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고민은 오늘까지만
정류장에 마음을 두고 가는 브랜드 '오고오고'
수업 최종 발표회 참관기
경희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스몰브랜드 창업과 운영' 수업
지도교수 : 김경진
발표팀 : 김윤조, 박한준, 천우태
시각디자인 교육은 오랫동안 아웃풋을 다듬는 훈련에 무게를 두어 왔다. 무엇을 보기 좋게 만들 것인가를 묻는 자리는 많았지만, 무엇을 왜 만들 것인가를 설계하는 인풋 단계의 훈련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경희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의 '스몰브랜드 창업과 운영' 수업(지도교수 김경진)은 그 인풋 단계를 정면으로 다룬다. 핵개인화로 이동하는 소비 환경에서 스몰브랜드가 어떻게 철학과 차별화된 고객 경험으로 시장에 진입하는지를 학습하고, 학생들이 가상의 브랜드를 직접 기획하는 실무 과정이다. 콘셉트 도출, 타깃 정의, 잠재 니즈 분석과 심층 리서치, 포지셔닝과 SNS 마케팅 전략까지를 한 학기에 다루었다. 2026년 6월 22일 점심시간, 색달랐던 한 학기의 마지막 발표회가 '영 디저트'라는 이름으로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작은 회의실에서 열렸다. 원래 '디저트'는 디자인진흥원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습하는 활동의 이름이었다.
그날 소개된 한 팀의 작업을 옮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질문 - 정신 건강이라는 주제
발표에 나선 팀의 이름은 느타리다. 김윤조(21학번), 박한준, 천우태 세 사람으로, 6년째 학교를 다니는 수업 내 최고 학번이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마지막 학기에 듣게 된 이 수업이 대학에서의 마지막 수업이었고, 김윤조는 리서치를 설계하고 수행해 디자인 방향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비로소 체계적으로 배웠다고 발표 서두에 밝혔다.
팀이 택한 주제는 정신 건강이다. 누군가 "저는 정신과에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위로해야 할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경험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한국 사회에서 정신 건강 문제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힘든 것은 숨겨야 한다는 태도로 일상을 보낸다.
출발점은 가까운 경험이었다. 예술·디자인을 전공하는 환경 탓인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겪는 친구들이 주변에 적지 않았고, 팀원들은 해줄 수 없다는 미안함과 악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 방법을 찾지 못하는 무력감을 공통적으로 느꼈다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팀이 잡은 큰 틀은 정신 건강을 치료의 영역으로만 두지 않고 일상에서 가볍게 실천하는 감정 관리 습관으로 풀어내는 것,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셀프 멘탈 케어였다.
유사브랜드 분석 - 숙취해소제에서 빌려온 소비 구조
리서치에 앞서 팀은 선행 브랜드를 두 갈래로 분석했다. 멘탈 케어를 직접 다루는 마음경작소, 그리고 의외의 영역인 숙취해소제 상쾌환이다. 상쾌환을 들여다본 것은 소비 구조 때문이었다. 이 브랜드의 가장 특징적인 지점은 '효과 검증'보다 '행동의 습관화'에 있다. 숙취 해소라는 불확실한 효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이걸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심리로 제품을 반복 구매한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의 가벼운 의식(ritual)처럼 작동하며, 제품이 문제 해결 도구가 아니라 행동 트리거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즉, 필요가 아닌 '당연한 행동'으로 소비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 핵심이다.
팀은 이 구조를 멘탈 케어에 차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감정이 힘든 순간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나 해본다"는 행동으로 즉시 실행에 옮겨지도록, 구매와 접근의 선택 피로를 줄이고 빠르고 직관적인 경로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판단이었다. 다만 멘탈 케어는 숙취와 달리 개인의 감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 지나친 가벼움이 거부감을 부를 수 있다. 부담 없는 접근성을 유지하면서도 최소한의 공감과 진정성을 잃지 않고,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반복 사용 시나리오를 설계할 것. 가벼움과 신뢰 사이의 균형이 이 브랜드의 핵심 고려 요소가 됐다. 뒤에 나오는 오고오고의 휘발성과 즉각성은 이 분석에서 출발한다.
