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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유기(鍮器) - 홍정실 길금공예연구소 소장 외 1명

22. 유기(鍮器)

홍정실

길금공예연구소 소장

김선정

길금공예연구소 연구원

 

유기(鍮器)란 놋쇠로 만들어진 기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고풍스런 제사의 그릇(祭器), 한국의 식문화(食文化)를 대변하는 반상 용기(飯床用器), 민족의 흥취를 돋우어온 농악기로서의 징과 꽹과리, 마음을다스리는 불가(佛家)의 소리도구인 종, 바라와 경쇠, 그 외에도 우리네 일상생 활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요강과 대야를 비롯하여 촛대, 화로, 향로 등과 같은 불그릇(火器), 이 모두는 놋쇠로 만들어진 기물로서 우리민족의 놋그릇을 대변 하는 조형물들이다.

15세기초에 조선을 방문하였던 명나라의동월이 『조선부』에서 “조선땅에서 나는구리는 가장 굳고 빛이 붉은데 조선에서는 식기와 숟가락, 젓가락을 모두 다 구리로 만든다.”(『신증동국여지승람』경도조)고 지적하듯이 당시 우리 사람들은 식기들과 각종제사용 그릇, 대야, 화로, 향로 그밖의 여러가지 그릇들과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숟가락, 젓가락들도 모두다 구리로 만들어 쓰고 있었다.

또한 『경도잡지(京都雜誌)』에 “통속적으로 놋그릇을 중요시하여 사람들은밥․국․나물․고기까지 일체의 식탁용에 반드시 놋그릇을 사용한다. 심지어는 세숫대야, 요강까지도 놋쇠로 만든다.”고 하였고,『반계수록(磻溪隧錄)』에는 “심산궁곡의 초가집에 사는 사람조차 술잔과 밥그릇은 물론이요 동이와 바리까지도 구리 아닌 것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어 유기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애용되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옛부터 평안도 및 황해도 지방에서는 혼삿말이 오갈 때 사돈될 집의부엌에 갖추어진 놋그릇을 보고 그집의 부와 살림 솜씨를 예측하는잣대로 삼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당시의 풍조만 보더라도 놋그 릇은 살림하는 아낙네들이 관심을갖지 않을 수 없는 품목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선선한 바람이일게 되는 추석이 다가오면 온기(溫氣)를 간직하는 그릇으로, 단오가 되면 깔끔하고 시원스런 사기그릇으로 바꾸어 사용 하는 생활습관을 통하여 그릇의 효용성과 가치를 극대화할줄 아는 선조들의 지혜와 생활의 멋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이 간직했던 놋그릇을 정성스레 닦던모습은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으로 유기문화가 지닌 독특한 삶의 모습이었다. 놋그릇을 간수하는 일과 그것을 사용할 때에 온갖 정성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담긴 반상기 예법은 생활속에 이어져온 아름다운 풍속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조선의 놋그릇은 반상기가 으뜸이다.’라는 말이 대변하듯이 유기중에서도 반상기는 조선시대 식기문화의 특성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서와 같이 놋그릇을 식기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예에 속한다. 조선의 반상문화는 유학의 조상숭배사상이나 의리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민족의 생활규범이나 윤리감각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반상기 예법은 어른께 공양하는 효의 구체적 표현 이며 예의범절에 맞춘 식생활 문화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工典) 잡령(雜令)에는 “은(銀), 석(錫), 유(鍮), 동(銅)으로 만든 기명(器皿에는 모두 근량(斤兩))과 제조 연월일을 새긴다” 라고 되어 있어 당시의 금속으로 만든 모든 그릇들은 귀히 여기고 있으며 놋쇠 재료 역시 국가의 관할 하에 철저히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또한놋제품을 만드는 장인을 ‘유장(鍮匠)’이라 칭하고 경공장(京工匠)과 외공장(外工匠)으로 나뉘어 국가에서 관할하였다.『경국대전』에 기록된 유장의 수가 나타내듯이, 제영각사에 분야별로 일정수의 장인을 예속시키고 있었다. 명시된 유장의 분포는 서울의 왕실과 관아 전담의 경공장(京工匠)으로서 17명인데 그밖에 병명의 징장(鉦匠)이라든지 혹은 경장(鏡匠)까지 합하면 모두 30명넘어 헤아린다. 또 지방 관아에 예속된 외공장만 하더라도 주로 중요 군현에한하여 1명씩 둔다고 하였는데, 무려 36개소에 달하고 있다. 그중의 일부는 근년까지 유기의 명산지답게 명맥을 유지해온 지명(地名)이 여러곳 눈에 띄고있어서 그것이 연면이 이어온 전통적 산업임을 한결 실감케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때에는 유기를 만들어 무역을 했으며 일본의 대마도에서 토산물은 바치며 유기를 원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중종 때에는 서울상인과 황해도 안악상인이 국가에서 금지한 유기를 요동에다 판 일이 있었으며, 『명종실록』에는‘자기는 파손되기 쉬우니 유기로 대신하여 사용하자는 내용과 관하(官下)의 장인이 모자랄 때에는 사장(私匠)을 불러다 썼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유기에 대한 인기와 수요를 반영하는 당시의 상황을짐작케 한다.

