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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디자인, 생명의 존엄을 지키다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디자인, 생명의 존엄을 지키다

다니엘 프로젝트

 

 

디자인 뮤지엄(Design Museum)의 ‘올해의 디자인(Designs of the Year)’ 후보에 오른 ‘다니엘 프로젝트(Daniel Project)’ <출처: 디자인 뮤지엄 홈페이지>

 

 

영국 런던에 자리한 디자인 뮤지엄(Design Museum)은 미국 뉴욕의 쿠퍼 휴잇 국립 디자인 뮤지엄(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과 더불어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 뮤지엄으로 손꼽힌다. 특히 올해로 8회를 맞은 ‘올해의 디자인(Designs of the Year)’ 행사는 디자인 뮤지엄의 상징이다. 건축, 디지털, 패션, 제품, 그래픽, 운송 총 여섯 부문에 걸쳐 매해 세계 곳곳의 수많은 디자인 프로젝트 중 극소수만을 후보에 올리는 깐깐함 덕분에, ‘올해의 디자인’은 후보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디자인계의 특별한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올해의 디자인’ 제품 분야에는 다소 낯선 후보가 올라 눈길을 끈다. ‘다니엘 프로젝트(Project Daniel)’를 설명하는 별칭은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보철 연구실(the world's first 3D-printing prosthetic lab)이다. 그 뜻을 풀어보자면 ‘3D 프린터를 이용해 의수(義手)를 만들고 착용하는 자발적이고 지속가능한 환경이 구축된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약만으로는 부족할 터, 다니엘 프로젝트의 시작점으로 함께 돌아가 보자.

 

 

피의 땅 수단: 두 팔을 잃은 소년 다니엘


아프리카 대륙 동부에 위치한 수단은 지난 수십 년간 전쟁이 일상인 나라였다. 1983년부터 2005년까지 수단은 북부 정부군과 남부 독립군 간의 내전으로 황폐화됐다. 처음에는 종교 전쟁의 성격을 띠던 내전은 곧 역사적 갈등과 석유, 금 등의 자원 쟁탈과 맞물리며 20년이 넘게 계속됐다. 사망자만 200만 명, 400만 명의 난민을 낳은 수단의 슬픈 역사다.

2011년 남부 독립군은 남수단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합법적인 독립에 성공했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수단과 남수단공화국 국경에 위치한 유전 지대를 두고 벌어진 갈등으로, 2012년 양측간의 무력 충돌이 발발했다. 갈등이 끝난 후에도 방치된 폭탄이 터져 무고한 민간인이 피해를 겪는 일이 허다했다. 사망자를 제외하고도, 팔과 다리를 다쳐 의수와 의족 등 보철 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만 무려 5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다니엘 프로젝트’를 탄생시킨 14살 소년, 다니엘 오마르(Daniel Omar)도 이런 무고한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남수단의 누바(Nuba) 산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는 미국인 외과 의사 톰 카테나(Tom Catena) 박사가 기적적으로 이 소년의 목숨은 살렸지만, 그의 두 팔까지 구할 수는 없었다.

 

- 2012년 4월 <타임>지

 

 

캘리포니아: 다니엘 프로젝트가 시작되다


낫 임파서블 랩(Not Impossible Labs)의 믹 에블링(Mick Ebeling)

 

두 팔을 모두 잃은 다니엘의 처참한 사연은 믹 에블링(Mick Ebeling)의 가슴을 때렸다. 에블링은 저비용 오픈소스 의료 보조기구를 만들어온 실험적 연구 집단, 낫 임파서블 랩(Not Impossible Labs)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로, 그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접하자마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니엘처럼 보철 기구가 필요한 수단 사람들에게 의수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 믹 에블링

 

 

게릭병을 앓고 있는 그래피티 미술가, 템프트 원(Tempt One)을 위해 제작된 ‘아이 라이터(Eye Writer)’. <출처: ‘아이 라이터’ 홈페이지>

 

믹 에블링이 이끄는 낫 임파서블 랩은 이미 2010년 비슷한 프로젝트를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바꾼 전적이 있다. 루게릭병으로 눈을 제외하고 온몸이 경직된 유명 그래피티 미술가, 템프트 원(Tempt One)을 위해 ‘아이 라이터(Eye Writer)’를 만든 것이다. ‘아이 라이터’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동공의 움직임을 현실에 구현하는 장치로, 덕분에 템프트 원은 7년 만에 다시 그림을 그려 나중에는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에서 열린 그래피티 전시회에 참여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HP의 후원으로 제작된 ‘아이 라이터’는 <타임>지가 선정한 ‘2010년의 50대 발명품’에 꼽히기도 했다.

 

‘다니엘 프로젝트’는 전문 인력과의 철저한 협업이 이루어낸 산물이다.

 

낫 임파서블 랩이 프로젝트를 위해 취하는 방식은 ‘집단해결(crowdsolving)’이다. 재능있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혁신적이고 감당 가능한 가격의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 라이터’의 경우 전 세계에 포진한 프로그래머와 전문 기술자가 협업하였고, 이러한 방침은 다니엘 프로젝트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다니엘의 의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에블링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전문가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점차 이름을 알려가는 보철업체인 로보핸드(Robohand)의 창립자 리처드 밴 아스(Richard Van As)가 의수의 디자인을 맡았고, 최대한 낮은 비용으로 의수를 생산하는 방법을 구현하고자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는 3D 프린팅 업체 프린트알봇(PrintRBot)의 창업자 브룩 드럼(Brook Drumm)이 합류했다. 실제 다니엘의 팔과 의수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일은 신경과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푸트리노(David Putrino) 박사의 몫이었다.

