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디자인 로드맵 개발 연구
산업현장의 안전은 오랫동안 법규와 점검, 교육과 보호구의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현장의 사고는 여전히 반복된다. 이 반복을 작업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위험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피하기 어렵고, 위급한 순간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이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고 뒤에 매뉴얼을 한 권 더 얹는 것만으로는 이런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 사람과 차량의 동선이 뒤섞인 통로, 의미가 불분명한 안전표지, 잘못된 행동을 유도하는 설비처럼 사고를 만들어내는 환경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실천형 가이드에서 정책 기반 연구로
한국디자인진흥원 혁신성장본부 서비스디자인실이 주관하고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연구센터가 수행한 『산업안전디자인 로드맵 개발 연구』는 이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후속 연구다. 앞서 한국디자인진흥원과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안전디자인 표준모델 01: 현장 적용을 위한 안전디자인 가이드」를 개발한 바 있다. 보행안전, 소방안전, 위험구역 관리, 보호구 착용 안내, 안전표시까지 5개 분야 22개 항목으로 구성된 실천형 가이드로, 산업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안전디자인 항목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둔 연구였다.
이번 로드맵 연구는 그다음 단계에 해당한다. 개별 안전디자인 항목을 넘어, 산업·업종·공정·재해유형·사용자 행위 특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산업안전디자인의 정의와 분류체계, 우선순위, 로드맵, 표준모델 구성요소를 체계화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국내 산업현장에 맞는 안전디자인 적용 기준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 인식이 그 출발점이며, 특히 중소 제조기업도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 표준모델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앞선 표준모델 01이 "현장에서 안전디자인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관한 연구였다면, 이번 연구는 "어떤 산업안전디자인을, 어떤 위험에, 어떤 기준으로, 어떤 순서에 따라 확장할 것인가"에 답하는 연구인 셈이다. 연구진은 이 두 단계를 관통하는 관점을 ‘Design for Safety’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고, 이를 실행 가능한 표준모델과 로드맵으로 구체화하는 데 이번 연구의 무게를 두었다.
이 연구의 또 다른 출발점은 산업재해의 원인을 개인의 실수로만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업자의 행동은 공간 구조, 작업 절차, 설비, 정보 전달 방식, 조직의 관리체계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안전은 개인에게 더 주의하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위험을 쉽게 인지하고, 잘못된 행동은 어렵게 만들며, 올바른 행동은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 전체를 관통하는 전제다.
방법론의 규모부터 밝혀둘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미국·영국·독일·일본의 안전 관련 제도와 문헌 66건을 검토하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KOSHA)의 사고사례 3,487건과 통계청의 5개년(2020~2024년) 산업재해 통계 641,007건을 분석했다. 여기에 ISO45001의 PDCA 모델, FEMA 재난관리모델, Haddon Matrix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안전관리모델을 비교의 틀로 삼고, 산업안전·디자인 분야 전문가 9인을 대상으로 두 차례 델파이 조사를 거쳐 도출한 과제의 타당성을 검증했다. 이 연구가 실제로 무게중심을 두는 지점은 이론적 배경이나 현황 고찰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실행 가능한 체계로 전환한 5장 이후의 프레임워크와 우선순위 선정 과정에 있다.
25개 사고 유형을 5개 군집으로 다시 짜다
5장은 국가통계포털(KOSIS)이 분류하는 25개 발생 형태별 사고 유형을 그대로 쓰지 않는다. 기존 분류는 사고를 병렬적으로 나열할 뿐, 어디에 디자인이 개입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사고 발생 특성과 공간적·물리적 맥락의 유사성에 따라 이 25개 유형을 G1(추락·전도·낙하), G2(끼임·감김·충돌), G3(붕괴·화재·폭발), G4(유해물질 노출 및 질병), G5(비상·예외 상황 및 관리 부재) 5개 군집으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5년간 발생 빈도가 0건인 항목과 업무상 질병(장기간에 걸쳐 발생해 디자인의 즉각적 개입이 어려운 보건 영역으로 판단)을 제외해, 25개 중분류는 21개로, 210개 세부 유형은 204개로 정리되었다.
