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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작지만 강한 농산물 브랜드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작지만 강한 농산물 브랜드

지역 농산물의 진정한 경쟁력은 디자인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현대인의 욕심은 끝이 없다. ‘잘 먹고, 잘 산다’라는 말처럼 먹는다는 건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근원을 차지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도 없는 수입 농산물보다는, 내가 사는 곳 가까이 우리 땅에서 자고 나란 지역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중소 규모 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녹록지 않다. 대기업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나 유통망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농부들은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등, 건강한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여기에 이들이 갖출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바로 디자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는 지역 농산물의 장점을 스토리텔링으로 승화, 좋은 디자인의 모티브로 삼아 자신만의 브랜드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무장한 농산물 브랜드들이 소비자의 식탁에서 작지만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디자이너와 농부의 끈끈한 협력


국내 가장 잘 알려진 사례라면 2010년 선보인 파머스 파티의 ‘파파사과’를 들 수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액션서울의 그래픽 디자이너 이장섭과 봉화농원의 이봉진 농부가 함께 만든 파파사과는 디자인을 통해 농산물을 적극 홍보해 성공을 거둔 사례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가 우리의 농산품 브랜드를 성장시키겠다는 책임 의식과 애정을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개성 있는 패키지 디자인뿐 아니라, 어느 철에 어떤 사과가 재배되는지 또 사과의 종류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설명서를 디자인해 동봉하는 등 소비자에게 농산품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액션서울에서 파머스파티를 위해 디자인한 다양한 제품 패키지. 파머스파티는 농민과 디자이너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품질 농산물 브랜드를 표방하고 있다.

 

 

농부가 직접 디자인하고 마케팅한다


시골인디에서 디자인한 각종 농산물 관련 브랜드 로고. '비단골귀농인협회', 초원농원을 위한 '기분좋은농부', 농산물 직거래장터 '시골친척'.

 

뜻이 통하는 디자이너를 찾아 훌륭한 디자인을 선보인 사례도 많지만, 농산물에 대한 애정으로 직접 디자인과 마케팅에 뛰어드는 이들도 있다. 전라도 나주의 젊은 농부 이은민과 디자이너 김용안도 그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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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내농부' 브랜드를 위한 불미나리진액과 건강즙 패키지 디자인.

2 산마늘 장아찌를 판매하는 '미쁨농장'의 패키지 디자인.

3 장흥 편백나무 산에서 자란 '산표고버섯'을 위한 로고 디자인.

천년 농부 가문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디자인을 전공한 이은민 대표, 50년 전통 방앗간집 아들인 김용안 디자이너는 2014년 농촌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시골인디'를 창업했다. 시골인(人)과 디자인(design)의 합성어인 시골인디는 '시골사람이 만드는, 시골을 위한 디자인'을 표방하며 다양한 농산물의 디자인과 브랜드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이은민 대표는 아버지가 정직하고 솔직하게 농사지은 먹거리를 판매하는 '솔직한 농부'를, 김용안 디자이너는 방앗간집 아들답게 ‘효자 참기름 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해 운영 중이기도 하다.

 

솔직한농부에서 제작한 곡물 패키지와 '효자참기름' 로고 및 패키지 디자인. 화려함보다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솔직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택했다.

 

시골인디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이 두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만, 개중에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기성 포장지를 이용해 포장한 상품들도 있다고 한다. 정체성 구축에 디자인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브랜드의 궁극적인 목표는 품질 좋은 농산물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획과 마케팅, 그리고 디자인과 머천다이징 업무를 각각 분담하는 이들은 농업 브랜딩에 관심이 있는 농가에 판매 여건을 제공하고, 컨설팅을 통해 농가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디자인을 통해 전하는 우리 농장 이야기


파파도터의 로고와 명함.

 

제주도의 감귤 브랜드 ‘파파도터(Papadaughter)’도 독특한 개성과 스토리텔링을 브랜딩에 잘 살린 사례다. 아빠가 딸을 위해 시작한 친환경 감귤 농장. ‘파파’는 제주도에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도터’는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디자인, 마케팅,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귤말랭이, 청귤청 등 가공식품 패키징.

 

1 파파도터의 감귤 제품 패키지 디자인. 아빠가 딸을 위해 시작한 친환경 감귤 농장이라는 브랜드 스토리를 기반으로, 소박하고 심플한 패키지 디자인을 선보인다.

2 파파도터의 다양한 상품들.

