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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힙의 시대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이미지, 영상 등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대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콘텐츠를 봐야 하기에, 1분 남짓한 숏폼 콘텐츠가 대세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어느 세대보다 더 빠르고 쉽게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다시금 '독서'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글을 읽는 것이 보다 멋있는 취미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여 '텍스트 힙(Text Hip)'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의 용어 해설에 따르면, 텍스트 힙은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멋있다', '개성 있다'를 뜻하는 '힙(Hip)'를 합성한 신조어다. 말 그대로 '독서 행위가 멋지고 세련된 활동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동향으로, 독서를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자기표현과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 가디언지의 '독서는 섹시해(Reading is Sexy)' 기사 

theguardian.com/books/2024/feb/09/reading-is-so-sexy-gen-z-turns-to-physical-books-and-libraries

 

이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2024년 영국 가디언(The Guadian)지가 영국 내 1020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종이책 읽기 열풍’을 조명하며 '독서는 섹시해(Reading is Sexy)'라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기사 제목은 세계적인 모델 카이아 거버(Kaia Gerber)가 독서 클럽을 만들면서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라고 말한 인터뷰에서 따온 것이다. 이 기사가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독서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는 책과 함께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그저 지루하다고 여겨지던 독서가 '남과 다른 나만의 독특한 취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최근 독서 열풍은 국내 스타들의 행보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배우이자 출판사 '무제'의 대표인 박정민은 '듣는 소설' 시리즈를 선보이며 새로운 독서 문화를 제안했다. 평소 독서 애호가로 알려져 있는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이 방송과 매체를 통해 소개한 책들은 잇따라 완판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초역 부처의 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등이 장원영의 영향력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끈 책들이다. 이 외에도 배우 고현정, 가수 이효리 등도 독서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유행을 이끄는 셀럽들의 독서 사랑은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며 책 읽는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 박민정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독서 열풍에 더욱 불을 지폈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한 그녀의 쾌거는 국내 문학 시장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교보문고 증 주요 서점에서는 한강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수상 6일 만에 책 판매량이 100만 부를 돌파하는 등 그야말로 '한강 신드롬'이 일었다. 특히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문학 서적 대출과 독서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독서 모임과 필사, 책 관련 굿즈 판매도 함께 급증하는 등 다양한 문화적 확산 효과를 낳고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MZ 세대에 이어, 알파 세대에서도 텍스트힙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통계 자료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성인(만 19세 이상)보다 학생(초·중·고등학교 학생)의 종합 독서율이 현저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의 독서율을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반면에 학생들의 독서율은 다시 상승세로 전환되며 고무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학생의 독서율이 95.8%로 성인의 43%에 비해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 독서에 참여한 학생의 55.2%가 독후감 쓰기, 서평 쓰기, 블로그에 감상평 올리기 등 개인 독서 표현활동에 참여했다고 답했다. 종이책의 비율이 높은 점 역시 주목할 만한 결과다.

 

 


ⓒ 유튜브 내 '서울국제도서전' 검색 결과 화면 

youtube.com 

 

이와 같은 텍스트힙 열풍은 최근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내 최대의 책 축제이자 한국과 세계를 책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행사에서는 책을 만드는 출판인들과 작가,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함께하며 뜨거운 열기를 이어나갔다. 이런 분위기는 소셜미디어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는 도서전에 참여한 후기부터, 꼭 들러야 할 부스와 출판사 라인업, 필수로 구매해야 할 책과 굿즈, 도서전 활용 꿀팁을 소개하는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특히 올해는 평산책방 운영자로 참여한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가 큰 화제를 모으며 도서전에 대한 관심을 더욱 끌어올렸다.

 

 


ⓒ pexels.com/ko-kr/photo/5530630/ 

 

도파민을 자극하는 짧은 쇼츠 영상을 수백, 수천 개씩 소비하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일상이 된 지금, 오히려 책을 읽는 행위가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소비를 넘어, 자신만의 취향과 감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으며 지속적인 트렌드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다시금 활자에 열광하는 이유는, 몇십 초 만에 사라져버리고 마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고 마는 콘텐츠보다, 깊은 여운을 남기고 교양을 채워주는 의미 있는 경험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경험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독서가 다시 주목받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목할 점은 이 트렌드가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을 읽고, 이를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파생된 아이디어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흥행은 물론, 각 서점의 도서 판매량 증가, 그리고 '듣는 소설' 시리즈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텍스트 힙’이라는 트렌드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도서관 용어 해설 텍스트힙(Text Hip)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박민정(국내)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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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서울국제도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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