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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고, 엮고, 발견하는 오늘 - 히무로 유리의 작품 세계

그라운스시소 한남(GROUNDSEESAW Hannam)에서 일본의 텍스타일 디자이너 히무로 유리의 전시《오늘의 기쁨》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천 위에 펼쳐내어 평범한 순간이 얼마나 다채롭게 피어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 

 

1989년에 도쿄에서 태어난 히무로 유리(Yuri Himuro)는 타마 미술대학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그녀는 위빙(Weaving, 직조) 방식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작업으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앞 뒤 이미지를 다르게 만든 후, 가위로 실을 조금씩 잘라내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이미지가 드러나는 독특한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한 패턴 디자인을 넘어서 짜임의 구조 자체를 설계 단계에서부터 치밀하게 고민해야 가능하다.

 

히무로 유리의 대표 시리즈 『스닙 스냅(SNIP SNAP)』은 가위질 소리에서 착안한 이름처럼, 겉 면의 실을 ‘싹뚝’ 자를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는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파란 실을 잘라내면 넘실대는 파도가 펼쳐지고, 초록빛 풀잎 사이에서는 작은 동물이 불쑥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또한 자르는 방식에 따라 하늘에 원하는 형태의 구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스닙 스냅(SNIP SNAP) 기법을 통해 드러나는 잔디밭 |출처: https://h-m-r.net/


이번 전시에서는 천의 겉 면을 자르면 새로운 디자인이 드러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텍스타일 작품 170여 점이나 만나 볼 수 있다.    
히무로 유리는 ‘무언가 변화하는 순간' 기쁨이 생겨난다고 믿는다. 그녀에게 작업은 가까운 일상에서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장면을 찾아내어 그것을 천 위에 옮겨 담는 즐거움의 과정이다.
또한 그녀는 사람과 천의 관계 안에서 ‘놀라움’과 ‘발견’이 생겨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천을 자르거나 넘기거나 접는 행위를 통해 무늬가 변하도록 설계하여, 사용자의 행동이 천이 반응하는 장치를 디자인한다. 작품을 통해 ‘왠지 모르게 즐거워지는’ 긍정적인 감정을 끌어내고자 노력한다. 
그녀의 작업은 기억과 상상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만든 패턴을 계기로 보는 이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연상하며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그렇게 작품은 작가의 세계를 넘어, 각자의 기억 속으로 확장된다. 

히무로 유리의 작품은 천을 매개로 작가와 사용자 모두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긍정적인 감정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다. 
히무로는 마리메꼬(Marimekko), 로에베(LOEWE), 포르쉐(Porsche), 몰스킨(Moleskine), 키티버니포니(Kitty Bunny Pony), 넷플릭스(Netflix)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발랄하면서도 섬세한 감성, 그리고 탁월한 색채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해오고 있다.

넷플릭스 <포켓몬 컨시어지> 세트장 텍스타일 디자인
​히무로 디자인 스튜디오(HIMURO DESIGN STUDIO)는 넷플릭스 시리즈《포켓몬 컨시어지(Pokémon Concierge)》의 일부 캐릭터 의상과 세트 장식의 텍스타일 디자인 및 제작을 맡았다. 주인공 하루(Haru)의 셔츠와 스카프 원단을 비롯해, 포켓몬 리조트(Pokémon Resort)의 기둥에 사용된 패브릭, 그리고 하루의 방을 장식하는 커튼과 쿠션 패턴 등을 디자인하여 제작했다.

넷플릭스 시리즈〈포켓몬 컨시어지(Pokémon Concierge)〉의 주인공 하루가 나오는 메인 포스터 장면. 출처: https://h-m-r.net/detail/2024/2.html


넷플릭스 시리즈〈포켓몬 컨시어지(Pokémon Concierge)〉의 한 장면.  출처: https://h-m-r.net/detail/2024/2.html

핀란드의 대표적인 텍스타일 브랜드 마리메꼬(Marimekko)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한 인스타그램 릴스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영상에는 히무로 유리의 시그니처 텍스타일 작품인『SNIP SNAP LAPLAND』가 등장하며, 얼음 속에서 작가의 가위질을 통해 마리메꼬의 로고가 살아나듯 드러나는 생동감있고 재미난 영상을 담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LOEWE)와도 협업하여 또 하나의 인상적인 영상을 선보였다. 
영상에는 히무로 유리의 시그니처 텍스타일 작품『SNIP SNAP SHIBA』가 등장하며, 풀밭 속에서 잔디 깎는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숨어있던 로에베의 로고가 점차 드러나는 독창적인 디자인을 보여준다. 짧은 영상 속에서도 텍스타일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의 매체로 확장시켜 나가는 작가의 감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스타그램 릴스 영상으로 화제가 된 마리메꼬(Marimekko)와  로에베(LOEWE) 로고 디자인

