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지리도

김경균 

정보공학연구소 소장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자신의 주변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방법으로 지도를 제작해왔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는 비록 정확한 지리 정보를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의 다양한 사냥감에 대한 정보와 그사냥감이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 대에도 다양한 지도를 제작해 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고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들이다. 이러한 고지도는 단순히 지형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과학과 사상에 예술적 표현을 잘 융합하여 자연,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정보 디자인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하겠다.

정보를 조직화하고 시각화하는 방식은 미디어의 변화와 그 성격에 맞춰 다양하게 접근되어야 한다. 아울러 정보의 성격에 적합한 효율적 인터페이스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사용자가 보다 편리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시도는 정보디자인 분야에도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나라의 지도 제작은 이러한 정보디자인의 장점이 고려되지 못한 채 단순히 지리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강하다. 특히 국토지리정 보원의 지도표현이나 기호는 일제강점기의 것들과 한국전쟁 이후 미군에 의해 추가된 것들이 지금까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선조들의 훌륭한 지도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디자인의 유전자적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 넷의 발달, 차량에 탑재된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지리정보의 수요와 공급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렇게 지리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적 환경은 급격히 진화하고 있지만 그것을 조직화하고 시각화하는 정보 디자인 프로세스에 있어서는 안타까움이 많다.

우리 선조들은 땅에 내포되어 있는 이치를 이해하고 땅 그 자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받아들였기에 이 땅의 산하를 골격과 혈관으로 이해하고그 맥락과 흐름을 강조하였다. 또한 지리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입장을충분히 고려하여 동서남북의 방향을 획일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매우 유연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정보에 대한 인식은 내비게이터를 비롯한 현재의 인터랙티브한 미디어 환경에서 그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지리정보의 집합체인 고지도를 통해 그 디자인적 유전 자를 발굴하고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지도란 공간의 재현이라는 기본적인 방법에 의해 표현된다. 그러나 이 재현의 대상은 실제 눈에 보이는 공간만이 아니라 그 시대적 공간 속에 내포된보이지 않는 관계의 의미까지도 포함된다. 따라서 지도는 단순히 지형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이 함축된 총합적산물이다.

또한 지도에 표현된 그림이나 글자, 기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것을 읽어 나가는 순서가 일반적인 텍스트처럼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비선형적으로 서사된 요소를 연결하고 그 안에서 맥락을 찾아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도를 읽는 사용자의 몫이다. 따라서 사용자, 즉 독해자 스스로가 이런 지도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진정보의 구조가 아니라 해독할 수 없는 암호 덩어리로 전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때로는 지도는 과장과 외곡의 과정을 거쳐 권력의 수단이이 되기도 하고, 조작과 세뇌를 목적으로 한 지도라는 이름의 거짓말로 전락되기도 한다.

보르헤스의 <과학의 정확성>에는 제국의 지도를 제작하는 이야기가 나오 는데 그들은 매우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더 큰 지도를 만들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실제 그 나라와 똑같은 크기의 지도를 제작하여 그제국은 지도에 의해 완전히 덮인다는 우화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도는 어떤공간을 재현하는 것이지만 그 공간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편집에 의해 재현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제작자의 강한 의도가개입되기도 하고, 사용자의 편의성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고려되기도 한다.

따라서 고지도를 현재의 시각을 기준으로 공간의 재현이 과학적으로 정확 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가지고 그 우수성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 반대적인 측면에서 지도 표현의 예술적 아름다움만을 기준으로판단하는 것도 지나치게 편중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고지도는 우리 선조들의 남겨놓은 이 땅에 대한 소중한 지리정보이다. 고지도는 단순히 땅 위의 산과 강이라는 자연적 요소들을 표현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인문적 문화자료를 복합적으로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실상을 이해하고 연구 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는 항공측량을기본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평면적이고 기호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고지도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을 가장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다양한 시점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아 그 입체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또한 회화적인 표현과 기호적 표현을 적절하게 혼용하여 자연지리정보와 인문지리정보를 잘 융합하여 전달하고 있다. 이런 고지도의 시대적 유형별 특징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그 디자인 유전자적 가능성을 발굴함으로서 앞으로 지리정보 디자인 분야에서 그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함이 본 연구의 목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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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도입부에서 발췌

목차

제1부 연구개요

1장 연구배경

2장 연구목적

3장 연구범위 및 방법

4장 연구내용

제2부 디자인 DNA 연구

1장 조선시대 이전의 지도 분류 및 특징

1절 삼국시대의 지도

2절 고려시대의 지도

2장 조선시대 지도의 시대적 분류와 디자인 유전자적 가치

1절 혼일강리역대국지도

2절 조선방역지도

3절 동국지도

4절 천하도

5절 천상열차분야지도

6절 도성도

7절 수선전도

8절 청구도

9절 여지전도

10절 대동여지도

11절 지구전후도

12절 정읍현 군현도

13절 광주평장동도

14절 울릉도외도

제3부 대표디자인

제4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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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한국디자인DNA 발굴 사업’(2010, 한국디자인진흥원)의 결과물 중 일부입니다. 한국디자인DNA 발굴 사업은 한국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가 담긴 디자인과 기술 요소를 발굴해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지식경제부 주최, 한국디자인진흥원 주관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건축, 가구, 의복, 도자, 인문, 예술 각 분야에서 한국의 고유한 조형 의식의 원형과 정체성이 잘 나타난 한국적 디자인의 대표 사례 141개를 찾아 정리하였고, 연구과정 중 50개 주제로 한국디자인DNA를 소개하는 심화연구 보고서가 작성되었는데, 본 보고서는 그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