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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분청사기(粉靑沙器) - 최성재 한국전통문화학교 부교수

18. 분청사기(粉靑沙器)

최성재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본 연구에서는 분청사기의 근현대 선행 연구자료를 바탕으로한 역사적 고찰과 현대적 평가를 살펴보고 분청사기만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미적가치가 무엇인 지를 찾아 보았다. 그리고 분청사기가 생활속에 꽃피운 실용자기로서의 고유적 가치와 자유분방한 제작양식에 따른 한국미의 전형으로 세계화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또한 시대적 상황이 분청사기의 양식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청사 기의 사회적 배경과 재료문화적 측면에서 살펴 보았다. 도자기의 제작상황은 시대적인 여건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생산체계와 방식을 달리하므로 도자양식 형성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따라서 사회적 환경에 따른 재료의 수급과 공급이 생산여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재료문화적 여건에 의한 분청사기의 형성과 양식변화에 주목하여 분청사기의 재료문화적 특징을 찾아 보았다.

또한 분청사기의 소재와 제작과정, 조형양식에 대하여 타 문화 유사사례와 비교분석을 통해 소재와 제작기법 조형양식면에서 분청사기 만이 가지는 특징적인 요소를 탐색 하였다. 우리나라의 분청사기와 유사한 예를 중국 요주요자기 와의 비교를 통해 분청사기의 고유성을 조명하였다.

분청사기는 실용자기로서 민중들 속에 사랑받은 도자기로서 일상용기에서 의례용까지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폭넓은 수요층을 기반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 다. 이렇게 다양하게 제작되었던 분청사기는 생산규모나 시장의 규모에 비하여 양식화나 규격화된 틀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제작에 있어 탈 획일화와 비 양식화의 고유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독특한 요인들이 생산체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기물이나 문양이 똑같은것을 찾아볼 수 없다. 분청사기는 하나하나에 개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200여년 간 조선시대를 풍미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분청사기가 탈 획일화에 의해 순수성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분청사기만의 고유적 특징은 재료적인 특성을 들 수 있는데 서로 다른 재료(태토와 화장토)를 조화롭게 동질화시켰다는 것이다. 분청사기는 상감청자의 제작방식에서 백토분장의 제작방식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재료가 하나로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독특한 미감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재료의 대비와 조화를 통해 만들어 낸 창조적 양식이었다.

분청사기의 전통을 계승한 근현대 도예작가의 예를 통해 우수사례를 제시하였 다. 이들 우수사례에서 분청사기를 모티브로 제작된 작가들에 나타난 공통된 양식은 자유분방한 표현양식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형식화된 틀을 거부하고 작가의 개성과 현대미감이 반영된 예이다.

(분청사기의 용어) 분청사기라는 이름은 회청색의 태토위에 백토분장(白土粉粧) 하여 표면이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 전체 색조가 회청색으로 보여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고유섭이 명명한데서 유래한다. 이 말은 회청색의 사기그릇으로 장식을 위해 백토가 상당 부분 분장되었다는 점에 주목 하여 지칭한 말이다. 고유섭 선생은 고려의 상감기법은 청자 바탕에 적은 면적을 백토 또는 흑토로 상감해 백토의 비중이 낮지만, 분청의 경우는 백토의 비중이 높아서 마치 흰색으로 전체를 발랐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는 점에 주목해서 백토분장이라는 말을 붙인 것 같다.

그러면 왜 분청자가 아니고 분청사기일까? 사기(沙器)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자기(瓷器) 대신 쓰던 말이었다. 원래 자기를 만드는 자(瓷)토는 사(沙)토, 즉 돌가루여서, 사토로 만들어진 그릇이나 자토로 만들어진 그릇이라는 표현이모두 똑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박자를 백사기라고 쓰기도 했고, 청자를 청사 기, 분청자를 분청사기라고 널리 써왔던 것이다. 다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분청 자라는 말보다 분청사기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에 명칭을 하나로 통합해서 분청사기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조선 초기 15세기의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분청사기라고 부르고 있는그릇들을 고려시대의 청자와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모두 청자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12-13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던 상감청자는 고려 후기 14세기를 지나 면서 상당한 변화를 맞게 되며 특히 조선시대초기에는 새로운 왕조의 개혁적정책에 따라 많은 변화가 진행되게 된다. 분청사기라는 용어의 탄생은 이렇게 변화된 조선시대의 청자를 고려의 것과 구분하여 새로운 이름을 붙일 시대적 배경에 따른 것으로 파악 할 수 있다.

(분청사기의 제작시기) 분청사기는 14세기 상감청자에서 출발하여 16세기 중엽까지 200년간 전국에서 제작 유통 되었다. 분청사기는 상감청자에서 변모하여 분청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분청의 시대가 지속되었다. 물론 그의 전반부는 분청의 중심시대라고 말할 수 있지만 후반부는 백자가 중심으로 등장하고 분청은 중심에서 벗어나는 쇠퇴와 소멸의 시기였다. 백자가 중심으로등장하는 시기를 고려한다면 실제 분청제작의 중심시대는 불과 육십년 내외에지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다. 결국 백자의 선호증가와 흰색 선호사상이 백자를 모방한 분장기법으로 변화를 추구하면서 16세기 이후 백자화 되면서 자연 소멸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분청사기의 분류) 분청사기는 백토분장을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상감분청 사기, 인화분청사기, 박지분청사기, 음각(조화)분청사기, 철화분청사기, 귀얄분청사기, 담금(덤벙)분청사기로 구분된다.

...  

보고서 도입부에서 발췌

 

 

목차

 

제 1부 개요

서문

용어의 정리

제 2부 분석

1장 분청사기의 고유성

1.분청사기의 역사·문화적 가치

2.분청사기의 미적 가치

2장 시대적 배경과 재료문화적 특징

1.사회적 배경과 영향

2.재료문화적 배경

3장 분청사기 제작기법의 특징

1.분장기법의 기원

2.소재적 특징

3.제작기법의 특징

4.조형적 특징

5.타 문화유사도자와의 비교

제 3부 종합

1장 한국디자인 특성 개념 도출

2장 대표디자인 추천

3장 분청사기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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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한국디자인DNA 발굴 사업’(2010, 한국디자인진흥원)의 결과물 중 일부입니다. 한국디자인DNA 발굴 사업은 한국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가 담긴 디자인과 기술 요소를 발굴해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지식경제부 주최, 한국디자인진흥원 주관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건축, 가구, 의복, 도자, 인문, 예술 각 분야에서 한국의 고유한 조형 의식의 원형과 정체성이 잘 나타난 한국적 디자인의 대표 사례 141개를 찾아 정리하였고, 연구과정 중 50개 주제로 한국디자인DNA를 소개하는 심화연구 보고서가 작성되었는데, 본 보고서는 그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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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자인 #DNA #한국디자인DNA #K디자인 #정체성 #도자기 #분청사기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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