그라운스시소 한남(GROUNDSEESAW Hannam)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에서는 ‘기쁨이 피어나는 정원’, ‘땅 속의 비밀’, ‘하늘 극장’, ‘바다의 노래’, ‘춤추는 패턴’, ‘정겨운 마을’, ‘겨울 놀이터’, ‘유리의 방’으로 이루어진 총 8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제는 히무로 유리의 작품 세계를 다양한 시선으로 탐색하도록 이끈다.
소주제에 맞게 아기자기하면서도 재미나게 꾸며진 공간을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와 추구하는 방향이 오롯이 드러난다.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의 구성과 연출에도 많은 공을 기울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직조 방식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부족한 관람객이라 할지라도 천 위에 펼쳐진 다양한 패턴과 색, 그리고 숨겨진 이미지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는 작가가 오래도록 고민하며 쌓아온 섬세한 실험과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Chaper1. 기쁨이 피어나는 정원  ©류인혜 

잔디 위에 무수히 피어난 꽃처럼 아름답게 연출된 첫 섹션에서는, 전동 롤스크린이 천천히 움직이며 직조된 패브릭의 양면을 보여준다. 앞면에는 꽃무늬가 가득하고, 뒷면에는 줄기와 잎이 어우러진 패턴을 담은 텍스타일로, 앞뒤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공간에 생기를 더한다.


Chaper2. 땅 속의 비밀

두 번째 섹션에서는 동굴 속에 들어간 듯한 연출로 공간에 재미를 주었다. 작품 속 노란 실을 가위로 자르면 땅 속을 판 것처럼 그 안에서 공룡 뼈, 고대 토기 등 감춰져 있던 것들이 나타난다. 가위를 이용해 숨겨진 무늬를 찾아내는 과정과 하나씩 꺼내어보는 ‘발굴’이라는 주제가 닮아 있다.   



Chaper4. 바다의 노래  ©류인혜 

일렁이는 파도처럼 연출된 이 전시 공간의 중심에는, 천장에 매달린 기다란 패브릭이 바다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 수영하는 사람, 튜브를 타고 노는 아이, 점프하는 돌고래 등 바다의 활기찬 풍경이 정교하게 담겨 있다.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에 빠져든다. 특히 섬세한 직조와 색감, 그리고 가위질을 통해 드러나는 다층적인 패턴은 같은 작품이라도 보는 각도와 순간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생동감이 든다.  

COLOR WAVE


독자적인 발명을 한 사람이 좋은 아트스트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나 관점을 찾아 깊이 파고드는 스타일에 끌립니다.

저도 천을 짜는 구조를 포함해서 지금껏 본 적 없는 텍스타일을 창조해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무늬가 달라지는 오묘한 빛깔의 담요들이 전시되어 있다. 볼록하게 솟은 부분에 서로 다른 두 이미지를 조합한 디자인이 짜여 있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좌우로 걸으면서 바라보니 은은한 색감이 자연스럽게 변화되고 그 안에 담긴 무늬도 함께 바뀐다. 여섯 점의 은은한 빛깔을 담은 패브릭을 응시하면서 지나가다 보면 아기자기한 패턴의 귀여운 대형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동물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정겨운 마을의 모습을 푸르고 붉은 색감으로 표현하여 보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COLOR WAVE. 패브릭의 변화하는 다양한 색감과 더불어 독특한 질감도 느낄 수 있다. ©류인혜  


가위를 통해 잘라내고 만들어낸 형태는 작품에 한층 더 입체감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자르는 방향이나 모양, 그리고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내어 같은 패브릭 디자인도 다른 입체감을 드러내는 것이 히무로 유리 작가 작품의 매력이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마치 작가의 방을 옮겨 놓은 듯한 아늑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 펼쳐진다. 이전의 전시 공간에서 만났던 패브릭 작품을 비롯하여 그것을 활용하여 제작한 제품까지, 그녀의 작품이 가진 온기와 다정한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Chaper8. 유리의 방  ©류인혜 

 

'패브릭'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기쁨과 놀라움, 따뜻한 상상을 선물하는 시간이었다히무로 유리의 작품은 단순한 직조 디자인의 결과물이 아니라, 변화와 발견을 통해 생겨나는 감정의 기록이다실을 잘라내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통해 그 감정의 흐름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녀가 말하는 오늘의 기쁨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순간의 행복에 있다. 그 따뜻한 메시지는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마음 속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 참고자료 > 

https://www.instagram.com/groundseesaw/

https://www.instagram.com/himuroyuri/

https://h-m-r.net/

 

 


 

 

류인혜(국내)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실내디자인 학사 졸업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 석사 졸업
-2023 굿디자인어워드(GD) 심사위원
(현)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책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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