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누구나 일정 수준의 이미지와 영상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목적에 맞는 AI 도구를 선택해 활용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생성형 AI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프롬프트가 공유되고 있다. 이처럼 수준 높은 결과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가짜 뉴스와 허위 광고와 같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게 되었다.
몇 분이면 원하는 고품질의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AI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그와 정반대의 결과물이 인기를 끄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터 엉터리처럼 보이게 그리거나 손으로 대충 만들어 투박해 보이는 결과물이 주목받는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함을 주는 AI 결과물에 대한 거부감이 이런 흐름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런 유행 역시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4월에 한 한국인 사용자가 본인의 스레드 계정을 통해 챗 GPT로 만들 수 있는 엉성한 그림을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진을 2000년대 컴퓨터 그림판에서 마우스를 이용해 대충 그린 듯한 이미지로 변환하는 프롬프트를 공개한 것이다. 어색한 비율과 저화질 픽셀, 그리고 삐뚤빼뚤한 선을 활용해 최대한 하찮고 엉뚱해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이른바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프롬프트'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며 확산되었다.

ⓒ 오픈AI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openai/
이 프롬프트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졌다. 오픈AI의 창립자인 샘 알트먼이 직접 해당 프롬프트의 번역본과 이를 활용해 만든 이미지를 공유하면서 관심은 더욱 커졌다. 이후 프롬프트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널리 퍼졌고, 전 세계 사용자들이 해당 프롬프트로 만든 이미지를 공유하며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못 그려서 오히려 귀엽고 재밌다는 반응에서, 그만큼 완벽에 가까운 AI 이미지가 너무나도 흔해졌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 오픈AI 유튜브 채널
'Turn the world into cheese (or anything really) with this camera.'
https://www.youtube.com/@OpenAI
오픈AI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일부러 엉성한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AI 카메라를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미지젠캠(ImageGenCam)'이라는 이름의 이 카메라는 초소형 컴퓨터와 3D프린터를 활용해서 직접 만들 수 있는 DIY 프로젝트다. GPT Images 2.0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현실의 모습을 애니메이션, 판타지, 수채화 등 다양한 이미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사진을 다양한 화풍으로 바꾸는 기능 자체는 이미 여러 서비스에서 선보인 바 있지만, 이미지젠캠은 결과물 옵션 가운데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프롬프트'를 포함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AI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완벽함보다는 개성과 재미를 추구하는 요즘 AI 트렌드를 완벽하게 반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폴라로이드 뉴스룸
https://press.polaroid.com/251772-polaroid-s-new-campaign-pushes-back-against-the-reign-of-screens-and-ai-and-celebrates-analog/
광고계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광고가 늘어나긴 했지만, 오히려 이런 광고가 흔해지면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AI와 대비되는 인간적인 경험과 현실의 가치를 강조하는 광고가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폴라로이드는 AI가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진짜 삶의 순간을 조명하는 캠페인을 통해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드러냈다. "AI가 발가락 사이 모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죽기 전에 "그 시간에 폰이나 더 볼걸'이라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와 같은 문구가 담긴 옥외 광고에는 화면보다 현실을 경험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폴라로이드 브랜드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패트리샤 바렐라(Patricia Varella)는 캠페인을 소개하며 "우리는 감각을 통해 연결되도록 만들어진 아날로그적인 존재"라며 "폴라로이드 사진에는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주름살까지 포함하여 우리 모두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라고 설명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진짜 삶의 순간을 기록하는 가치에 주목한 이 캠페인은 AI 시대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 트립닷컴 유튜브 채널
✈️Trip.은 진짜여야 해, 호텔은 Trip.이어야 해🏨 | Trip.com
https://www.youtube.com/@trip.com_kr
트립닷컴 역시 올해 여름 브랜드 캠페인 '트립(Trip.)은 진짜여야 해, 호텔은 트립(Trip.)이어야 해'를 통해 AI가 대신할 수 없는 여행의 감각을 조명했다. 생성형 AI에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이상적인 여행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만, 낯선 장소를 직접 걷고, 공기를 느끼며,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경험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캠페인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지명에 'AI'가 포함된 지역을 배경으로 한 점도 눈길을 끈다. 제주 올레길(JEJU TR'AI'L), 영국(BRIT'AI'N), 상하이(SHANGH'AI'), 치앙마이(CHIANGM'AI')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를 선보이며, 실제 여행의 즐거움을 재치있게 표현했다.
ⓒ 피그마 유튜브 채널
완성된 상태의 종말 ft. Brent David Freaney (Special Offer) | Config 2026
https://www.youtube.com/@Figma
이러한 흐름은 UI 디자인 툴 피그마(Figma)의 연례 콘퍼런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에서는 AI가 접목된 기능이 소개되는 자리였으나, 이어진 강연에서는 기술보다 사람의 역할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강연자인 브렌트 데이비드 프레니(Brent David Freaney)는 찰리 XCX(Charli XCX)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앨범 '브랫(Brat)'의 디자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5개월 동안 피그마로 500개가 넘는 시안을 작업했으며, 단순해 보는 디자인일수록 많은 고민과 선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프레니는 AI 시대에 중요한 역량은 뛰어난 결과물을 제작하는 능력보다 수많은 결과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알아보고 선택하는 '안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AI가 디자인 제작의 문턱을 낮추고 있지만 어떤 결과물을 완성작으로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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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생성형 AI로 직업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AI를 거부하는 'AI 비거니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AI는 거부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조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이 AI를 활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사라지고 있지만,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과 감각이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러 엉성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프롬프트가 유행한 것도, AI보다 현실의 감각과 경험을 강조하는 광고가 잇따르는 것도 모두 사람의 선택이 만들어낸 변화다. 이제 AI가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만으로는 차별화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AI 시대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안목과 감각은 더욱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 졸업
-삼성전자 근무
(현)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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