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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의 슬픔

영국 BBC 방송은 지난 6월 지구촌 사람들이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프로그램을 특집으로 내보내었는데, 프로그램 내내 각국 현지인 리포터들은 위성으로 각국의 여론조사 현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미국의 국가브랜드 하락에 관한 프로그램 내용 자체보다 (참고로 말하면, 세계 각국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결같이 미국을 국제적으로 가장 위험한 나라중의 하나로 꼽고 있었다), 각국 현지인 리포터들이 영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재현되는가 였다.
당연히, 한국인 리포터 차례에 내 시선은 고정되었다.
4대문 중 하나인 어떤 전통건물과 옆에 우뚝 솟은 큰 빌딩의 배경화면에, 짙은 눈썹의 무림고수 같은(!) 외양의 중년 남성리포터의 조화는 매우 키취적인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클립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많은 나라의 현지 클립들과 비교해볼 때, 전통과 현대의 어색한 맞부딪침 같은 느낌이 두드러졌다. 이것은 내게 한국인의 일상에 널리 퍼져있는 키취적인 것들 (이를테면 동네 이발소에 붙어있는 피카소의 그림, 동네 중국집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같은 것들)을 상기시켰다.
이 키취적인 것은 아마도,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하여 급격하게 근대화를 경험한 나라들의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잡종성’ (hybridity)의 한 양상일 것이다. 공존하지 않을 법한 것들을 동시에 수용하고 접붙이는 이 잡종적 과정은 문화의 다양성과 실험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결과도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 잡종화의 과정은 종종 해석 없는 기형적 접목이 되기도 하며, 특유한 기운을 잃어버린 이상한 취향의 복제품들을 양산시킬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외래 문물과 제도에 대한 수입은 매우 폭발적이었고, 아직도 서구에 대한 선망은, ‘영어’로 집약되어 나타나듯,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는(!) 열등감의 소산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열망은, 개발독재를 겪으며 한국적인 것에 대한 배타적인 지지로 나타나곤 했다.
다시 말해, 한국의 ‘돌진적 근대화’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해석 없는 일종의 세뇌에 기반해서 진행되었다. 구한말의 동도서기론은 근대화 과정에서도 계속 되었고, 한국적인 것은 정신적이고 고결하며 순수한 것으로 학습되었다. 그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근대화 속에서 군사문화와 관료주의가 한국적인 전통을 재해석하는 역할을 도맡아 왔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적인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점에 동의해야 한다고 늘 배웠는데, 솔직히 박물관에 가보거나 인사동에 가보면 그곳의 문화재나 상품들의 아름다움에 공감하기 힘들 때가 많고, 그 문화재들이 전시되는 방식에 동의하기도 힘들다. 대부분 그것들이 강요된 애정과 연관되며, 공감이 아닌 의무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공감하기 힘든 ‘한국적인 것’의 지루함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이제, 공감할 수 있는 한국 문화, 그 문화의 동의할만한 재해석 과정을 보고 싶다.
한국의 돌진적 근대화가 강요해왔듯 자국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조건 반사적인 것이 된다면 서글픈 일이다. 문화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며, 심미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관해 덧붙이자면,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디자인에 대해 나는 거의 보거나 듣지 못했다. 즉,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삶의 방식 속에서 경험되는, 그러면서 배타적이거나 과거 퇴행적이지 않은, 과정과 현실로서의 디자인문화에 대해서 나는 많이 알지 못한다.
한국적인 것에 관한한, 우리는 공감하기 전에 동의하도록 강요 받아왔고, 이 과정에서 한국적인 것이 종종 과거의 것과 동일시되어 왔지만, 전통과 정체성이란 항상 현재적이고, 미래를 살아내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디자인에도 적용되는 경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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