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품 디자인의 최전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닐 터. 이탈리아의 마스트로(Mastro)농장에서는 올리브 오일, 토마토 소스와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모두 옛날 방식 그대로 손으로 직접 만든다. 재료는 물론 모두 100% 이탈리아산 유기농이다. 2013년 디자인 스튜디오 더 식스(The 6th)에서는 이러한 브랜드 장점을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해 디자인의 전면에 내세웠다. 구성물을 살펴보기 위해 굳이 상품 뒷면의 라벨을 열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없으니, 디자인을 통해 고객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셈이다.
마스트로 제품을 위한 패키지 및 라벨 디자인. 좋은 유기농 재료만을 이용했다는 특징에 주목, 이를 인포그래픽 디자인으로 표현해 라벨에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다. <디자인: 더 식스스(The 6th) - 에마누엘레 바소(Emanuele Basso), 엘레나 카렐라(Elena Carella)>
이처럼 디자인으로 농장이나 제조자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먹거리를 모아 하나의 브랜드로 재탄생시킨 경우도 있다. 타이프 하이프(Type Hype)는 2013년 독일 베를린에 문을 연 프리미엄 디자인 매장이다. 문구에서부터 주방 용품, 패션 잡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고 있는데 26개의 알파벳과 10개의 숫자를 주요 모티브로 한 디자인 콘셉트가 독특하다.
타이프 하이프의 푸드 제품. <디자인: 슈트리흐풍크트 디자인(Strichpunkt Design)>
특히 푸드 라인은 건강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올리브 오일, 마멀레이드 등의 제품을 신중하게 골라 갖추었는데, 이들 패키지 또한 브랜드 콘셉트에 맞게 일괄적으로 디자인했다. 금색과 검정색을 사용한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고급스러운 패키지가 매장의 분위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제품 생산뿐 아니라 좋은 제품을 어떻게 구성해 잘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한 큐레이팅 시대, 농산물과 먹거리 브랜드 디자인의 최전선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타이프 하이프의 푸드 라인 패키지 디자인. 알파벳과 검정색, 금색을 주요 모티브로 심플하게 디자인해 프리미엄 매장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담았다. <디자인: 슈트리흐풍크트 디자인(Strichpunkt Design)>
이제까지 농업 분야에서 디자인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반갑게도 디자인이 외관을 예쁘게 꾸미는 ‘사치스러운’ 일일 뿐, 굳이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오랜 편견이 점점 깨져가고 있다.
디자인은 특히 지역 농산물 브랜드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가격이나 품질로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루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브랜드를 돋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철학과 완벽히 일치하는 좋은 디자인은 고객에게 신뢰를 줄 뿐 아니라, 이들을 단순한 구매자에서 팬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지역 농산물에 있어 디자인의 힘을 가장 잘 묘사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디자인과 농산물 브랜드의 행복하고 강력한 협업으로 우리 식탁에 보기 좋은 먹거리, 먹기 좋은 먹거리가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