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넷플릭스(Netflix)를 뜨겁게 달궜던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Chef’s Table)’는 단순히 요리 경연만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서 새로운 미식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인 기획의 참신함과 더불어 거대한 세트장의 시각적인 연출도 놓칠 수 없는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무수히 많은 요리 예능을 보아왔다. 이전 요리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전세계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방영이 끝난 시점에도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일까?
'흑과 백' 이분법으로 나눈 기획의 참신함과 연출 방식의 미적 효과
‘백수저’, ‘흑수저’ 라는 신분을 나누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서 매회 새로운 미션과 재료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셰프들이 실력을 겨루는 모습이 어마어마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그와 더불어, ‘흑백 촬영’이라는 시각적 연출 방식을 통해 일반적인 요리 프로그램과는 차별성을 두고 있다.
'흑과 백'으로 나누어 공간을 연출한 1000평 규모의 대형 세트장 ⓒ넷플릭스
의상, 세트장 등을 단순히 색상으로만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조명을 통한 극적인 몰입도, 특별한 세트장 조성, 긴박한 현장 분위기 등을 통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전체적인 극을 끌어 나간다. 조명의 대비가 두드러져 요리하는 셰프의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나 완성의 순간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포착한다.
세트장 바닥 전체가 흑과 백으로 나뉘어진 공간 연출을 통해 쉐프들의 동작이 하나의 예술 영화처럼 집중된 에너지를 보여주고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극적인 긴장감을 준다. 흑과 백은 선과 악, 빛과 어둠 등 대조적인 개념을 상징하는데 시각적으로 상징성을 부각시킬 수 있어 스토리텔링이나 메시지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세트장의 디자인적인 면에서 본다면 공간의 깊이감과 입체감을 더해 시각적 매체에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흑과 백'으로 나누어진 공간에 각 10대씩 존재감을 뽐내며 서 있는 얼음냉장고 ⓒ넷플릭스
시각적인 연출의 재미와 더불어 흑과 백으로 신분이 나뉜 셰프들이 어떻게 그 경계에서 매몰되거나 갇히지 않고 넘어설 수 있을지 매회 지켜보는 재미가 큰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계급’이라는 주제로 나뉜 흑과 백이지만 화면 연출상으로는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라 셰프들의 열정과 철학을 예술적으로 보여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색을 배제함으로써 음식이 도드라져 보이고, 그들의 요리 색깔(스타일)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매회 신선한 주제와 더불어 시각적으로 사로잡는 연출 방식이 눈에 띄는데 이러한 연출은 '요리 경연'이라는 주제를 더욱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색상을 사용하여 셰프에게 제공하는 재료를 보다 강렬하게 전달한다.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다양한 장르의 요리들이 새로운 트렌드로 업계의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방송을 통해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음식을 해석하는 쉐프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서 요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흑백요리사에 참가한 대다수의 쉐프들은 요리를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창의적이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즉 음식을 만드는 기술적인 과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요리에 담긴 자신의 철학과 인생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흑백요리사 성공 이후 유통·식품업계의 변화
GS25, 이마트24, CU등은 흑백요리사에 출연하여 화제를 모운 셰프들과의 협업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또한 식당 예약 앱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출연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 검색량과 예약 건수가 방송 이후 74배나 상승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주방용품과 주방가전 상품 판매량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기와 재미에 그치지 않고 식문화 인식이 변함과 동시에 요리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 심사위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밤 티라미수’를 재현한 밤 ‘티라미수 생크림’, 그리고 화면에서 눈으로만 보았던 다양한 스타일의 음식을 접할 수 있도록 출연 셰프와 협업하여 만든 중식, 일식, 한식, 안주 등의 음식을 편의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셰프들과의 협업을 통해 생산된 제품의 인기 덕에 편의점은 30~40%대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디저트를 따라 만드는 영상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붐이 일기도 하였다.
'흑과 백' 컨셉을 차용하여 여러 브랜드에서는 자신들의 주력 상품군을 색상으로 나누어 홍보하기도 한다. 일부는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일단 흑과 백 둘로 나누어 소비자의 시선을 끈다. 나의 취향은 흑색의 제품일지, 백색의 제품일지 판가름해 보면서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하고 그동안 브랜드 제품을 각인시켜 자연스럽게 브랜드 아이텐티티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의 홍보 이미지
흑백요리사 패러디의 문화적 파급력
패러디는 대중과 소통하면서 문화적, 상업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흑백요리사의 인기와 더불어 원작을 변형하거나 새롭게 해석하는 경향도 생기게 되었다. 또한 개성이 강하고 퍼포먼스가 눈에 띄었던 출연자들 개개인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들의 특징을 살려서 공감과 유머를 주는 패러디가 많이 나오고 있다. 패러디된 콘텐츠는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친숙함을 전달하면서도 신선한 재미를 제공한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독특한 세계관과 재미난 에피소드로 유명한 코미디 애니메이션 ‘브레드 이발사’ 에서 흑백요리사 셰프들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사와 외모적 특징을 패러디하여 많은 웃음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인물들을 유머러스하고 친근하게 표현하여 흑백요리사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잘 만든 프로그램의 성공은 다양한 분야에 파급력을 행사한다.
흑백요리사에서 '흑'이 우승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승리를 넘어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의 특성 중에는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 ‘우리’ 아니면 ‘남’ 과 같이 둘로 나누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극단적 논리는 다양한 관점을 배제할 수 있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융통성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양한 셰프들의 요리에 대한 철학과 인생관을 통해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음을 깨닫고 그 경계를 허물며, 흑과 백이라는 구분 자체가 무의미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류인혜(국내)
inhye.ryu@samsung.com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 석사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실내디자인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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