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소비 행태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이러한 변화는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전 세대의 소비 방향을 이끌고 있다. 그동안 소비의 중심에 있던 MZ 세대의 소비 성향은 '플렉스(Flex)', '욜로(YOLO)',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등의 키워드로 대표되고 있었다. 쉽게 말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멋지고 고급스러운 콘텐츠를 구매하고 소비하며 이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 한국소비자원 보도자료
하지만 현재 소비문화는 이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3월 전국 20-60대 성인 남녀 15,0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의 제품 구매 행동 패턴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수의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기 전에 가격, 가성비, 품질 및 성능 비교 순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광고보다는 실제 제품 구매 후기나 최신 트렌드 정보를 알려주는 채널에서 정보를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동안 '가심비'나 '플렉스'에 기반한 감성적인 소비와는 다르게 합리적인 소비 패턴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보도자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지난해 말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5년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조사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80.7%는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물건 구매는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다"라고 답했으며, 89.7%는 "보여지는 소비보다 내가 만족하는 실용적인 소비를 선호한다"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꼭 필요한 물건은 직접 체험한 뒤 신중하게 구매하는 실용적 소비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환경을 고려한 현명하고 알뜰한 소비 역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 조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명품 브랜드들이 잇따라 매출 하락을 겪으면서 디자인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교체한 사례만 수십 건에 달한다. 한때 인스타그래머블한 콘텐츠의 대표격이었던 오마카세와 위스키의 소비가 줄어든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반대로 가성비를 중시하는 브랜드의 약진이 눈에 띈다. 좋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낮은 인지도 탓에 주목받지 못했던 브랜드들이 점차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무신사 스탠다드와 다이소의 성장세는 이러한 소비 변화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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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며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장소보다는 일상에서 놓치기 쉽지만 독특한 감성을 가진 장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포, 기사식당, 편의점처럼 이른바 ‘언인스타머블(Uninstagramable)’한 장소들이 개인의 시선에 따라 새로운 콘텐츠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간집'이나 '김사원세끼'와 같이 소박하지만 고유한 매력을 지닌 가게들을 소개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러닝이나 등산처럼 별다른 장비 없이도 쉽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취미 활동이 인기를 끌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과거처럼 화려한 복장과 장비를 과시하며 고급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공유하던 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이제는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스포츠에 꾸준히 몰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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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위안이 되거나 남에게 드러낼 수 있는 제품을 소비하고 이를 과시했던 소비자들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합리적으로 소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는 있겠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단연코 '경제 불황'이라고 할 수 있다. 얇아진 지갑 사정에 더 이상 과소비를 할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는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소비를 추구하며 놀이 문화로 유행한 '거지방'이나 제한된 예산 안에서 소비를 절제하는 '현금 챌린지'와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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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순히 경제적인 요인만으로 사람들의 소비 행태가 극단적으로 변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 이면에는 개인화가 강조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깔려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에 지친 이들은 이제 스스로의 만족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전 세계 모두와 소통하는 것보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아주 보통의 하루'를 누리는 것이 이들의 행복이다. 각자의 개성과 매력을 존중하기에, 소외되거나 유행에 뒤처지는 것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놓치는 것의 기쁨'을 즐긴다. 트렌드가 너무 많아 무엇이 트렌드인지 알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개인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소비에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비싼 돈을 주고 제품을 구매했다. 브랜드의 명성, 유명인의 추천, 유행과 같은 외향적인 요소들이 제품의 품질이나 필요성보다 더 중요한 구매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람들은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가의 제품이 반드시 품질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과한 소비가 진정한 만족이나 가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 덕분에 소비자들의 인식이 서서히 변화했다. 보다 냉정하게, 보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소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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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선택할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가치관을 고려하는 태도인 '미닝아웃(Meaning Out)'트렌드 역시 실용적인 소비문화를 이끄는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소비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윤리적 생산 과정, 친환경 소재 사용,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기업의 태도를 고려하며 소비를 결정한다. 더 이상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이 예쁘고 유행 아이템이라는 이유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소비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만족을 위해 하는 행동이기에, 기업의 윤리성과 철학 또한 중요한 구매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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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소비자들은 물건 구매하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표현하며 실용적인 만족을 얻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성을 따지는 소비는 그저 흘러가는 유행의 하나가 아닌, 앞으로 소비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위한 소비'이자 '세상을 위한 소비'로서 실용적인 소비는 앞으로도 꾸준히 지지를 얻고, 점점 더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한국소비자원 보도자료 '소비자의 제품 선택 기준, ‘가격’이 가장 중요'
https://www.kca.go.kr/home/sub.do?menukey=4002&mode=view&no=1003662192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보도자료 '꼭 필요한 것만 사면서도 환경까지 생각하는 소비가 대세'
https://www.kobaco.co.kr/site/main/board/news/24133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두산 두피디아 여행기 여행 작가 /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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