특히 3D 프린팅을 이용한 의수 제작은 디자인 단계부터 인간공학과 생리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필요했는데 리처드 밴 아스는 각기 다른 사용자에게 맞는 3D 프린터용 의수 설계의 노하우를 에블링에게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 프로젝트는 다니엘 한 사람만을 위한 의수 제작을 넘어 사용자 범주를 넓힐 주춧돌을 갖게 된 셈이었다.

 

 

100달러와 6시간으로 만들어낸 기적


의수를 착용한 다니엘 오마르.

 

2013년 11월, 에블링은 동료와 함께 수단의 이다(Yida)를 찾아갔다. 다니엘을 비롯한 난민 7만 명이 생활하는 지역이다. 준비해간 의수를 착용한 후, 다니엘은 두 팔을 잃은 지 2년여 만에 처음으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동안 늘 가족의 보살핌을 받던 다니엘에게 드디어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의수를 이용해 혼자 밥을 먹는 다니엘의 모습.

 

사실 다니엘의 의수는 기능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도,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수도 없다. 식사도 의수에 수저를 끼워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여러 행동을 완벽히 구현한 A급 의수의 가격이 1만 5천 달러인 데 비해, 다니엘의 의수 생산 비용은 단 100달러에 불과하다. 게다가 3D 프린터로 모든 부속품을 인쇄하는 데 단 6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능의 아쉬움을 비용과 시간의 경제성으로 대신하는 셈이다.

 

 

이벤트가 아닌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를 꿈꾼다


‘다니엘 프로젝트’는 다니엘만을 위해 마련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뉴욕 소재의 정밀기계회사인 프리시파트(Precipart)와 인텔(Intel)의 지원을 받아, 낫 임파서블 랩은 태블릿 PC와 유명 3D 프린터 업체 메이커봇(MakerBot)의 프린터를 수단에 가지고 갔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현지에서 의수를 만들고 착용하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1 디지털 삼매경에 빠진 교육생들.

2 캠프 사람들은 의수 제작 교육에 동참했다.

3 다니엘에게 3D 모델링을 가르치는 에블린.

 

다니엘이 의수 착용을 마친 후, 낫 임파서블 랩은 캠프 사람들에게 의수 제작법 교육을 시작했다. 모두 디지털 기기를 처음 접한 터라 초기에는 진통이 많았지만, 결국 그들 스스로 3D 프로그램과 3D 프린터를 가동해 의수를 만들 수 있는 상태를 갖추게 됐다. 또한 다니엘의 생명을 구했던 카테나 박사도 교육 프로그램에 합세하여 의수를 몸에 연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수단의 난민 캠프에 제2, 제3의 다니엘을 위한 작지만 자발적인 보철기구 연구실(lab)이 만들어진 것이다.

교육생 가운데에는 첫 의수의 주인공 다니엘도 있었다. 두 팔을 잃었고 차라리 죽고 싶다던 어린 소년은 100달러와 6시간이 만들어낸 희망과 의지로 랩에 동참했다. 낫 임파서블 랩은 이름 그대로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구현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디자인


에블린은 2014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에서 ‘다니엘 프로젝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인텔의 키노트 강연자로 초청받았다. 그해 CES에는 4K UHD TV부터 산업용으로 쓰이던 SLA방식을 데스크톱 사이즈로 구현해 화제를 모은 3D 프린터와 각종 웨어러블 기기까지, 기술과 디자인이 융합된 최첨단 제품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다니엘 프로젝트’가 만든 100달러짜리 의수만큼 인간에게 절실한 존엄의 가치를 재확인시켜준 사례는 없었다.

 

1 새로 생긴 의수를 착용한 다니엘과 그의 친구.

2 ‘다니엘 프로젝트’는 ‘한 사람을 도우면 더 많은 이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한 사람을 도우면 더 많은 이를 도울 수 있다’란 낫 임파서블 랩의 모토처럼, 다니엘이라는 소년을 위해 시작된 100달러 의수는 이제 폭탄으로 불구가 된 수단의 난민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있다. 디자인은 3D 프린터의 힘을 빌려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쉼 없이 지키고 있다.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말이다.

 

장난스러운 포즈를 짓는 다니엘

 

발행일 : 2015. 04. 16.

출처

  • 전종현

    디자인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디자인 저널리스트.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마치고 월간 <디자인> 기자로 일하다 지금은 코리아 편집 위원, 월간 <웹> 기획 위원, 월간 <디자인> 객원 기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디자인과 문화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DRS 4: 도시의 시간], [서울 디자인 15 풍경] 등 몇 권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고 <허핑턴 포스트> 한국판 블로그에 디자인 칼럼을 올리곤 한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와 AAJA(Asian American Journalists Association) 정회원이다.

  • 제공 한국디자인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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