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지속된 경기 불황은 개인의 소비 행태에 뚜렷한 변화를 이끌었다.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며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유를 과시하는 이른바 '플렉스'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한다. 또한 구매 이전에는 가격 대비 성능, 장기적인 활용 가능성, 브랜드 신뢰도 등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를 비교 및 분석한 후 소비를 결정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소비 성향과 기준의 변화는 구매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프라인보다 상품 비교와 가격 검색이 상대적으로 편리한 온라인 플랫폼이 주요 소비 채널로 자리 잡았으며,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물건을 파는 다이소와 같은 유통 업체가 인기를 얻고 성장 중이다. 또한 현금으로만 소비하는 '현금 챌린지'를 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이는 신용카드나 간편 결제 시스템 등 비현금 수단의 사용을 자제하고, 일정 기간 동안 현금만으로 지출을 관리함으로써 소비 충동을 억제하는 소비 생활이다.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일상을 꾸리고,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 스스로 자신의 소비 행태를 보다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재편해 나가는 모습은 현재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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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소분 모임'이 증가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 모임은 코스트코,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같은 창고형 마트나 도매 시장에서 파는 대용량 제품을 공동으로 구매하고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용량 제품은 소용량에 비해 단위 가격이 저렴한 장점이 있지만, 1-2인 가구에게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양을 구매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소분 모임은 이런 단점을 해결하고 각자 원하는 물품을 소비할 수 있게 한다. 당근마켓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구매 행태는 실속형 소비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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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소분 모임은 왜 화제가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임을 구성하는 이들 대부분이 기존에 면식이 없던 사람들이라는 점에 있다. 기존의 창고형 마트나 도매 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들 대부분은 친구나 가족 등, '아는 사람'들과 함께 대용량 제품을 나누어 구매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와 다르게 요즘의 소분 모임은 오로지 합리적인 구매를 위해 자발적으로 형성되며, 이 과정에서 개인 간의 관계보다는 '소비 효율성'이 중심이 된다.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익명의 이웃과 대화를 나눈 후, 원하는 물품이 있으면 오프라인으로 만나 같이 장을 보고 물건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때로는 한 사람이 먼저 구매한 제품을 필요한 이들과 나누는 방식으로 소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당근마켓이 지난 7월 2일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신규로 생성된 소분 모임의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11% 증가했다. 불과 1년 만에 비슷한 유형의 커뮤니티 모임이 5배 넘게 늘어났다는 사실은 실속형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종시의 '코스트코 소분 모임'의 경우 가입자 수가 800명을 넘어섰다. 이 밖에도 다양한 지역에서 같이 장을 볼 사람을 구하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모임에서는 세제, 두루마리 휴지 등 대용량으로만 판매되는 생필품을 함께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통해 온라인에서 맺어진 이웃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쿠팡 소분 모임' 등 새로운 유통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모임도 등장하고 있다.

ⓒ 당근마켓 내 꽃소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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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소분 모임의 적용 범위가 단순히 생필품 구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는 분야는 도매 시장의 '꽃 구매' 영역이다. 그동안 고속터미널이나 양재꽃시장 등에서 대량으로만 판매되는 꽃을 개인이 구매하기에는 부담이 따랐다. 그러나 소분 모임을 통해 이를 공동 구매함으로써 합리적인 가격으로 필요한 만큼만 꽃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취미 활동이나 인테리어 소품 활용이 가능해졌고, 이에 대한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의 '꽃 소분하는 모임'의 경우 올해에만 80회 이상의 모임 일정이 생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모임은 구매뿐만 아니라 클래스나 관련 활동으로 확장되며 더욱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소분 모임은 이전부터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공동 구매'와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개인적인 친분 없이 구매를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러나 지역 기반의 이웃들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연결되고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나 구매를 진행한다는 점은 기존의 공동 구매와는 구분되는 점이다. 또한 소분 모임이 단순히 공동 구매를 넘어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으로 확장되는 모습에서 앞으로의 소비 행태에 영향을 미칠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구매 방식보다 훨씬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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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분 모임이 발생하고 확산된 배경을 보면 여러 가지 사회 요인들이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 불황으로 인한 소비 위축, 합리적인 구매를 추구하는 소비문화의 확산, 1인 가구의 증가, 개인의 취향을 공유하려는 경향 증가, 온라인을 통한 공동체 형성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소비 방법이 등장했고, 이제는 역으로 사회의 전반의 소비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도 '필요한 만큼, 함께 구매하는' 방법은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측되며, 유아 용품이나 반려동물 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분 모임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두산 두피디아 여행기 여행 작가 /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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