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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에 부는 새로운 프리미엄 바람

가전제품은 다른 기기와 달리 한 번 구매하면 오랜 기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질리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과 안정적인 성능, 내구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백색가전'이라는 명칭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단어다. 기본적인 주거 생활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제조사들은 무난한 흰색이나 베이지와 같은 밝고 중립적인 색상을 선택했다. 개성보다는 범용성과 편의성을 우선시한 덕분에 디자인과 성능은 기업 간에 서로 닮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브랜드 간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 

 

가전 시장이 과열되고 기술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기업들은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돌파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된 차별화 전략은 바로 '프리미엄'이었다. LG전자는 시그니처(SIGNATURE)와 오브제 컬렉션을, 삼성전자는 비스포크(Bespoke) 라인을 선보이며 가전 시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덕분에 가전제품에서 '프리미엄 라인'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이끄는 요소로 기능했다.

 

 


ⓒ LG전자 뉴스룸 

https://live.lge.co.kr/2601-lg-ces-2026-review/

 


ⓒ 삼성전자 뉴스룸

 

프리미엄 가전이 시장에 등장한 지 어느덧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개념 또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초기의 프리미엄 가전은 압도적인 성능과 최신 기술이 적용되고 그에 걸맞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움을 더한 디자인이 뒷받침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프리미엄 가전은 보다 다층적인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기술과 디자인은 넘어서 '소유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스토리와 희소성, 나아가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기획이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속에서 예술가나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디자인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기능과 품질만으로는 차별화를 느끼기 어려워진 소비자들의 인식을 반영한 '감성 소비' 트렌드가 자리한다. 이제 기업들은 소비자의 감각과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제품과 마케팅에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덕분에 가전제품은 '숨겨야 할 물건'에서 '보여주고 싶은 오브제'로 발전하고 있다. 

 

 


ⓒ 쿠첸 브랜드 사이트  

https://www.cuchen.com/cuchen-new-view.html?idx=909

 

쿠첸은 한국 현대미술 거장 최영욱 작가와 손잡고 아트 콜라보레이션 제품 '쿠첸 123 최영욱 에디션'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최영욱 작가는 '달항아리'를 소재로 인간의 삶과 인연을 그리는 현대미술가로, '카르마(Karma)' 시리즈를 통해 한국적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에디션은 쿠첸의 '123 밥솥'에 작가의 대표작 카르마의 조형미를 적용했다. 달항아리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화이트 톤 바디에 카르마 패턴이 은은하게 새겨진 이 밥솥은 하단부에 적용된 '히든 라이팅' 기술로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공간에 따뜻한 무드를 더한다.

 

공간에 고요하면서도 존재감 있는 오브제를 탄생시킨 이번 협업은 '밥솥'과 '달항아리'가 공유하는 철학적 가치에 기반했다. 예로부터 달항아리와 밥솥은 가정의 풍요와 복을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또한 흙이 가마 속 고열을 견뎌 도자기가 되듯이 쌀이 123도의 열과 압력을 견뎌 밥이 된다는 점에서 두 오브제가 인내와 정성이라는 공통된 미학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도 눈여겨볼 포인트다.

 

 


ⓒ 삼성전자 뉴스룸 

https://news.samsung.com/kr/삼성전자-ces-2026서-사운드-기기-라인업-공개

 

삼성전자가 올해 CES에서 선보인 '뮤직 스튜디오 스피커' 시리즈는 감성을 전면에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이 시리즈는 감성 가전으로 유명한 '더 셰리프(The Serif)'를 디자인한 에르왕 부홀렉(Erwan Bouroullec)의 손길로 탄생한 디자인이라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를 통해 더 셰리프의 디자인 철학을 계승하며, 제품 간의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삼성전자의 태도를 볼 수 있다.

 

간결한 형태지만 공간에 묵직한 존재감을 더하는 아트 오브제 역할이 기대되는 이 스피커 시리즈는 디자인뿐 아니라 성능 면에서도 눈길을 끈다. 사운드를 최적의 방향으로 조정해 주는 '패턴 컨트롤', 깊고 풍부한 저음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AI 다이나믹 베이스 컨트롤' 등의 기술이 적용되었다. 최신 기술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과시하지 않는 절제된 스타일은 앞으로 가전제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프리미엄 가전의 성격에도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AI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해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더 나아가 상황에 맞춘 에너지 관리로 효율성을 높이고 환경 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이 기술은 이미 가전에 적용된 IoT 기술과 결합하며 전반적인 사용 경험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AI(Bespoke AI)를 통해 '안전하고 쉬운 AI 홈'을 제시했으며 LG전자는 공감지능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일상 공간을 연결하는 '행동하는 AI(AI in Action)'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여러 기업이 AI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프리미엄 가전 시장을 이끌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첨단 기술이 적용되었음에도 이를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친숙하고 직관적인 사용성을 추구하는 '인비저블 테크(Invisible Tech)' 트렌드가 현재 AI 프리미엄 가전의 핵심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시대와 트렌드가 변화고 있지만 범용성과 편의성을 추구하는 가전제품의 특성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가전 구독 서비스의 확산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고가의 프리미엄 가전에 대한 구매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정기적인 관리와 지속적인 AI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구독 방식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보다 중시하는 최근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사용자는 제품을 구매하는 데서 더 나아가 시간이 흐를수록 진화하는 가전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 전문적인 케어는 기기의 수명과 사용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처럼 프리미엄 가전 시장은 첨단 기술, 감성적 가치, 디자인, 그리고 새로운 소비 방식까지 적극적으로 포용하며 과거보다 훨씬 다채롭고 확장된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박민정(국내)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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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 #제품 디자인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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