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다, '아네모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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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렌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레트로'다. 이는 과거의 유행이 다시 돌아오는 현상을 의미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추억을,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신선한 매력을 선사한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 박민정
레트로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그 시절의 감성과 분위기, 향수를 자극하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지만 과거에는 당연했던 일상이나 문화도 레트로의 범주에 포함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들로 가득해 매회 큰 화제를 모았다. 서울 을지로의 거리 풍경 역시 수십 년 전에는 일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새롭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와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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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레트로 열풍이 지속되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세대에 따라 새로운 용어도 등장하고 있다. ‘레트로’라는 개념이 과거를 실제로 경험한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그 이후 태어나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레트로의 분위기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즐기는 젊은 세대의 성향이 반영되어 '뉴트로(New + Retro)'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처럼 과거의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흐름이 트렌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 모호한 슬픔들의 사전 유튜브 채널
'아네모이아(Anemoia)'란 신조어 또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이 단어는 존 코에닉(John Koenig)이 2021년에 출간한 '모호한 슬픔들의 사전(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로,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련함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

ⓒ 모호한 슬픔들의 사전 홈페이지
저서는 코에닉이 진행한 영어 단어 창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으며, 아직 언어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감정들에 대해 그가 정의한 단어들이 담겨 있다.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을 기반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그의 언어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라틴어·게르만어·고대 그리스어 등에서 유래한 어근과 접미사를 활용해 기존 영어 어휘와 유사한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코에닉은 이 작업을 통해 ‘실존주의적 감정’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해왔으며, 기존 언어로는 포착하기 어려웠던 감정에 대한 '언어의 빈틈'을 채우고 있다. 예를 들어, '아베누아르(Avenoir)'는 '자신의 삶을 홈비디오처럼 되돌아보며 시간의 흐름을 탐구하는 감정'을 뜻하며, '손더(Sonder)'는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 또한 자신처럼 복잡하고 풍부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처럼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단어들은 브랜드나 미디어 콘텐츠의 제목에 사용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정의한 아네모이아 또한 발표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레트로 열풍과 맞물려, 실제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해 막연한 그리움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이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트렌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레트로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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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에 따라, 현재 레트로 트렌드의 중심에는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는 'Z세대'가 있다. 이들이 열광하는 현상들을 살펴보면, 레트로 열풍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패션, 음악, 디자인,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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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열풍에 힘입어 지역 고유의 특색을 살린 축제들이 최근 더욱 활기를 띠고 있는 데에는 아네모이아 감성을 지닌 Z세대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이들은 대중적인 관광 명소나 유명 가수가 출연하는 대형 이벤트가 있는 축제보다 지역 문화와 계절의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축제에 더욱 큰 매력을 느낀다. 실제로 최근 인기를 끄는 지역 축제들은 지역 주민의 삶과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Z세대는 이전 세대조차 경험하지 못했던 축제 분위기를 즐기며 열광한다. 이들은 축제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상상하고 해석하며, 그 속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 박민정
지역 축제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또 하나의 트렌드는 바로 ‘제철코어’다. 이는 특정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먹거리, 콘텐츠, 장소, 행사 등을 즐기는 문화를 뜻한다. 이는 봄을 맞이하여 벚꽃 축제를 찾아가거나, 제철에 나오는 과일을 맛보거나, 계절에 어울리는 드라마나 음악을 들으며 계절 특유의 감성을 느끼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흐려지는 사계절의 경계 속에서 계절이 주는 특별함과 향수를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로 인해 계절을 오롯이 체감하기 어려워진 지금, 제철코어는 Z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감성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확산되고 있다.

ⓒ 박민정
레트로, 아네모이아, 제철코어처럼 Z세대가 주도하는 감성 기반 트렌드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감성과 정체성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콘텐츠와 마케팅, 지역 문화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시대를 넘나드는 감성과 공감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있게 살아가려는 세대의 아이디어와 경험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자료>
모호한 슬픔들의 사전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obscuresorrows
모호한 슬픔들의 사전 홈페이지
https://www.dictionaryofobscuresorrows.com/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두산 두피디아 여행기 여행 작가 /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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