두 갈래의 리서치 - 직접 겪어보기와 깊이 듣기
팀은 고객 되어보기와 심층 인터뷰를 선택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불편함과 실제 경험 사이의 간극을 직접 체험하고 동시에 깊이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객 되어보기로는 마음경작소의 워크북과 셀프 케어 키트를 구매해 직접 사용했다. 온라인 워크북은 참여를 유도하면서도 숙제처럼 느껴졌고, 오프라인 학습지 역시 마음을 돌보는 일을 또 다른 숙제로 만들었다. 정말 힘든 순간에 이 학습지를 펼치고 몰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심리적 에너지 소모와 정서적 강요가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났고, 팀은 치료라는 무거운 접근 대신 일상의 환기라는 가벼운 경험으로 방향을 잡았다.
심층 인터뷰는 모두 일곱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대상은 현재 마음의 질환을 겪는 사람, 과거에 겪은 사람, 직접 경험은 없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을 둔 사람으로 나눴다. 민감한 주제인 만큼 팀은 사전에 자체 규칙을 세웠다. 편안한 환경을 만들고, 익명 보장을 꼼꼼히 안내하며, 대상자를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경청하되 응답을 강요하지 않으며,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분명히 전했다. 취약한 마음을 다루는 리서치에서 사전 설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발표에서 대표로 소개된 네 사례는 결이 서로 달랐다. 고립을 겪은 20대 후반 직장인은 한 달 반의 칩거 끝에 명상이라는 해법을 찾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대 중반 취업 준비생은 불안을 통제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쪽으로, 감정을 정리하려 애쓰지 않고 어차피 사라질 것으로 여기며 지냈다. 진료를 통해 안정을 되찾은 20대 중반 남학생은 낯선 타지에서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자신을 돌아본 경험을 회복의 계기로 꼽았다. 8년째 불면과 공황이 이어지는 20대 중반 대학원생은 "언제까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할까"라고 되물었다.
니즈에서 인사이트로
수백 개에 이르는 발화와 행동 기록을 앞에 두고 팀은 한동안 막막함을 느꼈다. 처음 정리한 니즈로 되돌아가 살펴보니, 두 가지 이상의 욕구가 섞인 항목들이 보였다. "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힘들지만,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같은 진술이다. 팀은 이렇게 욕구가 혼재된 진술이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에 가장 가깝다고 보고, 이를 열쇠 삼아 다섯 인사이트를 도출했다.
상대와의 심리적 거리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 절대적인 내 편에게는 감정적 지지를,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에게는 객관적 피드백을 구하고, 애매한 관계에는 전략적으로 소통을 꺼린다. 감정에 잠식되었을 때는 감정을 면밀하게 분석하기보다 차단하고 싶어 한다. 완벽한 치유보다는 우울감과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일상을 원하며, 원인 해결보다 그 순간 감정의 강도를 낮추는 회피와 탈출로 향한다. 그리고 안 좋은 감정을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옮기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곧 자기 고립으로 이어지게 한다.
기회 영역의 선택
팀은 니즈를 만족도(당장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와 중요도(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 두 축에 배치했고, 세 영역이 드러났다. 만족도는 높지만 중요도가 낮은 영역은 지금 당장 빠르게 벗어나도록 돕는 서비스, 둘 다 높은 영역은 마음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도록 돕는 서비스, 중요도는 높지만 만족도가 낮은 영역은 장기적 루틴 형성을 돕는 서비스다.
팀은 첫 번째 영역을 택했다. 기획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하는 곳은 보통 둘 다 높은 영역인데, 팀은 그곳을 비켜섰다. 이유는 시장 구조에 대한 판단이었다. 상담 프로그램, 케어 학습지, 정부 지원 치유 프로그램 대부분이 근본 문제 해결과 장기 루틴에 몰려 있는 반면, 잠도 오지 않는 순간에 우선 상태를 회복시켜 주는 서비스는 비어 있었다. 박한준은 정신과 진료를 받는 친구들에게 기존 접근을 제시했을 때 "이제 더 이상 이런 것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 같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했다. 병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통념보다, 고치기 어려운 상태를 안고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는 태도가 더 분명히 읽혔다는 것이다. 슬라임이나 팝잇처럼 즉각적인 스트레스 해소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오늘의 고민은 오늘까지만 하고 - 오고오고
아이디어 도출에서 팀은 랜덤 링크 방식을 썼다. 칫솔, 자석, 거울, 버스 손잡이, 옥상, 턴테이블처럼 서로 무관한 수십 개의 단어를 펼쳐 놓고 연결 가능한 것을 골라내는 방법이다. 여기서 '보물 찾기', '업데이트', '버스 정류장'이 떠올랐다. 버스 정류장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여유를 갖는 공간, 보물 찾기는 일상의 소소한 재미, 업데이트는 매일 리셋되는 익명 커뮤니티의 성격으로 이어졌다. 이어 'YES, AND' 방식으로 "거기에 무엇을 더할까"를 반복하며, 정류장마다 다른 질문을 제공하고, 감정을 가볍게 털어놓는 콘셉트에 집중하며,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함께 보며 공감을 주고받는다는 방향을 더했다.