이 장의 핵심은 사고 하나하나를 법적 언어와 디자인 언어, 두 가지로 동시에 정의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떨어짐’이라는 사고를 KOSHA 가이드는 “사람이 중력에 의하여 높은 장소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정의하지만, 산업안전디자인은 같은 사고를 “높이 차이가 있는 공간에서, 신체를 지지할 물리적 인프라(난간)나 시각적 경계가 없어 중력에 의해 추락하는 현상”으로 다시 쓴다. 앞의 정의가 책임 소재를 가리는 언어라면, 뒤의 정의는 무엇을 설계해야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지를 가리키는 언어다. 두 정의를 나란히 놓은 이유도 명확하다. 법적 신뢰성과 현장 적용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재구성된 204개 세부 사고 유형 각각에 대해, 연구진은 사고 전 위험을 차단하는 대비(Ready), 사고 발생 시 대응(Response), 사고 이후 회복(Recovery)으로 이어지는 3R 산업안전디자인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방안 612개를 도출했다. 각 항목에는 G1-①-01(비계·작업발판 관련 추락)과 같이 대분류-중분류-소분류 코드가 부여되어, 어떤 사고에 어떤 디자인이 대응하는지를 추적할 수 있게 했다.
빈도 1위(1,142건, 21.13%)인 비계·작업발판 관련 추락을 예로 들면, 대비 단계에서는 발판 사이의 틈을 없애는 틈새 방호 안전시설과 추락 방지 방호 울타리를, 대응 단계에서는 추락 충격 완화 장치와 긴급 구조 알림 체계를, 회복 단계에서는 구조물 결속 확인 표지와 안전 점검 현황판을 제안하는 식이다. 사고 전·중·후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각 국면마다 구체적인 디자인 산출물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이 프레임워크는 선언적 원칙보다 실행 지침에 가깝다.
무엇을 먼저 다룰 것인가: 거시에서 미시로
6장은 방향을 조금 바꿔 612개 방안 가운데 무엇을 먼저 추진할지를 묻는다. 연구진이 택한 방법은 3단계다. 먼저 KOSIS의 5개년 통계 641,007건을 거시 지표로 삼아 어떤 사고 유형을 우선 다룰지를 정한다. 이 통계에서 넘어짐이 126,172건(1위)으로 가장 많았고, 업무상 질병 109,894건(2위, 다만 보건 영역으로 최종 분류에서 제외), 떨어짐 72,580건(3위), 끼임 66,044건(4위), 절단·베임·찔림 52,912건(5위) 순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산업안전포털의 사고사례 3,487건을 미시 표본으로 정밀 분석해 그 사고가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의 맥락과 디자인이 개입할 지점을 찾는다. 연구진은 이 두 데이터의 관계를 명확히 구분한다. 641,007건이 어떤 유형을 우선 다룰지를 정하는 거시 지표라면, 3,487건은 그 유형이 왜 발생하는지를 정밀 분석하는 미시 표본이며, 둘은 상호보완적일 뿐 중복 집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두 층위의 분석을 통합해 표준모델과 단계별 로드맵으로 확정한다.
핵심과제 30선, 세 가지 기준으로 걸러내다
7장에서는 612개 방안 가운데 핵심과제 30선을 추린 근거를 제시한다. 기준은 세 가지다. 사고 발생 빈도(3,487건 사고사례 분석에서의 상위 항목), 적용 범위(단일 업종이 아니라 건설·제조·물류 등 복수 업종에 공통 적용 가능한지), 디자인 개입 실효성(현행 법령상 의무 규정이나 국제표준과 연계되는지)이다. 세 번째 기준이 특히 흥미로운데, 법령 의무 규정이 이미 존재하는 사고 유형은 국가가 해당 위험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므로, 디자인 솔루션을 적용할 때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쉽다는 논리다. 실제로 핵심과제 30선 전 항목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의 관련 조문과 연결되어 있으며, 1위·13위·22위 항목은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와도 맞닿아 있다.
핵심과제 30선의 최상위 항목들을 보면 이 기준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드러난다. 1위는 비계·작업발판 관련 추락(1,142건, 21.13%, 건설·조선·제조 전 업종 적용,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조·제44조 및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근거)이고, 2위는 컨베이어·이송설비 협착(1,012건, 20.32%, 제조업 전 분야, 안전인증 제도 연계 가능), 3위는 지붕·상부 구조물 관련 추락(936건, 17.32%)이다. 이렇게 확정된 핵심과제 30개는 두 차례 델파이 조사를 거쳐 타당성을 검증받은 뒤, 시급성과 파급력을 기준으로 단기(1~3차년도) 13개, 중기(단기 이후 5년) 10개, 장기(중기 이후 5년) 7개로 배분되어 실행력을 담보하는 최종 로드맵으로 완성되었다.
