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중 하나인 후각은 다양한 경험, 기억,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향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방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와 더불어 향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뇌바이오 연구센터 연구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6개월간 2시간씩 향에 노출된 노인의 인지 기능이 226% 향상되었다고 한다. 또한 후각 능력을 통해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정신분열, 알코올 중독 등 70여 가지의 신경정신 질환을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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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향기는 과거의 경험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홍차 향을 맡으며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는 장면이 강렬하게 묘사되는 것을 반영하여, 자연스럽게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되었다. 이처럼 향기는 우리의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향은 단순히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일상의 다양한 부분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향수를 통해 개인의 체취를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특정한 향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도 보편화되었다. 과거에는 패션의 일부로 여겨졌던 향이 이제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제품군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향수뿐만 아니라 로션, 바디워시, 헤어 퍼퓸(미스트) 등 다양한 향을 담은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향초, 디퓨저, 인센스 등 공간을 향기롭게 만드는 아이템들도 높은 수요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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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품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바로 '헤어 퍼퓸'이다. 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향수의 지속력을 높이는 방법에 집중했다. 그 결과 목이나 손목 보다 '머리카락'에 향수를 뿌리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삼겹살을 먹고 난 후나 담배 연기가 가득한 공간을 지나친 뒤 머리카락에 냄새가 남는 경험을 떠올려 보면, 향도 같은 원리로 머리카락에 오래 머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2024년 말 헤어 퍼퓸 검색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피부나 옷에 직접 향수를 뿌리는 것보다 부담이 적고, 향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점차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제품들은 머릿결에 영양을 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헤어 케어에도 효과적이다. 다만, 헤어 퍼퓸을 과하게 사용하면 머리카락이 건조해지거나 두피에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적절한 사용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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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향수 브랜드와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향기보다는 독특한 향으로 개성을 표현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니치 향수(niche perfume)'다. '틈새'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향수는 조향사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향수 브랜드들이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향수를 만든다면, 니치 향수 브랜드들은 브랜드의 철학과 개성을 확고히 전달한 향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상상하지 못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향들이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대량생산되는 제품들에 비하면 비싼 편이지만, 차별화된 향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르 라보(Le Labo), 바이레도(BYREDO), 딥디크(Diptyque) 등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산타마리아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엑스 니힐로(Ex Nihilo), 아쿠아 디 파르마(Acqua Di Parma), 아무아쥬(Amouage), 에따 리브르 도랑쥬(Etat Libre d'Orange) 등과 같은 브랜드들도 주목을 받으며 소비자의 후각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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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브랜드가 성공한 이유는 독창적인 향뿐만 아니라 차별화된 패키지 디자인 덕분이기도 하다. 많은 브랜드가 향의 독특함을 강조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향만으로 차이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패키지 디자인은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요소다. 자연스럽게 독창적인 패키지를 가진 브랜드들이 두각을 나타냈고, 이는 향수 시장에서 중요한 경쟁 요소로 자리 잡았다.
바이레도는 감각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조형미를 추구했고, 르 라보는 퍼스널 라벨링을 통해 초개인화를 강조했다. 딥디크는 프랑스 감성이 묻어나는 향수병과 포장 디자인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 이처럼 브랜드 철학을 담아낸 패키지 디자인은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향수 업계 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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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에 대한 다양한 브랜드들과 제품이 나오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우나향, 절향, 책향 등이 사람들의 코를 자극하며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있는 중이다. 그와 더불어 전 세계, 전 사회적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환경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분을 사용한 향수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비건 향수 브랜드나 친환경 패키지를 채택한 제품들이 주목받으며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이다.
다양한 향이 공존하는 시대가 되면서 강렬한 향 대신 은은한 향을 지닌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향수와 몸의 체취가 어우러져 좋은 냄새를 연출하는 방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분이나 상황에 맞춰 향수를 바꿔쓰거나, 여러 가지 향을 섞어서 사용하는 향수 레이어링 방법이 각광받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향기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기에 소용량 및 고체 향수의 판매량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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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반적으로 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브랜드들이 나서서 향수 및 관련 제품 트렌드를 제시하거나, 독특한 향수를 제조하는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뷰티 전문관 '무신사 뷰티'는 독창적인 브랜딩과 조향으로 주목받는 신진 향수 브랜드를 고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기획전과 팝업 행사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작년에는 봄맞이 향수 기획전을 열고 국내 향수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는 무신사를 찾는 고객들이 취향과 개성이 뚜렷한 패션을 완성시킬 자신만의 '시그니처 향수'를 발견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무신사 뷰티 내 향수 거래액은 눈에 띄게 향상 중에 있다.
향과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도 향수를 선보이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교보문고는 특별한 독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The Scent of Page(책향)'을 선보였다. 이는 서점업계 최초로 시도한 '브랜드 공간의 향'으로, 2018년 첫 출시 이후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130만 개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어 올해에는 리뉴얼을 통해 '나를 깨우는 생각의 숲'이라는 콘셉트 아래 책을 모티브로 한 향수병 디자인과 딥 포레스트 그린 컬러의 패키지 디자인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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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큰 트렌드를 이끌어냈던 미국 잡지 킨포크(KINFOLK) 또한 뷰티 및 향수 제품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킨포크 노츠(Kinfolk Notes)'는 슬로 라이프 및 슬로 럭셔리를 추구하는 브랜드의 철학이 담긴 향수 브랜드다. '향기로 쓰는 나만의 이야기, 슬로 리추얼'라는 테마 아래 킨포크의 글로벌 팀이 각국의 파트너들과 협업하여 만들어낸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들이 향기처럼 추억을 병에 담고, 그 추억을 되살리고 싶을 때 다시 병을 열어 순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향들은 그동안 킨포크가 추구해온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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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기억과 감정을 조율하고, 공간의 분위기와 감성을 색다르게 연출하는 강력한 요소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향 관련 산업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공지능(AI)이 접목되면서 개인의 체취, 피부 pH, 호르몬 등을 분석해 최적의 향을 추천하는 서비스나 자신만의 시그니처 향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맞춤형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호텔, 자동차, 공항, 쇼핑몰 등 다양한 공간에서 브랜드별 시그니처 향을 활용한 체험 마케팅이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정신 건강과 웰빙 분야에서도 향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향기를 통한 감각적 경험이 생활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이처럼 향기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두산 두피디아 여행기 여행 작가 /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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