완성된 브랜드의 이름은 오고오고다. 슬로건은 "오늘의 고민은 오늘까지만 하고"다. 김윤조는 이름에 세 가지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위로의 표현 '오구오구', 버스가 오고 가는 정류장의 이미지, 그리고 오늘의 고민은 오늘만 한다는 슬로건이다. 무거운 치료를 떠올리게 하지 않도록, 발음에서부터 가벼움이 느껴지는 이름을 택했다.
서비스는 이렇게 작동한다. 대중교통 정류장의 키오스크에 하루 한 번 새로운 질문이 게시되고, 사용자는 옆에 부착된 NFC 칩을 스마트폰에 태그해 그날만 열리는 익명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작성한 글은 키오스크 화면에 떠오르고, 같은 공간을 지난 낯선 사람들과 짧은 위로를 주고받는다. 모든 기록은 자정에 사라진다. 휘발성과 익명성, 매일의 리셋이 핵심 장치다. 로고의 빨간 원과 노란 원은 해가 뜨고 달이 뜰 때까지 고민을 이 공간에 두고 떠나자는 의미다. 화면 시안에는 화해를 망설이는 마음, 졸업 전시에 지친 하소연, 티켓팅 실패로 무너진 하루, 실수로 날아간 작업물 같은 일상의 고민들이 담겼다.
팀이 정의한 핵심 가치는 채움보다 비움이다. 근본 문제 해결에 앞서 상태 회복에 집중한다는 것으로, 힘든 순간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문제 직면보다 회피이며 즉각적인 심리적 안정이라는 리서치 결과가 그 근거다. 둘 다 높은 영역은 기존 서비스에 맡기고, 비어 있는 영역에서 스몰브랜드의 자리를 찾은 셈이다.
현장의 대화
질의응답에서는 완성도를 높이는 제안이 오갔다. 한 참석자는 자정에 모든 기록이 사라지면 내 글에 달린 위로를 미처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리셋 주기를 50시간 정도로 늘려 다음 날 저녁까지 응답을 확인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천우태는 앱으로 구현할 경우 내가 쓴 고민은 사라지되 위로의 댓글은 남기는 방식을 검토했으나, 복잡해질 우려로 키오스크 형태로 정리했다고 답했다. 검은 배경에 대해서는 키오스크 외형을 고려한 임의 설정이며 오브제로 확장할 경우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0년째 공황장애를 겪는다고 밝힌 한 참석자는 마음을 토닥여 주는 서비스라는 소감과 함께, 접근이 쉬운 둘 다 높은 영역 대신 첫 번째 영역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팀이 시장의 빈자리를 어떻게 읽었는지를 다시 설명하는 계기가 됐다.
발표를 지켜본 한 평자는 이 팀의 강점을 리서치 사전 설계에서 찾았다. 섬세한 주제에서 무엇을 신경 써야 할지 미리 정리하고, 리서치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개념이 잡혀 있다는 평가였다. 모든 팀이 만족도와 중요도가 모두 높은 영역을 공략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주제에 따라 적절한 기회 영역이 다르다는 점을 이 팀이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지적도 더해졌다. 나를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응원이 의외로 큰 힘이 된다는 서비스디자인의 경험적 관찰과도 맞닿는 작업이라는 언급이 이어졌다.
오고오고는 가상의 기획이고 실제 출시를 전제로 한 모델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취약한 마음이라는, 사용자 리서치에서 가장 까다로운 주제를 택해 직접 겪고 깊이 듣는 두 갈래로 접근했고, 그 결과를 기회 영역의 선택이라는 전략적 판단으로 연결했다. 무거운 목표 앞에서 멈칫하는 사람에게 우선 그 순간의 감정 강도를 낮추고 다시 내일을 준비할 힘을 주는 것. 스몰브랜드가 시장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방식이 한 학기의 작업에 압축되어 있다.
발표 말미에 박한준은 자신도 많은 고민에 밤잠을 설치곤 한다고 했다. 오고오고가 그 고민을 다 덜어줄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내일을 준비하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 이 브랜드가 향하는 지점이다. 정류장에 잠시 머물다 가듯, 오늘의 고민을 오늘까지만 두고 가는 공간을 학생들은 그렇게 그려냈다.
정리 :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 안전 디자인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