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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는 문화적으로 막다른 길, 훨씬 혁신적인 형식의 디지털 아트 있다”

Place online art project 

 

상업성에만 치중된 NFT 가장 지루한 형식의 디지털 아트라고 Phineas Harpers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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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 Reddit에서 공동 창작 형태로 만들어진 온라인 아트 프로젝트 하나가 인터넷을 매료시켰다. 방대한 규모의 인터랙티브 아트워크인 Place 거대한 온라인 캔버스를 세우고 누구나 참여할  있도록 했다. 참여자는 한번에 하나의 픽셀에 색깔 타일을 놓을  있으며, 5 간격으 새로운 타일을 추가할  있다.

각개 작업 방식으로는 실체가 있는 어떤 것을 디자인하는 일이 불가능했기에, Place 유저들은 자발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조직하고 타일 배치를 조율했다. 탈중앙화된 팀들이 대거 생겨나고 여기서 협업이 이뤄진 것이다.  결과, 백만 픽셀의 전장에서 여러 그룹들이 엎치락 뒤치락 자신들이 선호하는 예술작품을 표면에 올리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Place 인터넷 아트의 정점이다.’

 

여러 나라의 국기, 문화적 아이콘, , 심지어 Herzog & de Meuron 설계한 함부르크 에필하모니가 그려지고,  위를 다른 온라인 그룹들이 경쟁적으로 뒤덮었다.

Place 인터넷 아트 역사의 정점에  있다. 테크니컬러의 생명력이 작품에 참여한 수천 유저들로부터 흘러들어온다. 누구에나 무료로 열려있는  프로젝트는 월드와이드웹 시대에 전개될  있는 예술적 가능성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온라인 아트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공유가 아닌, 소유에서 가치가 파생되는, 일명 Non Fungible Tokens(NFT), 대체불가능토큰이다. 간단히 말해, NFT 고유한 데이터 덩어리이며, 블록체인이라 불리는 온라인 공개 원장을 이용해 소유권을 증명하고 매매할  있도록 하는 디지털 인증서와 같다.

jpeg gif, 동영상과 같은 미디어 파일에 고유한 인증서를 붙이면 거래가 가능해진다. 미디어 자체는 판매되지 않지만, 그와 연결된 디지털 인증서의 경우, 구매자가 대금을 지불하면 소유권을 넘겨 받을  있다.

 

당신이 만든 디지털 예술 작품에 연결된 인증서가 가치있다고 인정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면, 최근 우후죽숙 생겨난 NFT 거래소에서   버는 일이 가능해진다. Jeff Koons Damien Hirst  많은 유명인들과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NFT 연결해 발행했고, 심지어 영국 재무장관 Rishi Sunak까지 영국 재무부에 NFT 발행을 주문하면서 대세에 합류했다.

 

소유권은 예술 창작 활동에 따른 부산물에 불과하다.’

 

전세계적인 락다운으로 일상의 디지털화가 앞당겨진 가운데, 유명인과  손들까지 유입되면서 NFT 버블은 커져왔고, 2021 현재 관련 시장 규모는 410 달러로 치솟은 상태다.

NFT 열풍의 지속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소유권만을 강조하는 NFT 예술 역사  가장 지루한 형태임이 분명하다.

 

예술에 있어서 소유는  관심 사항이 아니다. 미디어의 활용 면에서 선도적이라거나, 형식적인 구성이 독보적인 경우, 또는 상징성이 풍부한 경우에 우리는 위대한 예술로 평가한다. 보는 사람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지거나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에도 예술적으로 인정받을  있다.

 

반면, 소유권은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예술 창작 행위의 결과로 뒤따라오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타인의 창작물에서 소득을 거둬들이는 소유권자들을 기반 삼아 세워진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무미건조한 거래일 뿐이다.

수십억짜리 NFT    되는 NFT 사이의 상대적 우열은 다른 사람들이 소유권을 얻기 위해 지불하려는 돈의 액수에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NFT 투기에 빠진 산업의 전형이다. 예술  디자인 세상과는 단절한 후기 자본주의의 아바타라고나 할까. 다른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도박과 사기가 판치는 이곳은 현대 예술 시장이 맞닥뜨릴  밖에 없는 필연적 귀결점이다.

 

물론, Frieze Basel 갤러리스트들이 광고와 볼거리를 이용해 컬렉션의 가치를 부풀려온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그러나, NFT 열기가 보여주는 진부함은 이전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디지털 아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돈벌이를 추구하는 NFT 컬렉션의 미적 감각은 대부분 단조롭고 파생적이지만, 이것이 디지털 아트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다. Place에서   있듯이, 디지털 아트에서는 새로운 형식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  만들어진 게임처럼 최고의 문학작품에 버금가는 흡입력을 가지고 관객을 몰입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NFT에는 이러한 잠재력에 대한 고민이 하나도 없다. 그저 소유권이라는, 문화적으로 막다른 골목까지 후퇴한 형국이다. 여론몰이꾼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NFT 고달픈 예술가들을 위한 새로운 생계 수단이라고. 그러나  같이 구차한 변명은 여러 중요한 점을 비껴간다.  

 

먼저, NFT 거품으로  돈을   있는 사람들은 이미 상당한 추종자를 확보한 이들이다. Grimes이나 Eminem, Snoop Doog  유명 뮤지션들 모두  되는 NFT 컬렉션을 최근 들어 발매했다. 토큰 발행으로 벌릴 돈이 있다면, 그건 대다수의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이미 부자인 소수에게 흘러 들어갈 것이다.

 

다음으로, NFT 거저 만들  있는  아니다. 다단계 조직처럼 위험부담을 안고 암호화폐 거래소에 들어가야 한다.  시장에서 돈을  디자이너들이 있다면,  보다 많은 다른 사람들은 손해를 봐야 하는 구조다.

 

더구나, NFT 인터넷이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모험적인 측면인 공유의 가치를 후퇴시킨다. 공유는 연대를 강화하는 행위로서, 소비주의가 조장하는 사적이고 고립된 소유권과 비교할  기본적으로  즐겁고 자원효율적이다.

 

그러나 팔릴  있는 어떤 것이 공유될 때마다, 이윤을 뽑아낼 기회는 사라진다.  테크와 자본이 NFT 같은 암호화폐 혁신에 자원을 쏟아붓는 이유다.

 

예술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NFT 말할  없이 지루하다. 그러나, 원래 디지털 공유물이던 것을 상품화하는 도구로서 보자면 훨씬 교활하다. 공유의 장이던 인터넷을 소유의 공간으로 변질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Phineas Harper Architecture Foundation 부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Open City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Architecture Sketchbook (2015) People's History of Woodcraft Folk (2016) 있다.

 

원문기사 보기: "There are far more radical forms of digital art than the dead end of NFTs" (dez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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