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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아 오도라마 시티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는 언제나 확실하다. 《오도라마 시티》는 그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만든 도시다. 이 전시에서는 시각보다 더 직접적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향기’가 중심이 되며, 그 안에는 무수한 기억의 조각들이 녹아 있다. 작가 구정아는 ‘냄새’라는 감각을 통해, 가시와 비가시의 경계를 넘어선 감각의 도시를 그려냈다.

©계윤선

전시는 아르코미술관 1층과 2층을 모두 사용해 구성되어 있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을 맞이하는 건 약 600편에 이르는 ‘향기 메모리’이다. 각 스토리는 약 120개의 배너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으며, 이야기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 향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기억들은 단순히 한국인의 경험만이 아니다. 전시에 앞서, 코엑스 앞 대형 전광판을 통해 QR 코드를 활용해 전 세계 시민들의 ‘한반도의 향기’에 대한 기억을 수집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외국인들도 참여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전시된 스토리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되었다.

©계윤선

흥미로운 건, ‘한반도의 향기’라는 주제로 수집된 이 이야기들이 단지 관광의 스냅숏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의 기억에는 단기 여행의 인상뿐 아니라, 몇 년간 거주하며 체화한 경험, 그리고 한반도 북쪽—북한에 대한 상상과 체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에서 느낀 탄 냄새 같은 공기”, “90년대 한국 지하상가의 향”, “어릴 적 외갓집에서 맡았던 나프탈렌 냄새” 등 구체적이면서도 공감각적인 기억들이 그 안에 숨 쉬고 있었다. 각 이야기마다 그 사람의 시간, 공간, 감정이 묻어나 있었고, 그것이 모여 하나의 무형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 방대한 이야기들을 작가 구정아는 모두 직접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스토리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를 추출해 17명의 조향사에게 전달했다. 이 조향사들은 모두 외국인이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깊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주어진 키워드를 해석하기 위해 스스로 한반도와 한국 문화를 공부하고, 유사한 향을 찾아내기 위한 탐색을 거쳤다. 이는 단순한 향의 제작을 넘어, ‘문화적 조향’이라는 예술적 시도이자 해석의 확장이었다.

©계윤선

조향사 중 한 명은 과거 국내 비엔날레에서 구정아 작가와 협업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서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을 다시 향기로 번역하는 복합 매체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오도라마 시티》 역시 그 흐름 위에 있으며, 감각은 서로를 호출하고 번역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감각의 연결은 전시장 1층 중앙에 놓인 독특한 형태의 테이블에서도 드러난다. 여러 개의 동그라미가 이어진 유기적 형태의 이 테이블은 구정아 작가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관람객이 그 위에서 그녀의 책을 펼쳐보기를 원했던 공간이다. 이 책 역시 매우 특별했다. 표지 안쪽에는 숨겨진 색이 있었고, 책을 펼치면 향기가 스며나왔다. 페이지 사이에는 ‘rice paper’라 불리는 얇고 반투명한 종이가 삽입되어 있었고, 그 위에 적힌 문장과 그림은 마치 앞뒤로 비쳐 보이는 듯한 독특한 시각 효과를 만들어냈다. 시각, 후각, 촉각이 모두 개입되는 이 책은 또 하나의 ‘향기의 도시’였다.

©계윤선

2층 전시장에서는 이렇게 조향된 17개의 향기가 소형 뫼비우스 링에 담겨 전시되어 있다. 각각의 향기를 맡는 순간, 감각은 과거의 시간 속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이 경험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바로 향기에도 ‘시대의 트렌드’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같은 냄새를 맡고도 전혀 다른 기억을 떠올리지만, 특정 세대가 공유하는 향기의 기억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오래된 가전제품에서 나는 전자 냄새”처럼 어떤 시기의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각은 일종의 ‘냄새로 된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계윤선

또한 조향 체험행사에서는 동일한 향도 사람에 따라 좋게 느껴지기도 하고 불쾌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으로 ‘불쾌한 냄새’로 여겨지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그리운 향기일 수 있다. 김치, 홍어처럼. 향기에 대한 감각은 문화와 기억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하나의 향이 조합될 때 완전히 새로운 향기로 재탄생한다는 점이다. 원재료 자체는 강하거나 날카로울 수 있지만, 적절한 비율과 조화로 조향될 때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향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마치 삶과 기억, 경험이 섞여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내는 과정처럼, 향기의 조합도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문 같았다.

©계윤선

끝으로, 전시장을 관통하는 시각적 인상 하나가 있다면 바로 ‘푸른 벽’이다. 구정아 작가는 약 20년간 꾸준히 자신의 작품 전시에 ‘고유의 색’을 사용해 왔는데, 이 색은 바로 ‘Koo Jeong A Blue (#78C6D0)’라는 고유한 컬러코드로 정의되어 있다. 부드러운 푸른 빛을 띠는 이 색상은 이번 전시에서도 161cm 높이까지 벽면에 동일하게 칠해졌고, 그 높이 또한 작가의 오랜 전시 컨셉 중 하나다. 왜 161cm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안에는 작가가 감각과 공간을 다루는 철저하고도 일관된 철학이 담겨 있는 듯했다. 시각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인 높이이자, 향기와 기억, 언어가 어우러진 이 공간의 흐름을 부드럽게 정돈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계윤선

《오도라마 시티》는 단순히 예술작품을 ‘보는’ 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향기를 따라 나만의 기억 속 공간을 유영하게 만드는, 무형의 도시 여행이었고, 타인의 기억과 나의 감각이 만나는 교차점이었다. 이 전시는 단순한 후각 예술을 넘어, 기억, 문화, 세대, 감정, 역사까지 포용하는 복합적인 감각의 도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도시를 걸으며, 나의 삶과 세계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계윤선(국내)
-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 석사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미래전략대학원 지식재산 박사 졸업
-KT 융합기술원 연구소 UX 기획가
(현) 현대자동차 차량 소프트웨어개발 연구소 서비스 기획 및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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