17세기에 이르러서 유기제작은 활기를 띠며 발전하게 되었는데 유기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유기점 마을(鍮器店村)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이다. 개성과 안성은 유기수공업이 성행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일상생활용 식기를 비롯하여 촛대, 우리(于里), 향로 등의 제기를 생산하고 판매하였으며 국가에서도 이들로부터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였다. 6) 따라서 점차적으로 유기 수공업자들은 곳곳에 놋점을 설치하고 제품을 활발히 생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당시 놋그릇의 수요는 오히려 사기그릇을 능가할 정도로 많았다. 이무렵 생활용품으로는 유기제품과 사기제품들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관련하여 이들 제품을 생산하는 유기점촌, 사기점촌들이 크게 발전하고 있었다. 전국 어디서나 많은 양의 놋제 품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품질면에서 우열이 생겨났으며 형태적 특징은 지방간의 격차를 드러내게 되었다. 아울러 철점, 은점, 금점, 동점 등도 급속히 발전하였는데 이러한 점촌들에는 적지 않은 수공업자들이 집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수철, 옹기, 바늘, 사기, 유기제품들과 금, 은, 구리, 쇠들을 생산하여 소상품 생산자로서 자기의 경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통유기의 제작과 관련하여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알게 하는 내용들이다. 전국적인 판로를 개척하고 상품으로 광범히 유통된 것은 18세기 이후부터였다.

18~19세기에는 수공업의 중심지가 더욱 많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수공업부문이 확대․발전되었다. 경기 안성(安城)은 부리질(鑄造)에 의한 유기주 물품을 생산하는 <붓배기> 제품의 생산지였다면 평안도 정주의 납청(納淸)은 두드리질(鍛造)에 의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방짜> 제품산지로 각각 발전하였 다. 따라서 안성과 납청의 유기는 첫 번째 명산지로 꼽혔으며 전라도의 구례, 개성의 놋그릇도 질이 높이 평가되었다. 일반 백성은 이 놋점에서 장내기한 유기를 사서 썼고, 각 지방의 반가(班家)나 부호들은 주발, 바리, 대접, 보시기, 쟁반 각 1개, 조치(찌개그릇)2개, 종지 3개, 접시 7개 등의 ‘칠첩반상기’를 맞추어 썼다. 유기 제품들에는 반상용기와 술병(酒甁), 주전자(酒煎子), 징, 바라, 풍경(風鈴), 요강, 대야, 담배함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때문에 놋그릇은 자연히 놋점을 중심으로 지방색을 드러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생활 깊숙이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  

보고서 도입부에서 발췌

 

 

목차

 

개요

제 부 1

1장 전통유기의 생활세계

2장 유기문화의 조형적 특성

제 부 2

1장 한국유기문화의 가치관

1.조형의식과 시대적 배경

2.물질에 대한 가치관

2장 유기의 재료문화적 특성

1.유기의 재료

2.시대적 배경

3.용기로서의 기능

3장 유기제작의 개념/소재. 기법적 특징

1.소재와 제작술 - 제작기법과 도구사용

2.유기장과 장인정신

제3부 한국 전통유기의 디자인 조형의식

1장 산업기술과 수공예의 접목

2장 디자인 조형의식과의 연결요소

1.종묘제기

2.사대부가의 제기

3.반상기

대표작품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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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한국디자인DNA 발굴 사업’(2010, 한국디자인진흥원)의 결과물 중 일부입니다. 한국디자인DNA 발굴 사업은 한국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가 담긴 디자인과 기술 요소를 발굴해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지식경제부 주최, 한국디자인진흥원 주관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건축, 가구, 의복, 도자, 인문, 예술 각 분야에서 한국의 고유한 조형 의식의 원형과 정체성이 잘 나타난 한국적 디자인의 대표 사례 141개를 찾아 정리하였고, 연구과정 중 50개 주제로 한국디자인DNA를 소개하는 심화연구 보고서가 작성되었는데, 본 보고서는 그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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