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디자인 연구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 아이콘 인쇄 아이콘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절약을 부르는 에너지 고지서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절약을 부르는 에너지 고지서 디자인

디자인만 바꿨는데, 전기가 절약된다?

 

 

 

디자인,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방법을 궁리하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 절약이 자주 사회적 이슈가 되곤 한다. 전기 사용이 많아지는 여름이나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블랙아웃을 우려하는 소리와 함께 절전 캠페인이 실시된다. 전기 절약이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를 살리는 '착한 일'이라는 사실도 강조된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전기 절약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실내 냉난방 적정 온도를 규정해놓기도 하고, 돈을 들여 전기 소모가 덜한 LED 조명으로 교체하는 등 환경을 바꾸기도 하고,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봐도 사람들의 행동은 생각보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것이 '남의 일'이라 생각되면 자발적인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에너지 절약이 광범위한 대중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실천이 되려면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사람의 행동이 변화하는 순간은, 그 일이 바로 ‘내 일’이라고 인식했을 때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행동을 사람들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려면 그 일이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이 나섰다. 에너지 절약과 관련된 문제를 디자인이 해결할 수 있다? 물론이다. 디자인의 역할이 어떤 물건의 외양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에 한정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디자인은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디자인이 교통 문제 해소에 기여하고, 범죄율을 낮추며, 세금도 더 잘 걷히게 하고, 병원 내 세균 감염을 억제시키고, 저축도 유도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모두 디자인과 전혀 상관없는 일 같지만 실제로 ‘서비스디자인’이라는 새롭게 부상하는 분야가 이미 해온 일이다.

 

 

사용자 중심의 새로운 디자인 방법론, 서비스디자인


본격적으로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리디자인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지 살펴보기 전에 이 프로젝트에 도입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에 대해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비스디자인이란 “서비스를 설계하고 전달하는 과정 전반에 사용자 중심의 리서치가 강화된 디자인 방법을 적용해 사용자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분야를 말하며, 제조에 서비스를 접목하거나 서비스 모델을 개발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공공정책, 책상에서 현장으로], 한국디자인진흥원, 2013)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용자 중심’이라는 단어다. 서비스디자인적인 방법론은 철저하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특정 사용자(소비자)의 경험, 심리, 감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bottom-up)’ 연구 방법이다. 무엇보다 재능 있는 소수의 디자이너가 아닌, 아주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디자인 과정에 참여한다. 서비스디자인에서 디자이너들이 맡는 진짜 중요한 역할은 모든 관련 이해관계 당사자들과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을 이어주고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고지서 디자인 개발 총괄 책임자인 최미경 교수는 “우리는 심미성은 물론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고와 긍정적 행동 변화까지 A4용지 한 장 크기의 고지서 디자인을 통해 이끌어내야만 했다. 또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한국’이라는 특수한 문화 안에서 적용해야 했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기로 했고, 수많은 자료를 수집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라고 강조한다.

 

 

사용자의 눈으로 고지서를 다시 살피다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이 적용되어 소기의 성과를 올린 대표적인 국내 사례 중에 하나가 바로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리디자인’ 사업이다. 지식경제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사)한국디자인지식산업포럼에 의뢰해 진행된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사업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2010년 10월 자연스럽게 실제로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는 사업도 검토하자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결국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다시 디자인해보자는 쪽으로 적용 대상이 결정되었다. 당시, 연일 이어지는 한파 때문에 에너지 사용량 증가로 인한 블랙아웃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았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 고지서. 단순히 수치를 나열해놓은 기존 고지서는 어떤 것이 중요한 정보인지 한눈에 알 수 없다. 쓸데없는 정보와 중복된 정보, 광고 때문에 자세히 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사용자의 눈으로 다시 고지서를 바라보기 위해 기존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분석은 물론, 에너지와 관련해 스마트 그리드나 에코 마일리지 같은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관련 프로그램도 조사를 실시했고, 친환경 미래 주택을 표방한 건설회사가 시행 중인 에너지 절감 전략에 관한 정보도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그리고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 고지서, 서울시가 발행하는 각종 세금 고지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 도입되어 호평 받았던 KTF나 KT, 현대카드가 만든 고지서 등도 조사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례들도 수집·분석되었다.

 

영국의 런던일렉트릭시티 에너지 카드. 영국의 일부 공동주택에서는 에너지 사용자가 필요한 만큼의 전기에 해당하는 비용을 에너지 카드에 미리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선불 측정기 제도를 운영한다. 미터 판독기도 필요 없고 별도의 청구서도 없으며, 내가 얼마만큼의 전기를 사용하는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연구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만난 사람들도 아파트 주민과 경비, 환경미화원, 관리소장 같은 아파트 관련 직원들은 물론이고, 한국전력공사, 에너지관리공단 같은 정부 기관의 종사자, 미술가, 인류학자, 행동심리학자, 광고회사 디자이너, 통신사 마케팅 담당자, 카드회사 디자인팀 직원, 방송사 그래픽디자이너 등 정말 다양했다.

