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민정
'20세기에 이미 21세기를 산 작가', '21세기에 먼저 도착한 아티스트', '빛의 조각가'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미디어 아티스트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의 전시가 푸투라 서울에서 5월 1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빛과 시간을 조형 언어로 삼아 영화, 조각, 설치의 경계를 허문 전설적인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이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안소니 맥콜의 초기 필름 작업부터 최근의 디지털 프로젝션 신작까지, 50여 년간에 걸친 예술적 실험과 혁신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안소니 맥콜은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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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영국 세인트 폴스 크레이(St Paul's Cray)에서 태어난 맥콜은 1964년부터 4년 간 영국 켄트주 브롬리(Bromley)에 있는 레이븐스본 미술 디자인 대학(Ravensbourne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사진을 전공했다. 이어 1970년대 아방가르드 런던 영화 제작자 협동조합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며 불을 사용한 영화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에서는 1972년 작 '불의 풍경(Landscape for Fire)'이 전시되어 있어 이 시기의 작가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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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뉴욕으로 이주한 맥콜은 그의 대표작인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을 개발해낸다. 이는 안갯속에 투사된 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며 공간에서 서서히 진화하는 3차원적인 조각의 형태로, 관객이 직접 빛의 조각 속으로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몰입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영화적 시공간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시간과 움직임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본질적 전환을 이끈다. 이처럼 맥콜은 '몰입형 예술(Immersive art)'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되기 훨씬 이전인 1970년대부터 이미 빛과 공간을 통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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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9년부터 약 20여 년간 작업을 중단한 그는, 2000년대에 디지털 기술과 함께 활동을 재개하며 더욱 정교하고 몰입적인 빛의 구조물로서의 설치작업을 전개해왔다. 또한 그는 전통적인 영화 형식의 경계를 넘어 설치, 조각, 드로잉 등 여러 예술적 요소와 융합하는 '확장 시네마(Expanded Cinema)'를 통해 영화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의 작품은 빛과 시간이라는 영화의 본질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지만, 스크린을 제외하고 물리적인 공간에 빛을 투사하며 관객들이 작품에 참여해 다양한 관점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언제나 관객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그의 작업은 능동적인 참여와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예술적 혁신성은 휘트니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런던 테이트 브리튼, 런던 서펜타인, 뉴욕 모마,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과 같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소개되며 역사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푸투라 서울 외에 테이트 모던 등에서 그의 작품을 조명하며 시대를 앞선 선구자의 개념을 이해하는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50여 년에 걸친 예술적 실험과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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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작가가 작품을 위해 들인 노력을 느낄 수 있는 아카이브로 시작된다. 아이디어 스케치, 스토리보드, 1970년대 진행했던 퍼포먼스 영상의 스틸컷 및 전시 전경, 포스터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수첩은 작가의 창작의 과정을 구체화해나가는 중요한 도구로, 180여 권에 달하는 수첩 속에서 아이디어가 형성되고 진화해 온 궤적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솔리드 라이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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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 라이트에 대한 작가의 노력은 일곱 개의 풋 프린트 드로잉으로 구성된 '숨결 III(Breath III, 2011)'에서 느낄 수 있다. 그의 솔리드 라이트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형태를 다루기에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섬세한 계획과 시뮬레이션이 요구된다. 이 드로잉은 선형의 빛줄기가 공간 안에서 기하학적 형태로 어떻게 확장되고 변화하는지를 구체화하는 도구이자, 작품의 최종 형태와 관객의 경험을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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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 라이트만큼이나 관람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작품은 바로 '트래블링 웨이브(Traveling Wave, 1973)'다. 1972년 영국에서 처음 제작된 이 설치작품은 그의 대표작과 마찬가지로 심플하지만 물질성과 몰입형 경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작품이다. 빛 대신 소리를 매개로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전시장에서는 '단순한 물질이 아닌 감각의 파동으로 확장된다.'란 문구가 함께 하여 색다른 감각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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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백미는 무엇보다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일 것이다. 2006년에 '공개된 당신과 나 사이(Between You and I)'와 더불어 천둥소리를 더한 '스카이라이트(Skylight, 2020)'는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스카이라이트는 넓고 높은 공간을 요구하는 작품이기에 그동안 대중에게 선보이기 어려웠다고 한다. 2020년에 모형 크기로 처음 제작되었으며, 푸투라 서울에서 실물 크기로 처음 전시되는 것이다.
작품 속을 거니는 이들은 서서히 빛이 입제적으로 과정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영화가 화면에서 시간적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를 통해 영화의 경계를 확장하려 노력했던 작가의 의도를 체험하며, 영화와 예술의 두 개념을 동시에 탐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시간을 경험하는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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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예술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하면서도 '이미지를 넘어선 빛의 조각은 가능한가'에 대한 일관된 사유를 유지해왔다. 물리성과 비물리성, 영상과 설치, 정지와 운동, 명확함과 모호함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몰입형 환경으로 변해가는 현재의 예술계에서도 여전히 현대적이며 선구적이다. 수십 년에 걸쳐 집요하게 탐구해온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는 9월 7일까지 진행된다.
안소니 맥콜: Works 1972-2020 (Anthony McCall: Works 1972-2020)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61 푸투라 서울
2025년 5월 1일(목) - 9월 7일(일)
화, 수, 목, 금, 일 09:30-18:00
토 09:30-20:00 / 월요일 휴무
일반 18,000원 / 대학생 12,000원/중고등학생, 어린이 10,000원
https://futuraseoul.org/78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두산 두피디아 여행기 여행 작가 /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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