, 2021)’ 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2004년 시작된 ‘결혼’ 연작의 일환이다. 감정적 연결이 해소되지 않은 전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파트너 간의 친밀함과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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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영역은 작가들의 공간 작업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자 반복적으로 다뤄온 소재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나온 집에서 영감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 전시 공간에는 실제 크기의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같은 대형 수영장을 만들기 위해 전시장 바닥을 약 1.2미터 높여서 실감 나게 구성했다. 작품 ‘The Amorepacific Pool(아모레퍼시픽 수영장, 2024)’이다. 물이 없는 수영장 역시 작가들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브인데, 이는 현대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공공장소와 그 안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외로움, 공허함을 상징한다. 수영장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고 소통하는 장소지만, 작가들은 수영장에서 물을 없애고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 형상의 조각들을 배치하여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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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가장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소년 ‘Robert(로버트, 2024)’, VR 기기를 착용한 채 무언가에 몰두한 소년 ‘The is how we play together. fig.3(우린 이렇게 놀아요, 그림3, 2023), 그리고 높은 의자 위에 앉아 망원경을 통해 어딘가를 보고 있는 남성 ‘Watching (감시, 2024)’이 있다. 고대 작품처럼 백색의 조각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조각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수영장에서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을 표현한 작품 ‘The Screen(화면, 2021)’은 단절된 관계,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지루함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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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전시실로 연결되는 공간에는 대도시 금융 중심지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 ‘City in The Sky (하늘 위 도시, 2019)’를 볼 수 있다. 상상 속의 도시를 축소 모형으로 제작하여 거꾸로 매달아 전시하고 있다. 이는 국가, 도시 간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지역 정체성은 더욱 글로벌한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이는 도시 경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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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간 설치 작품은 고급스러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재현한 ’The Cloud(더 클라우드 레스토랑, 2024)’이다. 현대 사회에서 레스토랑의 역할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SNS를 겨냥한 다양한 정체성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었다. 작가들은 이처럼 실제 레스토랑 같은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어, 관람객들이 테이블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있는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레스토랑 리셉션 공간의 긴 소파에는 토끼 인형 의상을 입은 사람이 잠자고 있다. 작품 ‘All Dressed Up(멋지게 차려 입다, 2022)’으로 제목과 상반된 이야기를 보여준다. 어울리지 않는 이 사람의 정체에 대해 관람객들은 저마다 추측하게 될 것이다. 작가들은 이처럼 관람객에게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완성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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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쟁반에는 각기 다른 칼로리가 기재되어 있다. 텅 빈 레스토랑의 한 테이블에 홀로 앉아서 영상통화를 하는 여성이 있다. 작품 ‘The Conversation (대화, 2024)’이다. 전화 속의 남성은 연애부터 인테리어 얘기까지 쉴 새 없이 얘기하고 있다. 무관심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여성과 대비된다. 물리적으로 만나야 할 공간에서 기술로 이뤄지는 대화가 진정한 소통인지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 해석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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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옆에 있는 문을 통해 다음 전시 공간인 주방으로 이동한다. 냉장고, 가스레인지, 싱크대 등 각종 주방 기구가 구비된 일반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옆에는 대조적으로 실험실이 붙어 있다. 공간 설치작품 ‘Untitled(the kitchen), (무제 (주방), 2024)’는 ‘산업용 주방’과 ‘과학 실험실’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함께 배치하여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장고 안에 있는 새의 알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조명 아래에서 부화를 기다린다. 작품 ‘Teamwork (팀워크, 2023-2024)’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두 사람을 표현했다. 휜 가운을 입고 현미경을 통해 음식을 개발하는 모습은 화학 기반 요리법인 분자요리학과 현대 식품산업 시스템의 세태를 보여주고자 했다. 기후변화, 인구 증가, 자원 감소 등의 위기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과학 기술에 의존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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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간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구현한 ‘Untitled(the studio), (무제(스튜디오), 2024)’이다. 이 공간은 유일하게 일상 속 공간을 구현하지 않고, 흰 벽으로 둘러싸인 작업실을 표현했다. 작가들의 캔버스는 거울로 이루어져 있어서 관람객과 주변 공간을 반사하여 조각, 회화, 작품, 공간, 관람객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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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입구 쪽 영상실에는 2개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 두 작가가 처음 만나서 협업해 나가는 작업을 보여주는 ‘How are you? (하우 아 유?, 2011)’와 의인화한 7가지 작품들이 예술에 대해 흥미로운 토론을 벌이는 영상 ‘Drama Queens(드라마 퀸즈, 2007)’를 감상할 수 있다. 라커 룸과 화장실로 가는 길에 설치된 변기 모양의 작품 ‘Masculinity(남성성, 2023)’는 구멍을 뚫어두어 중요한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곳곳에 작품인 듯, 아닌 듯 숨어 있는 작품들이 있으니 작은 공간도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관람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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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에서는 APMA GUIDE 앱을 다운받아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으며, 아모레퍼시픽 와이파이를 사용해야 접속할 수 있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들을 통해 작가들이 전달하고 자 하는 의도,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 등 다양한 해설을 들을 수 있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시기를 권장한다.
전시 장소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100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기간 : 2024.09.03 ~ 2025.02.23 (매주 월요일 휴무, 추석/설연휴 휴무)
오픈 시간 : 10:00 – 18:00
관람 비용 : 18,000원(성인기준)
예약 가능한 일자는 매월 15일 한 달 단위로 업데이트.
티켓 예매 : https://apma.amorepacific.com/index.do
전시 해설 : APMA 앱 오디오 가이드 (전시장 내 사용 가능, 무료)
참고 자료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 : https://apma.amorepacific.com/index.do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elmgreenanddragsetstudio/
서민정(국내)
mjseo@yonsei.ac.kr
연세대학교대학원 의류환경학과 석사 졸업
(전) 인터패션플래닝 트렌드 분석 연구원 및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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