안전표지 교체를 넘어선 통합 시스템
이 보고서가 중요한 이유는 안전디자인을 안전표지나 색채 개선 같은 부분적 개선에 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록에 제시된 단계별 추진 계획을 보면 그 범위가 뚜렷하다. 고위험 구역 식별과 동선 분리 같은 대비 영역의 과제부터, 비상경보와 긴급차단 시스템 같은 대응 영역, 웨어러블·방호판·개구부 안전장치 실증과 산업재해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 같은 회복 영역까지 아우른다. 여기에 한국형 안전색채·형태 표준 개발, 업종별 맞춤 가이드라인, 현장 테스트베드 운영, 산업안전디자인 공인 인증제 도입까지 후속 추진 과제로 명시되어 있어, 이 연구가 보고서 한 권으로 끝나지 않고 정책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이미 마련해두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왜 지금 이 연구가 필요한가
산업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은 안전관리 체계를 재정비하고 있지만, 그 대응이 여전히 사후적 규제 준수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 연구가 제안하는 표준모델과 로드맵은 대규모 사업장뿐 아니라 안전 투자 여력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한국형 산업안전디자인 표준화 및 인증체계 구축의 실질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함의가 크다. 안전을 비용이나 규제 준수의 문제로만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사람의 행동과 환경의 관계를 개선하는 디자인의 역할을 국가 산업안전정책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시의성은 분명하다.
이 연구는 「안전디자인 표준모델 01」에서 시작된 흐름의 다음 좌표라고 할 수 있다. 641,007건의 통계와 3,487건의 사고사례를 관통해 612개의 구체적 디자인 방안에 도달하고, 그중 다시 핵심과제 30개를 걸러내는 과정 전체가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결정 구조로 짜여 있다는 점에서, 이후의 표준모델 개발과 실증사업, 인증제도, 전문인력 양성과 산업별 확산을 추진하기 위한 공통의 좌표를 제시한다. 산업현장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디자이너와 기업, 연구자, 정책 담당자라면 눈여겨볼 만한 연구다.

* 산업안전디자인 로드맵 과제 추진 단계 중 발췌(한국디자인진흥원, 2025)
목차
제1장 이론적 배경 및 현황 고찰
가. 연구 프레임워크
나. 안전에 대한 정의
다. 안전과 보건에 대한 정의
라. 국내외 문헌, 제도 및 학술자료 분석 연구
마. 국가별 산업재해 유형에 대한 분류 기준
바. 국가별 산업안전 관련 지침 및 제도
사. 국가별 산업안전 관련 체계 분석
아. 산업안전의 문헌 고찰
자. 산업안전 유관 정의와 관련 개념 고찰
차. 안전디자인 및 유사개념 조사·분석
카. 산업안전 유관 정의와 관련 개념 소결
제2장 국내 산업현장 분석
가. 산업사고 사례 분석
나. 산업안전 현황 자료 분석
다. 산업안전디자인 적용을 위한 산업안전 분류체계
제3장 산업안전디자인 적용 기준 분석
가. 목적 및 범위
나. 주요 분석 결과 요약
다. 기준 도출 근거 및 분석 프레임
라. 사례유형 재해석 및 재구성 방향
마. 군집 재구성 기준
바. 25개 사고유형 군집화 재구성
제4장 산업안전디자인 지표 개발
가. PDCA 안전보건경영 순환관리 모델
나. FEMA 재난관리 사이클
다. Haddon Matrix 손상 예방 분석 도구
라. 소결
제5장 산업안전디자인 프레임워크
가. 산업안전디자인 지표 설정
나. 산업안전디자인 사고유형 분석
다. 산업안전디자인 안전지표 핵심요소 및 적용기준
라. 산업안전디자인 프레임워크 설명
마. 디자인 방안 및 전략
제6장 산업안전디자인 표준모델 가이드
가. 산업안전디자인 로드맵 우선순위 선정 방법
나. 로드맵 제시를 위한 세부내용 분석
다. 로드맵 제시를 위한 우선순위 선정
라. 가이드라인 구성 체계
마. 산업안전디자인 제언
제7장 산업안전디자인 개발 우선사업 선정
가. 산업안전디자인 개발 우선추진사업 30선 선정 근거
나. 델파이 1차 조사
다. 델파이 2차 조사
부록. 산업안전디자인 개발 목표 및 핵심과제 도출
가. 산업안전디자인 목표 수립
나. 산업안전디자인 연구 핵심과제
다. 산업안전디자인 3단계 디자인 제안
출간 정보
연구명 : 안전디자인 로드맵 개발 연구 (산업안전디자인 표준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
발행기관 : 한국디자인진흥원
발행일 : 2026. 6.
주관기관 : 한국디자인진흥원 혁신성장본부 서비스디자인실
주관기관 참여자 : 윤성원 실장, 박민영 팀장, 송정현 선임연구원, 정영진 주임연구원
연구기관 :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연구센터
연구 총괄책임자 : 이현성 부센터장
연구원 : 홍태의 책임연구원, 이주호 선임연구원, 양다혜 연구원
저작권 : 본 제작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한국디자인진흥원에 있음



















안전디자인 204개 과제