 

신선한 감귤뿐 아니라 귤말랭이 등의 가공 식품도 판매중인데 친환경 농법을 고집하며 소비자가 모르는 재료는 넣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만큼, 소박하고 심플한 브랜딩과 패키지를 선보인다. 파파도터는 전문가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디자인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마치 이웃 아저씨가 맛있게 먹으라며 한아름 안겨주는 것 같은 느낌의 패키지가 브랜드 정체성과 잘 어울린다.

충북 괴산에 위치한 '클래식 농원'은 이름에 담긴 브랜드 철학을 디자인으로 잘 구현한 사례다. 6월의 매실, 여름 감자, 7월의 옥수수와 복숭아, 가을 사과까지. '클래식한 재배 기술'로 자연과 어울리는 먹거리를 생산, 언제나 싱싱한 제철 과일만을 판매한다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모던하고 차갑기보다는 손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빈티지한 디자인을 선택했다.

 

싱싱한 제철 과일만을 판매한다는 철학을 고수하는 클래식 농원의 사과 패키지. 정갈하고 손맛이 느껴지는 빈티지한 디자인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잘 살렸다. <디자인: 워크스(Works)>

 

농산품 디자인의 최전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닐 터. 이탈리아의 마스트로(Mastro)농장에서는 올리브 오일, 토마토 소스와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모두 옛날 방식 그대로 손으로 직접 만든다. 재료는 물론 모두 100% 이탈리아산 유기농이다. 2013년 디자인 스튜디오 더 식스(The 6th)에서는 이러한 브랜드 장점을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해 디자인의 전면에 내세웠다. 구성물을 살펴보기 위해 굳이 상품 뒷면의 라벨을 열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없으니, 디자인을 통해 고객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셈이다.

 

마스트로 제품을 위한 패키지 및 라벨 디자인. 좋은 유기농 재료만을 이용했다는 특징에 주목, 이를 인포그래픽 디자인으로 표현해 라벨에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다. <디자인: 더 식스스(The 6th) - 에마누엘레 바소(Emanuele Basso), 엘레나 카렐라(Elena Carella)>

 

이처럼 디자인으로 농장이나 제조자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먹거리를 모아 하나의 브랜드로 재탄생시킨 경우도 있다. 타이프 하이프(Type Hype)는 2013년 독일 베를린에 문을 연 프리미엄 디자인 매장이다. 문구에서부터 주방 용품, 패션 잡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고 있는데 26개의 알파벳과 10개의 숫자를 주요 모티브로 한 디자인 콘셉트가 독특하다.

 

타이프 하이프의 푸드 제품. <디자인: 슈트리흐풍크트 디자인(Strichpunkt Design)>

 

특히 푸드 라인은 건강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올리브 오일, 마멀레이드 등의 제품을 신중하게 골라 갖추었는데, 이들 패키지 또한 브랜드 콘셉트에 맞게 일괄적으로 디자인했다. 금색과 검정색을 사용한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고급스러운 패키지가 매장의 분위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제품 생산뿐 아니라 좋은 제품을 어떻게 구성해 잘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한 큐레이팅 시대, 농산물과 먹거리 브랜드 디자인의 최전선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타이프 하이프의 푸드 라인 패키지 디자인. 알파벳과 검정색, 금색을 주요 모티브로 심플하게 디자인해 프리미엄 매장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담았다. <디자인: 슈트리흐풍크트 디자인(Strichpunkt Design)>

 

이제까지 농업 분야에서 디자인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반갑게도 디자인이 외관을 예쁘게 꾸미는 ‘사치스러운’ 일일 뿐, 굳이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오랜 편견이 점점 깨져가고 있다.

디자인은 특히 지역 농산물 브랜드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가격이나 품질로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루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브랜드를 돋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철학과 완벽히 일치하는 좋은 디자인은 고객에게 신뢰를 줄 뿐 아니라, 이들을 단순한 구매자에서 팬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지역 농산물에 있어 디자인의 힘을 가장 잘 묘사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디자인과 농산물 브랜드의 행복하고 강력한 협업으로 우리 식탁에 보기 좋은 먹거리, 먹기 좋은 먹거리가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행일 : 2015. 04. 09.

출처

  • 최누리

    성균관대 국문학과, 사디(SADI)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를 졸업 후 월간 <디자인> 기자로 활동 중이다. 디자인을 통한 사회 변화와 이노베이션에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사람은 변화시킬 수 있기에 디자인의 힘을 믿는다.

  • 제공 한국디자인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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