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전시 리뷰: ‘적군의 언어’가 펼치는 감각적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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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an Villar Rojas)의 국내 첫 개인전이 2025년 9월 3일부터 2026년 2월 1일까지 열리고 있다. 아르헨티나-페루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는 인류가 직면한 현재와 미래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생명체와 그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에 대해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설치물로 전환하여 독특하고 실험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2년 전부터 아트선재센터의 공간을 꼼꼼히 탐색했다고 한다. 아트선재센터의 기존 입구를 막고, 내부에는 흙과 거대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전시 관람 전부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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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현재 인간이 멸종과 계승 사이의 경계적 공간에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과 인공지능이 협력하여 함께 의미를 만들어 가는 “협업적 상상”을 중심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혼자 모든 것을 이룩하고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른 인류와 함께 진화해 왔고, 이들과의 관계는 적대적이면서도 친밀하고 경쟁적이면서도 협력적이었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가진 새로운 개체인 ‘인공지능’과 마주하고 있고, 이미 그들과 공존하고 지식을 전송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러한 행위가 스스로의 소멸을 준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서 전시 제목을 ‘적군의 언어’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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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는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 건물 전체를 이용한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관 입구를 흙더미로 막고, 유리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콘크리트 골조를 노출시키고, 기이한 변종 기계 생물이 놓여져 있어 마치 멸망 이후, 인간이 사라진 지구를 표현한 것 같다. 2022년부터 이어온 ‘상상의 종말’ 연작과 새로운 설치 작업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이어진다. 흙, 불, 식물 같은 자연의 요소들과 기계적이고 인공적인 요소들이 서로 얽혀 경계를 허물고 변종적인 형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전시 공간마다 온도, 습도, 냄새까지 의도적으로 설정하여 공간이 주는 분위기 역시 전시의 일부가 된다. 컨테이너 형태로 미술관 밖으로 나온 매표소에서 입장 티켓으로 팔찌를 받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전시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시작된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 새 둥지가 있는데, 이는 이번 작품에 대한 작가의 서명이기도 하다. 새 둥지는 아르헨티나의 국조 오르네르의 둥지를 묘사한 것이며, 건물 전체가 작품이기 때문에 이곳에 작가의 서명을 남겼다고 한다. 인간 세상 속에 오두막을 짓는 오르네르의 뛰어난 적응력과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생명력이 작가의 작품 철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새 둥지가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물어보니, 이미 손상이 많이 되었고, 여분으로 똑같은 새 작품을 하나 더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지하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 전시 안내문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다. 그런데 글자들이 부서지고 떨어져 나간 듯, 바닥에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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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에는 계단형 강의실이 있다. 현재 교육용 강의실로 사용하지만, 처음 개관할 때는 영화관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공간이 가진 이러한 역사를 활용하여 인간이 사라지고 침묵만 남은 빈 무대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극장의 빈 객석은 비닐을 씌우고 먼지가 가득하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은 아래로 내려와 있고, 조명 지지대 위에는 오르네르의 새 둥지가 놓여 있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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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층별로 다른 색상의 조명을 사용하였는데, 지하 1층은 초록빛의 공간으로 연출되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낡은 천으로 유리창을 모두 가려서,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좀비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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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장은 흙으로 뒤덮인 공간에 에일리언 같은 두 개의 기계 생물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는 인공지능과 협업하여 상상의 한계와 종말을 표현하고자 했다. 거대한 머리를 가진 로봇은 손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쥐고 있는데, 미래의 기술이 인간을 통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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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기계 생물은 세탁기에서 자라난 변종 생물처럼 4개의 로봇팔을 가지고 있다. 세탁기는 랜덤으로 작동된다. 이 역시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로봇과 인간의 세상이 수평적일 수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흙더미 속에서는 식물이 자라나고 있는데 이 식물들은 전시 기간 내내 실제로 스스로 자라나고 있다고 한다. 폐허가 된 이후에도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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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공간에는 격자무늬 벽면의 작은 입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공간을 연출했다. 전시장 입구 옆으로는 붉은색의 조명으로 꾸며진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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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입구를 통해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무생물이 전시되어 있다. 거꾸로 자라나는 나무와 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와 비 생명체들이 뒤얽혀 기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금속, 콘크리트, 플라스틱, 흙, 유리, 수지, 소금, 나무껍질, 자동차 부품 등 유기적, 무기적 재료를 활용한 복합체로 인간과 기계의 노동 흔적이 내재되어 있다. 이곳에도 오르네르 새 둥지가 매달려 있다. 폐허 속에서도 변종이 나타나고,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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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시 공간인 3층으로 올라가면 파란 조명으로 채운 공간에서 더운 열기가 느껴진다. 2층과 같이 격자무늬의 프레임이 있는 공간이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유리창 밖에서 내부를 볼 수 있다. 넓은 전시 공간 내부에는 타오르는 불과 그 옆에 돌이 놓여 있다. 이 공간은 마치 인간 문명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은 원초적인 요소인 불과 돌을 상징하는 듯하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멸종 이후의 세계’와 ‘남겨진 흔적들’을 의미한다.
이미지 출처 :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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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가 2022년부터 이어 온 연작 ‘상상의 종말’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전시를 위해 아르헨티나의 스튜디오 멤버 11명이 서울로 와서 6주간 현장에서 제작과 설치를 진행했다. 특히 작가가 직접 개발한 ‘타임 엔진(Time Engine)’ 소프트웨어가 핵심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비디오 게임 엔진과 인공지능을 결합해 가상 세계 속에서 조각이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뮬레이션한다. 타임엔진으로 구축된 디지털 생태계는 환경, 사회, 정치적 조건 등을 입력하면 자율적으로 형태를 생성하며, 이는 유기적, 무기적 재료가 층층이 쌓인 복합적 형태로 탄생한다. 작가는 이를 다시 현실의 조각으로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 놓인 작품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창조물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artsonje.org/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는 1980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현대미술 작가로,조각, 드로잉, 영상, 문학,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 멸종, 생태 위기, 인류세(인간의 활동으로 지구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새로운 지질 시대) 등 인간 문명이 지구에 남긴 흔적을 탐구하며, 시간의 흐름이 뒤엉킨 세계를 상상한다. 그의 작품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한 공간에 충돌하는 듯한 광대한 설치 작업으로 구현되며, 장소의 역사와 환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전시 장소 : 아트선재센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3길 87)
전시 일정 : 2025년 9월 3일 ~ 2026년 2월 1일
관람 요금 : 10,000원
전시 예매 : https://booking.naver.com/booking/6/bizes/1474291
(사전 예약 권장)
참고자료
아트선재센터 : https://artsonje.org/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전시 ‘적군의 언어’를 조형적 시각과 연출 방식 중심으로 해석하며, 전시 공간과 감각 체험의 인상을 기록했습니다.
-성신여자대학교 통계학과 학사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류환경학과 석사 졸업
-트렌드 분석 및 컨설팅 회사 인터패션플래닝, 트렌드 분석 연구원 및 컨설턴트
(현) 시선인터내셔널 미샤 정보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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