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민정
남산 자락에 터를 잡고 1983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힐튼서울은 성장하는 도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이정표였다. 그러나 두 차례의 경영권 이양과 팬데믹으로 인한 장기적인 영업 부진, 그리고 양동지구 재개발 계획으로 결국 2022년 12월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한때 서울의 국제적인 활력과 도시적인 삶을 상징하던 이 건축물은 현재 철거에 들어간 상태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추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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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서는 《힐튼서울 자서전》을 통해 이 건축물이 걸어온 시간을 되짚고, 40여 년의 시간 속에서 축적된 수많은 사연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건축 큐레이팅 콜렉티브 CAC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서지우, 임정의, 최용준, 노송희, 백윤석, 테크캡슐, 그래픽캐뷰러리가 참여하여 힐튼서울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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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서울은 1세대 건축가인 김종성의 설계에 대우그룹과 힐튼 인터내셔널의 협력이 더해져 완성된 작품이다. 서울이 국제도시로 도약하려던 시기에 꼭 필요했던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성 건축가는 시간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건축 디자인을 구상했고, 여기에 두 기업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높은 품격과 완성도를 갖춘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남산을 감싸 안 듯 구성된 외관과 더불어 녹색 대리석·트래버틴·브론즈·오크와 같은 고급 소재로 장식된 내부, 대지의 특징을 살려 18미터 높이로 설계된 웅장한 아트리움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환대의 경험을 선사했다. 덕분에 힐튼서울은 개장 이후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 총회(1985), 아시안게임(1986), 서울올림픽(1988) 등 굵직한 국제행사 무대로 활용되며 한국 사회의 국제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은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복합적인 경험의 장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도시의 문화적인 중심지로 기능하며 결혼식, 업무 미팅, 가족 외식 등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만남을 주선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도회적인 풍요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한 힐튼서울은 당시 도시 풍경과 중산층 소비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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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시대를 뒤로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힐튼서울에 작별을 고하는 이 전시는 건물의 철거 과정을 다룬 기록들에서부터 시작된다. 해체와 재구성에 주목하며 현대 건축과 도시를 탐구하는 작가 그룹 테크캡슐은 힐튼서울의 철거 현장을 밀착해 기록하며 시대를 대표했던 건축물이 허물어져가는 순간을 가감 없이 담았다. 이를 통해 건축의 수명과 유한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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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로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자재가 수거되어 전시 공간에 놓이고, 또 작가의 작품 소재로 사용된 모습은 자연스럽게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지우 작가는 철거 현장에서 습득한 다양한 자재를 재구성해 해체된 건축을 색다른 조형으로 재탄생시켰다. 타임머신을 연상케하는 작품은 건축이 품었던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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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서는 건축 설계를 맡았던 김종성 건축가의 인터뷰와 도면을 비롯하여 수년간 변경되고 수정된 계획들, 관계자 간에 오간 서신들, 건설부터 운영, 철거까지의 모든 기록들이 함께 하며 힐튼서울이 지나온 지나온 시간의 궤적을 추적한다. 설계 단계부터 실제 사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들과 더불어 세부적인 디테일까지 치밀하게 설계한 도면 등을 통해 한 시대를 대표했던 건축물에 깃든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되새기게 한다. 특히 20세기 중후반 한국 건축에서 힐튼서울만큼 건축가의 공간 장악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기에, 이 기록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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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와 준공 과정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부분은 호텔을 지켜온 사람들의 기록이다. 호텔 곳곳을 채웠던 물건들과 더불어 준공 이후 공간을 사용하고 돌보아온 이들의 발자취는 건축물의 역사와 의미를 다시금 회상하게 하게 만든다. 특히 건물에서 실제로 쓰였던 열쇠 꾸러미와 장부는 오랜 세월 호텔을 지켜온 이들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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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그래픽캐뷰러리의 작품들은 과거 호텔의 분위기를 유추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들은 2022년 가을, 힐튼서울 1430호 객실에 약 3개월간 머무르며 건축물에 축적된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래픽과 회화 작품을 만들어냈다. 사라질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상상과 기억을 덧입힌 회화 작품과 카펫과 벽지 등 호텔 인테리어의 패턴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 작품은 호텔의 정서를 다시금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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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서울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아트리움의 자선열차가 3년 만에 복원되어 크리스마스의 아련한 추억을 재현하고 있다.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마지막으로 이제 더 이상 서울에 존재하지 않을 힐튼서울에 대한 그리움과 작별을 담은 이 전시에 호텔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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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밖에는 힐튼서울과 같은 시대를 함께했던 현대자동차의 첫 중형 고유 모델 '스텔라'의 스페셜 에디션과 아카이브가 마련되어 있다. '별의' 뜻을 담은 스텔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지원차량으로 세계인을 맞이했으며, 일상 속에서 편의와 즐거움을 선사했다. 아카이브에서는 스텔라의 역사와 더불어 그 정신이 쏘나타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호텔과 자동차의 궤적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다시금 되짚어볼 수 있는 의미 깊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힐튼서울 자서전》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 30 피크닉
2025년 9월 25일 - 2026년 1월 14일
화-일요일 10:00-18:00
https://www.piknic.kr/home/index.php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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