연구자들은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며 일일이 의견을 들었다. 실제로 사용자들의 전기 사용 행동 패턴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일도 수행되었다. 4인/3인/1인 가족 구성원별로 전력기기를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그러면서 사용자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통해 고지서를 받는 순간부터 폐기하는 순간까지 자세히 기록하는 고객 여정 맵도 작성했다.

 

1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의 가장 큰 특징은 이해관계 당사자는 물론이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참여해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나간다는 것이다.

2 실제로 4인 가족이 각각 7일간 다양한 전력기기를 사용한 빈도수를 조사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화한 그래픽 자료.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시각화시키는 작업은 서비스디자인 영역에서도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사용자로부터 ‘빅 아이디어’를 도출해내다


이렇게 연구자들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동원해 수집된 자료들은 최종 분석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이 12가지 아이디어로 정리되었다.

 

1. 레드/그린/옐로 컬러를 이용한 경고
2. 정보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에너지 사용량 시각화
3. 에너지 관련 비용이 세금(전기세)이 아닌 내가 사용한 것에 대한 비용임을 명확히 하는 용어 사용(전기 에너지 사용료)
4. 동일 평수의 이웃집과 사용료 비교
5. 동일 평수 이웃집과의 비교 등수 표기
6. 누진세에 관한 정보 제공
7. 전년도 동월 사용량 비교
8. 구체적인 에너지 절약 실천방안 시각화
9. 3번 이상 평균 에너지 사용량을 초과한 경우 에너지절약 실천 가이드북 제공
10. 에너지를 절약한 사람에게 인센티브 제공
11. 불필요한 정보, 중복된 내용 삭제 등 새로운 정보 재배치
12. 고지서를 감성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캐릭터 사용

이렇게 구체화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전문가 집단들이 좀 더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실제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연구자들은 고지서 디자인 콘셉트를 ‘반갑고 기다려지는, 궁금하고 보고 싶은 고지서’로 잡고 구체적인 고지서 디자인 개발을 시작했다.

한정된 지면 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들만 골라 최대한 알기 쉽게 시각화해서 집어넣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5개의 디자인 시안을 만들었고, 사업 적용 시범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선호도 조사를 실시해서 최종 결과물을 도출해냈다.

 

다양한 사용자 중심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적용해 얻은 아이디어를 적용해 탄생한 새로운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디자인 최종안(전면, 뒷면).

 

 

디자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움직이게 하다


실제로 디자인이 바뀐 고지서가 에너지 절약을 위한 행동으로 연결되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2011년 1~3월까지 방배 아트힐 588세대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이 시행되었다. 과연 고지서 디자인을 바꾼 것만으로도 실제로 전기를 덜 쓰게 될까,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시범단지의 에너지 사용률이 전국 평균 대비 7.2~12.2%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재디자인한 고지서의 효과가 가장 확실하게 드러났던 곳은 고지서가 꽂힌 각 세대 우편함 앞에서였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 세대(레드), 보통 수준으로 사용한 세대(옐로), 절약한 세대(그린)가 어떤 세대인지 우편함에 꽂힌 고지서의 컬러로 명확하게 한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컬러가 주는 정보가 주민들로 하여금 나도 모르게 경쟁심리를 느끼게 한 것이다.

 

디자인을 바꾼 고지서는 멀리서 컬러만 봐도, 우리 집의 전기 사용량이 평균보다 많은지 적은지, 다른 집과 비교했을 때 어떤 수준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은근히 경쟁심리를 유발하는 이 전략은 실제 에너지 사용 절감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지서 내에도 비슷한 평수의 이웃집과 전력사용량 수치가 비교가 되고, 우리 집이 작년 동월 대비 더 많이 썼는지 적게 썼는지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지서를 통해 정보를 인식하고, 전기를 좀 더 아껴 써야겠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새롭게 바뀐 고지서 디자인은 에너지관리공단 주관으로 아파트 절약형 고지서 사업을 통해 계속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2013년 8월 현재 전국 약 100만 세대가 개선된 고지서를 받았다. 현재도 이 고지서는 계속 보급되고 있으며, 2017년 목표는 500만 호라고 한다.

 

실천적 에너지 절감사업으로 실제 적용되고 있는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와 개선된 공동주택 통계 웹 개인화 페이지 디자인.

 

사업에 참여한 최미경 교수와 김장수 책임연구원 모두 “아이디어나 문서상의 그래픽디자인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 속에서 적용되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유발시켰다”라는 점을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의로 꼽는다.

‘디자인’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용자의 시각으로 문제를 다시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 이 사업의 또 하나의 큰 의미일 것이다. 앞으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이 적용될 미지의 영역이 어디가 될지 사뭇 기대가 되고 궁금해진다.

 

발행일 : 2015. 03. 26.

 

출처

 

영상으로 보기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절약을 부르는 에너지 고지서"의 경우,
공공누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사진, 이미지, 일러스트, 동영상 등의 일부 자료는
발행기관이 저작권 전부를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