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형상의 거대한 구조물로 잘 알려진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의 회고전 ‘루이스 부르주아 : 덧없고 영원한’이 2025년 8월 30일 ~ 2026년 1월 4일까지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작가 성장기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출발점으로 평생 탐구해 온 ‘기억, 상처, 몸, 모성, 관계, 집’이라는 주제를 조각, 회화, 드로잉, 설치 작업 등을 통해 다양하게 시각화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110여점을 소개한다.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자, ‘감정의 조각가’라 불리기도 하는 부르주아는 40대를 넘어서면서 굵직한 작품들을 남기기 시작했고, 60대에 비로소 미술계로부터 인정받았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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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에 매달린 작품 ‘커플’이 눈에 띈다. 서로를 꼭 안고 있지만 가느다란 와이어에 걸린 모습이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사랑의 불안정함, 자신이 평생 느낀 이별과 상실의 두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나선 형태는 관계의 복잡한 얽힘, 불안과 통제 사이의 움직임, 상처와 치유가 계속 이어지는 순환을 의미한다.

커플(The Couple, 2003), 이미지 출처 : 서민정
부르주아는 인간의 형상과 배신, 상처, 봉합 등을 암시하는 작품을 반복적으로 선보였는데, 이는 그녀의 어린 시절, 영어 가정교사와 아버지의 불륜 관계로 인한 트라우마와 이 상황에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분노와 연민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겪었고, 이것은 평생 작품 활동의 주제가 되었다. 뒤틀리고 조각난 신체 형상은 상처받은 여성성을 상징하고, 봉합은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작품 커플Ⅳ(The CoupleⅣ, 1997)은 사랑과 욕망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두 연인의 머리와 팔다리를 제거하고, 검정색 천으로 만들어진 두 인물이 포옹으로 하나의 기형적인 덩어리가 된 것처럼 표현하여 관계 속에서 소멸되는 개별성과 왜곡된 욕망을 보여준다. 아래 인물에게 달린 의족은 관계가 주는 상처와 불균형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가진 옷, 담요, 수건 같은 천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커플Ⅳ(The CoupleⅣ, 1997), 이미지 출처 : 서민정
마치 감옥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품 밀실(Cell, 2006)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1991년부터 집중적으로 탐구한 밀실(Cell) 시리즈의 후기 작품이다. 철장으로 이루어진 공간 속에 부르주아의 옷을 걸친 3개의 마네킹이 걸려 있고, 드레스 아래에는 두 개의 커다란 검은색 구 2개가 놓여 있다. 이는 여성의 가슴 혹은 남성의 남근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 역시 과거의 상처, 보호, 억압이 뒤섞인 공간을 보여주고자 했다.
밀실(Cell, 2006), 이미지 출처 : 서민정
심장(Heart, 2004), 이미지 출처 : 서민정
부르주아는 작품 ‘커플Ⅳ’처럼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작품에 활용했다. 작품 ‘파쇄기(Shredder, 1983)’는 옛 의류 공장을 개조한 작업실 주변에서 구한 금속과 나무 등의 산업 재료를 이용하여, 문서 파쇄기처럼 보이는 커다란 구조물을 만들었다. 과거의 상처, 분노, 불안 같은 감정이 잘게 찢겨 나가는 과정을 담아냈으며, 파괴와 재생, 해체와 치유의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파쇄기(Shredder, 1983),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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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외제니 그랑데(Eugenie Grandet)’ 시리즈는 비즈, 핀, 코사지 등 작가의 개인 소지품을 활용해서 바느질, 자수 등으로 작업한 16점의 패널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부르주아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든 작업 중 하나로, 여성의 노동, 존재, 시간의 흐름을 다룬다. 작가는 바늘이 상처를 고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봉합이라는 행위를 통해 용서를 청하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엽서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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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슈(Gouache) 드로잉 연작은 물에 적신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물감의 부드러운 번짐을 활용한 작품이다. 유기적인 곡선과 단순한 신체 드로잉은 작가의 불안, 기억, 여성성 같은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가족(The Family, 2007), 이미지 출처 : 서민정
임신한 여인(Pregnant Woman, 2009), 이미지 출처 : 서민정
작가는 1950년대부터 인간의 신체를 단순한 형태로 축소, 왜곡한 인물 조각(Figure Sculpture) 시리즈로 불안, 갈등, 욕망 등의 감정을 담은 상징적 신체를 표현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연작을 시작했으며, 이번에는 옷감, 침구, 가구용 천과 같은 일상 속의 소재를 활용하여 불규칙한 형태의 블록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만들었다. 직물로 쌓아 올린 기둥들은 친밀한 느낌을 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회복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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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외부에도 설치되어 있는 작품 ‘거미(Maman)’ 시리즈의 또 다른 작품이 2층 전시실에 설치되어 있다. 작가에게 거미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태피스트리 복원가였던 어머니를 거미에 비유하여,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보호, 치유, 헌신의 이미지를 거대한 조각 형태로 재탄생시켰다. 날카로운 다리와 거대한 몸체는 위협적이면서도, 실을 잇고 옷감을 고쳐주던 어머니의 섬세함과 강인함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위협, 억압과 동시에 모성애, 상처의 회복을 의미하며 이중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총 6점의 거미 시리즈를 제작했다.
웅크린 거미 (Crouching Spider, 2003), 이미지 출처 : 서민정
모자상(Mother and Child, 2001), 이미지 출처 : 서민정
벽면에 길게 배열된 다수의 유방 형태로 이루어진 작품은 부드러운 색감과 유기적인 형태로 보호와 양육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동시에 기괴하고 과장된 형상을 통해 여성으로서 겪는 내적 긴장과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유방(Mamelles, 1991), 이미지 출처 : 서민정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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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첫 설치 작품인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는 붉은 조명 아래 극장 같은 장면을 통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느낀 분노와 복수의 감정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식탁 위에 놓인 유기적 형태들은 실제 고기를 본뜬 것들로, 가부장적 권위에 눌린 아이들이 결국 아버지를 식탁 위로 끌어내어 토막 내고 삼켜버리는 상상 속 반란을 표현했다.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이미지 출처 : 서민정
낡은 문으로 둘러싸인 방 안쪽에 붉은 고무로 덮인 침대가 놓여 있다. 양쪽으로 2개의 입구가 있는데 방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한쪽에서만 거울을 통해 반사되는 침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마치 아이가 부모의 은밀한 순간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입한 이 작품은 사랑과 불안이 얽혀 있는 가정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붉은 방(부모)(Red Room (Parents), 1994), 이미지 출처 : 서민정
붉은 방(부모)(Red Room (Parents), 1994), 이미지 출처 : 서민정
미술관 앞 정원에는 눈 모양을 형상화한 아이 벤치(Eye Bench) 두 쌍이 설치되어 있다. 한 쌍은 눈을 크게 뜬 형태이고, 다른 한 쌍은 졸린 듯 반쯤 감긴 모습이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이 작품은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관계를 유머러스하고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아이 벤치(Eye Benches, 1996~1997), 이미지 출처 : 서민정
아이 벤치(Eye Benches, 1996~1997), 이미지 출처 : 서민정
호암미술관에서 개최된 루이스 부르주아 전시를 중심으로 조각·회화·설치 작업이 보여주는 감정·형상·공간 언어를 깊이 있게 연구한 리포트입니다.
-성신여자대학교 통계학과 학사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류환경학과 석사 졸업
-트렌드 분석 및 컨설팅 회사 인터패션플래닝, 트렌드 분석 연구원 및 컨설턴트
(현) 시선인터내셔널 미샤 정보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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